동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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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의 동작대는 중국 중앙 텔레비전에서 건설한 드라마 세트장이다.
1. 개요
'''銅雀臺'''
중국 후한 말기인 서기 210년에 조조가 업군의 서북쪽에 지은 누대. 땅에서 발굴된 구리(銅)로 만든 참새(雀)로 지붕 위를 장식했다고 해서 동작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요순시대의 옛날 순임금을 임신할 때 그 어머니가 꿈에 옥작을 품었다는 유래를 믿은 것이다.
여담이지만 서울특별시 동작구의 명칭도 이 동작대에서 유래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의 동작대교 남단에 검은 구릿빛 돌[1] 이 많다고 해서 붙여진 동재기 나루라는 옛 지명을, 이 동작대와 발음이 비슷하다 하여 음을 가차해서 쓰는 것이다.
2. 역사
212년에는 동작대에서 조조의 아들인 조식이 동작대부(銅爵臺賦)를 지어 조조의 찬사를 받았으며, 조비도 따라서 등대부(登臺賦)를 지었다. 또한 채염으로 하여금 동작대에서 호가십팔박(胡笳十八拍)을 부르게 하였다. 삼국지연의에서 이 곡은 이교에 대한 조조의 욕망곡으로 바꾼 제갈량의 왜곡으로 인해 적벽대전 전야에서 주유를 격분시키는 데 사용된다.[2] 다만 실제로 동작대를 지은 건 적벽 이후인데, 작가 나관중이 '조조가 여유를 부리는 사이 절치부심하여 세력을 키운 유비'라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3] 일부러 앞당겨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213년에는 동작대의 남쪽에 '금호대(金虎臺)'를 새로 건축하였고, 214년엔 동작대의 북쪽에 '빙정대(冰井臺)'를 건설하여 이를 '삼대(三臺)'라고 칭하였다.총 3채의 궁전으로 구성되어 각각의 건물은 높게 설치한 다리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수경주에 의하면 '동작대는 업(鄴)의 북서쪽에 위치하며, 100여칸의 방이 있고, 산처럼 높이 솟아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후일 후조의 석호에 의해 5층 건물로 개축되었으며, 업중기(鄴中記)에 의하면 석호는 동작대에 우물을 두 개 만들어, 그 사이를 철로 된 지하도로 연결해 이를 명자굴(命子窟)이라 하였고, 이 안에 보물이나 식량을 비축해 두었다고 한다. 이후 북제 시기인 558년에 장인 30만여 명을 동원해 대규모 증축을 시행하여 빙정대는 '숭광대(崇光臺)', 동작대는 '금봉대(金鳳臺)'로 개칭하였으나, 당나라(唐) 시대에 들어 원래 명칭으로 되돌아갔다. 그 뒤 북송시기의 왕안석은 동작대시(銅雀臺詩)를 저술해 그 경치를 예찬하였다. 이때 동작대 기와로 벼루를 만들어 팔리는게 유행이었으나 거의 다 가짜였다고 한다.
원나라 말기에 큰 홍수로 동작대의 일부가 파손되었으며, 명나라 말기에 다시 큰 홍수가 발생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현재 허베이 성 한단 시 린장 현에 유적이 남아 있으며, 이 중 금호대는 비교적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있지만 나머지 건물들은 홍수 및 전쟁으로 소실되어 지하에 매몰되었다.
3. 대중매체
3.1. 삼국지연의
연의에서도 조조가 동작대를 완공한 기념으로 조조가 성대한 연회를 여는데, 이때 한판 크게 놀아보자 싶었는지 활쏘기 대회를 마련한다. 조씨 일족에게는 붉은색 옷을, 그 외의 장수들에겐 녹색 옷을 입힌 후 보상으로 비단 전포를 거는데 달리는 말 위에서 화살을 쏘아 과녁을 맞추는 것이 조건이었다. 이에 하나둘씩 활솜씨를 보이는데 김홍신 평역판 기준으로 다음과 같다.
- 조휴: 말을 달려 과녁까지 세 번을 오간 후 활을 쏘아 성공.
- 문빙: '같은 일족에게 먼저 기회를 주는 건 공정하지 못하다'라며 딴지를 건 후 단번에 활을 쏘아 성공.
- 조홍: '조휴가 먼저 성공했으니 더 말하지 말라'며 역시 단번에 활을 쏘아 성공.
- 하후연: 내가 보기엔 그것도 별 거 아니라며 말을 달리다 몸을 한 바퀴 돌리며 활을 쏴서 성공.
- 서황: '내가 가질 것이니 여러 소리 할 것 없다'며 호언장담하고, 이에 하후연이 무슨 배짱이냐며 화를 내자 잘 보기나 하라며 말을 달리는데 과녁이 아닌 전포가 걸린 나뭇가지를 쏘고(!) 떨어지는 전포를 받아 성공. 그대로 그 전포를 입고 조조에게 가서 감사히 받겠다며 인사하는 것으로 깔끔히 마무리했다.
그리곤 본인도 흥에 취해서 시를 짓는데, 그 순간 유비가 형주를 완전히 차지했다는 보고를 받고 크게 놀라서 붓을 떨어뜨리고 '"큰일났구나. 유비가 형주를 얻은 것은 용이 바다에 풀려난 것과 같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정사 삼국지 노숙전에서 소식을 듣고 붓을 떨어뜨렸다는 비슷한 내용이 있기는 한데, 동작대는 아니고 조조가 단순히 편지를 쓰고 있었으며 '용이 바다에'라는 대사도 연의의 창작이다.
3.2. 게임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에서도 동작대를 건설하는 이벤트가 등장한다. 삼국지 조조전의 로고는 동작대의 구리 참새이며, 엔딩 영상에서도 마지막은 눈 오는 겨울날 동작대의 참새이다.
진삼국무쌍 8에서는 본 문서 상단에 있는 중국에서 복원한 동작대를 3D 리모델링하여 맵으로 심어놓기도 했다. 실제로 캐릭터를 플레이해서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
4. 참고자료
[1] 흑석동 일대[2] 연의에서는 제갈량이 이교가 주유와 손책의 아내인 줄 모르는 척 하며 주유를 낚는다. 그런데 삼국에서는 제갈량에게 노숙이 이교와 손책/주유의 관계를 얘기해주자 조조의 유부녀 취향 때문에 더 큰일났다고 얘기한다.[3] 아예 작중에서 유비 세력이나 그들에게 우호적인 인물들(주로 제갈량)이 한고제 유방에 비유하기도 한다.[4] 말 위에서 몸을 돌려 등 뒤로 쐈다는 것인지, 말 위에 엎드려서 등 위로 쐈다는 것인지 애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