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족분쟁(가운데땅)

 

Kin-Strife
1. 개요
2. 진행
3. 여파


1. 개요


가운데땅 세계관곤도르의 내전. 전성기에서 서서히 내려가던 곤도르의 국력을 급락시켜버린 사건이다.

2. 진행


곤도르의 20대 왕 발라카르 의 아들인 21대 왕, 엘다카르순혈주의를 중시하는 반대파에게 약점을 잡히게 되는데 우선 '''그가 곤도르가 아닌 로바니온에서 태어난데다가 어머니 또한 두네다인이 아닌 북부인이기 때문에 혼혈아로 간주되어 정통성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왕과 가장 가까운 왕족이며 곤도르의 대함장으로서 해군기지가 있던 펠라르기르움바르의 큰 지지에 힘입은 작은 할아버지의 손자 카스타미르가 내전을 일으키니, 엘다카르의 대관식은 열리지도 못하였다.
1437년, 결국 카스타미르가 이끄는 반란군은 엘다카르가 있는 수도 오스길리아스를 포위 공격하였다. 별다른 성벽이 존재하지 않았던 도시는 불타고, 그곳에 있던 거대한 팔란티르는 안두인강에 빠져 소실되었다. 엘다카르는 로바니온으로 달아나고, 찬탈자 카스타미르는 스스로 제 22대 곤도르의 왕위에 오르고 6촌인 엘다카르의 맏아들 오르넨딜을 처형해버리고 만다. 그의 잔인무도한 모습에 미나스 아노르미나스 이실의 주민들은 그에게서 등을 돌리게 되었다. 한편, 북부로 달아난 엘다카르는 로바니온에서 북부인과 부근의 북부인들을 모으며 때를 기다렸다.
1447년, 엘다카르가 군사를 이끌고 카스타미르를 응징하러 오니, 이미 10년전에 벌어진 오르넨딜 처형사건으로 인해 카스타미르에 등을 돌린지 오래된 이실리엔아노리엔, 칼레나르돈도 이에 호응하였다. 마침내 '''에루이 여울에서 양 세력의 결전이 벌어졌고 여기에서 엘다카르가 카스타미르를 죽이고 승리, 왕권을 회복'''하였다. 카스타미르의 아들은 펠라르기르로 달아나고, 엘다카르는 이를 뒤쫒아 펠라르기르를 포위하게 된다.
그러나 1년 후, 남은 반란군은 모든 배들을 이끌고 다시 펠라르기르를 탈출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는 대부분의 곤도르 해군이 반란군을 지지하였기 때문에 엘다카르에게는 사실상 해군이 없었으므로 반란군의 탈출을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탈출한 반란군은 움바르를 빼앗고 현지에서 독립하는 것으로 동족분쟁은 마무리 된다.

3. 여파


이 내전으로 곤도르의 수많은 인재들이 죽었고, 곤도르의 두네다인의 수가 많이 줄었다. 게다가 카스타미르의 자식들은 곤도르의 해군 병력[1]을 이끌고 펠라르기르에서 탈출, 움바르로 도주하여 곤도르에게 해군[2]움바르의 상실이라는 치명타를 2개 씩이나 입힌다. 이후, 카스타미르의 후손들은 움바르에서 분조를 세웠고, 28대왕 텔루메흐타르에게 멸족당할 때까지 곤도르의 왕실에 오랫동안 대항한다. 그러나 곤도르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 움바르는 얼마후 남부인들에게 빼앗기고 만다. 이 때 잃은 남부지방은 엘레사르 텔콘타르때가 되어서야 되찾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곤도르는 움바르를 다시 빼앗김으로써 남쪽영토를 많이 상실하고, 다시 해적과 하라드림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는 점뿐만 아니라, 과거 아르파라존이 사우론을 사로잡은 상징적인 지역을 잃었다는 점에서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비록 동족분쟁으로 곤도르의 인구는 많이 감소했지만, 엘다카르와 함께 온 북부인들이 이곳에 많이 머물면서 어느 정도 보충이 되었다. 북부인들이 곤도르의 주민으로 편입되면서 누메노르와 북부인의 피는 점점 섞이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하여 누메노르인의 지혜와 수명이 북부인의 피에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누메노르인의 권능은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고, 이는 축복의 땅이었던 옛 누메노르를 잃은 누메노르인에게서 발라의 축복이 서서히 떠나갔기 때문이었다.

[1] 이는 대부분의 곤도르 해군이 반란군을 지지하였기 때문에 엘다카르에게는 사실상 해군이 없었으므로 반란군의 탈출을 막을 수 없었다.[2] 이 때의 손실을 만회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