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다케

 

그리스어
Διδαχὴ κυρίου διὰ τῶν δώδεκα ἀποστόλων τοῖς ἔθνεσιν
한국어
디다케, 열두 사도들을 거쳐 백성들에게 베푸신 주님의 가르침
1. 개요
2. 사본군
2.1. 예루살렘 사본
2.2. 파피루스 옥시린쿠스 1782
2.3. 사도헌장
2.4. 콥트어 역 사본
2.5. 에디오피아역 사본
2.6. 바르나바의 편지
2.7. 「사도들의 가르침」
2.8. 「교회 규범」
2.9. 「사도 교훈」
3. 편집 연대 및 장소
4. 내용
4.1. 두가지 길(1-6장)
4.2. 교회 전례(7-10장)
4.2.1. 세례(7장)
4.2.2. 주간 단식과 주님의 기도(8장)
4.2.3. 감사 기도(9-10장)
4.2.3.1. 해당 식사의 성격
4.3. 교회 규범(11-15장)
4.3.1. 접대 및 공양(11-13장)
4.3.2. 주일(14장)
4.3.3. 감독과 봉사자 선출(15장)
4.4. 예수 내림(16장)


1. 개요


1세기 말 혹은 2세기 초 기독교의 교리, 전례에 대한 문서 중 하나로, 유대계 문서인 두가지 길에 기독교 교훈을 첨가하고, 그 뒤에 교회 규범이 붙어있다. 시리아 지역 교회에서 편집된 것으로 추정된다.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 또는 "열두 사도들을 거쳐 백성들에게 베푸신 주님의 가르침"이라는 제호가 붙어있다.[1]

2. 사본군



2.1. 예루살렘 사본


1873년 콘스탄티노폴리스(이스탄불)에 소재한 성묘 수도원에서 니코메디아(이즈미트) 정교회 주교 필로테오스 브리엔니오스가 양피지 재질 사본을 발견했다. 이 사본에는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이라는 부제와 "열두 사도들을 거쳐 백성들에게 베푸신 주님의 가르침"이라는 제호가 모두 붙어있었다. 이후 1883년 주교는 콘스탄티노폴리스(이스탄불)에서 이를 출판했고, 이후 학계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이 양피지는 120장 정도의 분량이었는데, 이는 1056년 6월 11일에 필사가 완성된 사본으로, 1887년 이래 그리스 정교회 총대주교관에 보관되어있다.

2.2. 파피루스 옥시린쿠스 1782


4세기에 필사되어 분실된 양피지 사본중 두장에 각각 디다케 원문 1장 일부와 2장, 3장 일부가 전해지며 이는 현존 필사본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2.3. 사도헌장


4세기 시리아에서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교회 법전인 사도헌장에 원문 전부가 수록되었으나 예루살렘 사본과는 다른 사본을 이용하였다.

2.4. 콥트어 역 사본


5세기경 이집트에서 쓰여진 사본으로 10장에서 12장까지의 내용중 일부가 들어있다.

2.5. 에디오피아역 사본


8장 및 11장에서 13장까지의 내용이 「교회 규범」역문 속에 끼어있으나 번역 시기 및 번역된 원문 출전은 불명이다.

2.6. 바르나바의 편지


「두가지 길」이 말미에 첨부되었으나 이 편지 라틴어 사본에 해당 내용이 없는 것으로 보아 후대에 덧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2.7. 「사도들의 가르침」


「두가지 길」의 라틴어 역문이다.

2.8. 「교회 규범」


디다케의 「생명의 길」 대부분이 포함되어 있으나 이는 디다케 편집자들이 이용한 출전과 다른 출전을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2.9. 「사도 교훈」


디다케 1장의 흔적이 보이는 듯하다

3. 편집 연대 및 장소


붙어있는 제목과 달리 열두 사도들의 교훈이 들어있는 것은 아니고, 시리아의 농촌 지역 교회[2]에서 편집한 책이다. 이 편집자는 유대계 기독교에서 사용한 "두가지 길"과 초기 기독교 교회 전례와 규범을 수록하고 마태오 복음서 등을 참고하여 내용을 보충하였다. 이를 통해 당시 교회의 생활상을 알 수 있게 되었는데, 이 교회 전례와 규범에서 당시의 세례 전례, 주님의 기도, 손님 접대, 떠돌이 예언자들에 대한 대접 등 신약 성서에서 묘사하지 않은 부분들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다. 특히 이 책에는 바오로 서간들과 요한 서간의 영향이 보이지 않는데, 서기 110년경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스미르나의 주교 이그나티오스의 일곱 서간에 두 계열 서간들이 인용되는 것으로 보아 소아시아 및 시리아 지역에서 이미 110년경에는 이 두 계열 서간이 받아들여졌음이 확실하므로 110년경 이전에 편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마태오 복음서, 혹은 루가 복음서의 일부는 편집되어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디다케 편집자가 복음서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였거나, 복음서가 사용한 전승과 구전과 동일한 내용을 채록하였음을 알 수 있다.[3]
마태오 복음서와 루가 복음서의 영향만이 나타나고 바오로 서간과 요한 서간은 영향이 없는 것으로 추정할 때 마태오와 루가 복음서가 편찬된 80~90년대 가 집필 상한 연대로 추정된다. 시리아에서 쓰여진 마태오 복음서와 4세기의 사도헌장이 디다케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만큼 디다케 역시 시리아에서 편찬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디다케의 교계 제도를 참고하면, 떠돌이 예언자들이 있기도 하고, 붙박이 교사들과 예언자들이 있기도 하며, 지역 교회에서 선출한 감독들과 봉사자들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폴리카르포스와 이그나티오스가 안티오키아와 아시아 교회에 보낸 서간에서는 감독 한명 아래 원로들과 봉사자들이 임명된 교계 제도를 언급하고 있으므로 서기 110년경 이전에 디다케가 편찬된 것으로 추정된다.

4. 내용



4.1. 두가지 길(1-6장)


두가지 길은 1세기경 유대교와 유대계 기독교인 사이에서 유행했던 교훈서이다. 그러나 디다케에 수록된 것은 마태오 복음서에서 따온 내용들도 있고, 후대에 삽입된 구절이 많다.
두가지 길의 1장은 선과 악에 대한 이원론적 윤리관에 대하여 다룬다. 곧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이다. 생명의 길에서는 사랑의 이중계명과 황금률을 지킬 것을 명하고 있다. 또한 원수를 사랑하고, 보복하지 말고, 함부로 돕거나 함부로 도움을 받지 말라고 명한다. 죽음의 길에서는 주로 유대교적 윤리에서 어긋나는 금령들에 대하여 명령한다. 살인, 간음, 동성애, 음행, 절도, 마법, 낙태십계명과 그외 윤리적인 것들도 설명한다. 그러나 또한 마태오 복음서에 나오는 구절들도 있는데 이는 후에 삽입된 구절로 보인다(출처 필요).

4.2. 교회 전례(7-10장)


이어서 교회 전례에서는 세례 주는 방법, 주간 단식과 주님의 기도, 감사기도에 대하여 설명한다.

4.2.1. 세례(7장)


세례를 주는 방식에 대해 지시하고 있다. 1-6장의 내용을 가르친 후, 아버지아들,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며 사용하는 물은 흐르는 물을 쓰되 흐르는 물이 없는 경우 찬 물 → 더운 물[4] → 머리에 물을 붓는 약식 세례의 순으로 방법을 선택할 것을 지시하였다. 세례전에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은 반드시 단식을 하여야 하며 다른 교우들도 되도록 단식할 것을 지시하였다.

4.2.2. 주간 단식과 주님의 기도(8장)


수요일과 금요일의 단식 및 단식 시 기도에 대해 지시한다. 해당 기도문은 마태오 복음서주기도문을 인용하고 있다.

4.2.3. 감사 기도(9-10장)


우리 아버지여, 당신의 종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신 당신의 종 다윗의 거룩한 포도나무에 대해 우리는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당신께 영광이 영원히 (있습니다) (잔에 대한 감사 9:2)

우리 아버지여, 당신의 종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신 생명과 지식에 대해 우리는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당신께 영광이 영원히 (있습니다) (빵에 대한 감사 9:3)

감사 성찬례에 대해서 지시하고 있다. 디다케의 감사 성찬례는 복음서 및 고린도 서신과 달리 잔이 먼저 나오고 빵이 등장하며, 제정사가 전혀 언급되지 않는 독자적인 기도문을 사용하고 있으며, 성찬물의 변화에 대한 어떤 언급도 나타나지 않는다.[5] 또한 '여러분은 만족히 먹은 후에(직역하면 '배가 부르면')'라는 언급으로 보아 당시 감사 성찬례는 완전한 식사였음을 알 수 있다.
이 기도문에서 언급되는 다윗의 거룩한 포도나무는 예수의 계시의 대상이고, 예수는 계시자이시지 계시의 대상이 아니므로, 문맥상으로 볼 때 예수가 될 수는 없다. 니더위머에 따르면, 다윗의 거룩한 포도나무는 “종말론적 구원”을 상징한다. 다음에 기록되는 기도문에서의 빵은 하나의 온전한 빵이 떼어지고 부서져서 사람들에게 분배되는 것이 아닌 이미 나뉜 ‘빵조각’(9:3-4)이다. 디다케는 이 빵조각을 온 세상에 흩어진 교회 즉 그리스도의 몸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이 빵조각이 산들 위에 흩어졌다가 모여 하나가 된 것처럼 당신 교회도 땅 끝 들에서부터 당신 나라로 모여들게 하소서."라는 구절은 종말론적이면서도 교회론적인 구절로 해석된다.[6]

4.2.3.1. 해당 식사의 성격

해당 부분에서 묘사되는 감사성찬례가 현재의 감사성찬례와 형식과 그 형식이 내포하는 신학상 큰 차이을 보이기 때문에 이를 성만찬이 아닌 신자들의 공동식사에 해당하는 애찬(Agape)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반론이 제기되었다.[7]
1. 7장의 세례에서 8장 금식과 주기도를 거쳐 9-10장에 성만찬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매우 자연스러워 보인다.
2. 디다케는 성만찬 본문의 첫 구절인 9장 1절을 시작하면서 ‘성만찬’(εὐχαριστία)이라는 용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3. 디다케 9:5에서 세례를 받지 않은 자는 예전에 참여할 수 없다는 이 금지조항은 현재에도 전통적 교회들이 간직하고 있는 명백한 성만찬 규정이다.
4. 2세기 중반에 안디옥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교부 이그나티우스는 그의 서신 'To the Smyrnians' 제8장에서 아가페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교부의 허락 없이는 세례를 주거나 아가페를 거행해서는 안된다.” 이그나티우스가 이 훈계에서 아가페를 성만찬의 의미로 이해하고 있음은 명확해 보인다. 왜냐하면 교회의 질서를 가르치면서 직제를 나열하였고 그 뒤에 두 개의 성례전 즉 세례와 아가페를 말했다면, 여기 이 아가페는 누가 보아도 성만찬을 의미함이 옳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그나티우스에게 있어 아가페와 성만찬은 같은 것이었다고 판단된다.

4.3. 교회 규범(11-15장)


떠돌이 사도 및 예언자 및 교우 접대, 붙박이 예언자와 교사 공양 및 주일 예배, 감독 및 봉사자 선출과 형제 충고에 대해 지시하고 있다.

4.3.1. 접대 및 공양(11-13장)


누가 만일 앞서 말한 이 모든 것들을 가르치러 여러분에게 온다면 여러분은 그를 받아들이시오. 그러나 만일 가르치는 사람 자신이 돌아서서 파괴시키려고 다른 가르침을 가르친다면 여러분은 그의 말을 듣지 마시오. 79p

여러분에게 오는 모든 사도는 마치 주님처럼 영접받을 일입니다. 그는 그러나 하루만 머물러야 합니다. 그렇지만 필요하다면, 이틀을 머물러도 됩니다. 만일 사흘을 머물면 그는 거짓 예언자입니다. 그리고 사도가 떠날 때는 (다른 곳에) 유숙할 때까지 (필요한) 빵 외에 (다른 것은) 받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그가 돈을 요구한다면 그는 거짓예언자입니다. 81p

떠돌이 사도 및 예언자 및 교우 접대, 붙박이 예언자와 교사 공양에 대해 지시하고 있다. 참된 사도와 예언자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그들의 가르침의 내용 및 행실을 제시하고 있으며 사도전승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이들이 붙박이 예언자, 교사와 별개로 언급되는 것을 통해 당시 교회는 교회 조직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과도기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신은 포도짜는 확과 탈곡장과 소들과 양들의 소출들 중 맏물을 모두 거두어 그 맏물을 예언자들에게 드리시오 그들이 바로 여러분의 대제관들이기 때문입니다. 89p

예언자에게 바치는 물품이 농축산물이었다는 것을 볼때 디다케 교회는 시골 교회였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또한 최초로 교회 지도자들을 '제관'이라고 칭한다.[8]

4.3.2. 주일(14장)


주일마다 모여 빵을 떼고 감사드릴 것을 지시하고 있다. 여기서 성찬을 최초로 제사(Thysia)라고 지칭하고 있으며 그 전에 범법을 고백하도록 지시하고 있다.[9]

4.3.3. 감독과 봉사자 선출(15장)


신자들에게 그들 자신을 위해 감독과 봉사자를 선출하라고 지시하고 있으며 품행 등 자격요건을 제시하고 있다.[10] 그들은 예언자들과 교사들과 함께 존경을 받는 이들이라고 말하고 있다.[11] 아울러 감독과 봉사자들의 지도는 단일 지도 체제가 아닌 공동 협의 체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4.4. 예수 내림(16장)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자세와 재림 직전에 있을 일을 설명하고 있다. 이 결말은 급작스럽게 끝나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자들이 결말부분이 소실되었다고 본다[12]
[1] 이하 내용은 '정양모 역주,『디다케』, 분도출판사', 2017 참고, 페이지 표기는 해당서를 따르며, 기타 출처는 각주로 표기[2] 교회 규범 부분에 농산물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으로 보아 시골에서 작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3] 그러나 후술하는 주님의 기도와 관련해서 보면 편집자는 마태오 복음서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디다케에서 복음서에 대해 말할때 항상 단수로 말한다는 점을 들어서 디다케 저자가 오직 마태복음 만을 알았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게르트 타이센, "기독교의 탄생", 대한기독교서회, 2018, 479p[4] 여기까지는 침례를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5] 황훈식, 「고대교회 성찬기도의 역사」, 『신학과 선교』, 2018, 63p[6] 이어진, 「디다케 9-10장의 성만찬 연구」, 『장신논단』, 2016, 193p[7] 이하 내용은 이어진의 위 논문, 186-187p 참조[8] 디다케 89p[9] 디다케 한국어 역자 정양모 신부의 각주에 따르면 해당 고백은 교회 지도자 앞에서 하는 고백이 아닌 신자 전체의 공동고백이라는 설이 우세하다.[10] '손희송, 『일곱성사, 하느님 은총의 표지』, 가톨릭대학교출판부'에 따르면 이때 감독들은 다른 감독에 의해 임명되는 것이 아니고 신도들에 의해 자체적으로 선출되었다. 여담으로 디다케의 한국어 역자 정양모 신부는 이 장을 근거로 가톨릭 교계 제도의 민주화를 주장하였다.[11] 예언자와 교사들은 지역 교직자보다 높은 초지역적 지도자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12] 『신약 읽기』, 68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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