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
1. 개요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사람은 이미 하느님과 함께 행동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대의 죄를 질책하시는데, 그대도 자신의 죄를 질책한다면 그대는 하느님과 결합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사람과 죄인은 별개의 존재입니다. 그대가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때, 그 사람은 하느님께서 지으신 것입니다. 그대가 “죄인”이라는 말을 들을 때, 그 죄인은 인간이 스스로 만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친히 만드신 것을 구원하시도록 그대가 만든 것을 부수십시오… 그대가 만든 것을 미워하기 시작할 때, 그대는 자신의 악행을 고발하는 것이기에, 그대의 선행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악행의 고백은 선행의 시작입니다. 그대는 진리를 행하고 빛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그대는 거리에서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죄를 지을 때마다 지은 죄에 대해 참회하십시오. 또 다시 죄를 지을지라도 실망하지 말고, 새롭게 뉘우치십시오. 약속된 상급[1]
에 대한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교회는 법정이 아니라, 치유의 장소입니다. 여기 교회에서는 그대의 죄를 셈하지 않고, 그대에게 용서를 베풀 따름입니다. 오직 하느님께 그대의 죄를 드러내십시오. "오로지 당신께 죄를 지었나이다. 당신 눈에 악한 것을 제가 행하였나이다"(시편 51, 6). 그러면 그대의 죄는 용서받을 것입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2]
의 「참회에 관한 설교」 3장 4절
기독교의 7성사 가운데 하나로서 여러가지 이유로 일반인에게도 가장 익숙한 종교적 예식일 것이다. '고백성사'라고도 하지만[4] , 단순한 고백이 아니라 성찰, 통회가 있어야 하기에 고해성사가 더 의미에 맞으며, 전통적인 표현으로는 '''세례성사 다음에 오는 구원을 위한 뗏목'''.[5][6]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예수가 그의 사도들에게 내린 사죄의 권한에 의한 것으로서[7] 세례받은 신자가 대죄[8] 를 지었다면 신자는 '''반드시''' 빠른 시일 내에 고해성사를 진정 참회하는 마음으로 봐야 한다. 이로써 신자는 죄를 용서받는다.
하지만 그 죄로 인하여 받을 벌이 없어지진 않는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하루 먹을 음식을 훔쳤다가 회개하여 고해성사를 받았다고 해 보자. 죄는 용서받았지만 음식을 도둑맞은 사람이 한 끼 굶어야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때문에 훔쳐간 사람은 훔친 물건을 돌려주는 등 피해를 보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고해성사에 임하는 회개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자기가 남에게, 또는 교회에 여러 죄악으로 영적/물질적 피해를 끼쳤다면, 이를 바로잡거나 배상하려는 노력이 꼭 필요하다. 이를 하느님이 정해준 보속이라고 하며, 고해성사 전에 회개의 표시로 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를 안하고 고해성사를 본다면 회개의 마음이 절실한건지 의심을 할 수 있다. 단, 고해성사 직후에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보상을 하겠다는 생각이 확고할 경우, 고해성사를 볼 수 있다. 또 고해성사를 마칠 때 신부가 따로 보속이라는 것을 주는데, 이는 사제가 정한 보속이라고 부른다. 이게 흔히 신자들이 '보속'이라고 이해하는 부분이다.
만일 이 보속들을 현세에서 못다했다면, 죽어서 연옥에서 벌을 받으면서 때우게 된다.[9][10]
문학적으로도 많은 소재가 되는 것으로 이를 소재로 한 문학, 영화가 좀 된다. 한국에서도 '''죄와 벌'''[11] 이라는 동생의 누명에 관해 고민하는 사제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 있다. 각종 창작물에서 등장인물이 큰 죄를 저지른 뒤 고해성사를 하기도 한다. 카리스마 만빵인 캐릭터가(주로 악역) 살인 같은 죄를 저지른 뒤 이걸 하는 장면도 클리셰로 많이 쓰인다. '살인을 하기는 했지만 그만큼 속으로는 고뇌한다'는 외강내유식 갭 모에가 목적인 것이 대부분.
현존하는 기독교 종파 중 이 의식을 행하는 것은 가톨릭,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성공회[12] 정도다. 대다수의 개신교는 만인사제설과 성서에 쓰여있지 않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지만[13] 미국이나 유럽의 일부 루터교회에서 간혹 행하기는 한다.
2. 교파별 고해성사
2.1. 가톨릭의 고해성사
가톨릭교회의 고해성사가 합당하게 진행되려면, 먼저 참회자의 죄에 대한 자세한 성찰과, 통회(절실한 회개)가 있어야 하며,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단호히 결심하고(정개) 마침내 사제에게 나아가 죄를 고백하고, 뒤이어 사제가 정해주는 보속을 받고 고해신부의 사죄경을 듣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이를 고해성사가 집행되는 순서에 비추어 볼 때 참회자는 1.먼저 양심적으로 성찰을 하여 지은 죄를 생각해 내고, 2.그 죄를 깊이 뉘우치는 통회를 하며, 3.다시는 이같은 죄에 빠지지 않기로 굳게 결심하고 나서 4.고해신부 앞에 나아가 고해성사를 청하고, 죄의 고백을 한다. 5.그러면 고해신부는 사죄를 하고 보속을 정해 준다. 참회자는 받은 보속을 실천함으로써 고해성사가 끝난다.
연중 미사가 집전되기 30분 전부터 사제가 고해소에 들어가서 미사 참례하기 직전에 고해보기 위한 신자들을 접견한다. 그런데 고해보려는 사람이 많은 상황에서 신부가 늦게 고해소에 들어가는 바람에 뒤에 줄 선 사람들이 고해를 못하고 미사에 참례하는 경우도 생기긴 한다. 물론 미사 끝나고 신부에게 부탁하면 해주긴 한다. 신부님께서 고해하는 사람이 누군지 짐작할 것 같다고 걱정하거나 할 필요는 없다. 사실 독실한 신자라면 이미 본당 사제는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대충 파악할 가능성이 높지만, 사제들은 밑에 후술할 '''철저한 고해 비밀 엄수 의무'''가 있기 때문에 결코 당신을 어색하게 생각하거나 고해 사실을 남에게 티 내고 다닐 일은 없다.[15] 또한 고해자의 고해를 누설하거나 고해내용을 가지고 이상하게 여기며 당신을 대할 가능성은 절대로 없다. 걱정 말자.
외국 성당의 사진을 찾아보면, 유난히 고해소가 많고, 한 고해소에 줄이 긴 사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한국 천주교의 고해소를 찾아보거나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한국 천주교의 고해소는 성당마다 하나, 많아야 2개 정도이고 판공성사 시즌에나 사람들이 줄서서 고해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한국 가톨릭의 특성 때문인데, 원칙적으로 가톨릭에서는 고해성사 담당 신부라는 것을 두어 주변에 고해성사가 필요한 신자들을 전담해서 집전하도록 한다. 하지만 한국 천주교는 아직까지 "선교가 필요한 교회"(전교 지역)로 분류되어 아무 사제나 고해성사를 집전할 수 있게 되어있다.
신부는 고해성사를 행하는 주체이기도 하지만, 곧 그 자신도 고해를 해야 하는 가톨릭 신자다. 이 경우 성사 집전의 권한이 자기 자신에게는 미칠 수 없으며, 다른 신부에게 고해하여야 한다. 이는 주교 이상급의 고위 성직자들의 경우에도 예외일 수 없다. 당장 대주교나 추기경, 교황도 일반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청하고 받을 수 있으며, 프란치스코 교황도 바티칸 교황청의 일반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자주 받는다.
또한 교황과 (교황청에 의해 성무집행정지를 당한 사람을 제외한) 추기경 및 주교들은 타국이나 타 교구에서 고해성사를 주려면 해당 교구의 주교의 사목활동 허가를 받아야 하는 일반 신부들과 달리, 별도의 허가 없이도 전 세계의 모든 교구에서 가톨릭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를 줄 수 있는 특별 권한이 있다(교회법 제 967조 1항). 단 주교들의 경우에, 자신의 교구가 아닌 다른 교구의 주교가 자신의 교구 내에서 고해성사 주는 행위를 허락하지 않을 경우엔 주교라도 그 교구의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를 줄 수 없다고 한다. 물론 실질적으로 이런 경우는 거의 없겠지만...
대중매체들이 고해성사 하는 모습의 사진이나 그림을 보여줄 때 워낙 사제의 모습만 담아서 고해성사는 오직 사제만이 집전 가능한 것으로 착각하기도 하는데 위에 썼듯 사제 위의 성직자, 즉 주교, 대주교, 추기경, 교황도 '당연히' 고해성사를 베풀 수 있다. 오히려 사제는 서품을 받고 난 최초 상태로는 집전 권한이 없으며 주교 이상으로부터 위임받아야 한다.
2.1.1. 고해성사의 효과
1. 고해성사는 대죄를 지은 가톨릭 신자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다시 주는 성사이다. 고해성사를 잘 받음으로서 가톨릭 신자는 죄로 잃었던 하느님의 은총을 다시 받고 하느님과 화해한다.
2. 고해성사를 잘 받으면, 자신의 죄로 인해 손상되었던 가톨릭 교회와도 화해한다.
3. 대죄(죽을 죄)를 지음으로써 받게 되었던 영원한 벌(지옥 형벌)을 면하게 해 준다.
4. 죄와 결과인 잠벌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면제해 준다.[16]
5. 양심의 평화와 평온, 영적 위안을 가져다준다.
6.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죄와 죄의 기회, 거룩하지 못한 가치관 등)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영적 힘을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는다.
2.1.2. 고해성사 준비
고해성사 전에는 고해성사를 볼 마음을 가진 신자가 먼저 자신의 죄를 성찰하는 양심성찰을 먼저 한다. 물론 자기가 모든 죄를 다 알고 있다면 고해소에 들어가 즉흥적으로 해도 문제 없지만 막상 들어가서 말하자니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거나, 떠오르지 않는 죄나 잘못들이 많으므로 종이에 적어가면 좋다.
세례받은 가톨릭 신자가 개요에서 언급했던 대죄[17][18] 를 지었다면 미사 중 성체성사를 포함한 7성사를 받기 위해서는 꼭 고해성사를 통해 먼저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 이를 어길 시 올바른 마음으로 성사에 참여하거나 성체를 받아 모시지 않은 죄(모령성체의 죄)가 되기 때문에 이걸 가지고 나중에 또 고해성사를 봐야 하기 때문. 위의 쓴 죄악들이 아닌 작은 죄들은 소죄라고 해서 신실한 믿음과 반성으로 영성체에 임하면 성체성사를 통해서 용서된다고 본다.[19] 사실 소죄는 기도(통회기도, 묵주기도 등), 성경 읽기, 선행 등으로도 용서받을 수 있다. 그래도 가톨릭 교회에선 소죄도 가급적 고해성사에서 고백하기를 권장한다. 일선 신부들은 그럴 필요 없다고("이런 죄는 고해 안 해도 됩니다") 하시긴 하지만 이것을 권하는 이유는, 소죄 역시 고해하여 용서받는 태도는 개인의 거룩한 신앙생활의 진보를 빠르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양심성찰에 비추어 소죄라고 판단된 죄라도 대죄를 짓는데 원인 및 결과로서 같이 지은 소죄라면 고해성사에서 뉘우치고 고백해야 맞다.
소소하게 누구에게 짜증을 낸 것과 같은 소죄들은 특별히 콕 집어 마음에 걸리는 일이 없다면 따로 고백하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다만 역시 일선의 사제들은 "그런 정도는 좀 모았다가 정산하세요"라며 일갈하기도[20] 그러나 교회법이나 고해성사 지침에는 일관적으로 소죄의 고백을 '''적극 권장'''하고 있으므로, 자신이 진정 영혼의 구원과 생활의 개선을 바라고 있다면 소죄 역시 열심히 고백하는 태도는 매우 훌륭한 고해 습관이다.
또한 회개 과정에서는 단순이 그 죄를 뉘우치는 것을 넘어, 자기 죄악의 가까운 기회를 철저히 거부할 의사가 없다면 진정한 회개라고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간음죄나 이성과의 혼외 성관계, 동거 상태에 머무르는 사람이 간음/혼외관계 대상인 이성과의 성관계를 청산하지 않고, 또 동거를 그만두지 않고 단순히 죄만 용서받으려고 고해성사를 한다면, 이는 자동적으로 모고해가 되며[21] 고해사제는 고해자가 간음관계를 청산할 생각이 없다면 사죄경을 거부할 수 있다. 동성간 성관계 문제, 또 공개적 추문이나 동성결합 지지 등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보통 자기의 생활과 믿음에 관한 여러 죄, 잘못들을 대죄, 중죄의 기준인 십계명과 칠죄종을 중심으로 성찰하고 나면 이를 종이에 적거나 잘 머리에 담아서 고해소로 들어간다. 가기 전에 죄를 하느님 앞에 진심으로 뉘우치고 하느님의 마음을 상해드린 것을 안타까워해야 함(상등 통회)이 마땅하고, 그렇게까진 안되더라도 최소한 죄에 따른 하느님의 벌[22] 이 두려워서라도 죄를 뉘우치는 회개의 마음(하등 통회)은 가지고 있어야 함이 원칙이다. 만일 하등 통회조차 없이 고해에 임할 경우 사죄경 여부에 관계없이 모고해가 된다.
2.1.2.1. 양심성찰 목록
고해성사를 준비하기 위하여 대죄(+일부 소죄) 목록 등을 적어놓은 성찰 목록이 있다. 이 성찰목록이 완전히 표준화된 건 아니라서 관련 책자들마다 내용이 다소 다르다. 대죄 목록을 세세하게 나열한 것도 있고, 성찰에 초점을 두어서 비교적 내용을 요약한 것도 있다. 특히 현대 가톨릭의 것과 전통 가톨릭의 것은 서로 내용이 조금 다른 면들이 있다.[23]
물론 신자들이 자신의 행실을 소죄와 대죄로, 신학적으로 명확히 구별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교리서나 인터넷 신앙생활 사이트 등지의 고해성사 양심성찰 목록을 검색해서, 그 목록을 보고만 성찰해도 고해성사 준비에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다.
대표적인 고해성사 양심성찰 예시(천주교 효자성당)
나무위키 내에서는 대죄 항목에 신자 입장에서 저지를 수 있는 대표적인 대죄(고해성사 봐야 할 죄들)들이 대략적으로 나열되어 있으니 참고해도 좋을 듯 하다.
여담으로, 19세기 조선 제 5대 교구장이자 병인박해 때 순교한 안토니오 다블뤼 주교가 평신도들의 고해성사를 돕기 위해 저술한 양심성찰 목록 책인《성찰기략》은 한국 천주교회사의 주요 사료이기도 하다.성찰기략 전문보기(위키문헌)
2.1.3. 고해성사 진행
가톨릭 기도서 - 고해성사
가톨릭의 고해성사는 '''철저한 비밀'''을 기본으로 하는 특성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보통 고해실은 2실 또는 3실로 나뉘어 2실은 한편에 보라색 영대[24] 를 맨 사제가, 한편에는 고해할 신자가 들어가서 벽을 사이에 두고 대화는 가능하나 사제가 고해하는 신자의 얼굴은 알 수 없도록 꽤 촘촘한 철망이 창으로 내어져 뚫려 있다. 얇은 천으로 가려놓는 경우도 있다. 3실의 경우에는 가운데에 사제가 들어서고 양 옆으로 고해할 신자가 들어서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는 고해하는 신자들이 다른 편에 있는 신자가 고해하는 내용을 듣지 못하도록, 미닫이 구조로 창에 맞는 문이 설치되어 사제가 이를 교대로 여닫아 고해를 들어준다. 또한 제대로 공사된 3실 고해소는 방음처리가 되어 있는 편이다.[25] 간혹 가운데 있는 사제가 미닫이 문을 제대로 닫지 않으면 다른 편에 있는 신자의 고해 내용이 들리기도 한다.
고해사제 앞에서 고해를 시작하면, 일단 고해실에 들어가 무릎을 꿇은 뒤 사제와 함께 성호경을 긋고, 다음으로 먼저번 고해성사를 한 날짜로부터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를 말하고, 처음으로 고해성사를 보는 신자라면 "첫 고해입니다." 라고 말하면 된다. 그 뒤에 성찰한 죄의 내용들을 뉘우치는 마음과 함께, 빠짐없이 그대로 사제에게 말로 고백하면 된다.
'''고해할 때 "00 했습니다"와 같이 분명한 어투로 죄를 고백해야 한다.''' "00한 것 같습니다"와 같은 불분명한 어투로 하는 것은 모고해의 위험이 있으며, 이러한 엉터리 고해에 대해 고해 사제의 지적("제대로 성찰 안하고 고해하시면 안됩니다" 등)+빡센 보속을 줄 수 있다.[26]
또한 고해할 때 자신이 지은 죄를 고해할 때는, '''그 죄악의 자세한 종류와 횟수를 말하는게 원칙'''이다. 예를 들어, 자기 아내를 두고 다른 여성과 간통 및 성관계를 11번 저지른 남성이 뉘우치고 고해실에 들어갔다고 치자. 그 신자가 고해신부에게 "신부님, 저는 6계명을 어기는 죄를 여러 번 저질렀습니다" 라고만 고백해버리면 신부 입장에서는 그 신자가 혼전 성관계를 한 건지, 혼후 간음을 한건지, 아니면 동성애 성행위나 자위행위를 한 건지, 했다면 누구와 정확히 몇번이나 한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신부님, 저는 6계명을 어겼습니다. 아내 외의 다른 여성[27] 과 간음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횟수로는 11번 그녀와 성관계를 하였습니다."라고 부끄럽지만 철저히, 그리고 자세히 고백하는 것이 맞는 고해라는 말이다.
또 죄의 종류를 확실히 고백하는 것도 중요한데, 자기가 범한 죄가 어느 계명을 어긴 것인지, 또 하나의 죄로 여러가지 계명을 동시에 어긴 경우를 잘 성찰해서 이도 고백해야 한다.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자면, 예를 들어 남의 물건을 훔친 것은 7계명(도둑질을 하지 말라)을 어긴 것이지만, 그 도둑질이 '''성당 소유물이나 성물에 대한 도둑질'''이었다면 1계명과 7계명을 같이 어긴 것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남에 대한 폭행이나 상해는 5계명을 어기는 범위에 들지만, '부모나 친척'을 폭행하거나 상해를 입혔다면 5계명에 더해 4계명(네 부모를 공경하라)도 같이 어기게 된다. 또 만약 폭행이 성직자에 대한 것이었다면, 이 죄는 1계명과 5계명을 어기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중복되는 계명을 동시에 어기는 죄들을 잘 생각하고 통회하며 이를 고백할 때 이야기해야 한다.
말하기 힘든 대죄[28] 가 있어서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도 모두 용서하여 주십시오"라고 뭉뚱그리는 것도 모고해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안된다. 해당 구절은 고해할 당시에 정말로 생각나지 않는 죄를 위한 것이지, 죄를 축소 고백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목소리를 내기 힘든 병에 걸리거나, 부상을 당했거나 장애가 있어 말을 못하는 상황이라면 성찰 기록을 글로 써서 고해사제에게 보여주고 고해사제는 이를 읽고 보속과 사죄경을 내려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물리적 장애가 없는 상황이라면 말로 고해함이 원칙이다. 고백을 마치면 신부의 훈계를 듣고, 보속을 받고 머리속에 잘 기억한 뒤, '''사죄경을 들으며'''[29] 성호경을 긋고 나서 사제가 "평안히 가십시오."라고 하면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화답하고 고해실을 나오면 된다.
2.1.4. 보속과 사죄경 거부에 대하여
신자가 참회하며 죄의 고백을 모두 마쳤을 때, 고해사제는 보속[30] 을 내려주는데 거의 대부분 가톨릭의 기도 중 몇 개를 고르거나 그 중 하나(주로 주님의 기도나 성모송)를 몇번 암송하며 참회하라는 방식이 대부분이다.[31] 물론 보속의 내용은 사제 개개인의 성향을 많이 타서 묵주기도 5단을 바치라는 사제[32] 도 있고, 봉사(선행)를 실천하라는 사제도 있다. 공관복음서나 바오로 서간의 일부를 묵상하면서 읽으라고 보속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 드물게도, 다가오는 미사에서 영성체하라는 보속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보속을 내리는 권한이 전적으로 사제에게 있기 때문에 아주 가끔 골 때리는 보속을 주는 사례도 있다.[33] 구글링해서 찾아낸 어떤 사례로는, 어떤 신자가 간통죄를 저질러서 그것을 고해했더니 신부가 "1달 동안 평일미사도 매일 나오세요" 라는 빡센 보속을 내려서 고민이라는 글이다. 청년이 냉담을 풀고자 고해했더니 청년회 임원을 맡기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남의 아내와 바람을 핀 유부남이 성사를 보는데, 그 뻔뻔한 태도에 열받은 신부가 산 위에 가서 닭털을 다 뽑으라고 보속을 주었다. 얼마 후 또 바람을 피우고 온 유부남이 같은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보게 되었는데 또 뻔뻔한 태도로 일관한 모양이다. 신부가 열을 받은 나머지, 며칠 전 뽑았던 닭털을 다 주워오라고 시켰다고 한다. 당연하지만, 털이 그 때까지 남아 있을 리가 없다.[34][35]
그러나, '''위 문단의 괴상망측한 보속들은 정말 엇나가는 특이한 일부 사례일 뿐, 일반적인 성당의 사제들은 상식적인 보속을 주지 위 사례같은 정신나간 보속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36] 고해성사에 대한 나무위키의 이 글만 보고서 "아, 천주교 고해성사는 전부 이런 식으로 괴팍하게 이뤄지는구나!" 식으로 오해하거나 지레 겁먹지 말자.
아래 문단에도 서술되어 있듯이, 사실 별로 없겠지만 '''이렇게 상식적으로 봐도 영 아닌 이상한 보속을 주거나 신자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도저히 행하기 힘든 보속[37] '''을 준다면 '일단 실행을 보류한 뒤'에 다음 고해성사를 볼 일이 있을 때, 해당 보속을 준 신부나 다른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청하고, 고해성사 중에 먼젓번 고해의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38] 실천에 있어서 무리임을 말하고 상식적인 보속으로 바꿔달라고 하면 된다. 가톨릭 교리에 따르면, 아무리 고해사제라도 '''신자 입장에서 물리적, 이론적으로 실천할 수 없는 보속을 줄 권한은 없다.''' 만일 시골 지역이나 군대같은 특수한 환경에서, 아주 불합리한 보속을 내려준 고해신부 한명밖에 성당에 없고, 이 고해신부가 불합리한 보속을 철회하기를 거부하고 여기에 다른 신부를 만날 수도 없는 대단히 힘든 상황이라면 그냥 고해 때 보속에 대해서 알겠다고 하고 사죄경을 받고 나온 뒤 '''보속을 실행하지 않아도 된다.'''[39] 이 경우에는 신부가 이런 이상한 보속을 내릴 권한 자체가 없는 경우라, 그냥 개인적으로 기도나 희생 등의 보속을 바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또한 현재는 비교적 가벼운 보속을 내려주지만 과거에는 정말 빡센 보속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 엄청나게 빡센 보속은 초기 교회 시대부터 내려오는 일종의 전통 관행이었는데, 12세기 무렵까지 고해성사 후 보속이란 것은 굉장히 길고 엄했다. 예를 들면 폭행죄를 저지른 사람은 7년간 고행, 부모를 막 대한 사람은 3년간 고행, 점을 치거나 미신행위를 한 사람은 5년간 고행, 욕한 사람은 7일간 금식, 미사나 성사 중에 떠든 사람은 10일간 금식 등등. 그외에도 '지금 당장 성지순례 떠나세요', 혹은 '1달 동안 아무것도 하지 말고 참회 기도만 드리세요' 같은 무거운 보속을 내리는 경우도 존재했다.
그 보속이 너무나 무거웠기 때문에 심지어 젊은 사람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고백성사를 청한다 하더라도 거부하라는 지침이 나왔을 정도였다. 만약 그 젊은 사람이 죽을 위기를 넘기면 보속을 시행해야 하는데, 최소 몇 년, 혹은 평생 동안 이를 시행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신자들도 당장 숨 넘어가는 상황이 아니면 고해성사를 보지 않음이 관례가 됐을 정도. 영성체도 마찬가지로 일생에 몇 번만 참여하는 게 관례였다는 얘기가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보속들은 차차 가벼운 행위로 바뀌어 갔지만, 공식적으론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남아 있었다. 현대 가톨릭에서는 평일미사 1회 참례[40] 이상의 보속은 무거운 보속으로 취급되는 편.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성직자라고는 해도 남의 죄를 들어 주는 일이 쉽지는 않다. 실제로 많은 신부들이 고해성사로 인한 스트레스를 겪는다고 한다.[41] 위 보속과 비슷한 사례로 끊임 없이 바람 피고 그 때마다 고해하러 오는 남자 때문에, 열받다 못한 신부가 듣다가 말고 고해소를 뛰쳐 나와 그 남자를 두들겨 팬 사례가 있다 한다. 신부 그만 두는 한이 있어도 그 놈은 패야겠다고 했다나 뭐라나.[42] 신기하게도 얻어맞은 그 신자는 그 이후로 바람피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고해사제는 어떤 죄를 수십번, 수백번 이상 듣더라도, 절대로 이런 식으로 하면 안된다.''' 명백히 모고해인 경우 신자에게 고해를 중단하고 고해실 밖으로 나가달라는 요구까지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자에게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순간 그 신부는 대죄를 짓게 된다. 회개하지 않고 고해하러 오는 모고해자들에게 엄하기로 유명했던 오상의 성 비오 신부도 강한 어조로 꾸짖을 지언정 절대로 폭력을 쓰지는 않았다.
또한 자꾸만 간음하고서 고해성사를 보러 오는 여인이 있었는데 신부는 여인이 죄를 고백하자마자 "또요!" 이렇게 외치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그리고 고해성사가 끝나고 여인이 나가자마자 자신도 따라나가서 신자들 중에서 눈에 불을 켜고 그 여인을 잡아내려고 찾아다녔다는 사례도 전한다.[43]
앞 문단에서 설명 했지만, 만일 어떤 사제와의 고해성사에서 보속을 받았는데, 이 보속이 신자 입장에서 정말 극단적으로 과하다 싶으면, '다음 고해성사 중'[44] 에 보속을 다른 종류의 것으로 바꾸어달라고 청할 수 있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전에 받은 보속을 시행하지 않았음과 본인 상황에 비추어 도저히 실행하기 힘든 과도한 보속임을 신부님께 고백하고, 다시 거기에 대한 보속을 받는 식이다. 하지만 어지간히 무리한 보속이 아니라면 그냥 시행하는 것이 신자의 의무이다.[45] 하지만 현대에는 과거처럼 가혹하거나 극심한 보속의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이런 경우는 별로 없을 것이다.
대부분 고해한 사실에 대해 사제가 사죄경을 외고 보속(벌)을 주는데, 가끔씩 보속을 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는 '''일반 사제가 보속을 주기에 너무나 무거운 벌인 경우'''이다. 대표적인 예로 '성체모독[46] , 고해성사의 고해 내용 노출[47] , 성직자의 결혼 시도, 낙태[48] [49] , 살인, 무력을 통한 절도, 교황의 허가 없이 주교 임명' 등이다. 이 항목 중 몇 항목은 그 자체로 '파문'에 이르는 무거운 죄이다. 이러한 죄에 대한 고해는 교황이나, 혹은 교황으로부터 특별 권한을 부여받은 고위 성직자에게 해야 한다.[50] 단, 파문을 받은 사람이라도 죽을 위기에 처하면 아무 신부에게나 고해성사를 받고 파문을 해제받을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신부로서의 권한이 정지된 사람에게 받아도 상관이 없다.[51]
상기했지만, 사제가 신자가 고해하는 내용를 들어보니 '''정말로 마음으로 뉘우치지 않고 입으로만 나불대는 것 같다 싶으면''' 사죄경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이 '사죄경 거부'는 옛날에는 상당히 흔했고 최근에도 종종 있는 사제의 의무이자 권리로서, 특정 죄악에 대한 애착을 끊어버리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교우가 죄만 용서받으려고 고해를 하는 것 같으면 신중히 판단하고 사죄경을 일단 거부한 뒤 죄되는 행실을 고쳐 선한 생활을 하고난 후 다시 고해성사를 듣고 사죄경을 주는 경우가 있으며, 가톨릭 교회에서도 이를 매우 바람직하게 본다. 대표적인 사례가 오상의 성 비오 신부이다.
보속과 함께 말해주는 훈계에 대해서는, 고해성사를 집전하는 신부 개인 스타일에 따라, 꼼꼼하게 피드백[52] 해주거나 대화식으로 전개하는 신부도 있고, 대충 보속만 주고 끝내는 신부도 있다.
2.1.5. '''고해 내용 누설 금지'''의 원칙
'''사제는 고해성사의 내용은 '무슨 일'이 있어도, '누구에게도' 절대로 발설하면 안 된다.'''[53] 이건 과거부터 현대까지 절대로 변하지 않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가톨릭의 고해성사 원칙 중 하나다.[54] 천주교의 옛 교리서[55] 등에는 고해성사 누설 금지의 범위까지 상세히 나와있는데, 대표적으로 사제가 해당 신자의 사죄경을 주었는지 아닌지 여부, 고해 중에 들어 알게 된 사실을 말하는 행위[56] , 신자가 몇 없는 성당이나 수도원 등에서 "이 성당/수도원에서 어떤 죄악이 많다" 운운 강론하는 태도[57] 등이 있고, 또한 어떤 신자에게 '고해를 듣고 나서 그에게 고해 전과는 다른 표정이나 대화로 그를 대한다던가'[58] , 고해성사를 또 주기를 피한다던가, 실수로라도 타인에게 해당 고해자가 어떤 죄악의 책임자였었음을 알게 방조한다던가 하는 모든 태도 역시 고해 비밀의 간접 누설로 금지된다. '''정말 엄격하게''' 원칙을 지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고해 비밀의 엄수 의무는 고해성사가 일단 시작했다면, 그 '고해성사가 끝났거나 안 끝났거나 간에 무조건 지켜져야 한다.' 즉 어떤 신자가 고해성사를 하다가 말고 어디로 가버렸더던가(...), '''명백한 모고해'''라거나, 사죄경을 주기 전에 특이한 상황으로 인해 고해가 중단되었거나, 사제가 사죄경을 거부한 경우라도 일단 고해성사를 진행했다면 여기서 들은 고해자가 이미 지은 죄에 대한 고백은 예외 없이 무조건 고해비밀이 되는 것이다.
또한 신자 입장에서도 '''본인의 고해성사 내용을 남에게 말하고 다니는 것은 옳지 않다.''' 또한 고해 중 받은 보속 내용 등을 말하는 것도 넓은 범위의 고해비밀에 들어가므로 매우 조심해야 한다.[59] 또한 특수한 상황에서 고해성사 내용을 부득이하게 알게 된 사람들, 대표적으로 통역을 통해 고해성사하는 경우나, 우연치 않게 남의 고해성사 양섬성찰 기록을 읽게 된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고해 비밀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죽을 때까지 절대 함구해야 한다. 또한 거의 일어나지 못할 일이긴 하나, 만일 평신도가 사제를 가장하여 거짓 고해성사를 주었을 경우에도, 그 행위(신부 사칭) 자체의 죄악성과는 별개로 해당 평신도는 자기가 들은 고해 비밀을 영원히 지켜야 한다(!)
대표적인 역사적 사례로, 성인 요한 네포무크는 체코 왕비의 성사 내용을 끝까지 왕에게 말하지 않다가, 혀가 뽑혀 프라하 카를 다리에서 블타바 강으로 버려졌다. 왕 입장에서는 쳐죽일 놈이지만,[60] 성직자로서는 참으로 성인이 되어 마땅하신 분이겠다. 강의 수호성인으로 동상이 다리에 세워지곤 한다.
프로테스탄트의 창시자격 인물인 마르틴 루터 또한 가톨릭 메인스트림을 박차고 나와 활동하던 중, 어느 주변 인물이 "거 수녀들은 평소에 무슨 고해를 합니까?" 하고 묻자 벼락같은 불호령을 작렬했다는 일화가 있다.[61] 다만 루터는 종교개혁 시기 이후에도 다른 동료에게 고해를 하거나 자신이 고해를 받는 일은 있었다. 고해는 할 수 있으나 성사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을 뿐이다.
현대 미국에서는 이를 미국법 이하로 보는 판결을 한 전례가 있는데, 고해성사의 내용을 지킨 사제에게 상징적으로 1달러의 벌금 처분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해성사 내용에 대한 성직자의 비밀 유지 의무를 존중하여, 이를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아니하여도 국가보안법상의 불고지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제5공화국 시절에는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의 범인을 적극적으로 도피, 은닉하게 도와준 사제가 처벌된 일이 있었는데, 판례도 신고하지 않은 걸 넘어서 적극적으로 숨을 곳을 제공해 주는 등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도피ㆍ은닉죄가 성립한 것이지, 소극적으로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않은 것은 죄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고해성사 비밀 유지 의무는 대중에게도 꽤 잘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는 해괴한 사건이 종종 일어난다. 1996년에 안두희를 살해한 박기서가 범행 후 부천남부경찰서(現 부천소사경찰서)에서 한 블럭 거리에 있는 천주교 인천교구 심곡본동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한 뒤 자수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 사실이 알려지자 기자들이 신부에게 내용을 물어보는 짓을 저질렀다고. 통설상 범인은닉죄는 위에 나왔듯이 작위범, 즉 적극적으로 범인을 숨겨주고 도와줬을 때만 적용한다. 비밀유지만으로는 누구도 죄가 되지 않는다. 원칙은 그렇다. 그런데 예외가 되는 것이 그 악명높은 국가보안법이다. 김영란법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이건 특별한 사안이라서.
만약 성직자가 이를 누설할 경우, 특히 고의적으로 누설한 경우 교회법에 따라 자동파문이 될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명목상으로는 '''형법 제317조 제2항'''[62] 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실제로 고해성사 누설로 처벌된 사제는 없으며, 범죄 사실은 보호받는 비밀이 아니기에 실질적으론 (De Facto) 이 조항에 의해 처벌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물론 이 조항으로 처벌을 받던 말던 고해성사 누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동파문'''이다. 또한 범죄 사실이 아닌 다른 고해 내용 누설이라면 이 법으로 처벌하는 것이 일단 가능은 하다.
그리고 고해의 내용이 되는 사실이 타인에게 알려질 경우, 고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기에 충분한 사실일 경우, 성직자가 이를 발설하는 것은 명예훼손죄에 해당할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실질적으로도 형사처벌이 가능해진다. 정확하게는 형법에서는 고해성사라는 특정 종교의 특정한 의식에 대해서 보호하는 것은 아니고, 종교를 막론하고 직무상 지득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는 것이다. 즉 교리와는 달리 고해성사가 아니라도 사제로서 지득한 정보까지 포함되며, 개신교, 불교, 증산도, 통일교 등 어떤 종교에서라도 '종교의 직'에 있는 자는 이 형법규정의 대상이 된다.
고해사제가 실수로 내용을 누설했을 경우에도 제재를 받는다. 물론 실수이니만큼 파문이나 큰 제재는 받지 않지만 어쨌건 신자들에게는 "난 신부로서 기본적인 소양도 없는 사람입니다." 하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다시 신부로서 재기하기는 어렵다. 실수로라도 발설하면 절대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서, '''사제들은 어지간한 고해 내용을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위해 노력한다.''' 유럽은 한국 가톨릭과 달리 신부가 한 곳에 꽤 오래 정착하는 스타일이고 신자 수(라기보다는 밀도)도 많지 않아 발설하면 심각한 위험이 따르는 경우가 많아 저런 금지 조항이 더더욱 필요하고, 다행히 한국은 사제가 정기적으로 이동하며 본당사목을 담당하기 때문에 대하는 신자 수도 많아 실질적으로 무슨 고해를 했는지를 사제 본인이 알아서 잊어버리는 것이 보통이다.
가끔 고해소 밖에까지 목소리가 들리거나 해서 의도치 않게 고해 내용을 듣게 되는 일이 있는데,(특수한 상황에서 고해를 통역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그 고해성사 내용을 들은 다른 신자도 절대로 발설해선 안 된다. 우연히 듣게 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안 되지만, '''혹여 남이 고해한 내용을 듣게 되면 자신의 고해성사처럼 비밀을 지킬 의무가 있다''' 는 것을 명심하자. 술먹고 실수했다면 몰라도 누구 엿먹일려고 일부러 밝혔다가 걸리면 자동파문이다. 사실 고해소가 제대로 방음 공사가 되어 있다면 남의 고해 내용을 듣는 것이 매우 어렵긴 하다.
이런 원칙에도 불구하고 이걸 깬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있다. 중남미 지역에서 몇몇 성직자가 반체제 운동가의 고해성사를 누설하였다는 의혹, 그리고 105인 사건 당시 니콜라 빌렘 신부와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63] 주교의 행동이다. 이 누설이 의심되는 사안의 상당수는 독재자나 식민지 당국자에 대한 '미래에 저지를 일'을 고해한 것으로, "내일 독재자 아무개를 제거하겠다."고 밝힌 것은 미래에 일어난 것을 고해한 것이고, 자기의 범행 의도만을 밝힌 것이기 때문에 '''엄격한 의미에서 고해비밀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고백은 명백히 고해성사를 악용한 것이므로 사제는 해당 고해자에게 사죄경을 줄 수 없다. 즉 장래 계획 자체는 고해 비밀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 외에, 즉 미래에 지을 죄의 계획이 아닌, '이미 과거에 지은 죄인데 고백했음에도 모고해로 인해 용서받지 못한 죄'들은 전부 고해성사 비밀에 들어가므로, 사제는 해당 모고해 죄들에 대해서는 절대로 발설할 수 없다. 고해의 태도가 너무 불량하여 신부가 이를 알아채는 경우가 아닌 이상은 그것이 모고해인지 여부를 신부가 알아채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
CSI 7기 5화에서는 한 여자를 두고 신부와 함께 삼각관계였던 남자가 여자를 살해한 뒤 그 신부에게 찾아와 그 여자를 살해하였음을 고해성사를 통해 밝혔지만 신부는 이를 그리섬에게 밝히지 않고, 오히려 성직자로서의 본분을 어긴 죄책감 때문에 자신이 범인이라고 거짓 자백을 하였다가 그리섬에 의해 진상이 드러났다. 물론 이는 작품속 내용일 뿐이지만, 사실 작중 신부의 태도는 교리적으로 올바른 처신이 아니다. 즉 교리상 고증이 잘못되었다. 선의를 위해서라고는 해도, 거짓 자백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십계명과 성경에서 대죄로 엄금하는 '위증'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에, 신부는 비록 개인적으로 죄책감을 느낄 수는 있지만, 거짓 자백을 하지 않는 것이 올바른 일이다. 고해비밀을 지키면서 수사에 협조하고 싶으면, 해당 살인자의 고해성사를 들어줄 때 "사죄경을 받으려면 반드시 경찰에 자수하라. 그렇지 않으면 고해를 들어주지 않겠다"고 강력히 이야기하고, 또 형사들에겐 질문을 받더라도, 거짓 자백을 하기보단 "나는 고해비밀을 말할 수 없다. 당사자에게 물어보라"는 말만 하고 아예 입을 다물고 있는게 고해신부로서의 올바른 자세다.
2.1.5.1. 내용누설 금지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것
첫째, 고해자 혹은 고해의 내용이 특정되지 않은 것이다. 성직자들은 예비자나 일반 교우들에게 올바르게 고해성사를 보는 방법에 대해 설명을 하며, 잘못된 고해를 하는 몇가지 예시를 들기도 하는데, 만일 여기서도 위의 내용누설 범위에 드는 언급을 하거나, 고해성사 예시를 들며 고해를 본 특정 인물에 대한 '''실명 누설'''을 해버린다거나, 어떤 사람인지 다 알게끔 말하거나 한다면 '''영락없는 고해 비밀 누설이 되므로''' 조심해야 한다.
둘째로 고해소에서 죄의 고백이 아닌, 죄 고백과는 관계가 조금도 없이 무슨 자기 일상이나 시국 이야기같은 전혀 상관없는 내용을 이야기한다던가, 어떤 소식을 전한다던가 하는 말은 원칙적으로는 일단 고해 비밀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사제가 지켜야 할 비밀은 고해한 '''죄의 내용'''과 죄와 관련된 정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대화에서도 고해소에서 나누는 대화의 특성상, 이런 넋두리나 다른 대화라도 고백자 본인의 죄되는 가치관, 생활습관과 어떻게든 연관이 되는 경우가 많고, 따라서 죄와 어떻게든 관련되는 말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사제는 고해소에서 나눈 대화를 아예 조금도 발설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식 규정은 아니지만 범죄와 관련된 고해, 특히 '''국가보안법 위반과 관련된 고해'''는 고해 비밀로 취급되지 않는다. 이는 범죄 사실을 인지한 경우, 즉시 관할 경찰서에 신고하거나 자수를 요구하기 때문.[64]
2.1.6. 여담
가톨릭 고해성사 중 매우 유명한 일화로, 바로 위에서 설명한 개신교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마르틴 루터'''의 고해성사 관련 에피소드가 있다.
마르틴 루터는 원래 어릴적부터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극심한 회의주의와 세심증(죄에 대한 강박증)에 빠졌는데, 수도자가 되고 나서도 시도 때도 없이 20년간 평생 지은 죄를 총고해 해서 4시간이고 6시간이고 고해신부를 잡아놓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 중에서 가장 압권인 게 하루는 무려 장장 '''6시간 동안 쉬지 않고 고해'''해서, 듣고 있던 신부가 스트레스를 도저히 참지 못하고 루터에게 욕설을 퍼붓고 고해소 밖으로 뛰쳐나갔다고 한다. 그 날 이후 루터가 고해성사를 하려 하면 신부들이 고해 듣지 않고 죄 짓지 않으려고 죄다 루터를 피해다녔다고. 그래서 본의 아니게 다른 신부들이 그의 고해신부가 되길 꺼리자, 결국 루터를 눈여겨 본 독일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에서 가장 높은 직위인 주교대리 신부 요한 폰 슈타우피츠가 루터의 고해신부를 맡을 수밖에 없었다.
고해성사의 비밀 유지에 관해 가장 유명한 이야기로 19세기 말 프랑스의 뒤믈린 신부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성당의 문지기가 거액을 헌금하러 온 신자를 살해하고 그 사실을 사제에게 고해하였는데, 사제는 방에 돌아와서 신자가 죽어 있는 것을 보고 문지기의 소행이란 것을 바로 알았지만 고해성사의 비밀 엄수 조항 때문에 그 사실을 말할 수 없었고, 문지기가 증거를 조작해 오히려 범인으로 몰렸다. 경찰도 신부가 범인이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었으나 무죄의 증거가 없어 결국 무기징역선고를 받고 지옥같은 더위와 환경의 열대 지방의 프랑스령 섬에서 25년 간이나 형벌에 따른 중노동을 하게 되었는데, 1924년 문지기가 죽기 직전에야 사실을 말하고 감으로써 겨우 무죄를 받고 풀려날 수 있었다. 경찰은 병들어 다 죽어가는 신부를 풀어주고 이 사실을 말하며 범인에 대한 분노를 토해냈는데 정작 신부는 분노하긴 커녕 죽는 그날까지 범인을 용서한다는 한 마디만 했다고.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고해성사의 비밀 엄수 조항에 대해 강의할 때 꼭 나오는 이야기이다.
때때로 '''면담식 고해'''라고 해서, 시간이 많을 때 사제를 따로 찾아가서 정말 길게 이야기한 뒤 사죄경을 받기도 한다. 특히 이런 경우는 수도회 피정 등의 프로그램이나 수도회 소속 사제들이 할 때가 많다. 때로는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도 '''비밀이 엄수되는 가운데 자기 속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고해성사는 아니어도 이런 면담을 사제에게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이런 요청을 많이 받는 사제는 아예 '고백성사 수준의 비밀 엄수를 원하면서 이야기하고 싶은,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은 그 점을 명확하게 이야기해 달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가톨릭 교회법에 규정된 특이한 (하지만 이해가 가는) 규정으로, 고해사제가 고해전에 이미 고해자와 성범죄(제6계명 위반)[65] 를 저지른 경우 '''공범자에 대한 사죄'''는 그 사람이 당장 죽을 위험에 처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현행 교회법 제 977조). 이를 어기는 사제는 파문급의 중징계를 받게 된다. 그런 고해성사를 본 신자도 마찬가지. 이건 성범죄가 아니라 어떤 범죄라도 '''신부 그 자신이 공범 관계에 있었을 경우'''라면 '''해당 신부'''가 고해성사를 주지 못한다는 것이 정의의 원칙으로 볼 때 당연하다.
한국 가톨릭에서는 '''판공성사'''라고 하는, 성탄과 부활이라는 그리스도 교회의 가장 핵심인 축제 를 앞두고 진정으로 정성된 준비를 한다는 의미로 만들어졌지만, 많은 사람들에 의해 악용되어 한 해 모든 죄를 묶어서 참회하는 연례 성사가 있어 평소 고백성사를 하지 못한 이들은 이 때를 이용해 자신의 모든 죄를 참회하기도 한다. 평소에 고해성사는 신자 한 명 한 명의 죄를 보듬어주는 그런 성의 있는 성사를 주는 사제가 제대로 된 사제지만, 이 판공성사 기간에는 사람이 무지 늘어서 있기 때문에 '''빨리빨리''' 를 잘하는 사제가 오히려 능력 있는 사제가 된다. 따라서 진실된 신자라면, 판공 성사기간때만 고해성사를 보겠다는 생각보다는 평소에도 자신의 양심성찰을 꾸준히 하고 한달에 한번 정도 고해성사를 보는 것이 모범적이다.[66] 열심한 신심을 가지고 있는 신자들은 1~2주 간격으로 고해를 하기도 한다. 사실 원칙상으로도 모령성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자주 고해를 하는 것이 좋다. 이것에 특별히 관심있는 신부는 신자들에게 모령성체의 위험성을 언급하며 자주 고해를 하라며 조언하기도 한다.[67]
미사 직전 고해성사 때 사람이 많아서 고해를 보지 못한 신자들을 위해 미사 직후에 또 고해성사를 집전하는 경우도 있다. 주로 판공시기 미사 때 그러하다.
교구마다 '''상설 고해소'''라고 일정한 요일과 시간에 항상 열리는 고해소를 운영하고 있다. 주로 주교좌 성당이나 시내 중심가의 성당, 성지 성당 등에서 열리고 있고, 이 고해소의 신부들은 시간 제약을 받지 않고 진심으로 고해를 들어주는 경우도 많으니 관심 있으면 이용하자.
자신이 소속된 본당 신부는 물론 인접 성당 신부한테도[68] 고백하기 껄끄러운 죄를 고해하고자 한다면, 수도회 사제[69] 나 인접한 타 교구[70] 소속 사제한테 고해성사 보는 팁이 있다.
2.2. 정교회의 고백성사
정교회에서는 고해성사를 '고백성사'로 번역하는데, 정교회의 고해성사와 가톨릭의 고해성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정교회는 공개된 장소에서 신부를 직접 대면하고[71] 성사를 본다'''는 것이다.
정교회에서는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을 일종의 병처럼 생각하며, 어떤 인간이 어떤 죄를 고백하는지 사제가 마치 의사처럼 진단해주고 치료하는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고해소 같은 것은 없다. 이런 점 때문에 훨씬 시각적인 의식이 곁들여지는데, 보통 예수 그리스도의 성화상 앞에서 복음서와 십자가를 앞에 두고 사제는 고백자와 나란히 서서 '에피트라힐리온'이라는 사제의 영대로 고백자의 머리를 덮은 뒤 '하느님의 주권으로 하느님의 종 아무개를 용서하소서'라고 사죄경을 외운다. 이때 예수 그리스도 이콘 앞에서 의식이 치뤄지는데 이는 가톨릭의 대리인적 관점이 아닌 증언자, 집행자의 관점에서 치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연하지만 ''' 정교회도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비밀 엄수 의무가 있으며 이를 어기면 자동파문이다.'''
2.2.1. 교리와 전통
정교회의 고백성사 교리는 가톨릭과 거의 비슷하다. 비밀엄수 의무에서부터 교회의 중요한 7성사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또한 신자가 죄의 용서를 받기 위해 반드시 받아야 할 성사인 것도 비슷한 위상이다. 하지만, 지역에 따라 고백성사의 실천 모습은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그리스-비잔티움 문화의 영향을 받은 지역의 교회에서는 고백성사가 반드시 성체성사와 연결되어, 영성체를 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사제의 판단에 따라 영성체 후에 고백성사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고백성사를 보기 전에 충분한 회개의 시간을 갖도록 권고가 된다. 신자가 매주 성당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이라면 사순시기나 대림시기에 고백성사를 보는 정도도 괜찮다고 본다. 때문에 이 영향권에 속한 한국 정교회에서는 신자들이 보통 부활 대축일 전이나 성탄 대축일 때 고백성사를 받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신자가 고백성사를 자주 보는 것 또한 권고하며, 특별히 성찬예배가 있기 하루 전에 고백성사를 보며 영성체를 준비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러시아-슬라브 지역에서는 고백성사와 영성체의 긴밀성을 고려하여[72] , 반드시 성찬예배 전에 그 날 참석한 모든 신자들이 고백성사를 받아야 하며, 이 고백성사를 본 뒤에 영성체가 가능하다. 때문에 조금이라도 규모가 있는 성당의 경우에는 성찬예배 전은 물론이고 성찬예배가 진행되는 중이라도 신부 중 1명이 성당 한 켠에 자리잡고 영성체 전까지 예배가 진행되는 가운데 따로 고백성사만 베푸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한편, 신자는 자신의 고백 신부를 '영적 아버지'로 여기며, 가급적이면 고백신부는 한 신부에게 보는 것을 권고받는다. 이는 정교회 고백성사가 '의사가 환자를 치료한다'는 관점에서 비롯하여, 한 영혼의 상태를 깊이 이해하고 조언해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신부에게 받는 것이 고백성사를 현실에서 더욱 유의미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고백성사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진심 어린 통회가 필요하며, 전적으로 하느님에 대한 사랑에서 기원해야 하는 등 고백성사를 충분히 준비하기 위한 전통은 가톨릭과 역시 대동소이하다. 다만, 보속의 경우에는 그것이 '대사'로써 잠벌을 경감하는 효과가 있다거나 아주 필수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보속은 정교회에서는 단지 영혼의 치료를 위해 쓰이는 하나의 '''치료 도구'''일 뿐이며, 그것이 '잠벌을 면하게 해주는' 효력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2.2.2. 절차
준비된 장소에 고백신부와 고백자가 함께 이콘 혹은 십자고상 또는 복음경 앞에 서는 것으로 시작한다. 정교회에서 주로 쓰이는 시작기도와 '삼성송', '주님의 기도' 등을 한 뒤, 고백자는 시편 51편의 일부를 기도로 바친다. 그 뒤 사제가 다음의 성가를 드림으로써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2.2.2.1. 사제의 준비기도
'''+'''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무력한 우리 죄인들이 주께 간구하오니,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께 의탁하오니, 우리에게 진노하지 마시고, 주의 자비로 우리의 죄악을 살피소서, 우리를 굽어보시고, 원수의 손에서 건져 주소서, 주는 우리 하느님이시고 우리는 주의 백성이오며, 또한 우리는 주의 손으로 찢어진 피조물이므로, 주의 이름을 부르나이다.
'''+''' 주님께 기도합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여,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시여, 목자이시고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어린 양이시여, 주는 두 채무자의 빚을 탕감해주시고, 인간의 죄를 용서하셨나이다. 자애로우신 주여, 여기 나온 주의 종(들)을 위하여 주의 선하심을 애원하는 우리 기도를 들으시어 크신 자비로 그(들)의 죄에서 눈을 돌이키시고 영벌에서 구하소서. 주여, 주는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나이다. 주 홀로 죄가 없으시니,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이제와 항상 대대로 영광을 드리나이다. 아멘.
2.2.2.2. 죄의 고백 권고
'''+'''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고백을 들으시러 이 자리에 보이지 않게 계십니다. 수줍어 말고 두려워 말고 아무것도 숨기지 마십시오. 불신이 범한 모든 것을 숨김없이 고백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를 받으십시오.
또는
'''+''' 당신은 하느님과 내 앞에 서 계십니다. 아무것이나 부끄러워 말고 말씀하십시오. 당신은 나에게 고백하는 것이 아니고 이 자리에 계시는 하느님께 고백하는 것입니다.
2.2.2.3. 고백과 사죄경
신자는 고백을 한다. 필요한 경우 사제는 질문을 하고 답을 받을 수 있다. 고백자는 가급적이면 자신이 지은 죄를 간결하되 그 핵심을 분명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또한 숨김없이 자신이 알아낸 모든 죄를 고백해야 한다. 고백이 끝난 뒤 사제는 죄에 대한 적절한 교훈과 훈계를 내리며, 동시에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나 경우에 따라 필요한 보속을 신자에게 말하는 등 죄의 용서와 극복을 위한 일련의 조언을 해준다. 이후 사제의 청원기도가 이어진 뒤 바로 사죄경이 내려진다.
'''+''' 이 비천한 몸이 당신의 고백을 들었습니다만, 부당하고 죄 많은 나로서는 이 세상에서 당신의 죄를 사해드릴 권능이 없습니다. 하느님 홀로 죄를 사하십니다. 그러나 주께서 부활하신 후 사도들에게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주면 그들의 죄도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하신 거룩하신 말씀에 힘입어, 나도 당신에게 선언합니다 : 이 비천한 나에게 당신이 고백한 모든 죄와 모르고 있거나 생각해내지 못한 모든 죄를 하느님께서 현세와 후세에 용서해주시리이다.
고백자는 머리를 숙이거나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사제는 자신의 영대(에피트라힐리온)을 고백자 머리에 올려 덮는다.
- 사죄경 1양식 : + 주님께 기도합시다. 주 하느님, 주의 종들을 구원하시는 자비롭고 너그럽고 어지신 주여, 주는 우리 죄를 애석하게 여기시며, 죄인들이 죽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뉘우쳐 살기를 원하시니, 여기 나온 주의 종(아무개)을 불쌍히 여기시고, 뉘우치는 마음을 주시며 죄의 용서와 사죄를 베푸시어 그가 고의로나 무의식 중에 범한 모든 죄를 사하소서. 또한 주의 거룩한 교회에 그를 화해시키시고 일치시키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성자와 더불어 주께 권능과 찬미가 이제와 항상 대대로 있나이다. 아멘.
- 사죄경 2양식 : +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 하느님이시여, 주는 베드로와 죄녀의 눈물을 보시어,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자기 잘못을 깨달은 세리를 의롭게 만드셨나이다. 비오니 주의 종(아무개)의 고백을 받아들이시고 주의 선하심을 보이시어 그가 고의거나 무의식중이거나 알거나 모르면서 범한 생각과 말과 행실의 모든 죄를 사해 주소서. 주 홀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나이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와 주의 영원하신 아버지와 지극히 거룩하시고 선하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과 함께 이제와 항상 대대로 영화를 바치나이다. 아멘.
2.3. 개신교의 고해예식
보통은 고해성사가 없다. 개신교에서는 모태신앙 신자라도 고해성사가 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성공회는 5개의 예식(준성사) 가운데 하나로 교회의 전통으로라도 존중하지만, '''나머지 개신교 교파에서는 만인사제주의에 어긋나고, 비성경적인 예식이라 하여 고해예식을 아예 배척한다.'''
특히 칼뱅주의/개혁주의 교회에서는 고해예식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이 매우 강하다. '하나님께 직접 회개를 해야지, 왜 일개 인간인 사제/목사한테 회개를 하느냐'며 고해를 신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 다만 루터교회에서는 예배 전에 목사가 죄의 용서를 선포하는 의식이 있고 일부 개혁교회에서도 에큐메니즘의 영향을 받은 경우 예배 절차 중에 '회개의 기도' 순서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이 것은 고해성사가 일부 개신교에 남아있는 희미한 흔적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절차가 포함되어 있는 루터교회에서도[73] 성사(聖事)로 여기지 않으며, 목회자에게 '개인적'으로 죄를 고백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감리교의 경우 초창기 존 웨슬리가 속회와 반회(band)를 조직을 했는데, 그 가운데에서 속회를 이끄는 속장과 속회원이 서로 만나서 속장이 먼저 죄 고백을 속회원에게 하고 속회원이 속장에게 죄고백하는 것이 있었다. 웨슬리는 이 행위에 대하여 은혜로운 것으로 여기고 허락한 것이 있다. 이 전통에 따라서 일부 감리교회에서 행하기도 한다.
속회의 상위 모임이라고 할 수 있는 반회(band)에서는 상호간의 죄고백을 시행했다. 즉 반회원들이 5-6명 정도 모여서 돌아가면서 죄의 고백을 시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임으로 인하여 웨슬리는 카톨릭스러운 것이라는 평가에 대하여 비판을 받았지만, 야고보서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서로 죄를 고백하라는 덧은 성경적이라고 변호했다. 이는 형제 상호간의 고백이기 때문이다. 웨슬리는 후에 이 모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이 모임을 감리교도가 만들어지는 곳 마다 시행하도록 권면했다. 반회를 통한 죄의 고백을 통하여 중독과 죄에서 자유하게 되고 그리스도인의 완전 성화를 향하여 힘차게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루터의 경우 이러한 죄의 고백 자체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보는 인물은 아니였다.[74] 그가 쓴 대요리문답과 소요리문답에서 보면 그가 인정한 죄의 고백은 형제 상호간의 고백이다. 다만 목회적인 차원에서 성도들이 서로 죄를 고백할 때 생기는 문제점과 상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목회자에게만 죄의 고백이 필요하다면 고백할 것을 권면했다.
그 외의 개신교에서도 신도가 사적으로 목사에게 자신의 죄에 대해 상담을 받거나 자문을 구하는 경우는 있다. 다만 이러한 경우에도 성사라거나 예식 등으로 해당 행위에 권위를 부여하는 경우는 없다. 엄연히 성도 사이의 '조언'일 뿐, 죄에 대한 문제는 하나님과 직접 풀 문제인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2.3.1. 성공회의 고해성사
성공회에도 가톨릭과 비슷한 형식의 고해성사가 있으나, '대성사’ 또는 ‘복음의 성사’인 세례성사와 성체성사와는 구분하여 '소성사' 또는 ‘교회의 성사’로 본다. 즉, 성서에는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교회 전통 안에서 형성된 성사라는 뜻이다. 하느님께 직접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교리를 수용하는 넓은 의미의 개신교라서 성공회에서 고해는 가톨릭에서와 달리 신앙생활에서 필수가 아니다. 즉, 다른 개신교단처럼 신자가 죄를 직접 하느님께 고백해도 되고, 가톨릭처럼 사제를 통해 고해를 해도 되는 하이브리드한 시스템이다.'''고해성사'''
1. 고해성사는 모든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유익하므로 적극 권장한다.
2. 사제는 고해 내용을 어떤 경우에도 발설할 수 없다.
3. 고해소가 없을 경우 교회 안에 사제와 고해자가 얼굴을 마주하지 않도록 칸막이가 설치된 적당한 장소를 준비한다.
4. 사제는 중백의와 자색 영대를 한다.
5. 고해자는 먼저 자신이 지은 죄를 자세히 생각하고 진정으로 뉘우치며 다시는 반복하여 죄를 짓지 않기로 굳게 결심하고 나온다.
성공회 기도서 2004 (2018 수정판)
가톨릭의 판공성사처럼 주기적인 고해성사가 의무화된 것도 아니다. 신자 본인이 진정으로 고해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오히려 제도적으로 고해를 강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따라서 고해를 하는 신자가 현실적으로는 거의 없다. 오죽하면 성공회 내부에서도 "고해소가 창고로 쓰이고 있다"고 한탄할까.[75][76] 아무튼 그래도 할 수는 있으며, 이런 성공회의 분위기를 다른 방향으로 생각한다면, 고해성사를 하게 되면 진심을 담아 드리는 매우 의미 깊은 예식을 시행하게된다.
성공회의 고해 형식은 가톨릭과 비슷하다. 당연히 가톨릭 수준의 비밀 엄수 의무가 있다. 성공회의 교회법에서도 고해 내용의 누설은 성직 박탈 사유로 규정되어 있다.
고해소도 고교회파 성당에 주로 있고, 저교회파 성당에는 없는 경우도 있다. 참고로 대한성공회는 대체적으로 고교회파적 성향이 강해서 성당에 고해소를 두고있는 경우가 많으나, 대한성공회 내에서 상대적으로 저교회파의 성향이 강한 부산교구에는 없는 성당도 많다. 고해소가 따로 없는 성당에서는 사제와 신자가 단 둘이 성당 내 조용한 공간에서 예식을 진행하게 된다. 장로교나 침례교 신자의 눈으로 본다면 '담임목사와의 신앙상담'을 기독교 전통에 따라 좀 더 엄숙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무리가 없을 듯 하다.
2.3.1.1. 성공회 고해성사의 구조
'''+ 사제:''' 성부와 성자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아멘
'''○ 고해자:''' 주님 앞에 나아와 모든 죄를 고백하오니 용서와 축복을 내려 주십시오.
'''+ 사제:''' 주님께서 그대의 마음과 입에 계시어 모든 죄를 진심으로 겸손히 고백하게 하소서.
'''○ 고해자:''' 아멘
'''○ 고해자:''' 전능하신 하느님과 거룩한 교회와 사제 앞에 고백합니다. 저는 생각과 말과 행실로 많은 죄를 지었으며 의무를 소홀히 했습니다. 특별히....
''여기서 고해자는 분명하고 간결하게 고백할 죄를 말한다. ''
'''○ 고해자:''' 이러한 저의 죄와, 이 외에 잊어버리고 기억하지 못하는 모든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오니,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용서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사제는 간결하게 권면의 말을 하고 보속을 줄 수 있다. ''
''그 다음에 고해자는 다음 기도를 바친다.''
'''통회의 기도'''
주 하느님, 제가 죄를 지어 주님의 마름을 아프게 하였사오니, 죄악을 저지르고 선을 소홀히 한 모든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나이다. 또한 주님의 은총으로 속죄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며 죄의 유혹을 피하기로 굳게 다짐하오니,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아멘
'''+ 사제:''' 그리스도께서는 진실로 죄를 뉘우치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거룩한 교회에 주셨으니,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그대의 모든 죄를 용서합니다.
'''○ 고해자:''' 아멘
+ 사제: 전능하시고 자비하는 하느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교우에게 강복하시고 항상 지켜주소서.
'''○ 고해자:''' 아멘
+ 사제: 주님께서 교우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으니 평안히 가십시오.
'''○ 고해자:''' 하느님, 감사합니다.
2.4.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고해예식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고해예식이 있다. 가톨릭과 비슷하게, 혼전순결의 죄, 낙태 등 심각한 죄를 범했을 경우 감독에게 찾아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의식을 갖는 것이다. 가톨릭, 정교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감독은 가톨릭에서처럼 사죄권을 가진 사죄자의 의미가 아닌, 고백자와 함께 기도하고 죄를 용서해줄 것을 청하는 입장에 가깝다. 또한 죄가 매우 심각할 경우 감독은 성찬 제한, 신권 제한 등의 벌을 내릴 수 있다.
3. 사죄경
고백성사 시 사제가 죄의 용서를 선언, 혹은 기원하는 형태인 기도문. 사제가 이 사죄경을 하지 않으면 그저 '고백'했을 뿐이지 하느님의 용서를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중요하다. 가톨릭 현행 교회법(대표적으로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 제 93조)에 따르면, "사제는 여러 상황이나 사목적인 이유로 고해성사 절차[77] 를 비교적 간단히 할 수 있지만, 꼭 있어야 할 형식은 '''죄의 고백'''[78] 과 '''사죄경'''이다" 이라고 되어있다. 이처럼 사죄경을 받는 것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필수적으로 해야 할 절차이다. 특히 사죄경의 가치를 잘 모르는 일부 신자들은 고백에만 신경을 쓰고, 고백과 훈계가 끝나면 바삐 고해소를 나가려는 경우도 가끔 있다고 하는데, 이런 경우가 발생하면 사제는 그 나가는 신자를 따라가는 한이 있더라도(...) 사죄경을 줘야 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죄의 고백만 하고 용서를 안받고 나가는 꼴이 되기 때문에, 기껏 고해성사 하러 온 보람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가톨릭의 사죄경은 , 사제는 신자에게 손을 펴고(이를 사죄 강복이라 한다)
라는 형태로 돼 있다. 이 사죄경을 들음으로서 비로소 고백한 죄가 용서받고, 신자는 사죄경을 들으면 아멘. 이라고 응답한다. 사실 옛부터 쓰여오던 전통 방식의 사죄경은 훨씬 더 길다. 하지만 위의 글이 사죄경의 본질이므로, 단순히 저 간단한 사죄경[79] 만 듣더라도 죄 용서의 효과는 동일하다. 또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단락에서는 미사 마무리 강복 때와 마찬가지로 신자 역시 자신의 몸에 성호경을 긋는 것이 권장된다. 사제가 자신의 권한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인으로서 교회에 맡겨진 권한을 행사한다는 관점이 잘 드러나 있다. 또한 그 기도문이 간결하며, 필요한 요점만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정교회의 사죄경과 대비된다."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용서하기 바라며, '''교회의 직무 수행으로''', 나도 그분의 권한을 가지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의 죄를 사합니다."
전통적인 비잔티움 전례를 사용하는 정교회에서는 "나(사제)는 그대(신자)가 하느님 심판대전 앞에서 단죄받지 않기를 빕니다."라고 하느님의 용서를 기원하는 형태로 돼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다윗, 베드로 등 성경 속 인물들의 죄가 용서받은 사례를 거론하며, 이 사람이 알게 모르게 지은 모든 죄를 그와 같이 용서해달라고 하느님께 청하는 내용이다. 정교회의 특징대로 대단히 문학적인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에, 기도문 자체는 실로 아름다운 대신 장황하며 매우 길다.)
하지만 러시아의 정교회에서는 사죄경이 가톨릭의 것과 비슷하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인 관점이 반영되어 교회에 맡겨진 권한으로 죄를 사하는 형식인데, 이는 17세기 표트르 대제의 서유럽 문화 유입 시기에 반영된 교회 문화이다. 이 시기 러시아의 정교회는 서구적 리얼리티를 담은 이콘 문화, 성경의 정경 목록 설정 등 많은 면에서 가톨릭의 영향을 받았다.
4. 오해
고해성사는 하느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일부 신자 중에서 자신의 죄를 고해하면서도 막상 자신의 죄에 의한 피해자에겐 사과를 하지 않는 등 이중적인 면을 보이는데, 이는 진정한 회개 및 정개정신이 부족한 것으로, 모고해가 될 가능성이 큰, 올바른 행위가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것처럼, 하느님께 고해하고 동시에 자신의 죄로 피해를 본 사람에게도 최대한 가능한대로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며, 피해자에게 정신적, 물질적인 배상도 가능한 대로 열심히 해야, 또는 최소한 그럴 각오라도 단단히 가져야 진정한 고해를 통한 참회가 이루어진다고 가르치고 있다.[80] 세간의 인식처럼, 오직 하느님께만 용서를 빌고 기부를 많이 한다고 용서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저지른 죄에 대해 먼저 사회적으로 책임을 다 진 다음에 추가로 하느님께도 용서를 구하는 것일 뿐이다.
5. 비유적 표현
비종교적 맥락에서, 자신의 잘못이나 흑역사를 스스로 고백하는 것을 고해성사에 빗대어 말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느 연예인이 학창시절에 친구의 교과서를 몰래 찢은 장난을 친 적이 있었다는 에피소드를 스스로 고백하는 것을 고해성사에 빗대는 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