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벤추라
1. 개요
MLB에서 활동하였던 3루수로, 좋은 타격과 수비력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타자였다.
2. 경력
대학 시절에는 NCAA Division I의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 소속으로 58경기 연속안타 기록을 세우는 등 당대 최고의 대학 타자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1988 서울 올림픽 미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금메달을 획득하였고, 전미 최고의 아마추어 야구선수에게 시상하는 골든 스파이크 상과 최고의 대학 야구선수에게 시상하는 딕 하우저 트로피를 동반 제패하며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1]
화이트삭스 선수 시절엔 매년 8할 이상의 OPS를 기록하는 공격력이 돋보인 3루수였으며 5차례 골드글러브를 따낸 수비력도 일품인 선수였다. 다만 말년에는 부상으로 인해 기량이 다소 쇠퇴했으며 뉴욕 메츠로 이적했고[2] , 2003년 중 뉴욕 양키스에서 LA 다저스로 트레이드[3] 되며 본의 아니게 저니맨 생활을 하기도 했다. 2004년 다저스에서의 시즌을 마지막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통산 성적은 0.267/0.362/0.444, 1,885안타 294홈런 1,182타점.
벤추라에게 있어 가장 유명한 장면은 1993년 8월 4일 놀란 라이언과의...
전설의 벤치 클리어링 장면.
이 당시 벤추라는 26세였는데, 자신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라이언에게 빈볼을 얻어맞고 겁도 없이 달려들었다가 '''상대가 누군지 뒤늦게 알아보고 깨갱'''하여 주춤하다가 이런 헤드락을 당했다 전해진다. 이 벤치클리어링은 역대 손꼽히는 장면으로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선수시절 만루홈런의 사나이기도 했다. 통산 만루상황에서의 성적이 0.340의 타율에 18홈런. 18개의 만루홈런은 공동 5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며[4] 더블헤더로 펼쳐진 경기에서 각각 만루홈런을 날리는 진기록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위의 라이언과의 벤치클리어링 말고도 끝내기 만루안타로도 유명하다. 1999년 뉴욕 메츠시절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당대 최강 마운드의 브레이브스와 대결을 펼쳤는데 3:3로 맞선 5차전 연장 15회말 1사 만루상황에서 끝내기 만루홈런을 작렬시켰다. 하지만 벤추라가 1루를 밟자마자 동료들이 경기장에 뛰어들어 세레머니를 펼쳤고 결국 벤추라는 홈베이스를 밟지 못해 공식적으로 단타로 기록되었다.
동료들 때문에 포스트시즌 만루홈런이 단타로 기록돼 화가 날 법 하지만 경기 후 "동료들이 찬스를 만들어줬기에 승리 할 수 있었다"라며 쿨하게 넘어갔다.
국내에선 놀란 라이언과의 벤치클리어링으로만 유명하지만 끝내기만루안타의 일화에서도 보여지듯이 매우 온화한 성격이라고 한다. 단순히 성격이 좋기만 한게 아니라 성실하고 리더쉽도 뛰어나 선수들의 신망을 크게 얻은 선수였다.
그리고 그 결과!!
2011년 10월 6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사상 17번째 삭스 선수 출신 삭스 감독이라고. 삭스 팬들은 전임 사고뭉치 감독을 반면교사 삼아 얌전한 팀 운영을 해주길 바라고 있다. 일단 2012년 시즌 초반엔 초보감독치고 잘 해내고 있는 모양새. 허나 시즌이 갈수록 팀 성적이 나빠지고 있어서 호의적인 목소리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2015시즌에는 대대적인 전력 보강을 했음에도 꼴찌다툼을 하다보니 벤추라가 모습을 드러내면 팬들은 야유를 보낸다.
결국 2016 시즌 종료 후 경질되었다. 후임 감독은 벤치코치이자 전 시카고 컵스의 감독이었던 릭 렌테리아.
[1] 벤추라는 딕 하우저 트로피가 1987년에 생긴 이래 이 두 상을 같은 해에 수상한 최초의 선수였다. 이후 제이슨 배리텍, J.D. 드루, 버스터 포지,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크리스 브라이언트 등 훗날의 숱한 스타 선수들이 대학 시절 이 상을 휩쓸었다.[2] 그러나 메츠에서의 첫 시즌에 OPS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다. 덤으로 2000년 월드시리즈도 경험하게 된다.[3] 이 당시 양키스로 향한 선수는 버바 크로스비와 스캇 프록터다.[4] 만루홈런 1위는 24개의 알렉스 로드리게스 2위는 23개의 루 게릭, 3위는 21개의 매니 라미레스, 4위 에디 머레이 19개, 공동 5위 18개의 벤추라와 윌리 맥코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