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 기옌

 

* 야구 관련 인물(MLB)

'''아지 기옌의 수상 경력 및 감독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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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2003'''
'''2005'''

'''1985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
앨빈 데이비스
(시애틀 매리너스)

'''아지 기옌
(시카고 화이트삭스)'''

호세 칸세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클럽'''



'''베네수엘라의 야구 감독'''
''' 이름 '''
'''아지 기옌'''
'''Ozzie Guillén'''
''' 본명 '''
오스왈도 호세 기옌 바리오스
Oswaldo José Guillén Barrios
''' 출생 '''
1964년 1월 20일 (60세) /
베네수엘라 오쿠마레델투이
''' 국적 '''
베네수엘라
''' 신체 '''
180cm|체중 68kg
''' 직업 '''
야구선수(유격수 / 은퇴)
야구감독
''' 소속 '''
''' 선수 '''
'''시카고 화이트삭스 (1985~1997)'''
볼티모어 오리올스 (1998)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1998~1999)
탬파베이 데빌 레이스 (2000)
''' 감독 '''
'''시카고 화이트삭스 (2004~2011)'''
마이애미 말린스 (2013)
'''코치'''
몬트리올 엑스포스 (2001~2002)
플로리다 말린스 (2003)
1. 개요
2. 경력
2.1. 선수 경력
2.2. 지도자 경력
3. 기행


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전 선수이자 감독으로, 2005년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이끌면서 블랙삭스 스캔들 이후 90년 가까이 무관에 시달리던 팀을 우승으로 이끈 것으로 유명하다.[1] 덧붙여서 특유의 돌아이 기질(...)로 말미암은 여러 에피소드 때문에 희대의 괴짜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2. 경력



2.1. 선수 경력


기옌은 고국인 베네수엘라에서 탄탄한 수비실력과 훌륭한 컨택트 능력으로 명성을 떨쳤고[2], 이에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1980년 국제 자유계약을 통해 입단하면서 자신의 프로 커리어를 시작한다. 이후 1984년 겨울에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된 기옌은 이듬해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여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한다. 게다가 이 해 신인임에도 수비율 지표로 리그에서 1위를 차지하는데, 당시 기준으로 신인 유격수가 수비율 1위였던 것은 그를 포함해 단 세 차레에 불과했으니 그가 얼마나 전도유망한 선수였는지를 짐작할 만하다. 선수 시절의 기옌은 패기 넘치면서도 공격적인 플레이로 유명했는데, 한번은 뉴욕 양키스와의 경기에서 2루 주자로 출루한 상황에서 후속 타자가 내야 플라이를 쳤음에도 3루로 돌진하기도 해서 화제가 됐다. 다만 이따금은 뇌주루를 펼치기도 했는데, 출루해서 수비수가 공을 투수에게 송구했다고 생각하고는 방심해서 리드폭을 넓히다가 숨겨둔 공에 태그 아웃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3]
1990년 시즌 유격수 부문 골드 글러브를 수상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높여가던 기옌은 1992년 시즌 중에 텍사스성 타구를 쫓다가 팀의 외야수와 충돌하면서 심각한 무릎부상을 입고 그대로 시즌아웃되고 만다. 이 부상은 두고두고 그의 선수 경력에서 아쉬움으로 남는데, 공격적인 주루와 탁월한 수비 범위라는 장점을 이 부상 이후 상실했기 때문. 부상 다음해인 1993 시즌엔 .280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팀의 지구 우승[4]에 기여하지만 이후로 점점 내리막을 타다가 1997년, FA 계약으로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이적한다. 그렇지만 오리올스에서도 썩 좋은 경기력은 아니었기에 다음해 방출크리(...) 다행히도 내야 유틸을 찾던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에 새 둥지를 튼다. 애틀란타에서 1999 시즌 내야 유틸로 팀의 월드시리즈 진출에 힘을 보태지만 팀은 뉴욕 양키스에게 패하고 만다. 이후 2000시즌 탬파베이 데블레이스를 끝으로 기옌은 자신의 선수 경력을 마감한다.
선수로써 기옌은 도합 16시즌 1993경기 출장에 1764 안타, 타율 .264 홈런 28개, 타점 619점 출루율 .287을 기록했다. 타격 실력은 평범하지만 수비 실력은 메이저 전체에서도 수준급으로 꼽히는 수준이어서[5] 수비율과 보살로 각각 한 차례씩 타이틀을 차지했으며 1988년, 1990년, 1991년 세 차례 올스타에 선출되기도 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동시대에 불세출의 유격수 칼 립켄 주니어가 활동해서 묻혔다는 것...

2.2. 지도자 경력


은퇴 후 몬트리올 엑스포스플로리다 말린스[6]에서 코치를 맡기도 했던 기옌은 2004시즌을 앞두고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이끌 새로운 수장으로 선출된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무려 13시즌을 보낸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만큼 그의 데뷔 홈경기를 앞두고 시삭스 팬들은 기립박수로 그를 환영해준다. 감독 데뷔 첫 해에 83승 79패라는 무난한 성적을 거둔 기옌은 이듬해인 2005 시즌 첫 두 달 동안 33승 17패라는 무시무시한 성적을 거두고[7] 이후로도 페이스를 늦추지 않으며 99승 63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아메리카 리그 중부지구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누린다. 이후 벌어진 포스트시즌, 첫 관문인 디비전시리즈에서 이구치 타다히토의 맹활약에 힘입어 디펜딩 챔프 보스턴 레드삭스를 3전 전승으로 깔끔하게 스윕해버렸고, 챔피언십시리즈에선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를 꺾고 대망의 월드시리즈에 진출한다. 그리고 월드시리즈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간단하게 4전 전승으로 스윕하면서 시삭스는 1917년 이후 88년만의 우승을 차지하면서 블랙삭스 스캔들의 저주를 푸는데 성공한다. 기옌 본인도 '최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룬 히스패닉 감독'이라는 타이틀과 더불어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린다.
다음 시즌인 2006년에도 90승을 거두며 선전하지만 같은 지구의 미네소타 트윈스디트로이트 타이거스가 각각 96승, 95승이라는 굇수급 성적을 기록하는 바람에 와일드카드 자격도 못 얻고 탈락하고 그 다음해인 2007년에는 아예 72승 90패라는 폭망을 기록하면서 바닥을 치지만, 2008시즌에는 88승 74패를 기록한 후 공동 1위였던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가을야구 진출을 놓고 벌인 단판 승부를 승리하면서 3년만에 다시 가을야구로 팀을 이끈다. 다만 첫 단계인 디비전 시리즈에서 돌풍의 템파베이 레이스에게 패배... 이후로 2011년까지 팀을 이끌면서 성적은 딱히 나쁘진 않았지만[8] 같은 동네의 호랑이와 쌍둥이네가 워낙 설쳐대는 바람에 가을 야구와는 인연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GM 케니 윌리엄스와의 갈등이 벌어지면서 2011 시즌을 끝으로 기옌은 시카고 화이트삭스 감독직을 내려놓는다.[9] 다음해인 2012 시즌 마이애미 말린스로 이적했지만 69승 93패로 똥망의 성적을 기록하면서 인내심없는 구단주 제프리 로리아에게 한 시즌만에 해고당하고 만다.[10][* 심지어 2011년 시삭스 감독직에서 물러날 당시, 다음해인 2012시즌에 기옌을 감독으로 데려가는 팀은 시삭스에게 막대한 보상을 지불해야 하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에 이 보상 때문이라도 말린스가 기옌을 일년만에 짜를거라고 보는 견해는 거의 없었건만..

3. 기행


성적보다도 그를 유명하게 만든 기행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2005 시즌 월드시리즈 우승 직후 은퇴를 선언했다가 시카고 시내에서 월드시리즈 우승 퍼레이드를 하면서 팬들의 눈물의 호소(?)에 감동을 받았다며 감독직 수행 재개 의사를 밝힘
  • 월드시리즈 우승팀은 백악관에 방문하는 것이 전통이지만 이것을 거절.
  • 자신을 비판한 지역지의 칼럼니스트 제이 마리오티(Jay Marrioti)를 게이라고 깜. 정확히는 fag라고 했으니, 어감을 따지자면 똥x충이나 호모가 정확한 번역일 듯(...)[11] 발언이 논란이 되자 성소수자들에게는 사과했지만 마리오티에게는 사과를 거부.
  • 라틴 아메리카에서 건너오는 불법 이주민들을 옹호하면서 그들이 미국의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고 발언. 덧붙여 미국인들을 싸잡어 게으르다고 폭풍디스까지 선사.. 덧붙여 히스패닉 계가 차별받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뜬금없이 한국과 일본을 디스하기도 했다.[12]
  • 2012년 마이애미 말린스 감독 재임중에는 피델 카스트로와 관련된 발언[13]을 했다가 구단 자체 징계로 5경기 출장 정지를 당하기도 했다.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활동할 당시 추신수가 "왜 맨날 나를 상대로는 맷 손튼을 등판시키냐?"라고 묻자 그 날부로 크리스 세일을 올림(...)[14]
[1] 여담이지만 히스패닉 출신 감독 중에서는 최초의 월드시리즈 우승감독이다.[2] 여담이지만 그보다 약간 아랫 세대이자 동시에 라이벌이었던 인물이 바로 오마 비스켈이다.[3] 물론 공을 숨긴 수비수도 비매너이기는 하지만, 집중을 안한 기옌 본인도 쉴드받기는 썩...[4] 팀은 아메리카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토론토 블루제이스에게 패하여 월드시리즈 진출이 좌절된다.[5] 일단 유격수로 골든글러브 수상자인걸 생각하자.[6] 말린스에서 선수 시절 내내 인연이 없었던 월드시리즈 반지도 차지해봤다.[7] 이 한달간의 성적에 취한 화이트삭스 보드진들이 냅다 감독직 계약 연장 옵션을 발동했을 정도이다.[8] 승률 5할부근에서 놀았다. 2009년과 2011년엔 79승 83패, 2010년에는 88승 74패[9] 그의 후임으로는 로빈 벤추라가 임명.[10] 부진한 성적에도 기옌보다는 헨리 라미레즈,아니발 산체스 등을 타팀에 신나게 팔아버린 구단주 로리아와 더불어 시즌 내내 신나게 불을 지르면서 히스 벨 등이 신나게 욕을 얻어쳐먹었다. 자세한 사정을 알고 싶자면 항목 참고[11] 이 발언이 나온지 얼마 뒤 시카고 컵스는 시카고 퀴어 퍼레이드에서 어니 뱅크스를 중심으로 컶빠들과 함께 행진에 참가했고 삭스를 무지무지 씹어댔다. [12] 정확히는 아시아 유망주들에게는 통역을 붙여주면서 왜 히스패닉 유망주들에게는 통역을 안붙여주냐고 툴툴거렸다.[13] "I love Fidel Castro ... I respect Fidel Castro. You know why? A lot of people have wanted to kill Fidel Castro for the last 53 years, but that mofo (mother fucker의 줄인말이다) is still here."(나는 피델 카스트로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왠지 알아? 지난 53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놈을 죽이려고 했지만, 그 개쌍놈시키는 아직도 살아있으니까.) 피델 카스트로처럼 오랫동안 감독을 하겠다는 농담에 가깝지만, 문제는 기자가 피델을 찬양하는 것처럼 악마의 편집을 시전했고, 또 마이애미는 카스트로 일가라면 눈이 뒤집히는 쿠바계 미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보니(...)[14] 이때는 크리스 세일이 메이저리그 루키때라 손튼과 함께 불펜요원이었을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