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정밀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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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롯데케미칼의 자회사로 석유화학제품으로 대표되는 범용재가 주력인 롯데케미칼과 달리 정밀화학제품을 주력으로 삼고 있다.
2. 역사
1964년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한국비료공업'으로 설립해 국내 민영회사로는 처음으로 비료사업에 뛰어들면서 울산에 1백만평의 부지를 매입해 당시로는 최대 규모의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1967년 준공을 앞둔 시점에서 '''삼성그룹의 사카린 밀수 사건'''이 터지면서 '''정부에 몰수'''당하고 말았다. 당시 한국비료는 첫 해 매출액이 그룹 전체 매출액의 30%에 이를 정도로, 당시 그룹 내에서 비중이 크고 알짜인 기업으로 통했기에 삼성그룹 입장에서는 울분을 삭히며 반강제적으로 국가에 지분을 헌납해야 했다.[1] 국영화 후 비료공장을 준공하고 1972년 멜라민 공장을 세웠다. 1976년 기업공개를 단행했다.
정부가 국내 비료산업을 기간산업으로 지정하면서 국영회사로 출발하여, 1970년대 들어서는 정부가 '비료 생산을 늘려 수출하겠다'며 투자를 늘리기 시작해 같은 한국종합화학 계열사로 남해화학, 진해화학, 호남에틸렌, 영남화학, 호남석유화학, 한국카프로락탐 등의 부수 기업들이 생겨났다. 그러다 수출이 부진을 거듭하면서 과잉투자 문제가 발생하자 정부는 1980년대 초 비료산업 합리화 조치를 단행[2] 하였으나, 당시 공기업이던 한국비료는 비료 매출의 비중이 90%였지만 삼성그룹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사업다각화에 성공해 매각 대상에서 제외됐다.
한국비료가 공기업화한지 30여년간 삼성그룹은 미련을 버리지 않고 있다가 1994년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조치 때 비로소 입찰을 통해 계열사로 편입시키며 되찾게 된다. 소유주인 산업은행은 입찰 예정가를 1천3백억원 정도로 잡았으나 삼성이 써낸 가격은 2천3백억원이나 됐다. 당시 주가가 '''한 주에 10만원도 안되는 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주당 33만원'''을 써내 재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것이다. 선대 회장인 이병철이 아껴왔던 회사를 되찾아야 한다는 과업을 27년 만에 이룬 것이다.
1994년 삼성정밀화학(Samsung Fine Chemical)으로 변경했으며, 1998년 대도제약 [3] 도 인수했으나 외환위기의 영향으로 경영합리화를 위해서 수익성이 낮은 품목과 시설을 분사하고[4] , 사업을 다각화하여 비료뿐 아니라 시멘트가 서서히 굳게 하는 기능성 첨가제인 메셀로스 등 각종 첨가제, 인조가죽 원료인 DMF, 의약용 코팅 및 캡슐 원료 등으로 다각화한 것이다. 특히, 인조가죽 원료인 DMF는 세계 1위 점유율을 기록할 정도로 나름 선전했다. 2004년 합작법인 시그마삼성코팅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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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02년에는 연간 33만톤을 생산하는 울산 비료공장 2개 라인중 1개라인 가동을 중지했으며, 나머지 라인도 요소비료 생산은 중단하는 등 '''사실상 이 기업의 모태 사업이었던 비료 생산사업을 접었다'''. 중동 지역에서 가격이 싼 천연가스를 주원료로 요소비료를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가격 경쟁에서 버틸 수 없던 것이 주 원인이었다. 삼성그룹이 사활을 걸고 건립했으나 사카린 밀수 사건이라는 큰 잡음속에서 예정에도 없던 공기업으로 변모하며, 농민들이 한 부대라도 더 구하기 위해 농성까지 할 정도로 비료 생산 및 공급에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던 기업이었지만, 결국 삼성그룹의 품으로 돌아와 사명이 바뀐 데 이어 비료 사업을 포기함으로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접고 새로운 역사의 페이지를 쓰게 됐다.
그리고 2015년 10월 29일. 삼성정밀화학을 롯데케미칼에 매각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이와 함께 삼성SDI 케미칼사업 부문, 삼성BP화학을 동시에 매각하여 삼성은 화학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되었다.
2016년 2월 29일 사명도 롯데정밀화학으로 바뀌었다.
3. 지배구조
2020년 12월 31일 기준.
4. 역대 대표이사
- 이병철 (1964~1966)
- 성상영 (1966~1967)
- 박숙희 (1967~1972)
- 장지수 (1972~1975)
- 윤태호 (1975~1980)
- 최각규 (1980)
- 권순영 (1980~1989)
- 유경종 (1989~1995)
- 이승웅 (1995~1996)
- 박영구 (1997~1998)
- 박수웅 (1999~2003)
- 이용순 (2003~2008)
- 배호원 (2009~2010)
- 김종중 (2011)
- 성인희 (2011~2016)
- 오성엽 (2016~2017)
- 이홍열 (2017~2019)
- 정경문 (2020~)
5. 근무환경
5.1. 도심지에 근접
울산 최고의 번화가인 삼산동과 얼마 안 떨어져 있다. 여천오거리로 나간 다음 언덕 하나 넘고 개천 하나만 지나면 삼산동이 나오기 때문에 회식하러 가기가 상당히 편하다.
6. 여담
공장 북쪽, 태화강역 동쪽에 돋질산 이라는 야트막한 야산(해발 89m, 과거 돝질산이나 돗질산이라고도 불림.)이 있다. 이 산의 정상에는 한국비료 착공 이듬해인 1966년 9월 착공했으나 '''사카린 밀수사건'''이 발생하고 한비가 67년 10월 국가에 헌납되면서 공사가 중단되어 장기 미준공 건축물로 방치되다가 2001년 5월 철거된 영빈관이 있었다. 울산에서는 소위 이병철 별장이라 불렸던 곳이다. 해당 건물은 남쪽으로는 한국비료 나아가 울산석유화학단지 전체를, 다른쪽으로는 당시 개발되지 않은 태화강 하류지역을 내려다 보는 위치에 있었는데 한비공장 건설을 시찰하던 이병철 회장이 경치에 감동하여 건설을 지시하였다고 한다. 강제헌납 이후 2001년까지 방치되었는데, 이에 기반한 도시전설도 있다. 영빈관 공사 당시 굴삭기가 땅을 파니 용/이무기/구렁이가 나왔다는것. 그리고 굴삭기가 그 구렁이를 깔아죽였는데 그 굴삭기 기사가 나중에 피를 토하며 죽었다더라, 그 이후로 한비가 사업이 망했다더라 하는 것이다. 해당 건축물은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완공하거나 철거하라고 울산시에서 요구하였고, 너무 장기간 미준공 상태로 방치되어 완공할 가치가 없어 철거되었다.
이 회사와 직접 거래하지않는 일반시민들에게는 '''한비'''(한국비료공업의 약칭)라는 명칭이 삼성정밀화학, 롯데정밀화학보다 익숙하다. 홈플러스 울산점 인근에 사택이 위치하여 한비사택, 한비사거리 라는 지명이 오랫동안 사용된 덕분이다. 현재는 유휴자산 정리차원에서 사택을 매각하여 재개발이 진행중이고, '''한비'''를 사용한 지명도 홈플러스의 상징성에 밀려 점차 사용되지 않다가 이제는 거의 잊혀지는 단계에 있다.
2008년부터 과거 요소비료 제조 기술을 기반으로 디젤 차량 배기가스 정화용 요소수(...)를 판매하고 있다. 제품명은 유록스이며 계열 야구단과 소속 치어리더인 안지현과 박기량을 이용해서 홍보 중이기에 야구 팬들에게 친숙한 편. 유록스 요소수 광고의 중독성이 좋아서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있다.
야인시대의 1화의 김두한 국회의원의 국회 오물 투척 사건은 바로 이 회사와 관련이 있다.
[1] 실제 삼성그룹도 주식은 보유하고 있었지만 정부측이 헌납된 주식 51%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삼성에선 경영권을 행사하지 못했다.[2] 1979년에 호남에틸렌, 호남석유화학, 한국에탄올 3개사가 먼저 민영화되었고, 1983~1984년에 공장을 지은 지 10년도 안된 한국종합화학 충주, 나주공장 등이 새한미디어와 럭키에 각각 인수됐고, 1987년까지 정부의 한국종합화학 계열사 단계적 매각조치에 따라 자회사 진해화학, 한국카프로락탐, 한양화학, 영남화학, 한주가 각각 한일, 한국화약 등에 각각 팔려 민영화되었다.[3] 어린이용 영양제인 아토실 등으로 유명했었다.[4] 이때 대도제약에서 흡수한 제약부문도 버리게 된 것으로 추정한다. 분사하게 되는 업종에서 일하던 직원은 삼성정밀화학 내에 있는 다른 부서로 가던지 퇴직금대신에 기기와 공장을 받아서 분사할지를 선택해야 했다.[5] Hermes Investment Manag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