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린 밀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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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6년 5월 24일, 삼성그룹의 계열사 한국비료공업(현 롯데정밀화학. 2015년 인수.)이 일본 미쓰이 그룹과 공모하여 사카린 2259포대(약 55톤)을 건설 자재로 꾸며서 들여와 판매하려고 했다가 들통난 밀수 사건이다. 사카린 이외에도 현금화가 쉬운 일제 냉장고, 밥솥 등 말그대로 당대 재벌 삼성그룹이 잡상인마냥 밀수를 자행하다 걸린 황당한 사건.
사실 사건 당시엔 묻혔는데, 몇 개월 후인 9월 15일 경향신문의 폭로로 이 사실이 드러나자 들끓는 민심에 부산 세관은 1059포대를 압수하고 벌금 2천만 원을 부과했다.
당시 중앙정보부의 비호하에 독재 정권에 비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은밀한 사업이었다는 설이 있다. 삼성은 밀수한 사카린을 팔아서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중에 일부를 밀수를 눈감아준 정권에 상납한다는 시나리오. 실제 이병철 회장의 장남인 이맹희씨가 1993년 출판한 회고록 <묻어둔 이야기>에서 당시 정권의 묵인하에 자신이 직접 진두지휘한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2. 여파
이 사건의 여파로 이병철 삼성 회장은 한국비료공업과 대구대학[1] 을 정부에 헌납하고[2] 경영 은퇴를 선언하면서 삼성그룹 회장을 포함한 모든 지위에서 물러났다. 삼성그룹 회장은 이병철의 장남인 이맹희가 승계했다.
법적으로는 둘째 이창희가 사카린 밀수의 책임을 지고 감옥에 들어가지만 1년 만에 풀려났다. 이병철이 후계자인 장남 이맹희를 살리기 위해서, 둘째 이창희에게 '네가 대신 총대를 메고 감옥에 가라'고 종용했다는 썰도 있다.
하지만, 이병철이 은퇴를 선언한 지 불과 2년 만에 컴백하면서 그동안 밉보인 이맹희는 아버지와 완전히 갈라졌고, 이 과정에서 후계자 자리를 노리고 정권 인사와 손잡고 왕자의 난을 일으켰던 둘째 이창희도 숙청되면서 후계자 자리는 셋째 이건희에게 넘어간다.[3] 이맹희는 이후 삼성그룹에 일절 관여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죽을 때까지 별다른 대외 활동 없이 은둔자로 살아야 했다. 이병철 사후 CJ그룹의 유산 상속 과정에서도 이맹희를 건너뛰고 이맹희의 장남인 이재현과 이재현의 외삼촌, 즉 이맹희의 처남인 손경식에게 제일제당(현 CJ)이 할당되었다. 지금도 종종 불거지는 삼성그룹과 CJ그룹의 갈등은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창희는 새한미디어를 창업해서 경영하다가 1991년 사망하였다. 새한미디어는 새한그룹으로 발전했으나 외환위기 이후 2000년 공중 분해되었다.
3. 국회 오물 투척 사건
1966년 9월 22일, 국회의원 김두한이 이 사건에 관한 대정부 질의 도중 정일권 국무총리 등의 각료를 향해 "똥이나 처먹어, 이 새끼들아!"[4] 라는 일갈을 날리며 인분을 뿌린 사건이 발생했다.
[1] 현 영남대학교. 원래 이 땅은 경주 최씨 가문 땅이었으나 명문 대학교를 만들겠다는 포부 아래 이병철 회장이 맡은거였는데, 어쩌다보니 당시 정권에 헌납하고 결국 영남대학교는 이후 박근혜가 재단이사장을 맡는 등 박씨 가문 소유 비슷하게 되었다.(...)[2] 한국비료는 이후 정부 소유의 기업으로 있다 1994년 삼성그룹이 다시 2,300억 원을 주고 인수해서 '삼성정밀화학'으로 이름을 바꿨으며, 그 뒤 2015년 이재용이 롯데그룹에 매각하였다. 현재는 롯데정밀화학.[3] 이병철 회장의 후계 시나리오에서 이건희는 삼성그룹 내 언론사인 TBC와 중앙일보를 가지고 독립하기로 되어있었다고 한다. 허나 어쩌다보니 삼성그룹 총수가 되었다.(...) 참고로 이건희의 장인인 홍진기가 중앙일보 초대 사장이었고, 이건희도 TBC와 중앙일보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4] 국회 오물 투척 사건 문서에 서술돼 있듯 실제로 이 말을 날린 다음 똥물을 투척했다고 한다. 관련 영상에선 7분 47초쯤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