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미야

 


''' 스페인의 축구감독 '''
''' 이름 '''
'''루이스 미야'''
'''Luis Milla'''
''' 본명 '''
루이스 미야 아스파스
Luis Milla Aspas
''' 출생 '''
1968년 3월 23일 (58세) /
스페인 아라곤지방 테루엘주
''' 국적 '''
스페인
''' 신체 '''
173 cm | 체중 69 kg
''' 직업 '''
축구선수(수비형 미드필더 / 은퇴)
축구감독
''' 소속 '''
''' 선수 '''
FC 바르셀로나 C(1984~1990)
FC 바르셀로나 B(1985~1986)
'''FC 바르셀로나(1984~1990)'''
'''레알 마드리드 CF(1990~1997)'''
발렌시아 CF(1997~2001)
''' 감독 '''
UD 푸솔(2006~2007)
헤타페 CF(2007~2008 / 수석코치)
스페인 U-19/20 대표팀(2008~2010)
스페인 U-23 대표팀(2010~2012)
알 자지라 클럽(2013)
CD 루고(2015~2016)
레알 사라고사(2016)
인도네시아 대표팀(2017~2018)
''' 국가대표 '''
3경기 (스페인 / 1989~1990)
1. 개요
2. 축구인 생활
2.1. 선수
2.2. 감독
3. 수상
3.1. 선수
3.1.1. 우승
3.2. 감독
3.2.1. 우승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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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 국적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선수 시절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이다.
선수시절엔 FC 바르셀로나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1]

2. 축구인 생활



2.1.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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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곤지방 테루엘 출신으로 1983년 바르셀로나의 유소년팀에 입단했다. 유소년팀을 단계별로 거쳐나온 미야는 1984-85 시즌에 바르샤의 1군 선수들이 파업을 하면서 리그경기에 레알 사라고사를 상대로 유스팀으로 구성된 라인업을 내보내면서 얼떨결에 라리가 데뷔를 치렀는데 결과로 본인이 팀의 네 번째 골을 넣으면서 '''4:0'''의 충격적인 대승을 거두게 된다.
이후 1990년까지 클럽에서 뛰며 테리 베너블스, 루이스 아라고네스 감독들 아래에서 라리가, 코파 델 레이, UEFA 컵 위너스컵을 우승하게 되며 승승장구[2]했으나 요한 크루이프가 감독으로 부임한 뒤, 재계약 문제로 감독과 보드진과 다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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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자 미야는 라이벌이였던 레알 마드리드로 자유 이적을 단행했다. 적대관계인 라이벌팀으로의 이적은 당시에 큰 논란을 이르켰고[3] 본인도 이적 첫 해에 부상을 당하면서 부진을 면하지 못했다. 그러나 회복 후 곧바로 반동하여 팀의 주축 선수로 자리잡으면서 리그를 2회, 코파 델 레이와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를 각각 1회 우승하면서 바르셀로나 시절보다 더 항샹된 폼을 보여주었다.[4]
7년간의 마드리드에서 활약 후, 발렌시아 CF로 이적했다. 말년을 발렌시아에서 4년을 보낸 후, 2001년 은퇴를 선언했다.

2.2. 감독


그의 첫 프로팀에서의 지도자 경험은 2007-08 시즌 헤타페 CF의 감독이였던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에서 함께 선수생활을 해본 미카엘 라우드럽의 수석코치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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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부터 스페인 연령별 대표팀을 지도하게 되었다. 그가 감독으로 참가한 첫 대회인 2009년 UEFA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선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지만 그 다음해인 2010년 UEFA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선 대표팀을 결승까지 이끌며 개최국인 프랑스에게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같은 해, 후안 라몬 로페스 카로의 후임으로 u-21/23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2011년 UEFA U-21 축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기까지 큰 어려움을 겪었으나 어찌하여 본선에 진출성공했고 본선에선 무패를 가록하며 통산 3번째 우승을 거며쥔다.[5][6]
이렇게 앞선 선전들로 12년만의 올림픽을 기대되게 만들었으나 정작 올림픽 본선에선 그 초호화 멤버로 쪽박을 치며 1무 2패로 최하위로 탈락하고 만다. 이로 인해 대표팀 감독에서 경질되고 만다. 후임은 줄렌 로페테기.
이후로 처음으로 해외팀인 알 자지라 클럽 감독을 맏게 되었으나 6경기만에 경질되고 만다.
2015년 2부 리그인 CD 루고의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코치진과 팬들과의 마찰로 인해 사임하였다. 그 다음으로 같은 리그에 있는 레알 사라고사의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성적부진으로 경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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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21일 인도네시아 대표팀에 부임했다. 이번 계약은 인도네시아 축구 협회(PSSI)에서 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플랜으로 성인팀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본국에서 열리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 대비하기 위해 u-23 팀도 함께 맡았다. 실제로 미야가 지도하는 동안의 인니 대표팀의 경기력은 발전했으며 아시안게임에서도 조별리그에서 1위를 수성했으며 토너먼트 16강전에서 한수 윗급인 아랍 에미리트 대표팀 상대로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승부차기까지 갔다가 아쉽게 패배했다.[7] 이러한 선진으로 인도네시아 축구팬들에게 상당한 지지를 받았으나 2018년 10월 갑작스럽게 경질되었다. 정확한 이유는 불명이나 미야가 인스타에서 협회를 비판한 글 올린 것으로 보아 협회와의 마찰이 원인인 듯 하다. 이러한 경질은 인니 축구팬들을 분노케 했으며 특히 다음 후임들이 하나같이 부진한 성적을 내자 더욱 심해졌다.
이 때문에 한동안 인니 대표팀 복귀설이 돌기도 했으나 결국 PSSI가 후임으로 신태용을 선임하기로 결정하면서 복귀설은 없는 일이 되버렸다.

3. 수상



3.1. 선수



3.1.1. 우승



3.2. 감독



3.2.1. 우승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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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이인의 아들이 한 명 있다. 이들 또한 축구선수로 포지션은 미드필더이며 현재 그라나다 CF에서 뛰고 있다.
[1] 이와 같은 이적을 한 선수로는 루이스 피구, 베른트 슈스터, 미카엘 라우드루프, 하비에르 사비올라 등이 있다.[2] 이 시기에 국대를 승선하기도 했다.[3] 이 이적은 바르셀로나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사례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축구계에서 큰 충격을 주었다. 그 중 가장 충격적인 사례는 바로 '''이 분'''. [4] 이는 1994년에 경쟁포지션의 페르난도 레돈도가 입단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기용되었던 것으로 증명된다.[5] 4승 1무를 기록했으며 실점도 2골밖에 안내줬다.[6] 이 대회에서 최우수 선수와 득점왕을 배출하는데 이들이 각각 후안 마타아드리안 로페스다.[7] 더욱이 이 아랍 에미리트 대표팀이 결국 박항서베트남을 꺾고 동메달을 차지한 것을 보면 명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