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클라시코
1. 개요
스페인 최고의 명문 축구 클럽이자 세계적으로도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두 팀인 레알 마드리드 CF와 FC 바르셀로나의 더비 매치를 뜻한다. 양팀의 연고지인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간에는 서로를 적대하는 지역감정이 크기 때문에, 두 팀이 맞붙는 날에는 목숨을 걸고 치고 받는다. '''스페인에서는 축구장에 찾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극장에서도 경기를 상영할 정도로 매우 인기가 많은 더비 매치다.'''
영어로는 The Classic, 카탈루냐어로는 엘 클라식(El Clàssic)이 되며, 간혹 엘 수페르클라시코(El Superclásico, 클라시코의 뜻을 한층 더 강화), 엘 그란 데르비(El Gran Derbi, 큰 더비)나 엘 데르비 에스파뇰(El Derbi Español, 스페인의 더비)로 불리기도 한다. 중남미의 스페인어권에서는 엘 클라시코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남미의 다른 더비 경기들과[2] 구분하기 위해 엘 데르비라고 더 자주 불린다. 아니면 그냥 클라시코(Clásico)라고도 불리는 듯하다. 한국의 해외축구 팬들 사이에선 엘클이라고 줄여 부르기도 한다.
스페인 국내는 물론이고 전세계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인기가 많은 더비 매치이기도 하다. 이 두 팀이 아무래도 세계 최고의 인기 팀들 중 하나를 각각 차지하는 데다 그만큼 유명한 슈퍼스타 선수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몇 안 되는 더비 매치라서 그렇다. 한국으로 치면 축구로는 최고의 인기팀이었던 데다가 지역감정을 더해, 슈퍼스타 선수들까지 한 자리에 모여 온 국민이 열광했던 경평전과 매우 흡사했다.
레알마드리드는 바르셀로나와의 커리어 비교에서 우위를 점하지만[3] 두 팀 간의 라이벌리는 이런 것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어느 정도냐면, '''시즌 1등을 질주하고 있어도 이 엘 클라시코를 졌다는 이유로 진 팀의 감독직에 영향이 갈 정도다'''. 단적으로 2015년 11월 바르셀로나에 패한 레알 마드리드의 라파엘 베니테즈 감독이 경질설이 나왔을 정도였다.[4] 또한 2017년 4월 바르셀로나에 패한 레알 마드리드의 지네딘 지단 감독도 어김없이 경질설이 흘러나왔다.[5][6] 그리고 18-19시즌 엘클라시코에서 1-5로 대패한 레알 마드리드의 로페테기 감독은 다음 날 잘렸다.[7]
공교롭게도 두 팀은 플레이 스타일도 서로 상이한 게 특징인데, 바르사는 공을 최대한 오래 소유하면서 상대의 헛점을 파고드는 템포 느린 티키타카 스타일이라면, 레알 마드리드는 강한 압박을 통해 공을 빼앗아 낸 뒤 전진 패스를 통해 한 템포 빠른 역습을 구사하는 스타일이다.
과거 20세기 중후반까지는 양 팀 선수들이 그야말로 철천지 원수에 가까운 모습을 많이 보여 줬지만, 21세기에 와서는 그나마 감정 싸움이 약해진 편이고[8] , 유로 2012 이후로는 두 팀 스페인 선수들이 서로 많이 친해져서[9] , 태클한 후에도 서로를 격려하는 동료애를 보여주고 있다.
참고로 축구가 세계적으로 너무나도 넘사벽으로 알려져서 그렇지,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두 팀은 축구만 운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종목에서도 엘 클라시코가 치열하게 벌어진다. 단, 꽤 다양한 종목을 운영하는 바르셀로나와 달리 레알 마드리드는 스페인 내 인기 1, 2위 종목인 축구와 농구만 취급해서 아직까지는 이 두 종목으로만 엘 클라시코가 성사된다. 스페인 농구계도 축구와 마찬가지로 두 팀이 1, 2위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데, 농구 최상위 리그인 리가 ACB에서 레알 마드리드 발론세스토가 32번 우승으로 최다 우승, 다음이 바르셀로나 바스켓으로 18번 우승이고, 코파 델 레이에서도 레알 마드리드가 25번 우승으로 최다 우승, 바르셀로나가 23번 우승으로 2위에 올라 있다. 2011~2015년까지 5년 연속으로 이 둘이 리그 우승과 준우승을 서로 나눠 가졌으며(바르셀로나 3번, 마드리드 2번), 최근에도 치열하게 경기를 벌인다. 참고로 FC 바르셀로나는 다른 종목 팀 이름도 죄다 FC가 들어가서 농구 팀도 FC Barcelona Bàsquet(바스켓), 아이스하키 팀은 FC Barcelona Ice Hockey, 핸드볼 팀은 FC Barcelona Handbol 이라고 부른다. 더불어 이스탄불 더비 같은 유럽의 다른 더비들 역시 축구 외에도 다양한 스포츠 종목으로 더비가 이뤄진다.
2. 역대 전적
- ※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CF와 FC 바르셀로나 B의 상대 전적은 다음과 같다.
3. 기록
3.1. 최다 점수 차 경기
3.2. 최다 연승
3.3. 최다 연속 무패
3.4. 최다 연속 경기 득점
3.5. 출장 순위
3.6. 득점 순위
4. 역대 시즌
4.1. 08/09 시즌까지
- 엘 클라시코의 역사는 190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3월 창단한 레알 마드리드와 창단 3년차였던 바르셀로나는 코파 델 레이의 전신이 된 코파 데 라 코로나시온에서 1902년 5월 13일 처음으로 맞붙었는데, 이 경기는 바르셀로나가 3대 1로 이겼다고 한다.
- 엘 클라시코의 최고 득점차 경기는 1943년의 스페인 국왕 컵 4강 2차전으로, 마드리드가 11:1로 승리하였다. 하지만 이는 1차전에 바르사가 3:1로 승리한 이후 군부에서 요원을 보내 협박해서 나온 결과였다. 눈엣가시였던 바르셀로나가 감히 국왕의 이름을 내건 대회에서 우승하는 꼴을 볼 수 없었던 프랑코는 2차전 경기 전 "당신들이 마음놓고 축구에서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는 것도 다 우리 정권이 그것을 눈감아주기 때문이지"라고 하자 압박을 받은 바르사 선수들은 제대로 경기에 임할 수 없었고 전반전에만 8:0 스코어... 경기후 바르사 선수들은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을 알렸고 스페인 축협은 이 경기를 무효로 지정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결승에 진출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카탈루냐와 마찬가지로 분리독립 성향이 강하고 로컬 플레이어들로만 선수를 채우는 아틀레틱 빌바오가 그 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이 경기는 공식 기록에는 남아 있다. 이 문단에는 작은 오류가 있는데 감히 국왕의 이름을 내건 경기에서 이기려 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에 왕이 없었기 때문에 현 국왕컵의 이름은 위대하신 대장군님컵이었다. 즉 프랑코 본인의 이름이 달린 대회였다는것.
- 11:1 경기를 뺀 공식 기록으로는 1935년 레알 마드리드가 8:2로 승리한 경기가 최다 점수차 경기이다.
- 바르사의 최다 득점 경기는 1950년 7:2로 승리한 경기다.
- 2007/08 시즌, 레알 마드리드의 홈 구장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바르셀로나가 레알 마드리드에게 우승 축하 박수를 쳐주는 사건이 발생해 화제가 되었다. 레알 마드리드가 우승을 확정지은 뒤 바로 다음 홈 경기가 엘 클라시코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당시 바르셀로나의 대표 격 선수들이었던 에투와 데쿠가 경고 누적으로 불참해 '박수 쳐주기 싫어서 고의로 경고를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돌았다.[10] 우승을 축하해주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으나 진짜 치욕적인 것은 이어진 경기까지 1-4로 박살났다는 것.
- 2008/09 시즌에는 레알 마드리드의 홈 경기에서 바르셀로나가 레알 마드리드를 6:2로 관광 태웠다. 리오넬 메시가 꽤 많은 기회를 카시야스에 의해 날렸는데도 2골을 넣었을 정도로 바르셀로나의 공세가 계속되었고 차비는 무려 4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바르셀로나 팬으로서는 전 시즌에 당한 수모를 어느 정도 갚은 것이고, 마드리드 팬으로서는 잊고 싶은 기억이 되었다.
4.2. 09/10 시즌 ~ 19/20 시즌
4.3. 20/21 시즌
4.3.1. 상세 정보
코로나19로 인한 역대 최초의 무관중 엘 클라시코이다. 이번 시즌 첫 엘 클라시코의 관점은 '진흙탕 싸움'이라고 볼 수 있다. 바르셀로나는 새롭게 쿠만 감독이 부임한 이후, 확실한 세대교체를 위해 그동안 팀의 주축이였던 수아레스, 비달 등 여러 선수들을 정리하여 시즌 초 부터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였고, 레알 마드리드는 챔피언스 리그 3연패를 일궈낸 지단 감독이 계속 지휘봉을 잡았지만 비니시우스의 아쉬운 결정력, 아자르의 부상, 부진 등이 겹치면서 공격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 이였다. 또 최근 리그경기에서 두 팀 모두 패했기 때문에 리그 연패 탈출은 물론, 분위기 반전 및 동률인 엘 클라시코의 전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여러므로 좋은 기회의 경기이며 반드시 잡아야 하는 승부이다.
경기 결과는 3:1. 레알 마드리드가 승리를 거두며 상대 전적에서 다시 바르셀로나에게 우위를 점했다.
5. 기타
- FC 바르셀로나에서 뛰었던 호마리우가 엘 클라시코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시즌 중반, 자국에서 리우 카니발이 열릴 때가 되자 축제에 가고 싶다면서 당시 감독이었던 요한 크루이프에게 징징거렸던 일이 있었다. 아직 치뤄야 할 경기가 많이 남아 있어서 그의 휴가 요청은 말이 되지 않았지만, 크루이프가 오는 일요일에 있을 엘 클라시코에서 해트트릭을 하면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자 천하의 레알 마드리드 CF를 상대로 해트트릭과 함께 1어시를 적립하면서 5:0으로 박살내고 당당히 리우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그러자 레알 감독이었던 호르헤 발다노는 "이건 사기다! 저런 모습은 만화에서밖에 못 봤어!" 라며 허망해 했다고.
- 2013-14 시즌부터 바르셀로나가 카타르 항공과 유니폼 스폰서 계약을 맺게 되었는데 카타르 항공의 라이벌인 에미레이트 항공이 질세라 레알 마드리드와 2013-14 시즌부터 유니폼 스폰서 계약을 맺었다. 아랍에미리트와 카타르에선 두 아랍 항공사들도 이젠 엘 클라시코에 끼어들게 되었다는 반응. 양 팀 유니폼 스폰서인 나이키와 아디다스도 사실 예전부터 대립해 온 관계이다. 하지만 바르셀로나가 2017-18 시즌부터 스폰서를 라쿠텐으로 변경하면서, 이것도 옛 말이 되었다.
- 2011년 2월에는 첼시 vs 리버풀 매치가 엘 클라시코라는 새로운 정의가 나왔다. 소위 엘클녀 사건. 모 여성이 트위터에 "토레스 첼시 가는구나 엘 클라시코에서 한 번 더 붙어야 하는데"라는 글을 올렸다. 여기까진 뭐 축구 잘 안보는 사람이 잘 모를 수도 있다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는데, 하필 그 전에 "평소엔 축구의 축 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냄비처럼 승부차기 못 넣은 선수, 감독 까는 걸 보면 역겨워서 토 나온다"라는 글을 올렸던 게 문제. 1994329413 보러 가기. 덕분에 축구 사이트들에서는 한창 "엘 클라시코에서 토레스랑 제라드 악수했으면 좋겠다", "오늘은 웬일로 엘클 일찍 하네 ㅋㅋ"[11] 등등 드립이 펼쳐지고 있다. 이후 기존의 의미로 엘 클라시코를 이해하는 사람은 축구의 축 자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1994329413 이거라든가, 1994329413 이거라든가.
- 그 외에 리그 우승을 위해 막대한 영입 자금을 쏟아붓는 첼시 FC와 맨체스터 시티의 더비, 파리 생제르맹과 AS 모나코의 더비를 현지 팬들 사이에서는 'El Cashico'라고 부른다. 한준희 해설 위원도 'DAUM 원투펀치'에서 첼시 vs 맨체스터 시티의 경기를 '엘 캐시(Cash)코'라고 한 외국 기사를 보았다고 언급했다.
- 참고로 FC 바르셀로나는 종합 스포츠 클럽이라 축구 말고도 다양한 종목 팀들을 운영 중이고[12] 레알 마드리드는 축구 외에 농구 팀을 운영 중이라, 두 팀은 축구 외에 농구에서 종목이 겹친다. 농구 또한 스페인에서 축구 다음으로 인기 많은 단체 스포츠라 엘 클라시코의 명성이 상당하다. 참고로 이 두 농구 팀이 속한 스페인 농구 1부 리그 리가 ACB는 유럽의 NBA라 불릴 정도로 농구 실력이 NBA 다음가는 국내 리그이고, 스페인 농구 국가대표팀 또한 세계적인 강호로 미국에 유일하게 대항할 수 있는 팀으로 여겨지고 있다.[13] 스페인 농구 선수들 또한 NBA에 상당수 진출한 이력이 있다. 대표적으로 파우 가솔과 마크 가솔 형제. 이 둘은 NBA에 건너오기 전 바르셀로나 농구 팀에서 뛴 적이 있다.
- 여담으로 대한민국 분단 이전에는 조선의 엘 클라시코라고 불렸던 경평전이 있었다.
5.1. 양 팀에서 모두 뛰었던 선수
- 리카르도 사모라: FC 바르셀로나(1920~1922) - 레알 마드리드(1930~1936)
- 주젭 사미티에르: FC 바르셀로나(1919~1930) - 레알 마드리드(1933~1935)
- 베른트 슈스터: FC 바르셀로나(1980~1988) - 레알 마드리드(1988~1990)[14]
- 훌렌 로페테기: 레알 마드리드(1988~1991) - FC 바르셀로나(1994~1997)
- 게오르게 하지: 레알 마드리드(1990~1992) - FC 바르셀로나(1994~1996)
- 미카엘 라우드루프: FC 바르셀로나(1989~1994) - 레알 마드리드(1994~1996)
- 로베르트 프로시네츠키: 레알 마드리드(1991~1994) - FC 바르셀로나(1995~1996)
- 루이스 엔리케: 레알 마드리드(1991~1996) - FC 바르셀로나(1996~2004)[15][16]
- 루이스 피구: FC 바르셀로나(1995~2000) - 레알 마드리드(2000~2005)[17]
- 호나우두: FC 바르셀로나(1996~1997) - 레알 마드리드(2002~2007)[18]
- 사무엘 에투: 레알 마드리드(1997~2000) - FC 바르셀로나(2004~2009)
- 하비에르 사비올라: FC 바르셀로나(2001~2007) - 레알 마드리드(2007~2009)[19]
6. 농구 엘 클라시코
말 그대로 농구판 엘 클라시코로, 스페인 리가 ACB의 레알 마드리드 발론세스토 vs FC 바르셀로나 바스켓 경기를 뜻한다. 축구와 마찬가지로 농구에서도 역사적으로 이 둘이 스페인의 투 탑을 형성하고 있다. 스페인에서 농구도 축구 못지않은 인기와 실력이 있어서 농구에서도 엘 클라시코 더비가 알아준다. FC 바르셀로나 같은 경우는 2009~2010 유럽 농구 챔피언스리그 및 자국리그까지 더블로 우승했다. 2019-20 시즌까지 둘을 제외한 나머지 팀들의 우승을 다 합친 것이 11번에 불과한데 바르셀로나(FC 바르셀로나 바스켓)는 18번을 우승했고, 레알 마드리드(레알 마드리드 발론세스토)는 35회 우승을 기록하고 있다. 참고로 스페인 농구 리그는 1950년대부터 세미프로 리그인 Liga Nacional로 운영되다가 1983년부터 프로 리그 Liga ACB로 개편되었는데, 이때부터는 바르셀로나가 15번 우승하여 13번 우승한 레알 마드리드보다 조금 우세하다. 일반적으로는 Liga Nacional이 거의 유일한 스페인 리그로서 ACB로 이어졌기 때문에 1983년 이전 기록도 당연히 공식 기록에 포함되어 레알 마드리드를 최다 우승팀으로 본다. 농구 코파 델 레이[20] 와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21] 도 두 팀이 최다 우승팀이고, 국제 대회인 유로리그에서도 스페인 팀 중 전통적인 강팀이라 할 만한 팀은 이 둘뿐이다.
이 둘의 양강 체제는 2010년대 들어서도 지속되고 있다. 2010-11 시즌부터 6시즌 연속으로 두 팀 중 한 팀이 우승을 차지했고, 5시즌 연속으로 두 팀이 결승에서 마주쳤다. 하지만 2014년경부터는 레알 마드리드가 성적 면에서 압도하고 있다. 바르셀로나가 그간 유망주 육성에 다소 소홀해서 팀의 간판인 후안 카를로스 나바로가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무너진 반면, 레알 마드리드는 잘 성장시킨 유망주들의 활약에 힘입어 리가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22] 계속 이어지던 두 팀의 연속 결승 맞대결도 2016/17 시즌에 바르셀로나가 조기에 탈락하고 레알 마드리드, 발렌시아가 결승에 진출하면서 중단되었다.[23]
7. 관련 문헌
- 엘 클라시코의 모든 것 - 한준 저. 브레인스토어. 2013.
8. 관련 문서
[1] 현지 기준.[2] 아르헨티나 리그에 있는 CA 리버 플레이트와 CA 보카 주니어스의 엘 수페르클라시코가 대표적이다. 이 더비 역시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더비 매치 중 하나로 손꼽히며, 특히 축구장 내의 열정만큼은 전 세계 최고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이다.[3] 리그 34:26, 챔스 13:5 레알 마드리드는 자국 리그(프리메라리가)와 챔피언스리그 모두에서 최다 우승 하지만 트로피 갯수는 91개로 서로 동률[4] 엘 클라시코의 승패와는 별개로 당시 라파엘 베니테즈 감독은 선수단 장악 실패 및 매우 좋지 않은 성적이 경질에 가장 큰 원인이다.[5] 참고로 지단은 전 시즌에 감독으로 갓 부임해 레알 마드리드에게 열한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선사했고, 상술된 패배 이후에도 라리가 우승에다 챔피언스리그 연속 우승까지 해냈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아무 쓸모 없는 전 시즌 이야기고 17-18시즌 엘 클라시코 무렵 레알은 리그 5위를 하고 있었기에 경질설은 이전부터 흘러나왔다. 엘클라시코 3-0 패배를 기점으로 언론이 본격적으로 다뤘을 뿐.[6] 이런 경우는 엘 클라시코뿐만 아니라 기타 더비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국내에만 해도 2012년 FA컵 16강 슈퍼매치에서 서울이 0:2로 수원에게 패하자 서울 서포터들이 버스막고 최용수 사퇴 요구를 한 것. 게다가 2012년에 서울은 압도적인 1위를 달리며 우승에 성공했지만 이 시즌에 수원은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7] 단, 이때 로페테기의 레알은 중위권 팀들에게도 승점을 내주는 등 매우 상황이 좋지 않았다.[8] 그렇지만 사라진 건 '''절대 아니다.''' 엘 클라시코 싸움 모음 [9] 스페인 국대는 몇명 빼고는 바르사와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만 있다[10] 해당 경기 해설을 맡은 한준희 위원은 이에 대해 "정말 분하다면 박수 쳐준 다음 레알 마드리드를 부수려고 하는 게 정상이지, 박수 치는 게 싫어서 경기에 안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11] 한국 시간으로 바르셀로나에서 하면 보통 4시, 마드리드에서 하면 6시에 경기가 시작되는데, 2월 7일 첼시 vs 리버풀전은 1시에 시작했다.[12] 풋살, 농구, 비치사커, 럭비, 핸드볼, 아이스하키 등등 운영하고 있다.[13] 여담으로 FC 바르셀로나 역사상 최악의 회장으로 손꼽히는 주제프 마리아 바르토메우도 RCD 에스파뇰 농구선수 출신이다. 그래서 바르셀로나 레전드인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가 축구 모르는 사무원들은 농구나 신경 쓰라고 보드진을 깠던 이유가 이것 때문.[14] 레알 마드리드 이적 후 다시 라이벌 클럽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해서 3년간 뛰었다.[15] 이 명단에 오른 선수들 중 이적 후 최전성기를 맞이한 선수는 루이스 엔리케와 사무엘 에투뿐이다[16] 결국, 루이스 엔리케는 감독의 자리까지 올라갔다.[17] 말이 필요없는 바르셀로나 최고의 역적[18] 인터 밀란을 거쳐서 레알 마드리드에 이적했고 레알 마드리드에서 더 오래 뛰었지만 가공할 만 할 퍼포먼스는 바르셀로나 시절이 압도적이다.[19] 피구 이적 이후 7년 만에 다이렉트 이적이었지만 실력이 그닥이라 그닥 큰 충격을 남기지는 않았다. [20] 레알 마드리드 28회 우승, 바르셀로나 25회 우승.[21] 레알 마드리드 6회 우승, 바르셀로나 5회 우승.[22] 국제 무대에서도 바르셀로나는 우승 후보급 경쟁력을 상실한 지 오래된 반면, 레알 마드리드는 웬만하면 유로리그 4강에 들어가며 우승 타이틀도 추가하고 있다.[23] 이때 발렌시아가 다수의 예상을 깨고 우승을 차지해 7년 만에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아닌 다른 팀이 우승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