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산
1. 개요
摩尼山
더 자세히는 여기 참조.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에 있는 높이 469 m인 산.
2. 상세
인천시 전체에서 가장 높은 산이기도 하지만 지리보다는 국사와 관련 하여 유명한 산이다. 전라북도의 마이산과 헷갈리지 말자. 마리산(摩利山)·마루산·두악산(頭嶽山)이라고도 하는데, 강화도 지역주민들은 '''마리산'''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마리산 초등학교도 있고, 교가에서도 마리산이라고 언급한다. 지역주민들이 부르는 '마리산'은 아마도 머리(頭)를 가리키는 옛말 '마리'에서 유래한 듯하다. 두악산(頭嶽山)이란 한자명칭도 마리산이 '머리산'이란 뜻일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처음에는 외지인들이 찾아 와서 마니산을 찾으면 마리산을 가리키는 것인지 긴가 민가 했다고...
마니산을 중심으로 한라산과 백두산까지의 거리가 거의 같다고 한다[1] .*
1990년대 중반에 시민단체 등이 '마니산'이란 지명을 지역주민들이 부르는 대로 마리산으로 바꾸려는 운동까지 했지만, 결국 바뀌지 않았다. 지도를 바꾸는 등의 작업이 번거롭다는 것. 하지만 여전히 지역주민들은 '마리산'이라고 쓰고 부른다.
3.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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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산에는 단군이 봄, 가을로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쌓은 제단이라고 전해지는 참성단(塹星壇)이 있다. 거친 돌을 다듬어 쌓았는데, 지천태괘처럼 천지교류를 위하여 아래는 하늘을 나타 내는 원 모양이고 위는 땅을 나타내는 네모 난 모양이다. 제단 아래의 오른 쪽 나무 밑에는 샘이 있는데, 지금은 나무로 뚜껑을 단단히 해 두었다. 뚜껑의 틈으로 샘을 들여다 보면 물은 보이지 않고 낙엽과 쓰레기만 보인다. 고려 권근의 양촌집에 고려 태조 왕건 이전부터 이미 여기서 단군에 제사를 올렸다는 구절이 있으니 최소한 1천년 넘도록 지켜온 제사인 셈. 지금도 매년 개천절에 이 곳에서 단군에게 제를 올린다. 전국체전의 성화도 이 곳에서 채화 한다. 조선시대 도교 행사의 하나인 마니산 초제도 여기서 지내던 제다.
마니산 정상은 참성단이 있는 곳이라고 아는 사람이 있는데, 마니산 정상은 참성단 동쪽 헬기장 넘어 남쪽에 보이는 봉우리다. 이 봉우리에는 바위에 새긴 삼각점이 있고 삼각점 안내판이 있는데, 삼각점에서 동쪽으로 약10m 되는 곳에 있는 바위가 마니산의 정상이다.
참성단까지의 길이 계단으로 개비 되어 등반이 수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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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까지의 등반 코스는 크게 계단을 이용한 마니산 정문을 통하여 등반하는 코스(난이도 하)와 정수사에서 일반 등산로를 통하는 코스(난이도 중) 등 두 가지로 나뉜다.
참성단 자체는 훼손을 막기 위해 출입시간을 제한 하고 있다. 11월 ~ 3월에는 10시부터 16시까지만 들어 갈 수 있고 나머지 기간에도 9시 반 ~ 4시 반에 개방 된다. 정상에서 서해와 영종도 주변 섬들을 관망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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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산 동편에 오래 된 사찰인 정수사(淨水寺)가 있다. 신라 선덕여왕 8년(639년)에 회정선사(懷正禪師)가 마니산의 참성단을 참배 한 뒤 주위를 둘러 보고 불자가 가히 삼매 정수 할 만 한 곳이라며 창건 했다. 이후 세종 5년(1423년) 함허대사(涵虛大師)에 의해 중창 될 당시 사찰 서편 삼성각 앞에서 맑은 물이 솟아 나 와 정수사(淨水寺)로 개칭 했다고 전해진다. 1957년 보수공사 중 숙종 5년(1689년) 당시의 상량문이 발견 돼 정수법당이 세종 5년(1423년)에 중창 됐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정수사 법당이라고 불리는 대웅전은 보물 제161호로 지정 되어 있다.
교통이 편리하고 유명세가 있어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1977년에 국민관광지로 지정 되기도 했다.
4. 기타
마니산이 있는 화도면도 원래는 강화도 본도와 바다로 단절된 '고가도(古加島)'라는 섬이었다. 그래서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산이었으나, 1706년 숙종 시기 간척으로 강화도와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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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에 마니산 등산객에 의해, UFO 사진이 찍혔다고 했다.
강화군에서 공식적으로 입산료를 징수중이다. 현금을 준비해서 가야한다.
[1] 실제로는 백두산이 506km, 한라산이 471km로 백두산이 30km가량 더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