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척
干拓 / reclamation
1. 개요
수면에 둑을 쌓고 그 안에 있는 물을 빼내거나 메워서 뭍으로 만드는 일을 말한다. 보통 바다를 메우는 경우를 가리키지만 호수를 메우는 것도 포함한다. 방조제를 쌓고 그 안쪽을 땅이 아닌 담수호로 만드는 경우도 있기에, 땅을 메워 올리는 과정인 매립은 엄밀히 말하면 간척의 한 부분에 해당한다.
2. 방법
간척지를 만들기에 유리한 곳은 넓은 1)갯벌이 이루어져 있으며 2)해안선의 굴곡이 많고 앞쪽에 사주나 섬이 많은 곳이다. 필요에 따라 간사이 국제공항처럼 생 바다를 간척할 수도 있으나, 수심이 깊을수록 공사 비용이 증가하고 부등침하 같은 문제가 생긴다. 현대적인 항만시설은 대부분 소규모로라도 간척 및 매립을 통해 건설되었으며, 옛날에는 농지를 얻기 위해 간척을 했으나 현대에는 공업단지·주택·공항 등을 위해서도 간척을 한다.
간척지에 제방을 만들어 바닷물을 막고, 담수호를 만들고 물을 빼면서 토지를 만들어 나간다. 배수 시설을 통해 드러난 저지대를 염류 농도를 낮추고 침수 피해 방지 등을 위해 매립과 복토를 통해 터돋움을 한다. 한국의 경우 주변 산을 토취장으로 만들어 거기서 나온 흙들을 매립토로 활용하기도 한다. 환경파괴를 미뤄 놓고 보면 산지를 깎아 평지로 활용할 수 있어 얻을 수 있는 부지가 늘어난다. 경우에 따라 항로나 항만을 준설한 준설토를 이용하여 간척하기도 한다. 네덜란드의 경우 국토 전체가 저지대로 매립토가 부족하기 때문에 배수 시설을 갖추어 해수면 이하의 간척지로 활용한다. 때문에 침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배수시설에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어간다.
바다의 간척지는 토양에 소금기를 포함하고 있어 농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이를 씻어내야 한다. 간척지는 저지대이기 때문에 소금기가 비를 통해 자연적으로 씻겨 내려가기 위해서는 수십 년 이상 걸린다. 배수시설을 통해 물빠짐을 좋게 만들고 육지의 흙을 복토, 매립해서 농경지로 사용가능한 시기를 앞당긴다.
간척사업이 이루어지면 '간척촌'이 나타나게 된다. 간척촌은 농업, 염전, 양식, 양어장 등의 사업을 하게 되는데, 전형적인 형태는 간척지를 농경지로 활용하는 농촌이다. 간척촌은 대개 계획적으로 조성되기 때문에 가옥의 배열이 규칙적이고 바둑판 모양이다.
3. 비판
갯벌을 잠식하여 환경 파괴를 일으킨다고 비난받는다. 과거 갯벌은 쓸모없는 땅이나 유휴지로 생각했으나, 오늘날에는 생태학적으로 높은 생물다양성을 가지며 생물 생산성이 가장 높은 생태계 중의 하나로 밝혀졌다. 또한 자정능력도 뛰어나서 바다의 콩팥으로 불리기도 한다.
간척으로 만드는 땅은 용도가 극히 제한된다. 기본적으로 뻘밭이였기 때문에 지반이 약해서 대부분 농경지로만 쓸수 있다. 기반공사를 최대한 하면 큰 건물도 어떻게든 가능은 하지만, 이러면 보통 토지보다 공사 비용이 많이 들어서 경제성이 크게 떨어진다. 한 예로 르노삼성자동차의 생산공장은 부산 강서구의 바다를 매립해서 부지를 조성했는데, 이를 위해서 기반 공사에 많은 돈이 들어갔다. 이것이 삼성자동차의 자금 흐름을 경색시켰고, 결국 르노에게 매각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농경지의 중요성이 감소한 현대에는 경제적으로도 따져도 '''간척 후 농업 소득보다 갯벌에서의 지역 어민 소득이 더 낫다'''는 지적도 있다. 예시로 새만금 간척사업 비용은 1998년 당시 2조 500억원 규모로 추산했지만, 이미 이 때부터 농경지 개발로는 투자이익을 환수하기 어렵다는 판정을 받고 산업단지 개발로 선회해야 했다.
환경 파괴라는 측면에서 또 다른 문제점은 조수 흐름의 방해다. 현재도 목포나 군산과 같이 간척으로 이루어진 도시들은 상습적인 홍수피해에 시달리고 있는데, 조류가 흘러나가야 할 길목을 간척으로 틀어막고 있으니 물이 넘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슷하게 한강변을 매립한 잠실도 21세기 들어 배수펌프장을 확충하기 전에는 상습적인 물난리에 시달려 여의도 개발시에는 샛강 매립을 포기해버렸다. 새만금 신항만은 조수흐름을 고려해 인공섬 형태로 건설한다고는 하지만 워낙 넓은 면적을 방조제로 막아버렸으니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예측하기 힘든 상태다. 안그래도 세계적으로 조수간만차가 크기로 유명한 황해에서 이러한 점은 큰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간척지 특성상 지진에도 취약하며[1] 지진 후에도 액상화 현상 등 지반 불안정이 이어진다.
4. 간척과 영토
21세기 전반인 현재까지는 간척으로 인한 국가 간의 트러블은 크게 없는 편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일어날 수 있다. 간척은 곧 실제로 발을 디디고 생활할 수 있는 땅을 늘리는 것이기 때문에 영토의 확장과도 직결된다. 영토의 확장은 곧 영해의 확장을 불러올 수도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간척은 대부분 서해안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서해안은 해안선 특성상 직선기선을 기준으로 영해를 책정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간척지로 인해 영해가 유의미하게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향후 서해안의 리아스식 해안선이 전부 간척으로 사라지고 더 많은 땅을 확보하면 한국 측 영토와 영해는 더욱 중국 쪽으로 이동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경계가 중국 쪽으로 이동하지는 않는다. 즉, EEZ의 범위 안에서 간척 및 영토, 영해 확장이 일어나는 셈이다. 하지만 본래 EEZ였던 곳이 영해가 됨으로써 한 국가가 오롯이 독점하는 바다가 상대국과 가까워지면 그 국가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상황이 될 수도 있다.
5. 역간척
간척의 반대로, 기존의 육지를 갯벌과 같은 해안 습지로 되돌리거나 원래 육지였던 지역을 물로 만드는 일을 말한다. 위의 비판에서 나오는 것처럼 환경 파괴와 경제성의 변화로 인해 오히려 갯벌의 가치가 더 커져서 이를 위해 갯벌로 복원하는 것. 충청남도에선 금강 하구 지역의 역간척을 추진하고 있으며, 전라남도 순천시에서도 순천만 지역의 간척지를 역간척하여 습지로 복원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충청남도에서는 3개 간척지를 오는 2023년까지 역간척 사업을 진행하여 모두 갯벌로 회귀하는 계획을 현재까지 추진 중이나, 순천만의 계획은 좌초되어 무산되었다.
6. 세계의 간척
6.1.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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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부분이 구 간척지, 파란 줄무늬가 당시 공사 중이던 간척지. 노란부분은 그 유명한 새만금. 단, 붉은 부분은 자연적인 퇴적 작용으로 형성된 곳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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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서기 300년경 전북 지역 해안선[2] 과 현재 2015년의 해안선. 자연적인 퇴적 작용과 간척사업을 통해 호남평야가 만들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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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척에 따른 강화도 해안선의 변화
한국 서남해안은 리아스식 해안으로 갯벌이 넓게 발달하고 수심이 얕아 간척에 좋은 입지를 가졌다. 소규모 간척이 정확히 언제부터 시행했는지 불분명하나 고려 시대부터 간척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1235년 강화 영안제 축조를 시작으로 1246년 고려 서북면 병마절도사 김방경이 평안북도 정주군(현 정주시) 위도(葦島)에서 바닷가에 둑을 쌓고 개간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1256년 몽골 침입으로 고려 조정이 강화도에서 제방을 쌓아 둔전을 만든 고려사 권79의 기록이 보인다. 1356년 전라도 임피 연해지역에 제방을 쌓고 개간한 기록도 있다.
조선 시대에도 이러한 간척 사업이 이루어져서 1414년에는 경기도의 통진(通津)과 고양포(高陽浦)[3] 에 방조제를 축조하였고, 세종 때에도 해안에 둑을 쌓아 농지를 만들었다. 조선시대 16~17세기 이후 인구 증가로 인한 인구압과 수리시설 및 축조 기술의 발달로 민간에 의한 간척 사업이 활발했고 치부 수단으로도 이용되었다. 해남, 진도 굴포, 노화도, 고금도등을 간척해서 치부한 해남 윤씨가문이 그 예이다. 이러한 간척지는 언답(堰畓), 언전(堰田)이란 명사로 언급되며 기록에서도 ~포(浦)로 불리던 곳이 ~평(坪)으로 바뀌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도 산미증식계획 등을 목적으로한 서남해안의 간척 사업이 이루어졌다. 현대의 토목 기술을 사용한 대규모 간척 사업은 광복 이후 이루어졌으며 농지 확보를 위한 간척 사업이 주를 이루었다가 이후 산업단지나 항만 건설을 위한 목적으로도 간척사업이 시행되었다. 2008년 기준 간척지 총 면적이 1,100㎢ 정도로 달하며 새만금과 인천경제자유구역 등 공사 중인 면적도 440㎢에 달한다. 2018년 기준으로는 3,449㎢[4] 가 해방 이후 간척사업으로 새로 생긴 국토이다.[5] 2000년대 들어 환경파괴와 경제성 문제로 많은 반대에 부딪혔으며 최대 간척 사업인 새만금 간척 사업이 많은 논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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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3차 국토종합개발계획수립 당시에는 서해안과 남해안 바다를 매립하는 계획이 있었다. 새만금의 몇 배에 달하는 규모로 서해안 지방의 섬을 대부분 육지로 만들어버리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새만금 간척 사업으로 논쟁을 겪은 뒤 환경파괴 문제와 비용 대비 경제 효과 문제로 사실상 폐기되었다.
6.1.1. 주요 간척지
- 경기도
- 화성호: 원래 화성시 우정읍과 서신면 제부도 ~ 안산시 대부도를 연결해서, 화성의 화 옹진군[6] 의 옹자를 붙여 화옹호를 만들계획이었으나, 화성시 우정읍에서 시작하여 화성시 궁평리까지만 간척하기로 하여, 이름도 화성호로 바뀌었다.
- 현대자동차남양연구소: 현대차그룹이 구 화성군 남양면 장덕리(현 화성시 남양읍 장덕리)에 있는 공유수면을 사서, 바다를 메꾸고, 현대자동차 주행시험장을 지었다.
- 시화호[7] : 이후 담수호를 포기하고 해수 순환을 하는 조력발전소가 위치한다.
- 송산그린시티
- 시화멀티테크노밸리
- 배곧신도시: 1990년대 한화에서 폭약 시험장으로 매립한 땅을 시에서 매입해 개발한 것이다.
- 인천광역시
- 충청남도
- 서산 간척지[8]
- 전라북도
- 전라남도
- 부산광역시
- 경상남도
6.2. 북한
북한 역시 해안선이 복잡한 황해를 중심으로 간척사업이 활발하다. 대표적인 사례로 1백 리 제방을 둘러 만든 신도군이 있으며, 염주 다사도-철산 사이 대계도간척지에는 새만금방조제의 절반이 넘는 약 18km의 제방이 건설되어 있다. 평북 대계도간척지와 황남 룡매도간척지는 최근 김정은 정권에서 대표적인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대규모 간척사업이다.
북한은 1980년대부터 경제 침체와 식량수급의 불안정이 심화되어,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규모 간척사업에 매진했다. 1980년 북한이 조선로동당 제6차 당대회에서 4대 자연개조사업의 하나로 계획한 방조제의 길이는 1,072km, 간척지 면적은 30만 정보에 달한다고 한다.관련글 2019년에는 서해안 간척사업으로 약 5000정보(약 50㎢)의 땅을 새로 얻었다고 한다.# 문제는 북한의 경제가 파탄난 상황인데, 이렇게 엄청난 돈을 퍼붓고 환경 보존 추세에도 역행해가며 간척지를 건설하느니 그 돈으로 비료를 사오고 그놈의 주체농법도 치우고 협동농장을 개혁하는 쪽이 몇배는 낫다는 것이다(...)
6.3.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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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가 좁은데다 농지가 부족하다 보니 대대로 간척사업을 통해 영토를 확장해 왔다. 전체 국토에서 간척지의 비율이 무려 '''25%'''에 달하는데 그것도 '''해수면보다 낮은 점'''이 특징이다. 실제로도 인터넷에서 해발고도 등을 찾아보면 네덜란드는 영토의 많은 부분이 '''해수면 이하'''로 나온다. 국명인 '네덜란드'의 뜻부터가 '낮은 땅'이다. 오죽하면 "세계는 신이 만들었지만,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인이 만들었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
수도인 암스테르담만 해도 많은 부분이 간척지이다. 한국이나 홍콩처럼 한꺼번에 하나의 영토로 만든 게 아니라 섬을 여러 개 띄워 놓았는데 그 사이로 운하들이 있다. 소위 '폴더'라고 하여 바다 위에 만든 크고 아름다운 땅들이 한둘이 아니다. 플레볼란트는 세계 최대의 인공섬으로 '''원래는 그 어떠한 육지도 없었던 곳'''이며 간척 전에는 자위더르 해(Zuiderzee)라는 내해였다. 원래 '''1918년''' 코르넬리스 렐리라는 사람이 처음 구상했지만 기술적 한계로 인해 1957년에야 간척 공사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플레볼란트에는 구상자의 이름을 딴 렐리스타트란 마을이 있다.
하지만 근래에는 갯벌의 가치가 떠오르고 잦은 간척사업으로 인한 환경파괴가 문제가 되면서 일부 간척지를 습지화하고 있다. 플레볼란트에서 서북쪽에 떨어진 마르케르 호수도 처음에는 간척지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환경문제 및 비용문제 등 여러가지 문제가 겹쳐 2003년 사실상 계획을 폐기했다. 대신에 제방 인근에 섬 몇 개를 띄운다는 계획이 있으나 아직까지의 전진은 없다. 최근에는 간척사업이 예전처럼 진행되고 있지는 않다.
이쪽은 바다를 제방이나 벽으로 막고 물을 퍼내는데 이 역할을 풍차가 해냈다고. 지금은 풍차가 아니고 전기의 힘으로 해나가는 중이다.
6.4. 일본
한국과 비슷한 해안의 특징상 간척지들이 많은데, 여기는 아예 바다 위에 띄운 인공섬들이 한둘이 아니다. 해안가의 주요 도시들을 보면 네모나게 생긴 인공섬들이 많다.
기록상으로는 1284년경부터 시작되었는데 산지 비율이 높은 특성상 주로 농토 확보를 위한 간척이 이루어졌다. 2차 대전 이후에는 항만시설, 산업용지, 주거 용지등의 목적으로도 시행되었으며 도쿄만 매립이나 오다이바, 간사이 국제공항등이 있다. 간척지가 상대적으로 넓지 않아 대규모 간척지는 드문 편이나 35㎢ 규모의 이사하야 만 간척 사업(諫早湾干拓事業)으로 논란이 있었다.
1978년 나리타 공항 분쟁이 빚어진 후 일본의 신공항들은 가능한 한 인공섬에 건설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간사이 국제공항을 시초로 하며 고베 공항 등에서 예전부터 후쿠오카도 인공섬 형태의 신공항을 건설하는 떡밥이 나돌 지경이다. 하지만 다들 워낙 연약지반들이라 간사이나 하네다처럼 간척 초반부터 난항이 발생하는 등 문제점이 한둘이 아니다.
6.5.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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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이 간척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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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어떻게 간척을 했나를 보여주는 지도
영토의 70% 이상이 산지라 여러모로 불편하기 그지없는 홍콩은 간척을 통해 평지를 확보해 왔다. 위 지도를 잘 살펴보면 구룡반도나 센트럴 등 홍콩 역사/관광/경제의 중심지는 싸그리 전부 간척지 위에 지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마천루들도 대개 간척지에 지어졌다. 까우룽 반도의 국제상업센터와 샤틴의 주거지역 역시 그러하며 이 과정에서 인공 강도 만들어졌다.
악명 높았던 카이탁 국제공항도 바다를 메꿔 활주로를 확보했고 1974년 매립을 통해 활주로를 연장했으며 1982년 공항을 또 확장했다. 1998년에 개항한 홍콩 국제공항도 그 작은 첵랍콕 섬을 기존의 몇 배 넓이로 간척했으며 앞으로도 간척으로 공항을 확장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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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정부에서 내세웠던 차기 간척 계획. 그러나 공사비용 등의 문제로 사실상 폐기되었다. 지도에 보면 카이탁 공항이 위치했던 까우룽 만 전체를 확 메꿔버리는 것을 계획했는데 지금은 기존의 활주로 자리에 크루즈 터미널이 등장했으니 사실상 불가능한 꼴. 일각에서는 홍콩 섬과 까우룽 반도 사이의 해협까지도 확 메꿔버린다는 떡밥이 나돌고 있으나 아직은 근거 없는 소문일 뿐이다.
6.6. 싱가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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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한 분홍색이 2013년까지 간척한 지역, 붉은 색은 간척 예정인 지역이다. 135㎢를 간척했고 추후 100㎢ 정도 더 간척하여 1960년대 582㎢ 면적을 800㎢로 확장할 계획이다. 국토가 좁아 간척을 위한 모래를 주변 국가에서 대량으로 수입했는데 이로 인한 분쟁이 있다.
싱가포르의 관문인 창이 국제공항 부지도 100% 간척지이다. 인천국제공항과도 유사한 면이 있다.
6.7. 마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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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10㎢의 작은 섬들을 간척하여 30㎢까지 늘린 상태다. 카지노가 밀집해 있는 코타이는 콜로안 섬과 타이파 섬 사이를 간척해 만들어진 지역이다.
6.8. 아랍에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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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가 과거 두바이유를 통해 벌어놓은 오일머니를 이용하여 금융 및 관광 중심지로 발전을 위한 대규모 간척 사업을 벌였다. 관광 및 휴양지로서 개발한 곳이라 모양이 매우 독특한 것이 특징.
물론 두바이뿐 아니라 아부다비에도 있는데 저렇게까지는 아니다. 간척과 환경문제 간의 관계를 인식한 아부다비는 간척지에 맹그로브를 심는 등 숲/습지로서 재활용하고 있어서 일석이조이다.
[1] 대표적인 사례로 고베 대지진.[2]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지금의 전주 코앞까지 바다가 있었다.[3] 현 김포시 통진읍과 월곶면 일대. 참고로 고양포는 원머루마루라는 이명이 있으며, 강화도로 가는 선박의 나루터였다고 한다.[4] 다만 강원도의 800km2 토지와 국내 미등록 토지까지 포함한 면적이다 실질적으로 늘어난 영토는 2,400km2 정도이다[5] 1949년 한국 국토 면적은 9만3,634㎢라는 통계가 나왔고 (남한 기준) 1950~53년 한국 전쟁 당시 영토가 일부 증가했다. 이로서 1954년 국토 면적은 96,929㎢로 집계됐고, 그후 꾸준한 간척으로 1980년에 98,011㎢, 1992년에 99,010㎢, 2010년에 100,032㎢, 2018년에 100,378㎢이다.[6] 대부도 바로 옆 영흥도가 옹진군 행정구역이다. 그리고 대부도도 안산 편입 이전에는 옹진군에 속했다.[7] 시화방조제 건설로 안산시내에 있던 사리포구가 사라졌다. 기사 [8] 이곳에 명실상부 동북아시아에서 제일 큰 공군 비행단인 20비가 세워졌다.[현재는] 농지로 쓰고 있으며 지목은 목장용지와 잡종지이다. 실제로 위 구일간척지 주소를 검색한 후 지적 편집도를 보면 어마무시하게 쪼게져 바둑판을 연상시키는 땅을 볼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