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팔레르모
1. 소개
팔레르모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축구 선수로 1992년부터 선수 생활을 시작해, 클루브 에스투디안테스 데 라플라타, 비야레알 CF, 레알 베티스, 데포르티보 알라베스 등 많은 클럽을 거쳤고 CA 보카 주니어스에선 300경기 넘게 출전하여 150골 이상을 기록하였으며 주장직을 맡기도 하였다. 커리어 통산 300골 이상을 넣어 아르헨티나 리그 최고 수준의 공격수로 명성을 날렸고, 2011년 여름 CA 보카 주니어스 소속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현재 CF 파추카 감독을 맡고 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라플라타에서 태어난 팔레르모는 클루브 에스투디안테스 데 라플라타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CA 보카 주니어스로 이적했다. 팔레르모는 좋은 골 평균과 국제 경기에서의 활약으로 유럽 팀인 SS 라치오,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등 여러 팀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1999년 11월 13일 콜론과의 경기에서 오른쪽 무릎의 전측 십자인대가 완전히 찢어졌다.
팔레르모가 부상에서 회복하기까지는 6개월이 걸렸다. 2000년 5월 24일, 팔레르모는 리버 플레이트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8강전 마지막 15분을 뛰고 골을 넣어 3:0 승리에 공헌했다.[1]
팔레르모는 보카 주니어스에서 많은 골을 넣었고, 특히 보카의 라이벌인 CA 리버 플레이트를 상대로 많은 골을 넣었다.
2000년 인터컨티넨탈컵에서 뛰며 레알 마드리드 CF와의 경기에서 2골을 넣으며 2:1 승리를 견인했고, 대회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하고 스페인 축구팀들의 주목을 받았다.
2001년 1월 19일 팔레르모는 스페인 라리가의 비야레알로 760만 유로의 이적료로 이적했다. 하지만 2002년 11월 29일, 세레머니를 하면서 콘크리트벽에 섰다가 팬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벽이 무너지며 2개월간의 부상을 입었다. 이후 2003년 8월 20일, 레알 베티스로 이적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폼을 찾지 못하며 2004년 3월에 방출됐으며 3월말 2부리그의 알라베스와 계약을 맺었다.
2004년 7월 13일, 스페인에서 비야레알 CF,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데포르티보 알라베스에서 3년 반 동안 뛰었던 팔레르모는 CA 보카 주니어스로 돌아왔다. 12월 17일, 그는 결승전에서 통산 100번째 골을 넣어 2:0 승리를 이끌었다.
다시 한번 정상을 밟은 팔레르모는 아르헨티나 리그 3경기 연속 11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을 수상했다.[2] 2007년 클라우스우라 때는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여러 번 있었는데, 그 중 첫 번째는 2월 25일 인디펜던트에 3:1로 이긴 경기에서 마지막 몇 초 만에 하프 피치 골을 넣었던 순간이었고, 또 2주 후인 3월 10일 라플라타에서 열린 보카와의 전 소속팀 에스투디안테스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넣어 3:1 승리로 이끌었던 순간도 있었다. 에스투디안테스 드 라 플라타의 아치트리올을 상대로 5:1로 승리하며 통산 4골을 기록했던 경기도 있었다.
다음 시즌인 2007에 13골로 아르헨티나 리그 득점왕에 이름을 올렸다.[3]
팔레르모는 2008년 5월 21일 Atlas를 상대로 3:0으로 승리하면서 통산 5번째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2008년 8월 24일 아페르투라 초, 그는 또 다른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그는 라데스와 2:1 승리한 경기에서 전방 십자인대에 부상을 입었고 부수적인 인대가 찢어졌다. 5~8개월의 회복 기간이 예상되었고, 이것이 알려진 후 아르헨티나 감독 알피오 바실레는 그가 경기를 하기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부상 후 첫 골은 2009년 3월 1일 후라칸을 3:1로 꺾은 네 번째 경기에서 나왔다. 4월 30일, 팔레르모는 데포르티보 타치라를 상대로 골을 넣으며 3:0 승리를 이끌었다.
지난 10월 4일 아페르투라에서 열린 베레스 사르스필드와의 경기에서 마르틴 팔레르모는 아르헨티나 1부 리그에서 200골을 터뜨리며 보카 주니어스에게 3-2 승리를 안겨줬다.
2010년 7월 22일, 36세의 나이로 팔레르모는 보카 주니어스와 1년간 재계약했으며, 계약 종료 시 은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마르틴 팔레르모는 2010년 9월 19일 콜론에게 3:1로 승리한 경기에서 통산 6번째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2010년 12월 13일, 팔레르모는 2010년 아페르투라 결승전에서 Kimnasia de La Plata를 상대로 1:1 무승부를 거둔 경기에서 통산 300호 골을 기록했다.
2011년 4월 24일, 팔레르모는 후라칸과의 경기에서 보카 주니어스의 세 번째 골을 넣어 3:0으로 점수차를 벌렸고, 이후 팔레르모는 10경기 동안 무득점에 그치다가 다음 경기인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와의 경기와 2:0으로 승리했다.
2011년 6월 12일, 팔레르모는 라 봄보네라에서 현역 마지막 홈 경기를 치렀다.
팔레르모는 2011년 6월 18일 Kimnasia de La Plata와의 경기에서 2:2 무승부를 기록하며 공식적으로 축구에서 은퇴했다. 그는 경기 막판 보카 주니어스의 두 번째 골에 헤딩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19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2.2. 국가대표
1999년에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에 처음으로 발탁되어, 1999년 코파 아메리카에 출전하였지만, 콜롬비아와의 경기에서 페널티 킥을 3번이나 실축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 경기 이후로 팔레르모는 한동안 대표팀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2002년 한일 월드컵 직전 비야레알 CF 소속으로 치른 라리가 경기 도중 골 세레모니 하다가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으로 인해 실낱같은 월드컵 출전이 좌절되었다.
이렇게 잊혀져만 가던 팔레르모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건 2009년 디에고 마라도나 당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는데, 팔레르모를 발탁하면서 10년만에 대표팀에 복귀하게 되었다.[4] 이후 페루와의 남아공 월드컵 남미 지역예선에서 후반 추가시간에 역전골을 넣어 월드컵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2010년 37세의 나이로 2010 남아공 월드컵 최종 명단에 발탁되면서 월드컵에 첫 출전하게 되었다.
조별리그 2경기에서는 쟁쟁한 공격진들 때문에 주로 벤치만 지켰지만 그리스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교체 투입되어 득점을 기록했다.[5]
3. 플레이 스타일
전형적인 타겟 스트라이커답게 상대 수비수를 등지고 플레이하는 데에 능했으며, 좋은 신체조건과 지능적인 움직임을 바탕으로 훌륭한 위치선정 및 헤딩 실력을 보였다.
4. 감독 경력
2012년 11월 26일부터 팔레르모는 고도이 크루스의 감독이 되었다.
2014년 4월 18일, 아르세날 FC에 부임했다. 그러나 그는 2014~2015시즌 동안 9위에 그쳤다. 결국 2015년 4월 19일, 그는 공식적으로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 후 팔레르모는 유니온 에스파놀라에 부임해 2016-2017 시즌에 칠레 프리메라 리가 준우승을 이끌었다.
2019년 1월 22일 CF 파추카에 감독으로 부임했다.
5. 우승
- 클루브 에스투디안테스 데 라플라타 (1992 ~ 1997)
- 프리메라 B 나시오날 : 1994-95
- CA 보카 주니어스 (1997 ~ 2000 / 2004 ~ 2011)
-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 1998A , 1999C , 2000A , 2005A , 2006C , 2008A , 2011A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 2000 , 2007
- 코파 수다메리카나 : 2004 , 2005
- 레코파 수다메리카나 : 2005 , 2006 , 2008
- 인터컨티넨탈컵 : 2000
[1] 첫 번째 경기는 1:2 패배.[2] 2006년 클라우스우라, 2006년 아페르투라, 2007년 클라우스우라 득점왕.[3] 팔레르모의 시즌 최고 경기는 9월 16일 반필드와의 경기. 4골을 넣어서 6:0 승리를 이끌었다.[4] 여담으로 팔레르모의 이 발탁으로 인해 피해를 봤던 선수가 바로 에세키엘 라베시였다. 라베시는 이후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야 대표팀 맛을 볼 수 있었다.[5] 이 골로 월드컵 경기에서 골을 넣은 최고령 아르헨티나 축구선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