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베르사이유의 장미)
1. 개요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등장인물이며 실존인물인 마리 앙투아네트이다. 오스칼 프랑소와 드 자르제와 함께 양대 주인공이며 오스칼이 픽션상의 주인공이라면 이쪽은 실화상의 주인공이다. 성우는 우에다 미유키. 더빙판의 성우는 권희덕(KBS), 문지현(비디오), 박영희(MBC 극장판), 윤성혜(EBS)
2. 상세
천진난만하고 솔직하면서 순진하다 못해 철딱서니 없는 성격이지만 동시에 강한 자존심을 가진 인물로 나온다. 이 자존심은 마지못해 뒤바리 부인에게 말을 건 이후 일국의 황태자비인 자신이 애첩에게 졌다며 결국 뛰쳐나가 울었던 에피소드에서 잘 드러난다.
황태자비 시절 파리의 가면무도회에 신분을 숨기고 몰래 참석했다가 페르젠과 만나 서로 첫눈에 반했다. 이후 페르젠은 마리를 만나기 위해 궁에 자주 출입하기 시작하고 두 사람에 관한 소문이 슬슬 생겨나기 시작한다.
정략결혼으로 인한 마음에도 없는 상대와의 혼인과 왕비라는 자리에서 오는 과중한 책무에서 벗어나, 다른 여성들처럼 무도회, 연극, 오페라를 즐기고 싶어한다. 하지만 여느 왕비라는 지위가 그렇듯이 마리 앙투아네트를 대하는 왕실과 귀족의 시선에 벗어나지 못하고, 불륜 상대였던 페르젠도 왕비에 대한 추문이 생기자 이를 우려한 오스칼로 인해 이별하게 되면서 그 상실감으로 사치에 빠지게 된다.
여기에 당대의 패션리더로서의 지출, 폴리냑 부인의 부추김[1] 과 자신이 좋은 일이면 국민들도 좋아할 거란 착각이 겹쳐 지나치게 사치를 부리게 되고, 결정적으로 다이아몬드 사건으로 평가가 나락으로 떨어진다.
황태자비로 갓 프랑스로 시집왔을 무렵에는 왕족 특유의 우아한 외모와 앞으로 프랑스를 잘 이끌어줄거라는 기대감으로 민중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으나 일련의 사건들로 점점 평가가 내려간다. 마리 앙투아네트도 그냥 무식하게 놀고먹기만 하는 인물은 결코 아니었지만 중요한 데서 보는 눈이 어두웠고, 가장 실천에 옮겨야 할 것들은 또 실천에 못 옮긴 점 등이 왕비라는 포지션과 당대의 좋지 못했던 민중의 사정 등과 합쳐져 프랑스 국민들의 증오를 받게되는 원인이 된다. 결국 이런 점이 마리 앙투아네트 자신에게도 치명적인 나비효과가 되어 날아오게 된 셈.
고증대로 악녀라기보단 상냥하고 순진한 인품의 소유자로 등장한다.[2] 그러나 왕비란 지위에 부담감을 느껴 사치에 빠지고[3] 왕실의 대를 이을 아들 출산 문제에서도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다.[4] 거기다 너무 감정에 솔직했던 탓에 마음대로 행동하는 모습이 자주 나오며, 다이아몬드 사건[5] 이후로 정신을 차리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그 외에도 시대착오적인 틀에 맞춰진 사고방식도 문제였으며, 그 순진함이 왕비 자리에 맞지 않기에 파멸로 흘러간다. '''개인적으로는 착하고 순진해도 정치적인 자리에서 중요한 입지를 차지한 사람이 민중과 정치판의 심정과 동향을 해아리지 못하면 뭔 꼴 나는지 제대로 보여주는 인간상'''이라고 할 수 있다.[6]
그후 역사대로 혁명이 터지게 되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베르사유의 마지막화에선 혁명으로 몰락하여 소중한 것들을 잃어가면서 망가지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습을 잘 표현했다.
먼저 베르사유 궁전까지 쳐들어온 분노한 민중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사과를 하였으며,[7] 가족들과 고성에 유폐되었다. 그 후 프랑스 혁명에 대한 위협이 거세지자 가족들과 함께 바렌을 걸쳐 오스트리아로 도주하려고 했지만 끝내 도주에 실패하고 그대로 체포되고 만다. 결국 분노한 민중들에게 온갖 욕설을 들으며 3일에 걸쳐 파리로 압송되는데, 이때의 공포로 인해 머리카락이 하얗게 백발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탑에 감금된 뒤 그나마 남은 가족인 남편 루이 16세는 처형당하고, 혁명군들이 아들 루이 17세를 강제로 데려가 자식까지 잃는 아픔을 겪는 등, 그야말로 일국의 국모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신세가 되고 만다.[8] 처형당하기 직전 오스칼을 위해 감옥에서 지급받은 휴지로 하얀 장미를 만들어[9] 자신의 마지막 시중을 들어준 로잘리[10] 에게 건네주며 평소 오스칼이 좋아하던 색으로 장미를 칠해달라는 말을 남긴채 처형장으로 향한다.
이후 실제 역사대로 처형당한다.[11]
3. 기타
첫등장한 후 극의 분위기가 아직 밝을 무렵[12] 엔 발랄하고 예쁜 소녀스러운 스타일로 묘사되지만, 나이도 먹고 정신도 좀 큰 뒤엔 왕비답게 보다 어른스러운 스타일로 헤어도 패션도 바뀐다. 애니에선 목소리 톤도 점점 성숙하게 바뀌는걸 알 수 있다.
작중 오스칼과의 관계는 대체적으로 원만한 주종관계로 그려진다. 마리가 처음 프랑스로 시집왔을 때 오스칼이 호위를 맡게 되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마리는 처음부터 오스칼에게 호의를 품고 몇번 편의를 봐주기도 한다.[13] 오스칼 역시 페르젠과의 불륜 셔틀, 폴리냐크 부인을 멀리하라는 간언, 목숨걸고 낙마할 때 구하는 등 진심어린 충성으로 마리 앙투아네트를 따랐다. 그러나 간언을 무시하는 마리에게 실망한 오스칼이 평민들의 편에 서기로 결심하면서 영원히 결별하게 된다.[14] 서로가 마지막 만남임을 예감했으면서도 눈물과 함께 '또 만나요'라는 인사말을 남기고 헤어지는 모습이 인상깊다.[15]
남편인 루이 16세와는 왕비로서 함께 행동하고 인간적으론 싫어하진 않으나, 진심으로 사랑한 건 페르젠이였다.[16] 하지만 루이 16세는 프랑스 혁명 때 처형당하고, 페르젠도 마리 앙투아네트 사후 국민들에게 가혹한 정치가로 돌변하면서, 이로 인해 원한을 산 스웨덴의 국민들에게 살해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눈에 띄진 않지만 내로남불 시전자이기도 하다. 조국인 오스트리아의 통치자이자 어머니인 마리아 테레지아의 교육을 받아 왕족이나 신하들이 정부를 두거나 성적으로 문란한 것에 대해 부정적이어서, 본인도 시할아버지 루이 15세의 정부 뒤바리 부인을 싫어했으나 '''정작 자기는 남편이 있는 상태에서 페르젠과 불륜을 한다(...)'''. 물론 본인도 나중에 잘못한 줄은 알아서 반성하고 관계를 끊으려는 모습도 보인다. 특히 장남인 루이 조제프가 척추결핵(척추카리에스)으로 인해 사경을 해메자 자신의 불륜행각으로 인해 벌을 받는게 아닌가 생각했을 정도.
한참 뒤에 나오는 페그오의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영향을 많이 준 것 같다. 발랄하고 화려한 소녀틱한 외모에 더해 성격도 화사하고 발랄하나 왕족다운 면모가 있고 세간에 퍼진 편견과 달리 상냥한 성품이었다는게 고증된 점, 오스칼에서 많이 컨셉을 따온듯한 슈발리에 데옹과 붙어다닌다는 점 등등. 다만 이쪽 마리는 금발인데 페그오 마리는 은발. 다만 엄연히 역사적인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실책도 적나라하게 묘사된 베르사이유의 마리 앙투아네트와 달리,[17] 페그오의 마리는 그런 단점들이나 부정적인 면모는 보다 희석되었다.[18]
후속작인 오르페우스의 창에서도 마리 앙투아네트와 몇 가지 비슷한 부분이 있는 캐릭터인 안토니나 크리코프스카야가 등장한다. 둘 다 당대 최상위계층 출신[19] , 귀족주의적인 사고방식, 화사하고 발랄한 인상을 지니고 공들여 치장하고 다니는 화려한 미인, 남편이 있는 와중에 불륜을 저지른 점,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과 혁명을 지지하는 평민 계층이 그들의 몰락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 등등이 닮았다. 다만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느낌이 있는 마리와 달리, 안토니나는 확실히 현실적이고 속물적인 구석도 있다. 둘 다 버젓히 남편이 있는데도 불륜을 저지르고, 그 불륜 상대에 대한 연애 감정 때문에 감정적으로 변하는 건 비슷하지만.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뮤지컬 버전에서는 원작과 다르게 마리 앙투아네트 그녀의 '''생애보다는 페르젠 백작과의 사랑을 좀더 강조'''했고, 남역 위주인 다카라즈카답게 페르젠을 자주 띄워주면서 비중도 조금 밀렸다. 다만 재연할수록 이게 좀 심해져서 원작의 주인공이라는 말과 무색하게 비중이 점점 반쯤 공기화 되어가며 쩌리 수준으로 떨어졌다.
본래 역사에서는 피부와 몸매가 좋은 편이고 매력적인 외모였긴 하지만 미인은 아니었다고 묘사되는데,[20] 여기서는 오스칼과 더불어 작중 최고 미인으로 묘사된다. 작중 인물들의 언급으로 대놓고 얼굴도 무척 미인이라고 명시되며 금발에 대한 칭찬도 초반부터 나왔다.[21]
[1] 폴리냑 부인의 꼬드김으로 한 때 도박에 빠져 돈을 엄청 날려먹었고, 자신의 생활이 어렵다며 동정을 구하는 모습에 홀라당 넘어가 순수한 우정과 호의로 연금을 올려주는등 엄청나게 봐줬다. 나중에 마리 앙투아네트가 정신을 차림으로써 폴리냑 부인과 거리를 두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2] 로잘리도 마리 앙투아네트를 소문대로 악녀라고 생각해 그녀를 꺼려했으나 실제로 만난 마리가 소문과 달리 우아하고 다정한 것을 보고 당황했다.[3] 국고로 도박을 하거나 드레스와 장신구 등의 사치품을 사재기하는데 과한 지출을 소비하는 등, 왕비 생활에서 오는 각종 스트레스를 일종의 돈지랄로 해소했다. 거기다가 주변에 폴리냑 부인처럼 사치를 부추기는 나쁜 지인들까지 있었는데다, 순진한 성격 탓에 본인도 그들의 감언이설에 너무 잘 넘어갔던게 흠.[4] 그나마 겨우 낳은 장남 루이 조제프는 이른 나이에 척추결핵(척추카리에스)으로 사망하고, 차남 루이 17세는 아예 내연남이였던 페르젠의 사생아라는 소문에 휩싸인다. 급기야 프랑스 혁명이 벌어진 뒤에는 루이 17세와도 강제로 생이별하게 된다.[5] 실제로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사기 사건. 실제 역사에서도 마리 앙투아네트의 평판은 이 사건을 기점으로 나락으로 떨어져 회생이 불가능해졌다. 작중에서는 조역 로잘리의 언니 잔느(실존인물이자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기 사건의 범인이었던 여성 잔느가 모티브)가 범인으로 나온다. 잔느는 물욕에 눈이 멀어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차지하기 위해 마리에게 추근덕거리던 고위 성직자(로앙 대주교), 마리와 얼굴이 쌍둥이 수준처럼 닮은 창녀(니콜 올리버)까지 이용했다. 이후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 사기죄로 재판을 받자 마리 앙투아네트의 호위역인 오스칼이 여자라는 점을 이용해 마리 앙투아네트가 레즈비언이고, 늘 여러 남자들을 침실에 끌어들이는 문란한 여자라고 무고하기까지 했다. 물론 마지막 부분에 있어서는 마리 앙투아네트는 실제로 페르젠과 불륜을 벌였으니 좀 찔리는 부분은 있겠지만, 그래도 잔느가 말했던대로 늘상 문란하게 생활하는 인간과는 거리가 멀었다.[6] 차라리 격동기의 프랑스 혁명의 연관자가 될 일이 아예 안 생기게 루이 16세와 결혼하지 않고 오스트리아의 공주로만 남았다면, 혹은 혁명에 직접적인 영향(프랑스처럼 아예 혁명에 의해 왕조가 끌어내려지는 식의 영향)을 받지 않은 다른 나라로 시집갔다면 무난히 살았을 인물일지도 모른다. 혹은 적당히 높은 신분의 귀족과 결혼해 평범한 귀족부인으로 살았다면 좋았을지도.[7] 마리 앙투아네트가 강한 자존심을 지닌 인물이었음을 고려해보면 사태의 심각성이 얼마나 컸는지, 또 그녀 스스로 그걸 얼마나 잘 인지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여하튼 사과에서 어느 정도 진정성이 보인 탓인지 빡돌아서 마리 앙투아네트를 궁에서 작정하고 끌어내려 했던 민중들도 잠시 조용해졌을 정도다.[8] 이때 아들 루이 17세를 강제로 데려가려는 병사들을 필사적으로 말리며 그들에게 당신들은 자식도 없냐고 절규한다. 하지만 그 병사들 중 한 명은 마리 앙투아네트와 그녀의 가족들이 베르사유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동안 자기 아이는 굶어죽었다고 일갈한다. 이 일갈에 마리 앙투아네트도 충격에 빠져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아들을 데리고 가는걸 멍하니 지켜만 본다. 그녀가 얼마나 국민의 실태에 무지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9] 그녀의 처지상 생화를 구할 수 없었기에 휴지로 장미를 만든 모양이다.[10] 로잘리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끝까지 걱정했던 오스칼을 위해 일부러 마리 앙투아네트의 시중을 들어주러 그녀가 갇힌 감옥까지 찾아가 오스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준다.[11] 로잘리에게 장미를 주고 처형당하는건 애니메이션판 결말이다. 만화판에선 오스칼의 사후에도 바렌느 도주 사건과 페르젠과의 재회, 혁명 재판, 루이 16세의 처형 등의 후일담을 자세히 보여준다. 이후 처형날 당일 자신의 리본을 로잘리에게 주고 국민들의 야유 속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고 처형당한다. 다만 애니메이션에선 처형장면을 일부러 묘사하지 않고 로잘리와의 마지막 담화와 장미 건네주기를 시전한 후 그냥 처형되었다고 언급되는 식으로 생략한 듯.[12] 마리가 황태자비일 무렵[13] 초반부 드 게메네 공작과의 결투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따른 행동, 후반부 국민대표를 무력 진압하라는 왕실 명령 거부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상관없이 평등하지 못한 사회에 대한 정의감에 따른 오스칼의 행동을 묵인해줬다.[14] 사실 이전에도 오스칼은 여러 경험들을 통해 귀족인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국민의 대다수인 평민들이 엄연히 소수인 귀족과 왕족을 떠받치느라 가혹한 착취에 시달린다는 것에 더해 그저 신분이 더 낮다는 이유로 벌어지는 인권유린 문제(초반에 드 게메네 공작이 평민 아이를 시덥잖은 이유로 쏴죽이고도 처벌받지 않은 것, 로자리의 양모 니콜이 폴리냑 백작부인의 마차에 뺑소니 사고를 내서 사망했으나 가해자인 폴리냑 부인은 책임지지도 않고 튄데다 처벌도 안 받는 것 등), 위병대에서의 생활을 통해 격는 비귀족(+ 몰락귀족) 출신 군인들이 하도 궁핍해서 총까지 몰래 팔아치울 정도의 삶을 겪는 것 등등 마리의 일을 제외하고도 프랑스 사회가 문제가 많으며 변화가 필요하다는걸 몸소 실감하고 있긴 했다. 그래도 오스칼은 마리를 비롯한 왕실에 어느 정도 희망을 걸고 있었으나 그들조차도 결국 가망이 보이지 않게 되자 그들을 등지고 혁명 노선을 택한 것.[15] 한가지 의미심장한 부분이라면 오스칼은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처형이 결정되기 전에 바스티유 감옥 습격사건에서 한참 뛰다가 사망했다는 점이다. 프랑스 혁명에 더해 바렌 사건까지 더해져서 프랑스의 마지막 왕조인 부르봉 왕조가 완전히 끌어내려진 뒤에도 혁명 파벌 내에선 루이 16세의 사형 여부에 대해 치열한 투표공방이 있었고, 겨우 1표 차이로 사형 지지 측이 승리해 그 결과 루이 16세는 사형당했으며 마리 앙투아네트도 그 뒤를 따랐다. 그런데 오스칼은 이미 그 전에 죽었기에, 과연 이들의 사형 여부를 놓고 투표전쟁이 벌어질 때 어느 쪽을 지지했을지는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16] 그래봤자 불륜이긴 해서 페르젠과의 풍문으로 시끌시끌했고, 두 사람에 대한 추문이 마리 앙투아네트의 평판을 더욱 떨어뜨리는데 한몫 했다. 루이 16세도 이를 알아채곤 있었지만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결혼한 마리의 연애에 차마 손대진 못했다.[17] 작가인 이케다 리요코가 역사 관련으로는 고증을 뚜렷히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 이러한 정확한 역사 고증은 후속작인 오르페우스의 창에서도 그대로 나온다.[18] 단순히 마리 앙투아네트 본인이라기보단, 프랑스 왕실 그 자체를 대표하는 컨셉이어서 이런 차이가 있는 걸로 보인다. 페이트 시리즈 자체가 상당수의 영령들의 부정적인 부분은 어느 정도 희석시키고 좋은 점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한데 페그오의 마리도 그런 편에 속한다.[19] 마리는 오스트리아 여대공 마리아 테레지아의 친딸, 안토니나는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조카.[20] 아마도 그녀의 소속인 합스부르크 가문 특유의 주걱턱 때문일지도 모른다. 초상화에서도 그 주걱턱이 어느 정도 보이니(…)[21] 뒤바리 부인이 마리 앙투아네트가 자기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그녀의 머리색을 까내리며 험담하자, 그 말을 들은 루이 15세는 오히려 마리는 예쁜 금발이라고 그녀의 머리색을 칭찬한다. 하지만 뒤바리 부인은 이에 반발하며 붉은색이라고 끝까지 까내린다. 그런데 사실 서양의 금발 중엔 마리처럼 확실히 노란색으로 보이는 '허니 블론드' 도 있고, 붉은색이 좀 감돌아 주황색에 가까운 '스트로베리 블론드' 나 '진저 블론드' 도 있긴 하다. 그리고 뒤바리 부인이 까내린 것과 달리 정작 만화에서나 애니에서나 마리의 금발이 가장 밝고 화사한 금발로 묘사된다. 뒤바리 부인도 금발이긴 한데 애니 기준으로 마리와 비교해보면 확실히 칙칙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