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렌 사건
프랑스 혁명의 주요 사건. "바렌 도주사건"과 "바렌느 배신사건"으로도 불린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운명을 결정지은 사건.'''
La fuite à Varennes(프랑스어) / Flight to Varennes(영어)
1. 배경
1789년 바스티유 습격과 왕실의 파리 복귀 이래 여전히 혁명의 기운은 높았으나 루이 16세는 실권을 하나둘 빼앗기고 있긴 했어도 여전히 국왕으로 존중받고 있었다. 바스티유 습격 이전 고위관료들이 매일 아침, 저녁으로 문안인사를 하러 오는 것도 프랑스 국민의회 지도부 및 파리시장으로 바뀌었을 뿐 계속되고 있었다. 아울러 혁명의 유력 지도자 중 한 명인 미라보 백작은 왕정과 루이 16세에 우호적이었으며 영국식 입헌군주제를 추진하고 있었기에 루이 16세도 미라보 백작과 비밀리에 연락하며 안전을 보장받고 있었다.
그러나 1791년 4월 루이 16세와 국왕 일가를 아연실색케 할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미라보 백작의 급사'''였다. 미라보의 급사로 국왕은 국민의회 및 혁명지도부 핵심에 자신을 변호하고 보호해줄 메신저를 잃어버렸으며 그 대체자를 찾지 못하였다. 그래도 이 정도로 그쳤으면 그냥 위기의식을 느끼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정치적 해결책을 몰색했을 텐데, 4월 내내 루이 16세에게 위협적인 일들이 벌어졌다.
혁명 직후 파리의 최대 유력 주간지인 <파리의 혁명>지 4월 2주본에서 '''왕권신수설 및 왕의 신성설을 전면 부정'''하고 신성한 존재는 오직 신뿐이라며 왕에게 부여한 신성성을 박탈해야 한다고 제창했다. 비슷한 시기에는 입헌군주정을 지지하는 헌법제정모임인 <군주제 헌법의 친구들 협회>가 과격파로부터 맹공격을 받다가 급기여 회원들에게 린치가 가해지는 등 테러공격을 받았다.
게다가 국민의회는 헌법에 제시된 국왕의 권한들을 박탈하여 총리에게 넘겨주었고 루이 16세에게 성직자가 혁명법 선서를 의무화해야한다는 법률에 서명할것을 강요하며 강제로 서명하게 했다.
여기에 쐐기를 박은 것이 부활절의 사건이었다. 루이 16세 일가는 일시적으로 튈르리 궁전을 떠나 생클루 궁전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이는 의회와 파리 시정부에도 통보가 되었고 이의제기가 없던 사안으로, 생클루 궁전에서 부활절 미사를 올린 뒤 식사를 하고 하룻밤을 보낸 뒤 올 예정이었다. 왜 굳이 튈르리가 아닌 생클루 궁전에서 미사를 올리려 했냐면 이른바 '''비선서 사제'''가 집행하는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2] 그런데, 이를 국왕의 탈출 시도로 오인한 군중들이 길가를 가득 메우며 왕가의 이동을 저지했고 이 과정에서 왕실 가족들은 성난 군중들로부터 온갖 모욕을 들어야 했다. 왕실을 호위할 예정이던 라파예트 후작 질베르 뒤 모티에는 군을 동원해서라도 돌파하자고 제의했지만 루이 16세는 유혈사태에 대한 우려로 이를 거부했다. 다음날, 국왕은 바로 의회로 달려가 이런 사태에 유감을 표했고, 의원들도 '''무지몽매한 군중들의 행위'''에 거듭 유감을 표하면서도 '''폐하께서 비선서 사제들 편만 들어주셔서 그렇습니다.'''는 늬앙스로 원인을 루이 16세 탓으로 돌렸다.
종합하자면 미라보의 죽음으로 정치적 환경이 급변한 상황에서, <파리의 혁명>지에 의하여 여론적인 환경조차 왕실에 불리해져가고 있었고, <군주제 헌법의 친구들 협회> 테러 사건으로 루이 16세의 힘이 되어줄 친군주정 세력들조차 위축되었으며, 의회에서 국왕의 권한들을 박탈하여 정치적으로도 위기에 몰린데다 부활절 사건으로 '''실질적인 신변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으며 최종적으로 국민의회 방문 과정에서 미라보의 사후 급변한 정치적 환경을 체감했기에 탈출이라는 도박수를 던진 것이다.
2. 준비
많은 사람들이 마리 앙투아네트가 쓸데없는 고집을 부려서 안그래도 가능성이 낮은 탈출 계획이 실패했다고 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여러 번이나 황당한 행각들을 벌이긴 했으나 결과론적으로 그런 철없는 행각들이 '''탈출 계획에 실패한 이유는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루이 16세가 탈출 결심을 굳히기 전부터 이미 탈출 계획은 준비되고 있었다. 스웨덴 왕국의 프랑스 주재 장교인[3] 한스 악셀 폰 페르센 백작이 평소 왕실과의 깊은 친분이 계기가 되어 그 중심에 섰는데, 해가 바뀌기 전인 1790년 12월에 이미 장인에게 탈출용으로 쓸 6인용 사륜 마차 제작을 의뢰했다. 공식적으로는 당시 파리에 거주 중이던 러시아 귀족의 과부인 코르푸 남작부인의 명의를 빌려서, 러시아로 귀국하기 위한 목적의 튼튼한 마차를 제작한다고 하였다. 다만 여기서 뇌청순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황당 발언이 나오는데, 마차의 외관을 '''눈에 잘 띄는 초록색으로 도색'''해달라고 요구했다. 물론 전달이 안되었는지 아니면 페르센이 이건 아무래도 아닌거 같다고 생각했는지 최종적으로는 평범한 갈색으로 도색되었다.
3월 들어 마리 앙투아네트는 국왕이 아직 탈출을 결심하지 못했음에도 주요 생활필수품 및 가구들을 사전에 빼돌리거나 왕자와 공주가 입을 옷을 사전에 구매하는 등 또다시 눈치없는 행각을 감행, 주위를 뒷목잡게 만들었으나 '''이러한 행위들은 감시자 측에 전혀 노출되지 않았다!'''
4월, 탈출을 결심한 국왕은 처남이기도 한 오스트리아의 황제 레오폴트 2세에게 탈출자금 1,500만 리브르를 꿔달라고 했으나 처남은 이를 거부했고 헌법을 부정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도록 요청했다.[4][5] 때문에 국왕은 국민의회에서 국왕 일가에 생활비로 주는 200만 리브르를 수령하는 날을 기다려야 했다.[6] 대신 레오폴트 2세는 오스트리아령 벨기에 국경에서 군대를 움직여, 루이 16세를 맞이할 부이예 장군이 고용한 용병 병력을 지원하며 움직일 명분을 제공해주겠다고 약속했으나 실제론 지키지 않았다. 이때문에 부이예 장군은 아무 지원도 없이 독단적으로 병력을 움직이면서도 파리의 전쟁장관과 프랑스군의 눈을 속이느라 고생했다.
6월 초~중순이 되자 준비는 절정에 달했다. 러시아의 협조를 얻어 코르프 남작부인 일행의 명의로 독일을 거쳐 러시아로 가는 위장여권이 발급되었다. 최종적으로 탈출할 인원은 국왕 루이 16세,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왕세자 루이 샤를, 공주 마리 테레즈 샤를로트, 왕의 여동생인 엘리자베트 필리핀 마리 엘렌, 그리고 왕비를 호종하는 투르젤 부인, 그리고 왕세자와 공주의 시녀 각 1명, 전령 4명이었다.
거의 동시기에 페르센 백작이 주문한 마차도 제작이 완료되어 시험주행까지 마쳤다. 말 12필이 동원됐는데 이는 탈출 당시, 국왕 일가가 탈 4륜 마차의 6마리, 시종 2명이 탈 2륜 마차의 3마리, 그리고 이들을 호종 또는 선행하며 인도하는 전령들이 이용하는 말 3마리 총 12마리였다. 참고로 4륜 마차와 2륜 마차는 각각 말 4마리와 2마리가 끌어도 충분했는데, 조금이라도 말을 덜 지치게 해서 시간을 단축시키려는 생각에서 보다 넉넉한 말을 준비한 것이다.
아울러 마차 내부에 화덕이나 와인 저장고, 요강 등을 갖춰 마차 내부에서 식사를 해결하고,[7] 요강 역시 같은 이유로 마차 내부에서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국왕 일가는 식기도 없이 빵과 고기를 먹는 체면에 어울리지 않는 행위를 감수했다. 그 이유야 당연히 탈출시간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그리고 괜히 마차에서 내렸다가 마부나 주민 등에게 얼굴을 보이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왜 마부에게도 얼굴을 보이는 걸 피하려 했냐면, 마부들을 사전에 섭외한 것이 아니라 프랑스의 역참 제도를 활용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보안 유지를 위해서 일행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었으며, 말들 또한 마차를 이끌고 하루종일 달릴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8] 과감하게 역참을 이용하기로 한 것. 다만, 국왕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다는 이유로 대관식을 거행한 랭스를 생략하기도 했고, 최종 목적지 몽메디로 가는 역참이 없기도 해서 일부 구간에서는 역참간의 구간을 넘어서는 거리를 운행할 수밖에 없었고 이들 구간에서는 마부삯을 더 높게 쳐주는 걸로 해결하기로 했다.
이들의 최종 목적지는 몽메디(Montmedy). 오스트리아령 벨기에 국경에 위치한 곳으로, 왕당파인 프랑수아 클로드 드 부이예(François Claude de Bouillé) 장군이 확실히 장악한 부대, 그리고 자체적으로 모집한 용병들로 장악하고 있던 곳이었다. 부이예 역시 겉으론 국민의회와 신정부에 충성했지만 루이 16세가 오는 대로 즉시 반혁명전쟁에 나설 계획이었다.
3. 진행
1791년 6월 20일 밤, 작전이 결행되었다. 밤 10시, 루이 16세는 아무것도 모르고 불려온 큰 동생 프로방스 백작 부부에게 그제서야 탈출계획을 말해주었고 동생 부부도 동의하면서 동생에게 추후 다른 루트를 통해 벨기에로 움직이라고 지시했다. 뒤이어 페르센 백작, 왕비의 시종이자 왕자 및 공주들의 훈육관인 투르젤 부인이 움직였다. 페르센 백작은 마부로 위장하여 직접 마차를 몰고 투르젤 부인은 왕자와 공주를 자신의 치마폭 안에 숨기는 대범함으로 감시자들의 눈을 피했다.
국왕 내외는 바로 탈출할 수 없었다. 상술했듯, 파리시청과 국민의회의 고위 인사들이 국왕 내외에게 밤 문안인사를 올리기 때문이었다. 문안인사를 받기도 전에 도망치면 당연히 국왕 일가의 도피가 조기에 노출될 터였다. 루이 16세 내외는 태연하게 이들의 문안인사를 받은 후 그들이 돌아가자 바로 왕과 왕비, 엘리자베트 공주가 야음을 틈타 차례대로 움직였다. 도중 왕비의 안내인이 마차를 세워둔 곳을 까먹어서(...) 약 1시간을 지체하긴 했지만 국왕 일가는 무사히 탈출, 파리 교외에서 기다리고 있던 페르센의 배웅을 받으며 훗날 다시 만나자는[9] 약속을 하고 헤어지게 된다. 물론 루이 16세는 그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이 날로부터 딱 19년이 되는 1810년 6월 20일에 페르센 백작은 죽게 된다.
어쨌든 21일 새벽 1시에 출발한 국왕 일행은 계획대로 역참을 활용해가며 빠른 속도로 파리에서 멀어져 갔다. 그리고 상술했던 대로 주변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마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식사와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등 철저한 모습을 보였으나, 그다음이 문제였다. 아침때쯤 되어서부터는 잠을 못자서 그런지 아니면 파리에서 멀어졌다는 안도감인지 긴장이 풀어져서 정줄놓고 마차에서 내려 산책을 하거나 지역민 및 행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미친 짓을 하기 시작했던것이다.(...) 덕분에 마차를 끌던 몇몇 마부들도 자신들이 몰고 있는 마차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고, 추격대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였던 것이다. 더군다나 정오무렵에 마차가 고장나서 수리한다고 귀중한 1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한편, 국왕 일행의 긴장이 풀어지고 있던 아침 7시경, 아침 문안인사를 위해 온 사람들을 위해 왕을 깨우러 온 시종은 침실이 텅텅 비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왕궁의 사람들이 1시간동안 왕궁을 뒤졌을때는 국왕 일가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국왕 일행이 사라졌다는 보고가 정식으로 국민의회에 보고되기까지 다시 1시간이 걸려 오전 9시경에 국민의회는 발칵 뒤집어졌다.
국민의회는 즉시 대응에 나섰다. 최우선적으로 앞으로 내려갈 모든 명령 및 법률에 들어갈 문구를 통일하기로 했는데, 이는 루이 16세가 제2의 통치권을 행사하는 것을 막고자 함이었다. 뒤이어 국민방위군 총동원법령 및 무기반출법령이 통과되었고,[10] 루이 16세가 방에 남긴 성명서를 후일을 대비한 증거물로 채택하기 위해 국회의장 알렉상드르 보아르네는 성명서 각 페이지마다 국회의원들이 서명하는 법안을 가결시켰다.[11] 그리고 이 사실을 전국에 알리는 파발을 띄우는 것과 동시에 추격대를 보냈다. 이들 추격대들은 역참을 향해 따라가면서 '''마차 2대가 새벽부터 동쪽으로 향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조금 더 따라가다가 마침내 이들이 국왕 일행이라는 목격증언을 받으면서 속도를 높인다.
밤 8시, 국왕 일행은 바렌에서 조금 남쪽에 위치한 생트메누(Sainte-Menehould)[12]에 도착했다. 원래대로라면 여기서 부이예 장군이 보낸 부하 슈아죌과 기병대 40명이 국왕 일행을 호종했어야 하는데, 하필 이 마을 일대에서 세금 납부거부 투쟁이 일어나는 중이었고, 농민들은 군대가 자신들을 무력진압하러 온거 아니냐는 공포에 시달려 병사들에게 적대적이었다. 때문에 슈아죌과 기병대는 국왕 일행을 기다리지 못하고 떠나야 했기에, 국왕 일행은 생트메누의 역참에서 말만 교체하고 떠나야 했다. 그리고 생트메누의 역참에 근무하는 드루에는 '''이전에 왕비의 얼굴을 본 적이 있었고, 아시냐 화폐의 국왕 얼굴과 비슷한 사람이 왕비 옆에 있음을 알게 된다.''' 이는 가장 중요한 목격 증언이 되었다. 그리고 이보다 더 큰 중요한 문제는, 국왕 일행을 호종하던 4명의 전령 중 한 명이 출발하면서 '''바렌으로 가자!'''고 마부에게 외쳤다는 것이다.
게다가 루이 16세는 생트메누에서 말만 교체하고 떠난 것이 아니라 식사까지 푸짐하게 하고 떠났다. 앞서 루이 16세 일가는 생트메누에 도착했을 때 시장기를 느꼈는데 그 도시의 특산품이 돼지족발찜(Pieds de porc à la Sainte-Menehould)이라는 것을 알고는 마차를 멈추게 한 후에 돼지족발 요리를 먹고 가자고 고집했다. 왕이 명령했기 때문에 신하들은 따를 수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돼지족발찜의 조리시간이 매우 길다는 것이었다. 먼저 돼지를 잡아서 족발을 채취한 후, 족발을 삶은 뒤 또 건져내서 살짝 구운 후에 슬라이스해서 빵과 같이 내어야 하기 때문에 조리시간이 최소한 4시간은 되었다. 물론 국왕 일행이 생트메누 도착 후 바렌까지 가는데 걸린 시간은 실제 조리에 걸린 시간인 4시간은 아니었다. 식당에서 한창 준비하거나 만들고 있는 요리를 주문했다던지 하여, 약 1시간 안팎으로 시간이 소모된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1시간 정도 걸려서 루이 16세는 기어이 돼지족발찜으로 식사를 한 후 다시 길을 떠났는데 이런 행태가 탈출을 늦어지게 한 요인 중 하나라고 전해진다.[13]
필사적으로 말을 달리던 추격대는 생트메누에 도착한 후 원래 베르됭[14]으로 가려했다. 왜냐하면 생트메누의 역참은 베르됭을 거쳐 메스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드루에는 목격 증언과 함께 국왕 일행이 바렌으로 향했다는 말을 추격대에 고스란히 전해주고 자신도 추격대에 합류했다.
밤 10시, 바렌에 도착한 국왕 일행은 예기치 못한 장애에 부딪친다. '''마부들이 파업'''을 한 것이다. 마부들은 역참 노선을 벗어난데다, 운행거리가 더 늘어나서, 자기들이 속한 원래 역참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난 상태여서 보너스 지급도 거부하며 돌아가겠다고 격렬히 저항했다. 어쩔수 없이 국왕 일행은 잠시 여인숙을 빌리고, 추가 보너스 지급으로 달래고 + 총칼로 위협하여 마부들을 겨우 설득시켰다. 그러나 이들이 다시 출발 준비를 하던 밤 11시, 바렌에 추격대가 나타났다. 드루에는 마을 사람들을 선동해 마차 주위를 인의 장벽으로 막았고, 지역감찰관 소스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소스는 일단 문제의 손님들을 자택 2층으로 안내한 후 사정을 물었으나 이들은 국왕 일행이 아니라고 버텼다. 그러나 하필 이 지역의 판사는 과거 궁정에서 일한 사람과 인척 관계여서 궁정에서 왕실 일행을 본 적이 있었다. 소스의 자택에 온 판사는 일행을 보자마자 '''폐하아아아아아아!!!'''를 외치며 넙죽 엎드렸고, 결국 루이 16세는 자신이 왕이라고 인정해야만 했다. 이들의 예의바른 행동에 루이 16세는 한가닥 희망을 걸고 '''나 좀 보내주셈'''을 시전했으나 이들은 국왕을 극진히 모시기만 할 뿐,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기세등등한 지역 국민방위군 병사들이 집을 포위한 가운데, 뒤늦게 도착한 부이예의 부하와 병사들이 강행돌파하여 국왕일행을 말에 태우고 탈출하는 것을 논의했으나 그러기에는 국민방위군의 병사가 너무 많았기에 불가능했다. 날이 바뀐 6월 22일 새벽 5시, 단순한 추격대가 아닌 국회의 명령을 전달받은 라파예트의 참모진들이 도착했다. 이들은 국왕에게 절하며 '''폐하가 안 계셔서 시민들이 너무 슬퍼하고 있사옵니다. 어서 돌아오셔서 혼란을 수습해주시옵소서!'''라며 파리행을 강권했고 국왕은 버텼으나 달리 방도가 없었다. 결국 국왕 일가는 마차를 타고 파리로 돌아간다.
2시간 후 부이예는 자신의 용병들과 휘하 부대를 이끌고 급히 바렌으로 달려왔으나 이미 마차는 떠난 뒤였다. 부이예는 그저 탄식하며 군대를 되돌릴 수밖에 없었고 프랑스군에서 자신을 체포하려고 하자 국경을 넘어 외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살다가 1800년 11월 14일, 61번째 생일을 닷새 남기고 병으로 죽었다.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 5절에서는 '부이예의 공모자들은 아니로다'라는 가사가 나오듯이 국가로 지금까지 욕을 먹고 있다.
한편 프로방스 백작 부부는 프랑스를 벗어나 벨기에로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4. 결과
국민의회는 국왕 일가의 탈출에 대해 일시적인 왕권정지를 끝으로 불문에 부쳤고 국왕을 모욕하거나 해를 입히려 할 경우 중형에 처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파리 시민들은 국왕이 자신들을 버리고 반혁명전쟁에 나서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매우 분개했다. 이는 프랑스 내부적으로는 국왕의 권위가 크게 실추되었고, 왕실과 반혁명세력에 대한 적개심이 크게 치솟아 결국 후일의 튈르리 궁전 습격과 뒤이은 국왕 내외의 처형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렇게만 보면 단순히 루이 16세의 자폭이자 병크로만 보이지만, 배경 항목에서 서술했듯 루이 16세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기에 탈출을 감행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물론 그 자신의 방심도 탈출실패의 원인 중 하나였지만 적어도 탈출을 시도할만한 이유는 충분했다. 그러나 신변의 위협을 느껴 감행한 탈출은 결국 실패해 자신과 가족의 죽음으로 이어지게 된다.
[1] 그림은 영국화가 토마스 팰컨 마샬(1818~1878)이 1854년에 그린 그림. 표현도 그렇고 실질적으로도 체포가 맞긴 하지만 감히 국왕 일가를 압송할 수 없었던지라, 파리에서 온 관료들과 장군들은 '''"이만 파리로 돌아가주셔야 하옵니다 폐하아아아아!!"'''만 외치며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쩔쩔매야만 했다.(...)[2] 혁명 직후 국민의회는 성직자들에게 혁명정부에 충성선서를 하라는 법(성직자기본법)을 제정하고 이를 강요했다. 이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선서 사제,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을 비선서 사제라 통칭하는데 당시 교황청은 일련의 사태에 격분, 선서하지 말라고 지시하고 있었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루이 16세도 국민의회의 압력으로 법안에 서명하긴 했지만 법안 통과 과정에서 시간을 상당히 끌었으며, 전반적으로 교황청의 의견에 동조하고 있었다. 교황으로부터 그런 법안에 협력하지 말라는 압력을 받았을 정도. 문제는 파리의 경우 혁명의 중심지로서 비선서 사제들이 활동하기 매우 어려웠고, 루이 16세가 희망하는 비선서 사제에 의한 미사가 이뤄질 환경이 아니었다는 것이다.[3] 당시 스웨덴 출신의 프랑스군 연대장이었다.[4] 혁명이 일어나 왕실친위세력이 최소한 수도 파리에서만큼은 완전히 소멸했고, 기세등당한 혁명정부와 시민들이 파리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다. 애당초 루이 16세가 파리에서 탈출을 시도한 이유가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였는데 그런 사람에게 파리에 남아 헌법 부정을 요구한다? 레오폴트 2세가 얼마나 루이 16세의 위기상황에 대해 무감각하고 또 현실감각이 없었는지 보여주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자기 자신이 위협을 못느끼니 저런 황당한 요구를 한건데, 레오폴트 2세 사후 아들 프란츠 2세가 나폴레옹에게 허구한 날 샌드백마냥 얻어터지고 수도도 함락당하고 국가와 자신의 안위를 위해 결국 딸까지 빼앗겨야 했던 걸 생각하면.(...)[5] 레오폴트 2세만이 아니라 당대 유럽 군주들이 루이 16세에 보내는 기대치가 다 비슷했다. 굳건히 반란군들에 맞서싸우고 프랑스 왕국의 국왕으로서 존엄을 보여달라는 것. 교황은 루이 16세에게 성직자법을 승인하지 말라고 요구하기도 했고. 이처럼 루이 16세의 위험에 공감하지 못하고 오히려 맞서싸우라며 부추긴 유럽 군주들은 오스트리아와 마찬가지로 나폴레옹에게 신나게 얻어터진다.(...)[6] 페르센 백작이 탈출 비용을 거의 전부 댔다. 그 금액은 오늘날(2012년) 가치로 환산하면, 약 1200억. 스웨덴 최고의 부호인 페르센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 거액이라, 본인 재산을 쏟아붓고, 왕당파 귀족들의 원조와 개인 빚을 이리저리 내어 마련했다.(출처:마리 앙투아네트 운명의 24시간,나카노 교코)[7] 와인의 경우 음주를 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식사를 하면서 물을 마신다'''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를 이해하지 않으면 '''저 놈들은 도망가면서도 고상하게 와인 챙겨먹는데요'''라고 오해하기 쉬운데, 독일이 물 대신 맥주 마신 적이 있었듯, 당시까지만 해도 프랑스 중류층 이상에서도 식사시 물이 아닌 와인을 마셨다. 왜냐면 유럽의 수질이 좋지 못한 터라 와인과 맥주가 물을 대신했기 때문이다. 물론 도수없이 마셔서 취하지는 않았다.[8] 가능이야 하겠지만 그랬다간 조금만 지나도 말들이 지쳐 속도가 떨어지고 그럼 추격대에...[9] 이때 페르센은 국왕 일가와 끝까지 함께하려 했으나 갑자기 국왕이 단호하게 그를 보내버린다. 훗날 페르센은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왕은 나와 함께 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라고 썼다.[10] 이는 루이 16세의 탈출이 필연적으로 반혁명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맞는 판단이었고. 이는 후일 루이 16세 처형의 중요한 이유가 된다.[11] 주제와 관련없는 이야기지만, 이때의 국회의장 알렉상드르 보아르네의 아내가 바로 후일 '''나폴레옹의 여인이자 프랑스 제1제국 황후가 되는''' 조제핀 드 보아르네이다.[12] 생 므느울이라고 읽기도 한다.[13] 단순하게 이야기한다면 루이 16세가 자신이 좋아하던 돼지족발 요리를 먹고 탈출길에 오르는 과정 때문에 붙잡히는 원인 중 하나가 된 것이다.[14] 제1차 세계대전의 격전인 베르됭 전투가 벌어진 그 곳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