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루데스

 

1. 개요
2. 활동
3. 평가
4. 사용 악기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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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숱이 풍성했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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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모습.탈모로 인해 2003년경부터 대머리를 유지중이다.
이때부터 마술사 모자가 트레이드 마크가 된 듯 하다.
'''Jordan Rudess'''


1. 개요


미국의 헤비메탈 키보디스트. 현재 드림 시어터의 멤버이며, 그 탁월한 테크닉에서 "The Wizard of Keyboard"(키보드의 마술사)라 불리고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당시 선생에게 음악성을 인정받아 전문교육을 받았고, 결과 '''9세의 나이로 줄리어드 음대 클래식 피아노 전공으로 입학했으나''',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ELP)의 "Tarkus"를 듣고 신디사이저와 프로그레시브 록에 빠져, 부모님과 교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솔로 프로그레시브 키보디스트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1980년에는 프로그레시브 하드록 요소를 가진 AOR 밴드 'Speedway Boulevard'의 일원으로서 메이저 데뷔를 하였다.

2. 활동


1994 년 키보드 매거진에서 Best New Talent 부문에 투표하고 Overall Best Keyboardist 부문에서는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ELP)의 키스 에머슨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그 무렵 포트노이와 페트루치는 이 키보드 매거진에서 떠오르는 신인으로 조던 루데스를 보고 가입을 제안하지만, 조던은 자신이 더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싶다며 스티브 모스의 밴드 Dixie Dregs의 투어에 참여한다.[1] 이후, 드림 시어터마이크 포트노이, 존 페트루치의 프로젝트 밴드 리퀴드 텐션 익스페리먼트(Liquid Tension Experiment 줄여서 LTE)의 외부 뮤지션으로 킹 크림슨의 베이시스트 토니 레빈과 함께 참가하였다.
이를 계기로 99년 Scenes From a Memory 앨범부터 전임 키보디스트 데렉 쉐리니언(Derek Sherinian)의 뒤를 이어 Dream Theater의 정식 멤버로 활동하게 된다.
드림시어터의 활동 뿐만아니라 세션활동과 개인 솔로앨범 작업도 활발하다. 개인 솔로 앨범은 12개를 발표하였고 리퀴드 텐션 익스페리먼트 활동과 다른 프로젝트 앨범도 냈으며 레코딩에 참여한 앨범도 수십개에 달한다.

3. 평가


'''현 시점 옌스 요한슨과 더불어 메탈계열 키보디스트 쌍벽'''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옌스 요한슨과 더불어 세션 키보디스트의 로망이자 아이돌이며, 그 자체로 넘사벽인 캐릭터이자 키보디스트계의 만능엔터테이너이다. 워낙 다양한 방면에 능하고 기본적으로 클래식 피아니스트의 테크닉을 연마한 사람이다 보니, 온갖 다채로운 퓨전의 세계를 넘나드는 사기캐 중 하나이다. 다만 이전의 키보디스트였던 케빈 무어가 테크닉 전쟁에 참여하기보단 은은하게 뒤에서 받쳐주면서 틈을 봐가며 앞으로 치고 나오는 스타일이라면, 이 사람은 아예 밴드의 음악 자체를 지배할정도의 테크닉을 뿜어대는 통에 케빈 무어 시절의 드림시어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호불호가 조금 갈린다고 한다.[2]그러나 실력적인 면과 기본적으로 열고닫는 프로젝트만 여러개에 게스트 세션 1순위로 환영받는 점에서 이를 능가할 사람은 그냥 없다고 봐도 된다.
옌스 요한슨과 비교하자면, 옌스가 밴드 내에서 키보드가 공기 취급을 받던 기존의 인식을 타파하고 솔로 타임과 필수 음원 정립 등 본격적인 락 키보디스트로서의 역할을 제시해 준 개척자(지미 헨드릭스)라면, 조던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극한의 테크니션(잉베이 말름스틴)에 가깝다. [3][4]
단순히 키보드만 잘 연주한다는 키보디스트가 아니고, 온갖 가상악기키타(Keyboard + Guitar), 아이패드는 기본에 Seaboard, Audiobus, Muse Research Receptor 등의 제품군에서 신제품이 나오면 가장 빨리 구입하고 라이브에 써먹는 얼리 어답터이기도 하다. 이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아이패드용 어플리케이션 개발에도 힘쓰고있다! 대부분 가상 신디사이저 종류이지만, 그 독창성은 매우 뛰어난듯.[5][6] ~
연주스타일은 웅장하고 스케일이 크고 빠르다.
키보디스트임에도 불구하고 일렉기타 시그니처도 발매했고 기타실력도 상당하다.

버클리 음대를 방문한 조던 루데스의 라이브 연주

4. 사용 악기



5. 기타


1956년생으로, 그만 빼고 전원 1960년대생인 드림시어터 타 멤버들에 비해 상당히 나이가 많은 편이다. 외모적으로는 대머리가 돋보이는데, 2000년대 초반의 투어 때에는 가발을 쓴 적도 있다. 실제로 2002년의 내한공연 때에도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연주했다. 6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른 멤버들과 동년배로 보이는 외모와 젊은이 못지않은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인다.
마이크 포트노이의 홈페이지에서 언급된 내용에 따르면, 드림 시어터의 첫 내한 공연이기도 한 99년도 인천 트라이포트 락 페스티벌이 조던 루데스의 DT 정식 멤버로써의 데뷔 공연이었다고 한다.
위에도 나왔지만 어렸을 때 부터 영재라서 이런 광고를 찍기도 했다.영상 연주하는 곡은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 1악장을 편곡한 것이다.
1990년대초 한국의 영창뮤직 산하의 전자악기 브랜드인 커즈와일의 보스턴 연구소에서 일했었다. 당시 건반인 PC88을 마스터 건반으로 공연 등에서 사용하기도 했다. 그 외 같은 회사의 신디사이저인 K2000K2600X도 프로덕션용으로 자주 썼으며, 음원 랙인 K2600R은 라이브마다 몇대씩 케이스에 꽂아두고 썼었다.
2010년 부터 Wizdom Music이라는 뮤직 소프트웨어 회사를 운영중이다. IOS, 안드로이드, 아이 패드등의 첨단 제품에 터치스크린 형 DAW를 깔아주는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태어날때부터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수많은 세션과 앨범 참여 등으로 보유 재산이 꽤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인 비행기도 보유 하고 있다는 설이 있다.

[1] 드림시어터가 북미투어를 할 때 잠시 조던이 투어 멤버로 도와준 적이 있긴하다.[2] 예를 들어 드림 시어터의 대표적 트랙인 Pull Me Under를 들어보면, 스튜디오 버전이나 케빈 무어때와 다른 점이, 첫 소절 후 간주때 무지막지한 트릴 속주를 때려박아주신다는 점이다. 이런걸 박아넣으니 아마추어 키보디스트들이 따라하기가....[3] 팬들 사이에서는 각각의 호불호가 갈리지만, 평론가들은 개척자의 위치에 있는 옌스를 조금 더 쳐준다. 잉베이가 지미를 존경하며 계속 커버곡을 내는 것처럼, 조던 역시 옌스에게 영향을 받았음은 사실. 재미있는 사실은 조던의 전임 키보디스트 데렉이 뽑힌 키보디스트 오디션에서 옌스는 떨어졌다(...)[4] 이걸 가지고 많은 리스너들, 심지어는 드림시어터의 일부 팬들 역시 드림시어터를 버클리 학벌주의라며 까기도 한다. 특히, 포트노이 탈퇴 이후 새 드러머 오디션에서 또 버클리 출신의 맨지니가 들어오면서 이러한 비판이 더 증가했다.[5] 돈지랄이 아니고 애초에 집안 자체도 부유하고 자신의 수입도 보통이 아니다. 단순히 쌓아놓는게 아니고 활용방법을 유튜브에 올리면서 온갖 매뉴얼을 시전한다. 애초에 전용기도 있는 사람인데 뭘 [6] 다만 좀 흠인게 라이브에서는 그 많은 신디사이저들을 배치를 안한다는점... 그게 좀 아쉬운편이다. 근데 드림 시어터의 곡들이 미친 난이도와 더불어 쉴틈이 거의 없는걸 생각하면, 많이 배치했다가 라이브를 망칠수도 있기때문에 그럴수도 있다. (메탈 키보디스트들도 보면 많아도 2~3대 밖에 배치를 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