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프라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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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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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시카고 컵스의 투수, 現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투수코치.
아마추어 시절부터 엄청난 주목을 받았고 실제로도 데뷔 당시 엄청난 기량을 선보여 '''95마일을 던지는 매덕스'''라는 찬사와 함께 리그의 미래를 책임질 아이콘으로 주목받았지만 더스티 베이커 감독의 무지막지한 혹사와 연이은 부상 때문에 오랜 기간 활약하지 못하고 사라진 비운의 아이콘. 실제로 당시 메덕스는 당시 프라이어를 두고 투구폼이 완벽하고 안정적이라며 극찬하기도 했었다.
2. 선수시절
2.1. 데뷔 전
고등학교 졸업반 시절에 10승, 방어율 0.93의 괴물스런 활약으로 뉴욕 양키스가 그를 1라운드 43픽으로 지명하며 150만 달러의 계약금을 제시했지만, 프라이어는 이를 거부하고 아버지의 모교인 밴더빌트 대학교에 진학한다. 진학한지 1년만에 야구 명문인 USC로 전학한 프라이어는 역대 최고의 대학 투수라는 찬사를 받으며 이름을 날렸고, 2001년 드래프트 최대어로 꼽힌다. 당시 전체 1번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팀은 미네소타 트윈스였는데, 미네소타는 고교생 포수인 조 마우어를 지명했고 그 다음 지명권 보유팀인 시카고 컵스가 결국 프라이어를 잡는 데 성공한다. 컵스는 그에게 사이닝 보너스 400만 달러 포함 5년 1,050만 달러의 특급 계약을 해주며[2] 큰 기대를 걸었다.
2.2. 메이저리그를 폭격한 신인 투수
2002시즌, 더블 A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프라이어는 손쉽게 마이너리그를 폭격하고, 5월 22일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전에 선발 등판하며 메이저리그에 데뷔한다. 데뷔전에서 6이닝동안 삼진 10개를 빼앗아내며 2실점으로 호투한 프라이어는 6승 6패 ERA 3.32의 준수한 성적으로 첫 시즌을 마친다. 같은 리그의 또다른 천재 플로리다 말린스의 동갑내기 조시 베켓과 함께 슈퍼 신인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2003시즌, 베켓이 반복되는 손가락 물집으로 정규시즌에서 고생하던 사이에 프라이어는 올스타에 선발되었고 시즌 최종 18승 6패 ERA 2.43, 탈삼진 245개로 마무리 하였다. 최근 주목받는 WAR로 환산해볼 때 bWAR 8.0, fWAR 7.8의 엄청난 성적을 거두며 일약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선발투수로 도약하였다. 사이영상 투표에서도 에릭 가니에, 제이슨 슈미트에 이은 3위를 차지했다. 컵스는 프라이어, 카를로스 잠브라노, 케리 우드 삼각 편대를 앞세워 지구 우승을 차지하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게 된다.
컵스는 디비전 시리즈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상대했다. 프라이어는 리글리 필드에서 열린 시리즈 3차전에서 포스트시즌 데뷔전을 치렀는데 상대 선발 투수는 그렉 매덕스였다. 매덕스는 6이닝 2실점으로 준수한 피칭을 했지만 프라이어는 9이닝 133구 7탈삼진 2피안타 1실점으로 완투승을 거두는 괴력을 보였고, 컵스는 프라이어와 함께 1,5차전에서 완벽한 투구를 보여준 케리 우드의 활약을 앞세워 5차전 혈전끝에 브레이브스를 제압하며 1908년 월드 시리즈 이후 95년만에 포스트시즌 시리즈 승리를 거두었다.
그렇게 진출한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플로리다 말린스를 만났는데, 프라이어는 2차전에 등판해 7이닝 2실점으로 승리투수를 챙겼고, 팀은 3승 2패로 앞서나가며 월드시리즈 진출에 단 1승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6차전 선발로 등판한 프라이어는 7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았고, 팀 타선도 3점을 뽑아내면서 월드시리즈 진출이 눈앞에 다가오게 된다.
하지만 컵스가 3-0으로 앞선 8회초 플로리다의 공격 상황. 1사 2루에서 루이스 카스티요[3] 가 친 파울 플라이성 타구가 좌익수 모이세스 알루에게 날아갔다. 알루가 타구를 잡으려는 순간, 관중석에 앉아있던 스티브 바트만이라는 컵스 팬이 얼떨결에 그 공을 낚아채면서 비극이 시작되었다.(...) 평정심을 잃어버린 프라이어는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고, 컵스는 그 이닝에서만 무려 8점을 빼앗기며 역전패를 당하고 만다.[4] 결국 컵스는 마지막 7차전에서도 패배하며 월드시리즈 진출을 눈 앞에서 날려버리게 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누가 알았으랴. 이것이 프라이어의 불꽃 같았던 1년이었다.[5]
2.3. 너무 빠른 몰락
어쨌든 많은 팬들은 프라이어가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대투수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이듬해부터 프라이어는 점점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시즌을 부상자 명단에서 시작했고, 6승 4패 ERA 4.02의 다소 실망스런 성적을 찍었고, 2005년에도 부상 때문에 시즌 초 몇 경기를 결장했다. 복귀 후 11승 7패 ERA 3.67로 어느 정도 회복할 기미를 보였으나 브래드 호프의 타구에 팔꿈치를 강타당하며 또 다시 부상자 명단에 등재되었다. 2006년에는 옆구리 부상에 시달리며 1승 6패 ERA 7.21이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다가 어깨 건염으로 시즌 아웃된다.
2007시즌, 컵스는 시범경기에서 처참한 성적을 기록한 프라이어 대신 웨이드 밀러를 선발 로테이션에 집어넣었고, 프라이어는 부상자 명단에 오르게 된다. 이미 90마일 중반대의 불같은 강속구는 실종된지 오래되었고, 제구력과 변화구도 예전만 못했다. 결국 시즌 후, 프라이어는 컵스에서 방출된다.
그는 고향팀이기도 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100만 달러의 인센티브 계약을 하며 재기를 노렸지만 어깨 수술을 받으며 또다시 주저앉았고, 그의 부활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본 파드리스는 결국 이듬해인 2009시즌 프라이어를 방출한다.
2010시즌에는 독립리그 팀인 오렌지 카운티 플라이어스에 입단해서 뛰다가, 텍사스 레인저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하며 부활을 노렸지만 또다시 방출. 결국 시즌 종료 후 뉴욕 양키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는다. 2011시즌 시범경기에서 88마일 똥볼을 던지는 그의 모습을 보며 많은 팬들이 눈물지었다고.(...) 그리고 시즌 들어서자 예상대로 부상 때문에 골골대면서 마이너리그 10경기에 나와 12이닝을 투구하는 데 그쳤다. 안타깝지만 재기 가능성은 많이 희박해 보인다.
2013년 신시내티 레즈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이로써 컵스 시절 혹사로 유명했던 더스티 베이커 감독과 재회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재기에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같은해 12월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3. 추락의 원인?
일단 더스티 베이커 감독의 '''혹사'''가 가장 큰 원인. 프라이어는 입단 첫 해 마이너와 메이저를 통틀어 167⅔이닝을 소화했으며, 이듬해인 2003년에는 211⅓이닝을 소화함과 동시에 메이저리그 1위의 평균 투구수를 기록했다.(113.3개). 특히 그 해 9월에 나선 6경기의 등판에서는 평균 투구수가 거의 130개였으니 할 말이 없는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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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그의 투구폼에도 문제가 많았다는 평가도 있다. 프라이어의 투구폼은 투구시 양 팔꿈치가 어깨 위로 올라가는 '''인버티드-W''' 투구폼으로, 이 투구폼 때문에 어깨와 팔꿈치에 상당한 무리가 갔다는 것.[6] 정말 아이러니한 건, 프라이어가 데뷔할 당시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부상 위험이 없는 완벽한 투구폼을 가졌다며 극찬을 했었다는 사실이다.
다만 진짜 역W자 투구폼이 위험한지는 의견이 분분한 상태인데 마크 프라이어도 '''투구폼 때문에 부상 당한적은 단 한번도 없다'''. 2003년 혹사로 신체에 상당한 무리가 갔지만 2004년에 발발한 아킬레스건 부상은 투구폼과 별 상관없는 부상이고, 2005년에 받은 팔꿈치 부상도 '''타구에 맞아서 생긴 부상'''이지 투구폼때문에 발생한 부상이 아니다. 2006년 옆구리 부상도 마찬가지.
역W 투구폼 자체도 투구이론가마다 의견이 다르며, 딱히 위험하지 않고 팔을 채찍처럼 휘둘러 구위를 강화시킬 수 있는 좋은 투구폼이라는 의견도 많다. 애초 최근의 투구이론 자체가 모든 선수들에게 적용되는 정석이란 게 없다는 쪽이다. '''인버티드 W 투구폼 투수중에서 토미 존 서저리를 받은 투수들은 전년도에 200이닝 이상 던진 95마일의 구속을 가진 강속구 투수'''라는 공통점이 있다. 어떤 폼으로 던졌다 해도 망가지는 게 그렇게까지 이상하진 않은 수준인데 투수의 몸에 가장 부담이 많이 가는 구종은 의외로 95마일 대의 패스트볼이기 때문.[7] 물론 그런 위험하다 여겨지는 투구폼을 가졌고 95마일 던져대는 투수한테 평균 130구로 200이닝 이상을 꽉꽉 채운다는 게 미친 짓이긴 하지만...
4. 은퇴 후
은퇴 선언후 고향 연고 팀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운영팀 어시스턴트로 일하게 되었다. 특별 보좌 같은 역할은 아니고 책상도 없는 말단 수준이지만, 마운드 위에서 그랬듯 엄청난 투지와 의지로 빠르게 일을 습득하고 있다고 한다. 이로서 프라이어는 제 2의 야구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이후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2018년에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프런트로 부임하면서 인연을 맺었던 데이브 로버츠 감독의 부름을 받고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불펜 코치로 부임한다. 2020년부터는 투수코치 은퇴 후 사장 특별보좌로 영전하는 릭 허니컷을 대신해 투수코치를 맡게 되었다.
2020년까지의 모습은 그럴대로 무난하게 다저스에 잘 안착하는 모습. 결국 2020년 월드 시리즈에서 팀이 우승함에 따라 선수로는 끝내 얻지 못한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를 투수코치로 받을 수 있었다.
5. 연도별 성적
6. 여담
-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와 닮은점이 많은데, 90마일 중반대 패스트볼을 뿌렸던 파이어볼러였던[8] 점, 인버티드 W형 투구폼, 그리고 선술한대로 출생지까지 같다. 그리고 데뷔 이전부터 괴물신인으로 주목받으면서 칼같이 1라운드에 지명되었고, 토미 존 서저리까지 받은 것이 공통점이다.
7. 관련 문서
[1] 공교롭게도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와 동향이다.[2] 물론 스캇 보라스의 힘이 컸다. 그리고 09년이 되자 보라스는 프라이어와 동향인 어떤 괴수를 데리고 나타나서 4년 1567만 불의 계약을 따낸다.[3] 히 드랍 더 볼의 그 카스티요 맞다...[4] 단 이 경기에서 8실점 빅 이닝을 허용한 시발점은 스티브 바트만의 파울볼 사건보다는 그 이후에 유격수 알렉스 곤잘레스가 평범한 병살성 땅볼을 처리하지 못하고 실책을 저지른 것이 더 큰 이유였다고 볼 수 있다. 당시 타이밍상 이 땅볼이 제대로 처리되었다면 무조건 더블 플레이 상황이 나올 수밖에 없었기 때문.[5] 정규 시즌을 부상으로 제대로 보내지 못한 베켓은 말린스를 하드캐리하며 월드시리즈 우승을 안겼다.[6] 프라이어가 실제로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컵스 관계자와 프라이어는 이를 부인했으며 공식적으로 알려진 부상 또는 수술 기록에는 토미 존 서저리가 없지만, 전문가들은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았을 것이라고 여긴다. 공식적으로는 프라이어의 부상은 어깨 부상이다. [7] 정지 상태에서 90마일 이상의 속도로 무언가를 던지는 것 자체가 이미 팔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8] 물론 스트라스버그는 아직 강속구를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