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푸투
1. 개요
'''마푸투''' 또는 '''마푸토'''는 모잠비크의 수도이자 최대도시로, 국토 남단에 위치해있다. 시내 인구는 100만, 광역 인구는 약 177만 명 정도로 추정되며 모잠비크 유일의 인구가 밀집된 곳이다. 시내 곳곳에 가로수로 아카시아 나무가 심어져 있어 아카시아의 도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폭 넓은 강 하구와 잔잔한 마푸투 만이 만나는 지점에 세워진 천혜의 항구를 끼고 도시가 위치한다.
포르투갈이 지배했을 당시에 지어진 건물들이 많이 존재한다.
2. 역사
1975년 독립 이전까지는 이 지역을 처음 탐사한 포르투갈 탐험가의 이름을 따 로렌수 마르케스(Lourenço Marques)라고 불렀다.
포르투갈령 모잠비크의 수도는 나라 이름의 유래가 된 북부의 모잠비크 섬이었지만, 19세기 후반 요하네스버그 인근 지역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당시 트란스발 공화국은 적대적인 영국의 세력권이 아니면서 수도 프리토리아에서 가장 가까이 항구를 확보할 수 있는 오늘날의 마푸투 만까지 철도가 부설하게 된다. 이로 인해 그저 해안 요새 정도에 불과했던 강어귀가 중요한 항구도시로 성장하게되고 모잠비크 식민지 내 가장 중요한 도시로 떠오르게 되면서 수도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이후에 단순 항구로써뿐 아니라 온화한 기후, 해안을 따라 길게 이어진 백사장, 식민지 양식의 고풍스런 건축물들과 모더니즘 건축물이 조화를 이룬 도시로 인도양의 진주라는 별명을 가진 휴양도시로 인접국인 남아공 뿐 아니라 유럽 등지에서도 인기를 끌게 된다. 비록 식민지였지만 바로 코 앞의 남아공이 아파르트헤이트와 청교도적 정책 아래 억압적 사회 분위기였던데 반해, 로렌수마르케스는 같은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앙골라에 비해 본토에서 멀리 떨어지고 경제적 중요성이 낮아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낮아, 사회 통제에 신물이 난 포르투갈 본토인의 이주가 활발한 곳이었다. 이러한 배경 아래 훨씬 온건하고 국제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 같은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고아에서 넘어온 인도인, 마카오 등지에서 넘어온 중국인, 현지 흑인, 포르투갈, 남아공, 영국 등지 출신의 백인이 섞인 코스모폴리스였다. 포르투갈의 국민 영웅인 에우제비우가 이러한 시기에 그 재능을 인정받아 본토로 진출할 수 있었다. 당시 로렌수마르케스를 기반으로 한 영어 라디오 채널이었던 LM라디오는 남아프리카 정부의 검열에서 자유롭게 서구 음악 편성이 가능해, 남아공 국영방송인 SABC 라디오보다 더 많은 청취자를 확보하여 1970년대 남아공 대중음악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1974년 리스본에서 발발한 카네이션 혁명의 여파로 포르투갈의 식민지들이 전부 독립하게 되면서 모잠비크 또한 1975년 독립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이름을 마푸투 만 남쪽에 있던 마푸투 강의 이름을 따 오늘날의 이름을 갖게 된다. 정작 마푸투는 마푸투 강과 접해 있지도 않은데 이 이름을 따게 된 이유는 무장 독립 운동 당시 군가 가사에 모잠비크 국토를 상징적으로 로부마[2] 에서 마푸투[3] 까지 라고 묘사한 구절이 있었던 것이 주요한 계기였다.
독립 직후 내전이 발발하면서 마푸투 인근 지역에서도 교전이 발발하는 등 도시가 장기간 쇠퇴하게 된다. 결국 내전이 끝난 1992년 이후 한동안 침체기를 이어가다가 2000년대 들어 발전하기 시작하고, 2010년 모잠비크 가스전 발견으로 경제 성장에 청신호가 켜지며 쇼핑몰이라든지, 공항이라든지, 주택단지라든지 활발히 개발되고 있다. 현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대신하여 동아프리카 지역에 물품을 유통하는 산업으로 경제를 키우고 있다.
3. 기후
모잠비크 국토 상당부분은 남회귀선 북쪽에 위치한 열대기후지만, 마푸투를 비롯한 주변지역은 남회귀선 이남에 위치해 아열대에 가까운 비교적 온화한 기후를 보인다. 여름에는 최대 40도까지 올라가지만, 겨울에는 최저 14도 정도를 기록하며 생각보다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날씨를 보인다. 여름 우기에는 저녁이나 새벽에 열대성 스콜이 말 그대로 쏟아지는 수준이지만 겨울 건기에는 비 오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다.
4. 경제 및 산업
남아공과의 국경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한 덕에 남아공 유통망이 마푸투에 직접 진출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밀접하다. 4시간 정도면 넬스프루이트라는 도시까지 갈 수 있어 주말이면 현지인들도 남아공으로 쇼핑 겸 떠나는 경우가 많다. 마푸투 덕분에 넬스프루이트에 상업 단지가 형성되었고, 남아공은 모잠비크로, 모잠비크는 말라위, 부룬디, 르완다로 물자를 전달하는 중요한 산업국가가 되었다.
또 레바논계 및 인도계가 상권을 쥐고 있어 이들이 모잠비크의 부유층을 형성하고 있다.
공업은 전반적으로 경공업이 많지만, 교외 마톨라 지역에 위치한 알루미늄 정제소인 모잘(MOZAL)은 국가 수출액의 30%, 전기 사용량의 45%를 차지할 정도의 규모를 갖고 있다. 일본의 미츠비시사 및 남아공에서 투자하여 공해산업을 후진국인 모잠비크로 이전하였다는 비판을 듣긴 하지만 모잠비크 경제 수준이 워낙 낮기에 이 공장 하나로 파급력이 상당히 큰 편이다.
5. 여담
도시 내에 과거 사회주의 정권 시절 명명되었던 대표적인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의 이름을 딴 대로명이 많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