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잠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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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잠비크 공화국
República de Moçamb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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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1]
국장
<colbgcolor=#fce100><colcolor=#000000> 면적
801,590㎢ (세계 35위)
인구
32,163,045명(2021년) | 세계 46위
수도
마푸투
정치 체제
대통령제
민주주의 지수
167개국 중 122위(2020년)[권위주의]
대통령
필리프 뉴시(Filipe Nyusi)
총리
카를루스 아고스티뉴 두 로자리우
언어
공용어: 포르투갈어
일부 지역: 스와힐리어, 반투어군
종교
가톨릭 24%, 이슬람 18% 기타 민간신앙 및 기독교 58%
GDP
GDP: 123억 4500만 $(2017.10)
PPP: 373억 8600만 $(2017.10)
1인당 GDP
GDP: 484$(2020.2)
PPP: 1,266$(2017.10)[2]
시간대
UTC +2
화폐단위
메티칼
대한수교현황
남북 동시 수교(1993년)
국가 도메인
.mz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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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2.1. 현대 이전
2.2. 현대
3. 상징물
3.1. 국기
3.2. 국장
3.3. 국가
4. 군사
5. 경제
6. 자연
7. 생활
8. 언어
9. 민족
10. 종교
11. 스포츠
12. 외교


1. 개요


아프리카 대륙 남동부의 국가. 정식국명은 '모잠비크 공화국'이다. 수도는 국토 끝자락에 있는 마푸투(Maputo). 국토면적은 80만 2000㎢, 인구는 약 3100만 명이다.
전국시대 일본에서 오다 노부나가의 호위를 맡았던 야스케가 이 나라 출신이라 추정된다. 일본에 노예로 팔려왔다가 노부나가를 섬기게 된 것.[3]
알 보울리가 여기에서 태어났다.

2. 역사



2.1. 현대 이전


나라 하나(잠비아)를 사이에 두고 있는 앙골라와는 포르투갈을 상대로 독립 전쟁을 함께 치렀던 관계이다. 모잠비크는 앙골라보다는 세계사에 아주 조금 더 이름이 알려졌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미 7~8세기 이슬람 상인들이 흑인 노예와 지역 작물을 교역하기 위해 왔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모잠비크라는 이름도 아랍 상인인 무사 음비키(Mussa Mbiki)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본격적인 개발은 15~16세기 포르투갈인들의 손으로 이루어졌으며, 앙골라처럼 마푸투, 미칭가, 베이라, 팔마, 포르토아멜리아 등 많은 항구도시가 생겨났다. 물론 모두 포르투갈이 인도-말라카-향료제도-중국-일본으로 거쳐 가기 위한 중계점이자 보급도시였다.
1898년에는 수도가 "일랴"(ilha) 라고도 불리는 도시 Ilha de Moçambique (일랴 드 모삼비크)에서 현재의 수도 마푸투(Maputo)로 천도 되었다
그 후 네덜란드, 영국이 침입을 꾀하였으나 이루지 못하고, 19세기 말에는 포르투갈의 특허 회사가 내륙부 개발을 추진하였다. 1911년 한때 자치 식민지가 되었으나 1926년 포르투갈의 쿠데타 이후 그 직할 식민지가 되고, 1951년에는 포르투갈의 와 동격의 해외령이 되었다.
모잠비크는 앙골라와는 달리 브라질 개척을 위한 흑인 노예를 그렇게 많이는 보내지 않은 듯하다. 브라질에서 대서양만 건너면 나오는 앙골라와 달리 희망봉을 지나 한참 올라간 아프리카 동해안에 위치해 운송 단가가 올라갔기 때문으로, 19세기 열강의 아프리카 침탈이 격화하자 포르투갈이 비로소 내륙 지대 개발에 관심을 보여 현재와 같은 국경이 형성되었다.

2.2. 현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60년대에 아프리카 국가들의 식민지 독립 열풍에 영향을 받아 1964년에 사회주의 성향의 민족주의 독립운동 단체인 모잠비크 해방전선(FRELIMO)가 결성되어 FRELIMO의 주도 아래 독립전쟁이 일어났고, 포르투갈 제2공화국은 진압을 위해 막대한 전비와 포르투갈군 병력을 쏟아부으면서, 1964년 이후에 모잠비크는 포르투갈군과 FRELIMO 식민지 독립군 게릴라 사이에 전쟁터가 되었다. 한편 당시 FRELIMO는 중국, 쿠바, 소련, 불가리아, 체코슬로바키아 등 공산주의권 제2세계 국가들을 비롯해[4] 탄자니아잠비아, 이집트 등 아프리카 국가들의 지원을 받았고, 당시 남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반공을 내세우며 해당 지역내에 급진 사회주의 성향의 흑인국가가 들어서는 것을 무척이나 경계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로디지아(현재의 짐바브웨) 등 냉전 시기에 인종차별 정책으로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있었던 남아프리카의 백인 정권 국가들과[5] 흑인이 지배하는 흑인국가였음에도 반공주의 노선을 표방하던 말라위포르투갈을 지원하면서 급기야 전쟁은 국제 대리전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다가 결국 1974년에 모잠비크의 적국이자 식민지 종주국이었던 포르투갈에서 카네이션 혁명으로 아프리카의 식민지 유지를 고집하던 포르투갈 제2공화국 독재 정권이 붕괴되고 이후 들어선 포르투갈 민주주의 신정부의 승인으로 모잠비크는 이듬해인 1975년에 독립을 쟁취했다.
앙골라처럼 모잠비크도 소련쿠바 등의 지원을 받아 사회주의 정권인 모잠비크 인민 공화국을 세웠으며, 국기에 AK-47소총이 그려져 있는 유일무이한 국가이기도 하다. 이 나라의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독립 이후 초기에는 FRELIMO가 일당제를 취하고 FRELIMO의 지도자였던 마셸이 초대 대통령이 되어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였다. 마셸정권은 국유화정책을 추진하고, 백인국가였었던 로디지아의 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 연맹(ZANU)과 남아공의 아프리카 민족 회의(ANC) 등 흑인 정치 단체들의 반정부 운동을 지원하였다. 이에 로디지아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친공산주의 정책을 펼치던 모잠비크의 FRELIMO 정부에 반감을 갖고 있었던 모잠비크내의 반공 흑인 세력들을 지원하였고 이들은 로디지아와 남아공의 지원 하에 민족저항운동(Renamo)을 조직하여 1977년에 모잠비크의 FRELIMO 정권을 상대로 한 반군 무장투쟁을 시작함으로써 모잠비크는 반공/우익 성향의 Renamo 반군과 친공/좌익 성향의 FRELIMO 정부군 간 내전이 벌어졌다.그러나 내전이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아 Renamo를 지원하던 남아프리카의 백인 정권 국가들중 로디지아는 1980년에 로디지아를 통치하던 소수의 백인 지배층들이 다수의 아프리카 흑인들의 저항에 굴복해 흑인국가인 짐바브웨로 독립하면서 Renamo에 대한 지원이 중단되었고 1980년대까지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끝까지 유지하며 백인 정권 체제를 버티고 있었던 남아공과 흑인국가였지만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 당시 포르투갈을 지지하며 모잠비크의 독립을 방해하였고 모잠비크 독립 후 모잠비크의 집권 정당이 된 FRELIMO를 여전히 못마땅해하던 말라위가 Renamo의 최대 지원국이 되었다. 그러다가 말라위는 냉전 체제가 끝나가던 1987년에 Renamo 반군에 대한 지원을 끊고 1987년 이후부터 FRELIMO 정부군을 지원하면서 모잠비크 내전에서 반군 단체 Renamo를 지원하는 아프리카 국가는 강화되는 국제사회의 고립과 제제 압박에 백인지배를 고집하던 남아프리카 공화국 단 하나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결국 남아공조차도 냉전 체제가 붕괴되고 1990년대 초에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폐지하고 과거 적대관계에 있었던 모잠비크, 나미비아, 앙골라 등 아프리카 주변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게 되면서 모잠비크의 반군 단체인 Renamo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6년 10월 대통령 마셸이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하자 후임으로 온건파인 조아킹 알베르투 시사누가 대통령에 선출되었고 1990년 사회주의노선을 포기하면서 복수정당제와 대통령직선제를 채택하고, 국명도 모잠비크 인민공화국에서 모잠비크 공화국으로 변경하였다.
그해 6월 반군과 휴전을 위한 평화협정을 결정하고 1992년 10월 협정에 조인함으로써 내전을 끝냈다. 1994년 10월 독립 이후 최초의 다당제 자유총선거를 실시, 반군세력이 패배를 인정하고 정치안정에 협조하였다. 이어 11월 대통령선거에서도 조아킹 알베르투 시사누가 53%의 지지를 획득하여 재선되었다.
1999년 12월의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한 후 시사누는 다시 대통령으로 취임하였으나 야당은 선거부정을 이유로 재선거를 주장하고 2000년 11월 100여 명의 사망자를 낸 폭동으로 한때 국내정세가 혼란하기도 했다. 이후 12월에 여·야 대타협으로 국내정세가 비교적 안정되었다. 이후 조아킹 알베르투 시사누는 2004년도 대통령선거 불출마를 선언하였으며, 모잠비크는 아프리카의 민주화 및 시장경제개혁의 시범국가로 부상중이다.
사실 별다른 지하자원이 없었던 탓에(앙골라와 비교하면 엄청난 아이러니다) 타 아프리카 국가들에 비하면 별다른 문제 없이 민주주의 국가로 전향했다(그럼에도 국기에 아직도 AK소총이 그려져 있다. 독립전쟁에 소요된 총이니까 봐주는 듯...).
하지만 이것도 2006년도에 ENI 에서 세계 제 2위 규모의 가스전을 발견하면서 바뀌었다. 한국가스공사도 약 10% 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내각책임제를 도입하였으며 현재도 구 공산당이었던 모잠비크 해방전선이 민주사회주의로 전향후 집권하고 있다.
모잠비크는 2013년 ~ 2016년사이에 공기업과 관련된 대출사기가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前 재무장관이 크레디트 스위스 전 직원과 짜고 공기업 대출을 받아 횡령한 것으로 밝혀졌다.#
2019년 3월에 모잠비크는 사이클론의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도시의 피해가 매우 심각했다.# 또한, 콜레라의 위협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콜레라가 퍼지면서 모잠비크내에서 콜레라 감염건수가 139건으로 늘어났다.#
2019년 8월 1일에 필리프 뉴시 대통령과 최대 야당 레나모의 지도자 오수푸 모마드가 내전이 종결된지 27년만에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2020년 8월에 모잠비크의 주요 야당 기관지 건물이 화염병 공격을 받아 전소되었다.#
9월 14일에 모잠비크에서 한 여성이 군인 복장을 한 사람들에 의해 총살당한 동영상이 퍼지면서 모잠비크 정부에서 조사에 나섰다.#

3. 상징물



3.1.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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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직후 1983년까지 사용한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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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잠깐 사용된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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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기
모잠비크의 국기는 1975년 포르투갈에서 독립했을 당시에는 독립투쟁 집단인 모잠비크 해방전선의 기를 그대로 사용하였다가 1983년 국기의 디자인을 수정하여 제정하였다. 위로부터 초록, 하양, 검정, 하양, 노랑과 왼쪽에 빨간 삼각형이 있고 거기에는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문장이 새겨져있다. 초록은 농업과 농민, 국토와 삼림을, 검정은 흑인 및 범아프리카를, 노랑은 광물자원과 나라의 광명을 상징한다. 왼쪽에 있는 빨강은 모잠비크 독립투사들의 독립 정신을 상징하며 노란 별이 새겨진 가운데 책과 곡괭이, AK-47 소총이 새겨져있다. 책은 교육과 배움 그리고 미래를 상징하고 곡괭이는 이 나라가 농업국가임을 상징하며 총은 외적 및 포르투갈 등 식민지배자들로부터의 나라에 대한 사수 및 독립운동을 뜻한다. 이 나라의 표어인 교육, 생산, 투쟁을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다.
1983년부터 독립 당시 써왔던 해방전선기 대신 새로운 디자인의 국기를 제정하여 사용하고 있다.

3.2.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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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잠비크의 국장은 나라의 표어인 배움, 성실, 사수라는 뜻을 가진 물건들과 노랑바탕에 여명을 뜻하는 일출, 붉은별이 새겨져있다. 옆에는 옥수수와 식물이 새겨져있다. 묘하게 북한의 국장과 닮은건 같은 사회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그렇다. 당시 사회주의 국가들은 소련의 국장 형태, 즉 밀 이삭이 원 둘레에 있고 원 위쪽에 붉은 별이 있는 형태의 국장을 썼는데, 모잠비크가 공산주의를 포기한 이후에도 국장의 República Popular de Moçambique 즉 모잠비크 인민 공화국이라는 글자를 República de Moçambique(모잠비크 공화국)으로 바꾸기만 하고 냅두었기 때문이다.

3.3. 국가



독립 직후 모잠비크 인민 공화국 시절에는 '모잠비크 해방전선은 영원하리(Viva, Viva a FRELIMO)'라는 집권당찬양가를 사용했다.

2002년에 '사랑스러운 조국(Pátria Amada)'으로 바뀌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4. 군사




5. 경제


경제적으로 1990년대 초반에 저점을 찍었고 2000년대 이후로는 고성장세를 기록하고는 있지만 최근의 저조한 경제 성장으로 예상보다 경제 성장을 하지 못해 1인당 GDP는 2020년 하반기까지 500$에도 못 미친다. 500$를 찍기 위해서는 2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예측도 있다. 그래도 무역량이 상당히 많은 편으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중에서 15위권 안에 든다. 주요 교역국으로는 이웃한 남아프리카 공화국, 구 종주국인 포르투갈, 같은 포어권인 앙골라, 자원 블랙홀 중국 등이 손꼽힌다. 특히 남아공의 경우, 수도 마푸투는 남아공 국경에서 2시간 남짓 거리라 남아공 유통망이 직접 진출할 정도. 21세기 들어 내륙국인 보츠와나 등의 물류량을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마푸투까지의 철도 연결 사업이 진행되고 있어 모잠비크는 큰 수요를 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금도 베이라, 마푸투 등 모잠비크의 항구도시들은 이웃 나라의 자원이나 물품을 수출, 수입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IMF의 발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모잠비크의 경제성장률은 14%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2016년에는 외채도입과 관련해서 IMF와 마찰을 빚어버리는 바람에 원조가 크게 줄어들고 내부적으로도 정치상황이 불안해져서 상당한 침체를 겪고 있는 중이라서 2017년 기준 14%로 감소한 것이다.
현실은 외채문제로 외국인 직접투자가 곤두박질치며 실질 경제성장률이 2017년 3%로 주저 앉아버렸다. 외채문제와 저유가에 따른 가스전 개발 지연이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치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2019년엔 중부지방에 심각한 사이클론 피해를 입어 전망이 더욱 암울해진 상황.
하지만 그럼에도 경제적으로 워낙 빈익빈부익부가 심하고 가난한 국가인지라 많은 국민들이 아프리카에서 경제적으로 잘 사는 인접국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건너 가서 외노자로 일하고 있다. 실제로 MBC 다큐멘터리인 '아프리카의 눈물'에서도 남아공에 가서 돈 벌고 싶다는 말을 한 소년도 나올 정도였다.

6.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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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베지 강이 국토를 남북으로 쪼개고 있으나 별다른 기후나 민족의 차이는 없다. 동아프리카 열곡대 남단을 차지하여 남부 해안의 모잠비크평야와 북부의 고원으로 나뉘는데, 고원부에서 잠베지강이 흘러나와 평야를 가로질러 모잠비크 해협으로 흘러들어 간다.
동북부의 남북으로 길게 뻗은 니아사호에서 흘러나오는 시레강은 잠베지강의 지류를 형성하고 하곡에 의하여 동쪽의 니아사고원과 서쪽의 마니카고원으로 나뉜다. 남단부의 일부 이외는 남회귀선 이하에 위치하며, 4∼10월은 건기, 11∼3월은 우기이다.
해안부의 1월 기온은 25∼28℃, 7월 기온은 18∼24℃로서 사바나기후가 대부분이다. 연평균강우량은 고지대 1,420㎜, 남동부 500∼750㎜이며, 남쪽 지방은 자주 가뭄이 든다. 전체 국토면적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경작가능지 5.43%, 농경지 0.29%, 삼림 및 기타 94.28% (2005년)이다. 플랜테이션 농업이 발달했고 정치적으로 생각보다 안정되어 있으며, 수도가 있는 국가 남부지역은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경제적으로 밀접하다.
이 나라와 마다가스카르 사이에 있는 해협이 모잠비크 해협으로 불리며, 아프리카 남부에서는 사막화 위험도가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이다.
본격적으로 천연가스 개발에 착수한다고 한다! 그동안 드넓은 영토 버프를 업은 자본주의 체제임에도 평균적인 개도국들보다 못하다는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경제에 큰 활력이 되어줄 듯. 한국도 기대하고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링크
북서부에는 말라위 호가 존재하며 모잠비크는 말라위 호를 통해 말라위와 접해 있다. 모잠비크령 말라위 호 내의 섬들은 사실상 모잠비크와만 교류하고 있지만 말라위의 섬이다.

7. 생활


아프리카의 국가 대부분이 그렇듯 수도인 마푸토에 모든 인프라가 편중되어 있어 대한민국의 광역시 정도는 아니더라도 지방 대도시와 비슷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이건 대한민국의 부산과 같은 포지션인 해안도시 베이라도 마찬가지.
한국인이 생활하는데 큰 불편함은 없다. 간단한 의사소통은 영어로도 가능하고 중국인이 워낙 많은지라 두부와 같은 식료품을 구하기도 수월하다.[6]
하지만 대도시인 만큼 상대적으로 치안은 불안한 편이다. 외국인의 자녀를 유괴하여 몸값을 요구하거나 하는 강력범죄가 종종 일어나니 현지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여유가 있음을 부러 티내지는 말자. 범죄의 타겟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가가 좀 비싸긴 한데 아프리카 어느 곳을 가더라도 외국인이 다니는 식당, 숙박업소 등은 모두 대한민국과 비슷하거나 조금 저렴한 가격대이니 크게 불편함이 없다면 식당이나 식료품 정도는 현지인이 애용하는 곳을 이용하길 추천한다. 대신 숙박업소는 무조건 외국인들이 많이 드나드는 비싼 곳으로 가길 당부한다.[7]
본인이 죽을 만큼 아픈데 현지 의료진을 믿을 수가 없고 외국인이 운영하는 개인 병원은 비싸서 못 가겠다 싶으면 북한인 의사의 가족들을 심심치 않게 마주칠 수 있으니 한 번 부탁해보자. 예전에는 같이 식사도 하고 아프다 하면 왕진도 와주고 했다는데 요즘(2017년)은 때가 때인지라 그런 거 없다. 서로 교류는 없지만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말하지 않아도 동포라는 걸 직감하기 때문에 가벼운 눈인사는 하는 정도.[8]
한국인이 모잠비크서 생활하게 된다면 경제활동을 위해 적어도 도시규모로 다섯손가락안에 드는 곳에서 생활 할 것이기에 열악한 의료환경과 시도 때도 없이 무언가를 요구하는 공무원들만 제외한다면 살 만한 곳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8. 언어


공용어는 포르투갈어이지만, 일상에서는 지방에 따라 북부는 마쿠아어(Makhuwa language), 중부는 시세나어(Cisena), 남부는 샹간어(shangana)[9] 등의 반투어군계 토착언어를 널리 사용한다. 그리고 탄자니아와 접해있어서 소수의 스와힐리족들이 거주하고 있고 스와힐리어 화자도 존재한다. 일부 체와어 화자도 존재한다. 모잠비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접해 있어서 포르투갈어 화자들이 남아공에 존재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모잠비크의 포르투갈어는 기본적으로 유럽식을 바탕으로 일부 영어 어휘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모잠비크 북부에선 스와힐리어의 방언인 음와니어가 쓰인다.
영어 사용국에 둘러싸인 덕에 영어가 널리 퍼지고 있어서,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은 적이 없음에도 영연방에 가입했다. 또 프랑코포니의 참관국으로 가입했고, 포르투갈어도 공용어라서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의 회원국이다.

9. 민족


모잠비크는 다민족국가이지만, 이들 민족들은 대부분 반투계 민족이다. 그리고 모잠비크 북부에는 소수의 스와힐리족들이 거주한다.

10. 종교


종교는 기독교가 56%, 이슬람이 18%, 기타 종교가 7.3% 정도를 차지한다. 기독교의 경우 포르투갈의 영향으로 대부분 가톨릭이다. 짐바브웨남아프리카 공화국과의 접경지대인 서쪽 지역은 성공회개신교 신자들도 일부 존재한다.
2018년 5월 29일에 모잠비크 북부에서 이슬람 무장단체에 의해 마을주민 10명이 참수된 사건이 발생되었다.# 그리고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는 유전지대에 있는 한 마을을 습격해서 2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되었다.# 게다가 2019년 5월 28일에 모잠비크 북부에서 이슬람 반군으로 추정되는 괴한에 의한 공격으로 16명이 사망했다.#
모잠비크 북부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탄자니아의 국경지역을 습격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모잠비크 북부의 델가두 주에서 이슬람 반군이 사흘동안 주민 50명 이상을 참수(!)했다.#
급진 이슬람주의 무장대원들이 프랑스 석유기업 토탈의 근처에서 총격을 일으키자 토탈측에선 일부 직원들에게 대피령을 내렸다.3

11. 스포츠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프리카 지역 예선에서 독수리 더비(슈퍼이글스 나이지리아카르타고의 독수리 튀니지)의 똥줄을 태우기도 했다. 처음에는 나이지리아를 광탈의 위기로 몰아넣더니 마지막 튀니지와의 경기에서 일을 냈다. 2차 예선에서 마다가스카르를 안방에서 3대 0으로 떡실신 시키더니 그 후 드록국 코트디부아르를 상대로 안방에서 무를 캐는 등 안방불패신화(?)가 마지막 경기에서도 어김없이 지속되어 고춧가루가 작렬하면서 나이지리아가 어부지리로 월드컵에 진출했다. 이 나라의 축구 국대에 관한 사항은 모잠비크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포르투갈 축구계의 전설 에우제비우가 바로 이 나라 수도 마푸투에 있는 지역 마팔랄라 (Mafalala) 출신.
올림픽에서는 이름 한 번 거론되기 힘들 정도로 알려지지 않은 국가였으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 여자육상 800m 경기에서 마리아 무톨라가 혜성처럼 등장하여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 선수는 세계실내육상선수권에서 6관왕을 차지하며 여자 육상 800m의 절대강자로 떠올랐다.

12. 외교




[1] 국기에 그려진 총은 AK-47.[권위주의] 3.51점[2] 겉만 보면 꽤 부국인 듯 하지만 옆나라들 때문이지 최빈국 수준이다.[3] 흥미로운 점은 모잠비크는 주요 노예 수입국인 유럽이나 미국쪽에 위치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많이 팔려나가지는 않았다.[4] 당시 불가리아는 공산주의 국가라는 이유로 반공/우익 권위주의 독재정권이던 포르투갈의 살라자르 정권이 단교를 선포하면서 포르투갈과 외교관계가 단절되어 있었다.[5] 결국 이 두 나라들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이후에 백인 지배 체제가 몰락한다.[6] 심지어 철이 되면 소량이나마 한국 배추를 구할 수 있어 김장도 가능하다.[7]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저렴한 숙소는 위생과 치안이 열악하다.[8] 이런 시국에 말을 걸거나 의료행위를 부탁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안위가 걸린 일이니 자제하길 바란다. 누군가 신고한다면 본국으로 소환.[9] 남아공 공용어 중 하나인 총가어와 같은 언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