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제2연방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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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Segunda República Federal. 1846년에서 1864년까지의 멕시코의 정부체제.
2. 역사
멕시코는 제1연방공화국 당시의 혼란을 이유로 중앙집권화에 박차를 가하지만 그것으로도 혼란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주 정부의 불만만을 야기했다. 이에 따라 미국-멕시코 전쟁을 앞두고 연방제로 되돌아가기로 하고 1824년의 헌법으로 개헌했다.
그러나 당장 미국은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멕시코군을 패퇴시키고 있었고, 이전 체제인 멕시코 중앙집권공화국의 창립자로써 쿠바로 쫓겨난 산타 안나는 멕시코 정부에 서한을 보내 대통령 직에는 야심이 없으며, 그저 자신의 군사 경험을 바탕으로 외국의 침입을 막고 싶다는 뜻을 알렸다. 그러나 한편으로 산타 안나는 미국측 대표단과 비밀리에 자신을 미 함대의 봉쇄를 통과하게 해주면 모든 분쟁 지역을 적절한 가격에 팔겠다는 거래를 한 상태였다.(...)
이렇게 해서 그는 멕시코로 귀환할 수 있었고, 당연히(...) 그는 약속을 깨고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미국도 산타 안나와의 약속을 깼고(...), 미군을 막으려는 시도를 했으나 실패로 돌아가 수도인 멕시코시티가 스콧 장군이 이끄는 미군에게 함락되는 수모를 맛봤다.
멕시코는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을 맺어 전 국토의 60% 가까이를 미국에 뜯겼고, 산타 안나는 자메이카 킹스턴으로 망명했다. 그리고 멕시코는 다시 혼란에 빠지게 된다. 전쟁 중이었던 1847년부터 이미 유카탄의 마야 민족이 반란을 일으켰고, 전쟁 이후에는 미국 남부 해적들이 칼리포르니아 반도에 침략하지 않나(...) 이 혼란을 이유로 보수주의자들은 1853년 4월에 다시 정부를 장악했으며, 산타 안나를 다시 멕시코로 불러들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부 자금을 횡령하고 미국에게 땅을 더 파는 등(가즈덴 구입)의 실정으로 보수층조차도 등을 돌렸고 베니토 후아레스(Benito Juárez)와 이그나시오 코몬포르트(Ignacio Comonfort)가 이끄는 자유주의자들이 1855년 산타 안나를 축출했다. 궐석으로 반역죄 재판이 진행되었고, 그의 부패 참상이 밝혀지며 재산은 모두 압수되었다.
자유주의자들은 다시 임시정부를 세우고 자유주의에 기초한 개혁(Reforma)을 시행했다. 보수 세력의 주요 구성원인 가톨릭 교회를 약화하기 위해 정교분리가 이루어지고 교회 재산이 몰수되었으며 1857년에는 개헌을 하여 더 자유주의적인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쯤 되면 원주민들이고 메스티소고 모두 가톨릭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급진적인 종교성 약화 정책은 큰 반발을 일으켰다. 이는 계급을 가리지 않는 것이었고, 따라서 보수 세력은 가톨릭 약화에 반감을 가진 농민들도 자신의 편으로 포섭할 수 있었다. 1850년대부터 멕시코는 다시 반란의 물결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1857년 개정 헌법에 따라 선출된 대통령이 한 달도 안 되어 쿠데타로 쫓겨나는 등(...) 혼란의 연속이었다.
자유주의자들은 미국으로 망명간 베니토 후아레스(쿠데타 이전 대법원장)의 지휘 하에 항전하였고, 베라크루스 상륙에 성공해 임시정부를 수립해 레포르마 전쟁에 돌입했다. 후아레스는 무기한 영토 종단 통과권까지 약속해가며 미국의 힘을 빌린 덕분에 이길 수 있었다. 1860년에 전쟁은 자유주의자들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이제는 외세의 압력에 시달려야 했다. 오랜 내전과 혼란으로 멕시코의 국가 부채는 엄청나게 늘어났고, 멕시코는 디폴트를 선언하게 된다. 디폴트를 당한 나라 중에는 한창 해외 진출에 미쳐있던 프랑스 제2제국이 있었고, 나폴레옹 3세가 이것을 기회로 멕시코를 프랑스의 보호국으로 만들 속셈으로 1862년 멕시코에 군대를 파병했다. 보통 같았으면 프랑스를 막으려고 수작을 부렸을 영국은 멕시코에 돈을 떼먹힌 채권국이었으므로 오히려 프랑스를 도와줬고, 스페인도 가세했다. 미국은 남북전쟁으로 시끄러웠기 때문에 프랑스의 간섭을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멕시코를 상대로 승전에 승전을 거듭하자 영국과 스페인은 발을 뺐고, 1864년에 프랑스는 막시밀리아노 1세를 멕시코로 데리고 와 멕시코 제국의 황제로 세워 멕시코 제2제국이 선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