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정환혼기

 


90년대 한 타이완 방송국에서 촬영한 영상
牡丹亭還魂記
1. 개요
2. 등장인물
3. 줄거리
4. 상세
5. 여담


1. 개요


명나라의 극작가 탕현조의 최고 걸작. 본래 연극 대본의 형식을 빌려 지은 소설인 화본소설(話本小説)이었으나 스토리 전개성이 뛰어나서 곤극(混劇)으로도 제작되었고,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장르로 각색되었다.

2. 등장인물


  • 두여낭(社麗娘): 여주인공. 남안(南安) 태수 두보(社寶)의 딸.
  • 유몽매(柳夢梅): 남주인공. 당나라 문인 유종원의 후손이나 자신의 대에 이르러서는 조상의 명성은 모두 잊혀져 광둥 성에서 가난하게 살았다.
  • 두보(社寶): 두여낭의 아버지. 당나라 문인 두보(社甫)의 후손. 남안 태수였으나 회양(淮揚) 안무사, 평장사(平章事) 등의 벼슬을 지내기도 한다.
  • 견(甄)씨 부인: 두보의 아내이자 두여낭의 어머니.
  • 춘향(春香): 두여낭의 몸종.
  • 진최량(陳最良): 두여낭에게 글을 가르친 가정교사. 후에 황문주사관(黄門奏事官)이라는 벼슬을 얻는다.
  • 석(石) 도사: 여성 도사
  • 소도사: 젊은 여도사
  • 기타 조연
    • 부스럼머리: 석 도사의 조카
    • 곽타(郭駝): 유몽매의 집의 과수원지기[1]
    • 한자재(韓子在): 유몽매의 친구이자 당나라 문인 한유의 후손.
    • 번귀(番鬼): 서양 상인
    • 금나라의 장수들

3. 줄거리


때는 남송 초기, 광둥 성의 총각 선비 유몽매는 과거 공부를 하다 잠이 든다. 꿈에서 아리따운 처녀와 만나 함께 노닐며 정을 통하다 꿈에서 깬다. 유몽매는 그 꿈이 너무 생생하여 잊지 못한다.
남안 태수 두보의 무남독녀 두여랑은 부모와 스승 진최량의 엄격한 통제 속에서 살아가는 요조숙녀였다. 어느 날, 진최량으로부터 관저(關雎)[2]라는 시를 배우고, 그 시를 곱씹으며 며칠 뒤 몰래 후원으로 산책을 나가며 배필이 없는 처지를 한탄하다 문득 정자 아래에서 잠이 든다. 꿈에서 버드나무(柳) 가지를 든 잘생긴 사내를 후원에 들이고 그와 정을 나누다 잠에서 깨고 만다. 그 다음 날 다시 후원에 가 보니 그 사내를 닮은 매화나무(梅)가 있었다.
두여랑은 꿈에서 본 사내를 잊지 못하여 몽유병에 걸려 몸이 크게 쇠약해진다. 결국 몸져 눕게 된 두여랑은 어머니 견씨에게 자기를 후원의 매화나무 아래 묻어 달라고 부탁하고, 하녀 춘향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후원에 있는 큰 돌 아래 감추라고 부탁한 뒤 사망한다. 두여랑의 부친 두보는 얼마 안 가 남송 북부 지역을 다스리는 회양안무사로 승진하여, 시집도 못 보낸 외동딸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남안을 떠나 이사한다. 두보는 두여랑의 무덤 옆에 매화관(梅花觀)이라는 사당을 세우고 석 도사에게 그곳을 지킬 것을 부탁한다.
3년 뒤, 유몽매는 과거 시험을 보러 당시 수도였던 임안(臨安, 오늘날의 항저우)으로 가다가 우연히 남안을 지나는 길에 매화관에 묵게 되었다. 후원을 거닐던 유몽매는 두여랑의 초상화를 발견한다. 그때 때마침 석 도사도 두여랑의 넋을 기리기 위해 피운 향 연기가 요동치는 것을 보고 그가 다시 이승으로 돌아왔다고 여긴다. 유몽매는 자신이 이전에 꿈에서 본 여인과 똑같이 생긴 두여랑의 초상화를 자기 방에 걸어 두고 그 그림 속 여인을 그리며 시를 읊고, 이에 두여랑의 혼이 반응하여 그림에서 튀어나온다.
두여랑은 유몽매에게, 자신이 봄날의 정을 잊지 못하고 죽은 혼백임을 밝히고, 자신의 무덤이 있는 곳을 알려준다. 석 도사는 언제부터인지 유몽매가 자기 방 안에서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것을 인지하고 그가 자신의 여제자들과 밀회를 하려는 것으로 오해하여 그를 방해하나, 유몽매가 두여랑의 이름을 언급하고 그에게 부탁을 받았다고 주장하자 그를 믿어 돕기로 한다. 석 도사는 자신의 조카인 부스럼머리를 불러 두여랑의 무덤을 파고 관을 꺼낸다. 시체에 도사들이 쓰는 환생약을 뿌리자 죽은 두여랑이 다시 살아나고[3] 유몽매와 서로 끌어안는다. 둘은 함께 임안으로 향하고 유몽매는 과거를 본다.
그런데 진최량이 두여랑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매화관에 왔다가, 무덤이 도굴당한 것을 보고 곧바로 두보에게 알린다. 두보는 두여랑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가려 했으나, 때마침 금나라의 군대가 쳐들어왔고 두보는 회안의 도성에서 포위당하고, 견씨부인을 포함한 그의 나머지 식구들은 도망길에 오른다. 그들이 임안에 이르렀을 때 죽은 두여랑을 만났고, 그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뒤 견씨부인은 유몽매를 사위로 인정한다.
과거를 본 유몽매는 회안으로 가서 자신과 두여랑의 혼인을 허락받기 위해 두보를 만난다. 마침 중앙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가까스로 금나라 군사들을 몰아낸 두보는, 자신의 딸이 부활했음을 믿지 않고, 이전에 전해 들었던 진최량의 말만 믿고 그를 분묘발굴죄로 체포하고 감금한다. 두보가 유몽매를 장형#s-1에 처하려는 찰나, 임안으로부터 유몽매가 과거에 급제했다는 전갈이 날아오고, 두여랑과 견씨부인도 뒤이어 도착하여 자초지종을 아뢴다. 황제에게 승전보를 알리고 그 상으로 황문주사관이라는 벼슬을 얻게 된 진최량도 임안에서 사정을 전해 듣고 온다. 하지만 일이 너무 기이하다며 두보는 끝까지 믿지 않는다. 결국 이 사정을 전해 들은 황제가 명령을 내리고 나서야 두보는 둘의 혼인을 허락한다.

4. 상세


모란정환혼기는 탕현조가 온전히 창작한 것이 아니다. 1500년대 초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화본 중에 두여낭모색환혼(杜麗娘慕色還魂)이라는 작품이 있었는데, 그 시대적 배경을 남송 초로 정하고 두여랑과 유몽매의 성격도 더욱 개성적으로 바꾼 다음 각종 조연들을 추가한 것이다. 중국 남부(광저우, 마카오 등)에 대한 묘사나 서양 상인들이 언급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특징인데, 이것은 명대에 서양 상인들이 광저우나 마카오에서 상춤을 매매하였던 사회상을 반영한 것이다.
모란정은 총 55척으로 이루어진 대작으로서 작품을 감상하다 지루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탕현조는 두여랑과 유몽매의 애정을 주로 다루면서도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나 송과 금의 전쟁 따위를 다루며 일정 시간마다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탕현조 생전의 사회 분위기상 여성은, 특히 상류층 여성은 가장의 통제를 받으며 살아야 했고 함부로 연애는 물론 외출도 할 수 없었는데, 모란정환혼기의 두여랑은 이러한 봉건적 여성상을 답답하게 여기며 자신의 의지로 산책을 하고, 죽어서 혼이 되면서까지 자신이 정한 연애 상대와 사랑을 나누며, 그러면서도 일편단심의 사랑을 고수한다. 이러한 진보적이고도 열정적인 여성상은 당대에 큰 충격을 주었고 이 때문에 모란정환혼기는 여성에게 특히 인기가 많았다.
다만, 두여랑이 연애하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는 부분에서 자신의 연애 대상이 과거 시험 급제자이길 바란다는 가사가 있고, 최후반부에 주인공 커플의 혼인을 반대하는 두여랑의 부친이 '황제의 명령'을 받아 승낙하는 부분이 있는 등 당대 사회상 - 특히 문인 사회상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면도 있다.

5. 여담


2004년 타이완에서 원작을 29막으로 줄이고 3부작으로 엮은 뒤, 젊은 배우들만으로 공연하는 '청춘판 모란정'이 등장하였다. 각 부는 몽중정(夢中情, 여랑과 몽매가 꿈속에서 서로 만나는 부분), 인귀정(人鬼情, 여랑의 혼과 몽매가 정을 나누는 부분), 인간정(人間情, 여랑이 인간이 되어 몽매와 정식으로 혼인하려는 부분)이라고 불린다.
종합편성채널 채널A에서 방송하는 천일야사 109회에서 탕현조의 모란정환혼기에 대해 다루었다.[4] 문제는 탕현조가 모란정환혼기를 집필한 것 외에는 모조리 역사왜곡이다. 탕현조가 모란정환혼기를 집필한 이유를 자유롭게 살고싶다는 꿈을 꾸던 여동생이 여인들의 사회진출을 압박하던 시대상으로 인해 여동생이 자살하고 여동생 탕현아의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 집필한 것으로 극이 전개되는데 문제는 탕현조는 여동생이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모란정을 관람한 여인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해 연쇄적으로 자살하고 그 책임을 묻기위해 재상이 탕현조를 참수하려다가 여인들이 호소하여 목숨을 부지해다는 황당한 전개로 이어졌다. 문제는 해당 재상은 장거정 인데 장거정은 1582년에 사망했고 모란정환혼기는 그 이후의 작품인데도 이미 죽은 장거정이 나와서 탕현조를 죽이려고 한다. 애초에 모란정환혼기는 탕현조가 온전히 창작한 것이 아닌 탕현조가 출생하기 약50년 전에 원본이 되는 소설이 있었던 것을 탕현조가 살을 붙이고 조연들을 추가시켰던 것인데 천일야사에서는 탕현조가 존재하지도 않던 소설을 아예 창작한 것으로 극을 전개시켰으며 탕현조가 모란정환혼기를 집필했다는 이유로 체포되거나 처벌받은 기록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압권인 것은 모란정 편을 마무리할 때 천일야사와 계약을 맺고 활동하는 세계사 강사 윤미가 나와서 모란정 편을 소개해서 마치 실제로 해당 내용이 있었던 것처럼 소개하는데 윤미는 탕현조에 대해 동양의 셰익스피어라고 소개하면서 탕현조와 셰익스피어의 동상이 함께 놓여진 사진을 설명하면서 탕현조를 다른 서양에서도 존경하여 셰익스피어의 생가에 셰익스피어 동상 외에 탕현조의 동상이 함께 놓여질 정도로 서양권에서도 인정받는다고 설명했는데 완전히 허무맹랑한 거짓말은 아니라서 탕현조와 셰익스프어의 동상이 함께 놓여진 셰익스피어의 생가는 존재하지만 영국에서 영국인들이 탕현조를 존경해 제작해서 셰익스피어의 생가에 놓은 것이 아니라 중국 장시 푸저우 탕현조기념관에 진열된 “탕현조와 셰익스피어의 만남” 동상이 원본으로 중국에서 탕현조의 위상을 알리기위해 동상을 제작해 기증한 것이다.# 물론 탕현조가 동양권에서 인정받는 문학가이기는 하지만 서양권에서의 인지도는 한없이 낮은데 중국에서 탕현조를 추켜세우기 위해 동상을 제작하여 영국 셰익스피어 생가에 기증한 것을 셰계사 강사 윤미가 셰익스피어의 생가에 탕현조의 동상이 함께 놓여져 있어서 영국에서 탕현조가 셰익스피어 못지않게 인지도와 인기가 있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시청자를 기만하는 명백한 역사왜곡이다.[5]

[1] 이름도 직업도 모두 유종원이 지은 우화 종수곽탁타전(㮔樹郭橐駝傳)의 주인공 곽탁타의 패러디이다.[2] 시경에 등장하는 시. 關關雎鳩 在河之洲 窈窕淑女 君子好逑(구앙구앙 우는 물수리는 황하 모래섬에 있노라. 아름답고 참한 처자 군자의 좋은 배필)라는 구절로 시작하며, 요조숙녀군자를 만나 서로 사랑하며 노는 내용의 시이다.[3] 도교의 술법 중에 차시환혼(借屍還魂) 이라는 죽은이를 되살리는 술법이 존재한다. 차시환혼은 죽은 영혼을 죽은지 얼마되지 않은 다른 이의 시신에 빙의시켜 되살리는 것인데 탕현조가 살아있던 시기의 명나라에서 유행하던 술법 중의 하나로 정말 빙의시켜 되살리는 것은 아니며 가족을 잃은 유가족이 그렇게해서라도 죽은이를 다시 만나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술법이다. 죽은지 얼마되지 않은 시신을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해당 시신의 유가족들이 허락해줄리도 만무하므로 실제로는 허수아비를 만들어 형식상의 차시환혼을 했다. 모란정환혼기의 탕현조도 이 차시환혼에 착안하여 두여랑을 되살리는 전개를 구상했다고 전해지는데 차시환혼을 그대로 적용하면 두여랑의 혼이 다른 여인의 시신이 빙의되므로 전개를 매끄럽게 하기위해 도사들이 쓰는 환생약을 뿌려 되살리는 전개로 이어졌다.[4] 방송시 제목은 <모란정> 죽음을 부르는 연극으로 원제인 모란정환혼기로는 끝내 소개되지 않았다. 작품이 유명해서 모란정으로도 모란정환혼기 문서로 다이렉트 되기는 한다.[5] 영국에는 화교가 많으며 중국계 영국인들도 상당히 거주하며 셰익스피어 생가를 후원하는 이들 중에는 이러한 화교나 중국계 영국인들이 많은데 이들이 셰익스피어 생가를 후원하면서 동상을 제작해 기증하는 것을 셰익스피어 생가 측에서 거절하지 않는 것은 탕현조가 동양권에서 알아주는 문학가이기는 하지만 후원자들의 청을 거절하기 어려운 측면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