믈라카 술탄국
말레이어: Kesultanan Melayu Melaka
영어: Malacca Sultan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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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1. 개요
15세기 초반[1] 부터 1511년까지 서말레이시아와 태국 남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리아우 주에 걸쳐 존재하던 술탄국. 오늘날 말레이시아의 정체성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국가이다. 수도는 믈라카. 믈라카 왕국, 말라카 술탄국, 말라카 왕국이라고도 한다.
2. 설명
싱아푸라 왕국의 마지막 왕 파라메스와라(Parameswara[2] )가 믈라카에 자리를 잡으면서 건설되었다. 믈라카는 중국과 인도를 오가는 중간 지점에 있어 교역에 있어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었고, 믈라카 술탄국의 역대 술탄은 이를 잘 활용하여 부를 축적했다.
하지만 단순히 위치만 좋다고 교역거점으로 거듭날 수는 없는 법, 믈라카는 이슬람교를 받아들이며 교역활성화를 위해 여러 제도를 정비했다. 첫 번째로, 오랑 라웃(Orang Laut)이라는 해상민들과 유대관계를 구축해 해적을 통제했다. 믈라카 해군의 구성원들도 이 사람들이었다. 그 덕에 믈라카를 들르는 상인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방문자의 편의를 위해 교역 인프라를 확충했다. 상인들이 가져온 물건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지하창고까지 건설했을 정도였다. 세 번째로, 법 체계를 정비하였다. 제 3대 술탄 재위기에 제정된 '믈라카 법(Udang Udang Melaka)'에는 해상 교역 활동에 관련되는 법규정들이 세밀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선장 및 선원의 임무나 선상 범죄에 관한 것을 들 수 있다. 네 번째로, 항구 관리장인 샤반다르(Syahbandar)를 두어 믈라카에 거주하고 있던 상인들을 통제했다. 샤반다르는 보통 네 명이 맡았는데, 중국인 1명, 자바인 1명, 인도인 두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트믕공(Temenggong)이란 직책을 두어 수출입 세금을 거두게 하고 치안을 맡겼다.
믈라카 술탄국은 북쪽의 아유타야 왕국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의 우호관계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명나라 영락제 원년인 1402년 명에서 사신이 오자 그에 대한 답례로 사절을 파견하는 것을 시작으로, 왕이 왕비, 신하들과 함께 세 차례 난징으로 찾아오기도 했다. 정화의 선단이 왔을 때도 극진하게 대우를 했던 건 마찬가지.
이렇게 번영을 구가하던 믈라카 술탄국은 1511년 7월, 포르투갈의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Afonso de Albuquerque)가 지휘하는 선단에 의해서 멸망한다. 뭐 믈라카 성 내에만 수천 문의 대포[3] 가 있었다고 하니 무기가 후달렸던 건 아니고, 믈라카 내의 중국인 같은 비무슬림을 포섭해서 망한 것이었다. 이들은 가장 탄탄한 요새 '파모사'를 세웠으나 본국이 멀고 군대 수도 적어서 지배는 순탄치 않았다. 믈라카가 함락당하자 믈라카의 술탄은 거점을 조호르로 옮긴 후(조호르 술탄국) 포르투갈령 믈라카를 틈만 나면 위협해댔고, 포르투갈의 의도와는 다르게 믈라카는 쇠락했다. 결국 아체 술탄국으로 교역중심지가 옮겨 가버렸다. 믈라카 함락 이후 믈라카 내에서 부정부패가 만연했고, 포르투갈령 믈라카를 찾아오는 이슬람 상인들을 배척했기 때문. 게다가 17세기에는 대외 무역에 조호르 술탄국까지 가세해버렸다. 1640년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측이 난공불락의 요새 파모사를 공격하자, 믈라카 사람들과 포르투갈군들은 고립과 식량 부족 상황에서 쥐 같은 것을 닥치는 대로 먹어가며 끈질기게 저항했다. 여기에 조호르 술탄국도 포르투갈을 압박하자 1641년에 축출당하고, 이후 믈라카는 네덜란드령이 된다.
참고로 이 때도 말레이시아 지역은 주석 산지로 유명했다. 믈라카의 수출품 중 주석이 있었다.《명사(明史)》에 따르면, 믈라카 사람들은 모래를 일구어서 주석을 채취한 후 이를 쪄서 덩어리로 만들었다고 한다[4] .
3. 참고 문헌
- 이원복, 《먼나라 이웃나라 시즌2(지역/주제편) 17권: 동남아시아, 천년 문명의 신비에서 21세기 변화와 개혁의 주역으로》 p135~136, (2018, 김영사)
- 최병욱, 《동남아시아사 - 전통시대》, (2006, 대한교과서)
- 동북아역사재단, 《명사 외국전 역주 2》 (2011, 동북아역사재단)[5]
4. 둘러보기
[1] 건국시기가 확실하지 않다. 1402년 혹은 1400년, 또는 14세기 말로 추정.[2] 《명사(明史)》에는 배리미소랄(拜里迷蘇剌)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됨.[3] 그런데 이원복 교수는 가로세로 세계사 2권 동남아시아 편에서 믈라카 주민들이 대포를 포르투갈의 믈라카(가로세로 세계사에서는 말라카라는 이름으로 등장함) 침입 때 처음 접했다고 기술했다.[4] 有山出泉流為溪,土人淘沙取錫煎成塊曰斗錫。산에서 솟아나는 샘은 개천을 이루는데, 그 지방 사람들은 모래를 일구어 주석을 취했고, 이것을 쪄서 덩어리로 만든 것을 두석(斗錫)이라고 한다.[5] 명사 표기는 만랄가(滿剌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