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세로 세계사

 

1. 개요
2. 상세
3. 비판
3.1. (먼나라 이웃나라와 비교했을 때의) 문제점
3.2. 오류
3.2.1. 1권(발칸반도)
3.2.2. 2권(동남아시아)
3.2.3. 3권(중동)
3.2.4. 4권(캐나다·호주·뉴질랜드)


1. 개요


이원복이 집필한 먼나라 이웃나라의 후속작으로, 초판은 별개 시리즈였지만 이후 먼나라 이웃나라 16~20권으로 통합되었다.
현대 국가는 그 수가 너무 많아 한 권에 한 나라씩 일일이 설명할 수 없으며 같은 지역권은 같은 역사를 공유하고 있기에 지역으로 묶어 나오게 되었다고 도입부에서 설명하고 있다.[1] 오너캐 외에도 가로, 세로, 바로 등의 새로운 멤버[2]들이 추가된 것도 특징. 먼나라 이웃나라 20권 오스만제국-터키편이 발간되면서 가로세로 세계사는 먼나라 이웃나라 시즌2 16~19권으로 편입되었다. 이에 따라 먼나라 이웃나라로 표지를 변경한 신판들이 인터넷서점에서 판매중이다. 원래 먼나라 이웃나라랑 별개로 진행하려 했는데 출판사에서 번거롭게 그러지 말고 하나로 통합해서 내보자고 해서 그냥 통합했다고 EBS 초대석 인터뷰에서 밝혔다.

2. 상세


2014년까지 4권까지 출간되었으며, 각각 1권 발칸반도 편, 2권 동남아시아 편, 3권 중동 편, 4권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1권은 먼나라 이웃나라 네덜란드 편과 마찬가지로 책의 반절 정도를 시리즈 개괄에 할애했다.
4권은 중유럽, 5권은 영연방을 다루러 했는데 출간이 계속 연기되다가 4권은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편으로 출간되었다.
중국 편은 원래 몽골과 함께 6권에서 중화권으로 다루러 했는데, 2009년 중앙일보에 연재했던 분량[3]을 먼나라 이웃나라 13, 14권으로 냈다. 가로세로 세계사 1권에서 이제 먼나라 이웃나라 끝내고 이걸 시작하겠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식언이 되어 버렸다.[4] 원래 이 시리즈에 들어갈 예정이었던 러시아도 먼나라 이웃나라로 나올 듯하였으나 생뚱맞게도 스페인(에스파냐)이 먼나라 이웃나라 '''마지막권'''으로 나왔다. 저자는 스페인편 머리말에서 가로세로 세계사 시리즈를 재개할 것이라고 했지만, 그 시기가 언제가 될 지도 불투명하다. 일단 2013년 시점까지는 3권 이후로는 베이퍼웨어가 된 상태였다. 중국 편 계획이 변경된 덕분에 4권 영연방(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편 이후로는 오스만 제국(터키) 편, 아프리카 편, 중남미 편을 예정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오스트리아 등의 중부 유럽이나 러시아는 세상만사 유럽만사에서 다룬 것으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5] 결국 기존의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에 시즌 2로 편입되었고 후속작도 먼나라 이웃나라 타이틀을 달고 나오게 되었다.
그동안 우리 머릿속을 지배했던 서구 중심 사관에 얽매이지 않고 균형잡힌 이야기를 한다는 취지로 외국의 역사를 소개하는 서적으로서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 서적이지만, 뒤집으면 간략한 역사 소개에 그칠 뿐이라는 것이 한계.

3. 비판


여기서는 은근히 미국에 대한 두둔이 종종 보이는 것도 문제. 특히, 필리핀에서 대놓고 노골적이었는데 필리핀을 미국이 다른 제국주의 나라들과 다르게 손해보며 지배했다느니, 투자를 많이 해 줬다느니 헛소리들을 그리며 옹호한 것이다. 필리핀 항목만 봐도 이게 얼마나 헛소리인지 알 수 있다.[6] 그나마 라오스에서는 '미국은 파테트라오 게릴라와 호찌민통로를 없애고자 라오스에 무차별 폭격을 가해서 '''75만명'''의 라오스 난민이 발생하는 참극이 벌어졌다.'라는 내용이 있고, 캄보디아에서는 '미군의 공산군 폭격은 민간인들에게도 엄청난 피해를 줘 국민들은 미국, 론놀정권을 증오하게 되었다.'라고 해 미군에 의한 피해도 많이 나와 있다. 더군다나 라오스 편에서는 아예 폭격당한 사진을 넣으면서 '미군 폭격으로 '''달표면'''처럼 변해버린 라오스라고 했다.
그리고 고대 제국주의와 근대 제국주의가 서로 다르다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고대 제국주의는 옳고 근대 제국주의는 나쁘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나 아렌트의 입으로. 특히 고대 로마에 해당하는 자가 창으로 한 지역을 정복하면서 그 지역에 있는 주민들이 왜 남의 땅을 쳐들어오냐고 반박하자 고대 로마가 "남의 땅 좋아하네. 어차피 너희들의 조상도 다른 데서 건너온 자들이잖아?" 이리 말하자 데꿀멍하며 그 지역 주민들이 무릎을 꿇고 엎드리고 고대 로마가 강한 자가 차지하는 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는데 이거 딱 전형적인 근대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논리다.
물론 간간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의견[7]도 있다.

3.1. (먼나라 이웃나라와 비교했을 때의) 문제점


먼나라 이웃나라나 다른 만화책에서 선보인 깔끔하고 완성도 있는 그림체가 망가졌다. 캐릭터의 신체 비례는 제각각이고, 실존 인물을 무리하게 현실적으로 그리려 하는 바람에 어색하게 다가온다. 얼굴의 홍조를 지나치게 많이 표현하여, 하나같이 얼굴이 다 빨간 컬러링 문제도 있다. 게다가 그 손발이 오그라드는 개그들은 정도가 더 심해졌고...[8]
오너캐의 말이나 책 설명에 보면 이념적으로 편향되지 않는 역사만화를 그리기 위해 가로세로 세계사라는 이름을 지었는데 좌파적 역사관을 가졌다는 세로가 우파적 역사관을 가졌다는 가로보다 철없 게 그려진 점 때문에 진짜 균형이 제대로 잡혀 있는 건지 의심하게 되는 점들도 종종 나온다. 뭐 어차피 1권에서만 이념대립을 하고 2권부터는 오너캐 설명이나 듣는 쩌리로 전락해 버리니까 상관없다. [9]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에서 얘네들(가로 & 세로)의 들이 나온다. 바로의 경우는 언니가 나온다.

3.2. 오류



  • 가로세로 세계사가 먼나라 이웃나라에 편입되었으므로, 먼나라 이웃나라의 문제점 틀을 첨부한다.

3.2.1. 1권(발칸반도)


  • 개괄 파트의 오류. 전반적으로 옥시덴탈리즘이 주를 이루는 본 책이 예시로 드는 대표적인 오류로, 고대 그리스 문명이 전성기에조차 이집트의 변방 수준에 불과했다고 나온다. 현실은 그리스의 전성기에 이집트는 이미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에 점령당해 남보고 변방 운운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고 오히려 동시기 아테네는 동지중해 전역을 아우르고 이집트까지 위협하는 제국으로 성장한 상태였다.[10] 게다가 좀 더 나아간 헬레니즘 제국 시기 이집트는 아예 그리스계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통치를 받았다. 물론 이 시기의 이집트도 경제적으로는 부유한 지역이었지만 정치적으로는 패권을 잃어버린지 오래였다. 오히려 아케메네스 왕조로부터 독립하려고 아테네의 지원까지 받기도 했으니 만화에서 나온대로 이집트인이 "그리스? 아휴 이 촌뜨기 자식" 이라고 하면 그리스인은 "그 촌뜨기 힘 빌려서 독립하려고 한건 뭔데?" 라고 반박할 수 있을 상황이었다.
다만 그리스가 군사 및 정치, 철학적으로 많이 앞서나가긴 했어도 문화와 경제력 측면에선 동방에 많이 뒤졌던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를 정복했을 당시 페르세폴리스 한 도시에서만 그리스 전체의 1년 세수를 뛰어넘는 막대한 재화를 획득했을 정도였다.[11][12] 이미 이전부터 그리스인들은 동방의 막대한 부를 몹시 탐냈고, 페르시아의 다릭 금화를 얻고자 페르시아에서 용병으로 활동하는 그리스인도 굉장히 많았던 만큼 그리스가 당시 동방에 비하면 다소 뒤쳐지는 지역이었다는 서술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즉, 옥시덴탈리즘에 빠져 그리스 문명을 과도하게 폄하하는 것이 문제일 뿐, 사실 관계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닌 셈. 굳이 따지자면 이집트가 아닌 페르시아의 변방이라고 서술했다면 좀더 들어맞았을 것이다.
  • 141페이지에선 콘스탄티노플이 330년부터 수도였다고 하고164페이지에선 325년부터 수도였다고 한다.142페이지에선 동서로마가 410년에 분리되었다고 하고171페이지에선 395년에 분리되었다고 한다.
  • 유럽의 식민지 수탈 통계 장면 각주에서 크리스 패튼이 1930년대 홍콩 총독이라고 나왔는데, 사실 패튼은 1992년부터 1997년 반환 때까지 홍콩 총독이었다.
  • 정교회와 가톨릭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가톨릭의 사제와는 달리 정교회의 사제는 결혼을 할 수 있다고 기술했다. 정교회에서도 사제는 결혼을 할 수 없다. 대신 기혼자가 사제로 임명될 수는 있다. 하지만 사제가 된 상태에서 재혼은 불가능하며, 높은 계급으로는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13]하다. 아마 『이름없는 순례자』라는 러시아 정교회 서적의 번역본 각주를 참고한 듯.
  • 불가리아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와 손을 잡고 추축국에 합류하여 전세가 불리해지니까 나치 뒷통수 때린 것으로 그려져 있는데 나치 독일도 전간기 말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불가리아를 위협하고 핍박한데다가, 나치의 압력에도 홀로코스트의 참여를 거부하고, 유대인들을 보호하며 나치에게 저항했던 이력이 있음을 감안하면 이것도 어느 정도 오류가 있다. 실제로 불가리아 사람들은 전간기 말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독일에 의해 추축국에 가담했던 시기를 오스만 제국 시기 터키의 지배를 받은 것 다음으로 민족의 치욕으로 생각한다.
  • 유고슬라비아의 성립 원인이 세르비아의 세력이 지나치게 커질 것을 염려한 열강들의 음모라고 기술했는데, 정작 열강들은 미국 행정부가 1918년 6월 26일에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해체안을 받아들이기 전까지 유고슬라비아의 건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으며, 오히려 영국이 세르비아에게 마케도니아의 대부분을 불가리아에게 양도하는 대신 보스니아와 달마티아[14] 남부, 알바니아의 일부 지역을 받는 것을 제안했다. 심지어 세르비아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에 긍정적이었던 러시아도 가톨릭 지역인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가 세르비아에 합병되는 것을 꺼림칙해했다. 오히려 유고슬라비아의 건설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이들은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의 지식인들과 세르비아 내의 급진적 민족주의자들이었다. 세르비아 정부는 일단 세르비아인들이 살고 있던 지역들을 먼저 합병하는 것을 우선으로 뒀으나, 이들도 궁극적 목표는 남슬라브 통일국가의 건설이었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유고슬라비아 성립 당시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는 다른 타국과 통합하지 않고서는 독자 생존조차 하기도 어려운 약소국이었다.

3.2.2. 2권(동남아시아)


중요한 부분만 다루다 보니 설명이 부족해진 내용이나 오류가 있다.
  • 미얀마ASEAN 가입 연도는 1997년인데, 1995년으로 잘못 나왔다.
  • 태국 국왕 라마 5세의 업적이 <왕과 나>란 영화로 나왔다고 하는데, 사실은 라마 4세가 주인공이고, 그림도 틀렸다.
  • 1828년 태국의 비엔티안 점령 후 란상왕국 영토를 태국과 베트남이 찢어놔서 나라 자체가 없어졌다고 설명됐는데, 라오족 계열의 또 다른 국가인 루앙프라방 왕국이 그나마 주권을 유지하고 있어서 완전히 없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 크메르 공화국 대통령 론놀의 사망년도가 1985년이 아닌 1975년으로 나온다. 개정판에선 수정되었다.
  • 폴 포트의 본명 '썰롯 써'가 영어식 발음인 '샐로스 사르'로 나온다.
  • 베트남의 역사를 기술할 때 레 왕조 이전의 역사[15]는 짤막하게만 언급되어 있다.
  • 호찌민응오딘지엠과 대조시켜서 기술하다 보니 호찌민이 북베트남에서 항상 지지만 받았다는 식으로 기술했다. 토지개혁 삽질로 대규모 반발이 일어난 것[16]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반대로 응오딘지엠은 그저 미국 원조와 비밀경찰로만 정권을 유지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초반기에는 무려 80만에 달하는 월남민들을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는 등 능력이 아주 없는 지도자는 절대로 아니었다. 실제로 심지어 역대 남베트남 지도자들 중에서는 제일 유능하고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지 않은 게 바로 응오딘지엠이었다. 물론 얼마 안가서 막장으로 타락하지만[17]...
  • 말레이시아 파트에서는 말라카포르투갈의 대포를 생소해했고, 때문에 영락없이 무너졌다는 뉘앙스의 내용이 있는데, 엄연히 말라카에도 대포가 있었다. 아니, 그냥 있는 정도가 아니고 말라카 내에만 수천 문(門)의 대포[18]가 있어서 이걸로 2개월이나 버텼다. 포르투갈이 말라카를 함락시킬 수 있었던 것도 말라카가 당시 내분으로 인해 쇠락해가는 상황에서 말라카 내의 비무슬림들(가령 중국인이라든가)을 포섭했기 때문이다.
  • 말레이인 우대 정책의 부작용으로 중국인의 경제적 입지만 공고해졌다고 썼는데, 어떻게해서 이러한 부작용이 생긴 건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설명이 없다. 개괄적인 내용만 서술하는 방식을 취해서 어쩔 수 없이 이런 것일 수도 있지만, 페이지 수를 맞추느라 설명을 생략한 부분이 있는 건 아쉬울 따름이다.
  • 필리핀 파트에서는 초반에 6.25 전쟁 당시 파병장충체육관 건설 얘기가 나왔는데, 전자는 사실이지만 후자는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미국이 필리핀을 식민지배하면서 투자를 많이 해 줬다고 했는데, 실상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 방식도 유럽 열강들과 별 반 다를 바가 없었다. 또한, 필리핀 역사의 최고 리즈 시절이라고 할 수가 있는 라몬 막사이사이 시절의 내용은 아예 빠졌다. 물론 간접적으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이전에는 그런대로 나았다고 두루뭉술하게 서술하였기는 하였지만...
  • 동티모르 초대 대통령 사나나 구스마오가 팔린틸 총사령관일 적인 1992년에 구속된 후 추방당했다고 나왔으나, 2018년 개정판에선 종신형 복역 후 1999년에 가택연금 형식으로 풀려났다고 바로잡혔다.
  • 유엔 동티모르 임시정부 수립연도가 1999년 10월이 아닌 2000년으로 나왔다.

3.2.3. 3권(중동)


  • 아브드 알라흐만이 스페인으로 피신한 이후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라는 칭호에 대항에 스스로 에미르라 칭하니'라고 되어있는데, 에미르는 엄밀히 말해 장군, 사령관 정도로 칼리프보다 한참 낮은 직위로서 아바스 왕조의 심기를 건들지 않기 위해 선택한 것이지 대항하려고 선택한 직위는 아니다.
  • 십자군 전쟁을 중동에선 변방에서 일어난 작은 소란정도로 취급한다고 서술한 것이 잘못된 내용이라고 지적되었는데 이는 틀린 내용이 아니다. 당시 십자군의 활동영역은 아나톨리아-시리아-팔레스타인-이집트같은 동지중해 권역이 중심이라 아라비아 반도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볼 일이 거의 없었으며 후대의 몽골의 침략으로 인해 잊혀졌으나[19][20] 중동 지역의 식민지 지배가 본격화되고 유럽인들이 이를 제2의 십자군의 성공이라고 기념하면서 오히려 아랍 쪽에서도 십자군을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종합하자면 현대의 중동인들은 십자군을 변방의 사건으로 여기지 않지만 십자군 전쟁 당시의 이슬람 세계는 분명 아라비아, 메소포타미아가 중심지였던 만큼 십자군 전쟁 당시의 중동인들의 시각에선 변방의 싸움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원래 서술에서도 십자군 전쟁 당시의 중동인들의 시각을 이야기하는 거지 현대의 시각은 현대 중동세계 파트에서 소개하고 있다. 다만 서술이 좀 불명확해 원래 의도를 오해할 여지는 있다.
  • 바이바르스가 현재 터키 셀주크 제국의 군주로 소개되어 있으나 사실은 이집트 맘루크 왕조의 군주였다.[21]
  • 튀르크족이 아나톨리아 반도로 들어와 세력권을 형성하는 것은 티무르에게 쫓겨나서 도망치듯 온 것이 아닌 셀주크 투르크 이후 지속적으로 동로마 영토였던 아나톨리아 반도에 침입, 그곳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이후 티무르가 아나톨리아 반도를 정복하러 나선 상황에서 충돌이 발생한 것이다. 오스만 제국이 티무르에게 크게 당한 전투가 이루어 진 곳도 앙카라, 즉 아나톨리아 반도 한 가운데였다. 작중 내부에서도 티무르에 쫓겨 아나톨리아 반도로 들어온 튀르크족이 아나톨리아에서 강성해진 후 티무르한테 당한다는 모순을 보인다.
  • 오스만의 마지막 칼리프가 메메드 6세라고 나오는데, 1922~1924년까지 재위한 압뒬메지드 2세가 마지막 칼리프다.
  • 팔레스타인 제1차 인티파다 부분에서 1987년 12월 16일에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인 사업가가 피습당하자, 며칠 후 팔레스타인 청년 4명이 이스라엘 군용지프에 치여 죽어서 생긴 계기라고 나왔는데,[22] 실제로는 1987년 12월 9일 이스라엘군 트럭과 팔레스타인 승용차가 충돌한 사건으로 인해 터진 것이다.

3.2.4. 4권(캐나다·호주·뉴질랜드)


  • 캐나다의 원주민 정책이 제법 자비로운 것처럼 나오지만 이마져도 어디까지나 미국에 비교해서이다.[23] 캐나다도 개국 초기 호주와 비슷하게 원주민 문화 말살 정책을 자국내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자행했으며, 백인의 지배를 거부하며 저항하던 크리 족 등 일부 부족들은 대영제국에 의해 무력으로 토벌당하는가 하면, 땅을 뺏어 원주민들을 원주민 보호구역에 강제이주시키고, 뉴펀들랜드 섬과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섬 등 동부 대서양 섬 지역에서 살던 일부 원주민들은 영국계 백인 이주민들의 억압과 학살에 이전 태즈메이니아 섬 일대에서 살던 호주 원주민 부족들과 비슷하게 멸족되었다.[24] 단지 호주보다 빨리 철폐했을 뿐 때문에 여전히 다수의 캐나다 원주민들은 백인을 불구대천으로 여기고 있으며 여타 미주 국가의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비슷하게 극빈층으로 생활하고 있다.[25]
  • 빈란드는 포도를 뜻하는 빈을 붙여 포도가 나오는 곳이란 뜻에서 빈란드라고 하였다 언급한다. 정작 포도가 자라기 힘든 환경인 캐나다 지역인 모순점에 대해 포도를 원해서 그런 이름을 지었다고 하였는데, 빈란드의 빈은 포도가 아니고 고대 바이킹어로 '풀'을 뜻하며 이는 1960년 캐나다 뉴펀들랜드에서 바이킹 유적을 발견하는데 결정적인 실마리 제공을 하였다.
  • 호주와 뉴질랜드 파트에 오류가 있는데, 1849년사망한 와이라우의 마오리족 추장 테 라우파라하가 1852년영국을 방문했다고 나온 것이다(4권 230p에 나옴.). 사실은 테 라후파라하의 아들이 영국을 방문한 것이다.
  •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존재하는데 22 페이지에서 뉴질랜드는 백인과 마오리족간에 맺어진 와이탕이 조약 덕분에 신대륙에서는 보기 드물게 평화롭게 공존하므로 서로 갈등은 없다고 나오지만 정작 뉴질랜드 파트에서는 와이탕이 조약의 불공정함을 지적하며[26] (앞에서 이미 몇차례 전쟁도 치뤘다고 나오긴 하지만) 현실에서이 마오리족이 열악함 등을 계속 지적한다. 물론 미국, 캐내다, 호주 등과 비교하면 이 정도면 많이 나은 거지만...[27]
[1] 먼나라 이웃나라 때 했던 대로 나머지 220개국(세계은행 추산)을 1년에 2권씩 다룰 경우 '''110년'''이 걸린다. 그런데 현장 답사 등까지 포함할 경우 몇 갑절은 걸릴 수 있다.[2] 개정판 먼나라 이웃나라 네덜란드편에도 잠깐 나왔다(시민의식에 대해 질문하는 장면. 완결판 기준으로 180쪽 3번째 컷).[3] 중국 근현대사이다.[4] 사실 그 연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중앙일보의 여러번의 간곡한 부탁을 받아들이게 되면서부터이다.[5] 근데, 4권부터는 표지목차의 4권의 제목소개에 5권의 제목이 들어가야 할 자리부터 '시리즈는 계속됩니다'라고만 적혀있고, 5권부터 구체적으로 몇권에서 무슨 주제를 다룰지를 밝히지 않고 있는지라 뭐가 나올지를 예측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아니, 나오는 걸 더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느낌도 있다.[6] 이에 대하여 마크 트웨인 항목도 참고할 것. 그는 필리핀 침공, 미서전쟁을 제국주의에 대한 미국의 해방으로 처음에는 찬양했다가 갈수록 미국이 저지르는 학살과 경제적 착취를 보고 다른 제국주의와 차이가 뭐냐고 분노하며 비난하고 책을 써서 풍자했다가 24년이나 이 출판금지당하고 그가 죽고 나서야 간신히 출판된다.[7] 한 예로, 우리가 잘 모르는 지역이라고 해서 그놈이 그놈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든가. 예시를 들자면 먼나라 이웃나라에서도 나왔듯 외국인이 "나는 일본인을 아니까 아시아인을 안다" 라고 하면서 나머지는 "지역적 특색이 있을 뿐 다 같은 아시아인이니 그게 그거 아님?" 이라고 하면 중국인, 한국인이 유쾌할 리가 없다. 당장에 말과 문자부터 다른게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이다.[8] 그나마 납득할 만한게 동남아편의 '세로'를 패러디한 후보인 '스에로' 정도(...). [9] 참고로 레귤러 캐릭터들 중 유일한 여캐인 바로는 1권부터 공기였다. [10] 물론 로마 제국과 같은 거대 제국은 아니고 해상 무역을 기반으로 한 도시국가들의 연합체인 제국(諸國)이었다.[11] 이랬던 만큼 페르시아 정복 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액수의 이익을 얻었다.[12] 그리스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의 겨울수도인 수사를 점령했을 때는 5만 탈렌트 어치의 은괴를, 페르시아 제국의 의례적, 종교적 수도인 페르세폴리스를 점령하고 나서는 12만 탈렌트 어치의 금화를 차지했다. 12만 탈렌트는 기원전 5세기 무렵 그리스의 도시 국가인 아테네의 1년 재정보다 무려 300배나 많은 수치였다. 아테네가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들 중에서 가장 부유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페르세폴리스가 갖고 있었던 경제력은 그리스 전체를 합친 규모보다 훨씬 거대했던 것이다. 여기서 1탈렌트의 가치가 얼마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기원전 431년에서 404년까지 그리스인들끼리 싸운 펠로폰네소스 전쟁 무렵에 1탈렌트의 금화는 200명이 탑승하는 군함인 3단 노선 1척을 1개월 동안 유지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무너뜨린 시기가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보다 약 70년 이후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물가의 가치가 달라졌다고 해도 12만 탈렌트라면 실로 어마어마한 액수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페르시아 제국이 가진 부는 그리스인들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페르시아 제국이 발행했던 다릭 금화의 위상은 오늘날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발행하는 달러화와 같았다. 그처럼 다릭 금화는 그리스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고, 그리스인들은 다릭 금화를 갖기 위해 페르시아 제국 군대에 복무하는 용병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출처: 전장을 지배한 무기전 전세를 뒤바꾼 보급전/ 도현신 지음/ 시대의창[13] 승진과 관련된 부분은 가로세로 세계사 1권 내에서도 설명됨.[14] 크로아티아 해안지역[15] 중국 지배 이전의 역사인 반랑·어우락·남비엣(물론 반랑과 어우락은 역사적 실체가 명확하지 않고, 남비엣은 창건자가 중국인인데다 중심지도 중국 광저우에 있었으니 제외시켰을 수 있다.(실제로 베트남은 남월은 중국인이 세운 왕조라 보아 자신들의 왕조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은 아예 서술에서 제외시켰고, 중국 지배기의 역사는 쯩 자매의 반란 정도만 한 컷 정도로 언급되며, 중국 독립 이후부터 레 왕조 성립 이전까지의 역사는 응오 왕조를 제외하고는 생략되어있다. 베트남사에서 중요한 부분만 대략적으로 설명한 거니 마냥 비판할 수만은 없긴 하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던 전 레 왕조나 딘 왕조는 그렇다고 쳐도 베트남 최초의 장기 왕조로서, 베트남의 수도를 최초로 하노이로 정하고 북쪽의 송나라와 겨루기도 했던 리 왕조와, 원나라의 침략을 물리치고 대월사기를 편찬하고 쯔놈이 고안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쩐 왕조에 대한 설명이 빠진 것은 아쉬운 일. 특히나 리 왕조는 베트남에서는 드물게도 200년을 간 왕조이며 험난한 베트남사에서 그나마 안정적인 시대였다.[16] 오히려 토지개혁으로 인민들의 지지를 얻었다고 서술했다.[17] 이 인간이 재임하던 시기 공무원 될 때 물어보던 게 두 가지였다. '인맥이 있는가'와 '가톨릭을 믿는가'[18] 이 대포들은 근처의 미얀마, 태국 혹은 중국에서 수입해 오거나, 자체적으로 제작했던 것들이었다.[19] 토머스 매든도 자신의 책에서 이 설을 주장했다.[20] 십자군 자체가 특이한 일이라 치부하기엔 이슬람 세계의 최전선에서 기독교 세력과 부딪히는 건 흔한 일이었다. 당장 그들의 최대 적수였던 동로마부터가 기독교 국가였고 이베리아 반도에서도 레콩키스타가 벌어지는 등 십자군 전쟁 당시 아나톨리아, 레반트와 북아프리카는 이슬람 입장에선 기독교 세력과의 최전선이었다. 당대 중세 이슬람에게 십자군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최전방에 그냥 또 다른 기독교 세력이 침공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다.[21] 이 부분은 대한교과서에서 나온 중동사나 터키사 같은 기초적인 세계사 교양 도서만 봐도 알 수 있는 내용인데, 바이바르스 개인이 튀르크인이라는 것 하나만 보고 주화입마에 빠진 모양이다.[22]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건 미리 계획된 보복이다!"라고 분노했다.[23] 그나마 이 정도인 이유도 미국과는 달리 대부분의 땅이 춥고 원주민 비율이 미국 본토보다 상대적으로 낮아 비교적 살기 좋은 영토만 차지하면 나머지 큰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미국은 자국 영토 중에서 살기 좋은 영토가 대부분이지만 캐나다는 그게 아니라서 지들 먹을 땅을 다 먹자 미국은 땅이 안 남은 반면 캐나다는 그래도 어느 정도 땅은 남은 것 물론 둘 다 알짜배기땅이 아닌 뭐같은 땅이지만[24] 게다가 뉴펀들랜드와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는 이때의 영향으로 그나마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소수 정도의 명맥을 유지하는 캐나다 본토 지역들과 달리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하나도 없고, 유럽계 백인들만이 인구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영토 면적이 방대한 북미 본토 지역에 비해 4면이 바다에 막혀 도주할 곳이 없는 좁은 도서 지역이라는 지정학적 위치도 고려해야겠지만..[25] 그리고 또 한 가지, 호주빼앗긴 세대 같은 짓이 캐나다에서도 자행되었다.[26] 애초에 조약을 맺은 동기의 불순함, 조약 내용의 단어 선택, 조약으로 인한 토지갈등 등등[27] 일레로 마오리족에게도 투표가 주어진건 1867년인데 이웃나라 호주가 1965년, 그러니까 약 100년 뒤에야 투표권을 준 거다. 캐나다, 미국 특히 미국은 말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