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본토 공격
1. 개요
제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 본토를 전장으로 한 일본제국과 미국과의 전투. 전투에 풍선, 소형 항공기, 잠수함만이 쓰인 등 전투의 규모 자체가 상당히 작았고, 미국이 근소한 피해를 입긴 했지만 직접적인 군사적 효과는 거의 없는 수준이었고 이보다는 일본제국 측의 선전효과, 미국민 동요 등의 목적이 크다.
2001년 9월 11일 이전까지 일본측에서는 이를 두고 '처음이자 마지막의 항공기에 의한 미국 본토 공격(알류샨 열도 및 알래스카 지역과 하와이등을 제외함)[1] 이라고 평가했으며, 9.11테러 이후로는 '''군용기에 의한''' 마지막 공습이라고 말을 바꿨다. 실제로 양차대전 동안은 물론 역사상 군용기로 미국 본토가 직접 공격받은 것은 21세기 현재까지 일본에 의한 공습이 유일하다.
참고로 같은 추축국이었던 이탈리아 왕국 역시 잠수정을 이용해 뉴욕 항 공격을 계획한 적이 있고, 나치 독일 역시 유보트에 로켓을 탑재해 수중에서 미군 항구를 타격한다는 계획을 세운적도 있었으나 모조리 폐기되었기 때문에 실제로 미국 본토를 공격한 건 일본이 유일하다.
2. 미국 본토의 정의
원칙적으로는 미국의 영토(american soil)가 확실하게 된 곳은 다 미국 본토라고 봐야하므로 괌이나 웨이크 섬 같은 곳도 엄밀하게 말하면 미국 본토가 맞긴 하다. 하지만 이렇게 분류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며, 보통 이런 영토들은 미국 영토이지만 미국 본토는 아닌 부류에 넣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미국 본토라고 부르게 되면 우선 북아메리카에 있는 미국 본토는 무조건 들어가고, 알래스카가 그 다음으로 들어가며, 하와이를 맨 마지막으로 넣는다. 다만 미국 본토(main land) 공격을 언급할 때는 알래스카나 알류산 열도, 하와이를 미국 본토로 치지 않는 경우가 매우 많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진주만 공습이나 알래스카 공격등이 미국 본토 공격에서 빠지게 된다. 여기서는 일단 이들 공격도 경과 항목에 특수표시를 해서 포함시켰다.
3. 유사품
태평양 전쟁이 개전하면서 아돌프 히틀러가 미국에 선전포고함에 따라 U보트가 미국 동부 연안과 카리브해로 진격해서 수송선을 장기간 털어먹은 적이 있다.
하지만 해당 전투의 경우 대서양 전선의 한 파트로 취급되며, 유보트는 수송선을 공격하는 통상파괴작전만 전개했지 미국 본토를 직접 사격하는 등의 공격행위를 하지 않았으므로 미국 본토 공격으로는 쳐주지 않는다.
4. 경과
대서양 전선처럼 일련의 전투가 이어진 것이 아니라, 사건이 점처럼 드문드문 연속적으로 흩어진 형태를 죄다 미국 본토 공격의 범주로 묶어서본다.
- 1941년 12월 8일 : 진주만 공습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하와이 지역에 대한 공격을 미국 본토 공격으로 보지 않을 경우에는 미국 본토 공격에서는 제외된다.
- 1942년 2월 24일 :
이호 제17 잠수함을 동원해서 미국 엘우드 석유 정유시설 포격.
- 1942년 2월 25일 : 로스엔젤레스 전투
- 1942년 6월 3일 : 더치하버 공습
둘리틀 특공대의 공습에서 일본본토 폭격에 공포를 느낀 일본군은 미드웨이 해전를 기획하면서 장거리 폭격기의 기지로 사용될 수 있는 알류산열도를 점령하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일본군은 알래스카의 중요한 해군기지 더치하버를 항공모함 2척, 순양함 3척, 구축함 5척의 침공함대가 함재기로 공습하여 기지에 큰 피해를 입히었고 후에 6월 6일과 6월7일에 애투섬 및 키스카섬에 상륙하여 점령하게 된다. 알래스카에 대한 공격을 미국 본토 공격으로 보지 않을 경우에는 미국 본토 공격에서는 제외된다.
- 1942년 6월 20일
이호 제 26 잠수함이 덱건으로 캐나다 밴쿠버의 무선 루오 신호소를 포격한다. 하지만 신호소엔 큰 피해가 없었다.
- 1942년 6월 21일
이호 제 25 잠수함이 오리건주 스티븐 해군기지를 포격한다. 군인 1명 부상. 그리고 이 사건으로 1차대전, 2차대전 통틀어 미국 본토에서의 첫 사상자가 발생한다.
- 1942년 9월 9일
이호 제 25호 잠수함이 캘리포니아주 블랑코 곶에 도달한 후 탑재하고 있던 영식 소형 수상정찰기를 발진시켰다. 이 정찰기는 캘리포니아 주의 부르킹스 숲에 소이탄을 투하한 후 오리건주를 지나 잠수함으로 귀환한다. 오리건 삼림경비대에 의해 신고받고 출동한 미국 육군항공대의 록히드 P-38 라이트닝 전투기가 요격에 나섰으나 요격 실패, A-29 허드슨 폭격기도 발진하여 잠수함을 쫓았으나 역시 요격 실패. 이후 미국은 해안 및 내지 방공을 강화한다.
- 1942년 9월 29일
이호 제 25호 잠수함이 오리건 오퍼드 숲에 소이탄 투하 후 귀환,
하지만 위 9월 9일에 폭격때보다 거세진 미군의 저항 때문에 일본군 해군은 이후 더이상 공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위 9월 9일에 폭격때보다 거세진 미군의 저항 때문에 일본군 해군은 이후 더이상 공습을 하지 않았다.
- 1942년 10월 4일, 6일
이호 제 25호 잠수함이 미국 유조선 1척씩 격침.
- 1942년 동안 계속 통상파괴전 수행, 캘리포니아 연안 수km 지점에서 유조선 및 화물선 10여척 격침.
- 1944년 11월 ~ 1945년 봄
일본 본토인 치바현, 이바라키현, 후쿠시마현에서 총 9300개의 풍선에 폭탄을 넣고 하늘로 올려보냈다. 이것이 바로 풍선폭탄이다. 일본은 이 폭탄이 제트기류를 타고 미국 본토에 떨궈질 것을 기대했지만 실제 떨어진 것은 10%인 1천 개 미만. 그리고 그 중 대부분도 사막이나 바다 등 엉뚱한 데 떨어졌다. 미국은 풍선 폭탄을 회수한 다음 조사를 통해 일본의 소행임을 알았지만, 보도를 하면 풍선폭탄의 진로와 성과를 적에게 알려주는 격이 되므로 이를 은폐한 후 전후에 발표했다. 효과는 공장 1곳 정전과 6명을 폭사시킨게 끝이다.[3]
오리건주에서 민간인 6명 사망. 워싱턴주 플루토늄 생산공장의 고압선에 걸려 정전발생이 피해의 전부다. 참고로 이때 플루토늄 공장에서 생산된 폭탄이 그 나가사키에 떨어진 농축 플루토늄 핵폭탄이다. 만약 정전발생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폭발해서 시설에 피해를 주었다면 두번째 원폭 투하 시점은 상당히 늦추어 졌을 것이다.일본 수상기들이 왠 숲을 폭격했냐면...당시에도 미국은 대규모 산불로 인해 큰 고생을 하고 있었고 따라서 일본은 숲에다가 소이탄을 투하해 대규모 화재를 재발시켜 미국에 큰 피해를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대형 화재로 발전되지 않아서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후지타 노부오 이야기
5. 결과
미국 본토 공격에 넣기에는 논란점이 매우 많은 진주만 공습을 제외한 경과와 피해를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듯이 미국은 거의 미미한 수준의 전략적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태평양 서부연안지역 민간인들에게 전쟁의 공포를 확산시켰고 그로인한 다소 혼란은 발생했다. 그리고 일본의 목적도 이걸 위한 것이었다. 군부내에서는 심리전에서 최대의 성과를 보기위해 세균전까지 해야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이는 뒷감당을 할수없다는등의 이유로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다행히도 실현되지 않았다. 더불어 일본군이 미국 서부 해안에 직접 상륙할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되기 시작했으며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도 이에 대한 대비를 명령했고 미 육군 및 주방위군은 일본군의 침공시나리오를 제작하고 방위 훈련까지 했다. 시카고에서 방위선을 형성해 막는 계획이었다고 한다. 위에 로스앤젤리스 전투 항목만 보더라도 민간인에게 어느정도 공포심이 확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일본국민에게 수천배 뻥튀기해서 흥보하는 것은 덤.
이후 미국 본토에 방어 태세가 갖추어지고, 쓸데없이 미국을 자극하면 무의미 하다 생각 끝에 일본은 1942년 이후 더 이상 미국 본토에서 작전을 벌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 공습의 결과 미국국민이 위축되기는 커녕 일본군에 받은대로 돌려주자는 호전 여론이 확대되었고 미국정부는 일본계 미국인들이 스파이행위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행정명령 9066호를 결행하였다.
반대로 미국이 일본 열도로 직접 상륙하는 일본 본토 공격 계획도 있었으나 일본의 항복으로 시행되지 못했다. 올림픽 작전, 몰락 작전 등을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