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보트

 




독일어
U-boot[1]
영어
U-boat
[image]
1. 개요
2. 소개
4. 제2차 세계 대전 활약
4.1. 몬순 전단
4.2. 지중해
6. 종류
7. 현재 남아있는 U보트
8. 기록들
9. 관련 창작물


1. 개요


100척의 유보트로 수상함대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고, 200척으로는 영국의 보급선을 완벽히 차단할 수 있으며, 300척이 있다면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카를 되니츠

전쟁 중 내가 유일하게 두려워한 존재는 U보트였다. 우리들의 생명선인 바다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U보트에 모든 것을 걸어보는 편이 현명했을 것이다.

윈스턴 처칠


2. 소개


독일어 운터제보트(Unterseeboot)의 약어로, 영어로 치자면 'Under-Sea-Boat'가 된다. 말 그대로 잠수함.
독일 잠수함만 칭하는 것은 아니고, 1차 대전 당시 독일어를 공용어로 쓰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잠수함도 유보트라고 했다.[2]
이 자체가 독일어로 잠수함을 뜻하는 일반명사이지만 영어권에서는 일반적으로 독일 해군이 운용하는 잠수함을 통틀어서 말하며 특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U보트라는 말만 들어도 1, 2차 세계 대전 당시 운용된 독일 잠수함을 떠올린다.
가끔 중위나 소령 함장도 존재했으나 원칙적으로 대위가 지휘관이었고[3] 독일 해군에서 함(Schiff)이 아닌 정(Boot)으로 분류했기 때문에 엄밀히 밀하면 잠수함이 아닌 잠수정이라 해야 하지만[4] 오래 전부터 잠수함이란 용어로 고정되었기 때문에 그냥 잠수함이라고 많이 번역한다. 이는 독일 해군이 베르사유 조약에 명시한 함정 보유 수량 제한을 서류상 회피하려 일부러 타국 해군의 동급 함종보다 급수를 낮춘 탓도 있다. 조약으로 인해 전함과 순양함 각 6척, 구축함 12척만 보유 가능한 현실에서 가용 가능한 구축함을 늘리기 위해 타국의 호위구축함 수준인 천톤급 고속함도 어뢰정으로 분류하고 대위를 지휘관으로 삼은 것이 대표적, 조약 파기 이후에도 연합국에 대한 기만책 일환으로 종전시까지도 이런 체계를 유지했다.
독일 내에서는 현재 세계 각국에서 사용하는 디젤 잠수함의 베스트셀러인 209급 잠수함214급 잠수함, 독일 해군이 운용하는 202, 206, 212급 역시 이 U보트라고 부른다.

3. 독일 해군


유보트 승조원 제군이여. 이제 6년에 걸친 전쟁이 끝났다. 그동안 누구한테도 부끄럽지 않을만큼 잘 싸워주었다. 이제, 앞서 떠나간 전우들에게 경의를 표하자.

카를 되니츠

제1차 세계 대전제2차 세계 대전을 통틀어 엄청난 양의 연합군 함선들을 격침시켜 한때는 영국을 거의 아사 직전까지 몰아갔던 독일 해군의 효녀. 크릭스마리네의 수상 함정들은 영국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는 대륙 국가인 프랑스 상대로도 보잘 것 없는 전력을 지니고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독일 해군은 자원과 인력이 적게 들어가는 비대칭 전력인 잠수함을 가지고 영국을 괴롭히는 작전 말고는 답이 없었다. 잠수함이 일부 전투함과 싸워서 이긴 전과는 있지만 주 목적은 통상 파괴였고, 그게 바로 무제한 잠수함 작전. 이리저리 통상함을 파괴하다 보니 중립국, 특히 영국 여객선 RMS 루시타니아가 재수없게 유보트의 사냥감에 걸리기도 하였다.[5]

4. 제2차 세계 대전 활약


유보트가 정말로 독일 해군의 약골 잠수함이었을까요? 뭐, 그것도 전쟁이 끝나갈 때의 이야기지만요. 하지만 전성기 때 유보트와 그 승조원들의 힘은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을 것만 같았죠.

밀리터리 Q&A, 히스토리 채널

대서양 전투 문서 참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U보트 함대를 지휘한 사람이 바로 유명한 카를 되니츠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초기 독일 해군 잠수함대는 많은 제약을 안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통상 파괴와 관련된 다양한 조약들이었다. 정선과 검수, 공격 전 경고 등을 명시한 이 조약은 기습, 즉 '쏘고 튀는' 목적이 강한 잠수함으로서는 아킬레스건이었으나 히틀러는 미국 등의 참전을 우려해 잠수함대가 이 조약을 준수할 것을 명령해놓은 상태였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카를 되니츠는 정치적인 작전을 준비했다. 바로 독일 제국 함대의 한이 서린 스캐퍼플로를 유보트로 기습하는 것이다. 귄터 프린 대위가 지휘한 U-47은 영국 해군의 모항인 스캐퍼플로에 침투하여 영국 전함 로열 오크를 격침시키는 대전과를 올렸다. 영국 해군도 입구에 폐선박을 침몰시켜서 방어막을 쳤지만 프린 대위와 U-47 승조원들은 그걸 무시해버리고 뻔뻔하게 '''수상 항해로 도망쳐왔다.'''[6] 안 그래도 거창한 걸 좋아하는 히틀러가 이 대전과에 열광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호기를 놓치지 않은 카를 되니츠 제독은 "제독이 바라는 대로 300척의 유보트를 띄워주겠소!"라는 히틀러의 약속 을 받아냈고 그동안 잠수함대의 발목을 잡아오던 제약도 풀어버렸다. 이는 늑대떼 전술의 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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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군가 영국 정벌가의 가사가 담긴 그림 엽서에 등장한 귄터 프린 대위(엽서 하단에 "프린 대위는 '리펄스'를 뇌격했고 '로열 오크'를 격침시켰다"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이전까지 잠수함의 전력은 특정위치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목표물이 나타나면 단독으로 공격하고 빠지는 식이었던 데 비해서 늑대떼 전술은 산개한 유보트(= 늑대)들이 무선 통신으로 서로 정보를 교환하다가 시야 안에 선단(= 사냥감)이 나타나면 통신을 통해서 집결지점을 선택해서 다같이 모여서 사냥(= 늑대 떼)하는 전술이었다.(이는 굉장히 효율적이며 현재의 잠수함의 전략으로 흔히 사용되는 전술이다.)[7]
되니츠는 "우리가 300척의 유보트만 있으면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고 했는데, 100척은 작전에 투입하고 100척은 유지 보수 및 임무교대선상에서 대기 100척은 훈련을 받으면서 앞의 100척의 소모를 보충하는 데 쓰는 것으로 계획했다고 한다. U보트가 한참 공포와 엄청난 전과를 불러일으키던 시절인 1939~41년간 북대서양에서 가용가능한 U보트는 평균 7척으로, 단 1척밖에 없는 날도 많았다. 그러나 히틀러가 약속한 숫자의 유보트가 도착하는 날은 상당히 늦어졌다. 1942년에 가서야 100척의 유보트가 동시에 작전에 나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독일의 역량부족이 원인으로 유보트는 1척당 300만달러의 꽤 고급장비(당시 4호 전차가 약 5만 달러 정도)이다. 독소전을 준비하면서 게다가 아직까지 수상함대도 건설중인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기간에 300척 가량 건조할 수 있는건 미국이라도 쉽지 않다.[8]
영국이 계속해서 대잠전력을 변경하고 확충하면서 U보트의 전과도 이전에 비해서 줄어들었고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창과 방패의 전략대결로 한쪽이 전술을 바꾸면 상대가 대응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영국은 호송선단을 처음에는 함선 단독으로 운용하다가 선단을 구성하기 시작하고 마침내 구축함이나 호위함과 같은 소수의 호송전력을 추가하는 전략을 완성시킨다. 하지만 유보트 함장들 중 간이 큰 함장들은 아예 그 안에 파고들어서 공격을 감행하기도 했다. 당연히 호위함들은 팀킬할까봐 쉽사리 반격하지도 못했고 그 사이 연락을 받고 온 다른 유보트들이 어뢰를 발사하면서 간이 큰 함장들 중에서는 본인 잠수함이 들키면 호송선단의 공격을 유도하면서 다른 유보트들의 공격을 수월하게 만드는 함장들까지 있었다.
진주만 공습을 기점으로 미국이 참전하고 한달에 한 척씩 건조하는 리버티급 수송선이 투입됐지만 리버티선은 무장도 빈약한데다 유보트에 쉽게 따라잡혔기 때문에 대낮에 모습을 드러낸 유보트의 8.8cm 포의 먹잇감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1942~1943년까지도 유보트의 성과는 무시무시했으며 리버티선의 개량형인 빅토리선(속도가 두 배 가까이 늘었다.)과 소나의 전신인 애즈딕, 항공기 등이 투입됐지만 북극해를 통해 랜드리스 물품을 옮기는 미국과 소련 선단[9]이 유보트의 새로운 먹잇감이 되었으므로 악명은 여전했다. 여기에 공군이 못이겨 주는 편에 가까웠지만 대전 내내 '대서양의 악몽'이라고 불린 Fw 200 콘돌을 제공하면서 유보트의 효율은 더욱 커졌다. 콘돌이 수송선단의 위치를 알려주면 유보트들이 달려들어서 공격을 감행하기 때문에, 수송선단 선원들에게 콘돌이 보인다는 것은 곧 유보트의 공격이 시작된다는 전조였다.
대전 후반에는 7형에도 장비되었던 스노클을 도입하고 배터리 용량을 예전의 5~1.5배 이상으로 늘려(U보트 7형의 배터리는 7000~9200 Ah, 9형은 11300~ 22600 Ah 21형은 33900 Ah) 작전반경을 늘리고 전기모터출력을 올리고 수중고속항행용의 디자인을 채용해서 수중속도를 늘린[10] 신형 U보트인 21형이 등장했다.[11]
그러나 이 전술을 위해서는 유보트와 사령부간의 통신이 필수적이었는데 연합군은 허프-더프라는 장치를 개발하여 이런 무전을 감청하고, 장거리 레이더로 잠수함들의 위치를 찾아내기 시작했다.[12] 이런 방법이 효과적이었던 이유는 잠수함의 배터리 용량 한계로 잠항 시간이 짧고 모터의 출력 문제로 속도 역시 느렸기 때문이다. 이 탓에 적군의 항공기(특히 전쟁 중, 후반 무렵부터 등장하는 수상탐색 레이더를 탑재한 초계기)에 노출되면 손발도 쓸 수 없었다. 물론 잠수함들도 이런 해상초계기의 위협에서 벗어나려고 레이더 전파를 역으로 탐지해내는 안테나를 달고 다니곤 했으며 호위함이 붙는 호송선단에 대응하기 위해서 공격에 가담하는 유보트의 수도 늘리는 등 늑대떼 전술을 더욱 향상시켰으며 항공기의 항속거리가 미치지 않는 곳으로 이동해가며 호송단을 사냥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하지만 헤지호그 폭뢰[13], B-24 리버레이터 등의 장거리 폭격기가 등장하고 보그급으로 대표되는 호위항모가 호송선단 호위에 투입되자 에어갭(air gap) 이라고 불렸던 대서양의 사각지대[14]가 거의 사라졌고 호위항공모함에, 무장호송선에도 캐터펄트가 설치되어 전투기를 제공할 수 있게 되면서 Fw200 역시 쫓겨나고 만다. 이렇게 대전초기의 위용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U보트의 가장 큰 패인은 역시 앨런 튜링을 필두로 한 영국의 암호 해독반이 독일군의 암호 해독장치인 에니그마를 해독해 낸 것이다. 이로 인해 모든 작전이 드러나게 되고 U보트의 예상 위치, 진로, 현재 목적지가 다 드러나게 되며 모든 메리트를 상실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기들 작전이 너무 잘 들킨다는 것을 깨달은 크릭스마리네가 에니그마 구조를 더 복잡하게 고치자 아예 유보트를 나포해서 신형 에니그마를 입수한 뒤 암호를 해독하게 된다. 그 결과, 독일은 2차대전에서 9백여척의 유보트 중 777척(그 대부분이 1944~1945년)을 잃게 된다. 그나마 크릭스마리네의 경우 개전 이전부터 뚫려버린 육군루프트바페보다는 오래 버티고 있었지만 초기 3로터 에니그마는 1941년 5월부터 해독당하고 있었고 1942년 2월 로터를 하나 더 늘려 암호를 더 복잡하게 하자 잠시는 따돌릴 수 있었으나 1942년 말부터 4로터 에니그마가 해독당하기 시작하더니 1943년 9월부터는 완전히 털리게 된다. 이로써 유보트 승조원 4만여명 중 3만 5천여명이 전사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무지막지한 생산력이 절정에 달하기 시작하면서 격침당하는 수보다 훨씬 많은 수송선들이 무사히 도착하게 되면서 유보트가 아무리 애를 써도 더 이상 큰 효과를 볼 수 없게 된다. 유보트가 전쟁기간에 격침시킨 총 상선이 1,500만톤이고 영국이 자체적으로 찍어낸게 600만톤에 캐나다등 영연방국가에서 받아온게 600만톤에 그외 다른 연합국(프랑스등)에서 얻어온 배들이 300만톤으로 현상을 유지하는데 미국은 혼자서 2,500만톤을 건조했다.

4.1. 몬순 전단


유보트 세력이 대서양에서 열세를 보이기 시작하던 1943년, 이들 중 일부는 인도양과 태평양까지 진출해 일본과 공동 전선을 구축하게 되는데 이를 몬순 전단(Monsoon group)이라 부른다. 이 해역은 독일과 일본이 공동 전선을 펼친 유일한 전역이며, 아군의 잠수함을 적으로 오인해 공격하는 일이 없도록 잠수함에 대한 공격은 상호간에 금지되었다.
하지만 인도양까지 가는 것만 해도 험난한 여정이었고[15] 많은 유보트들이 가거나 돌아오는 길에 격침당했다. 특히 전세가 완벽하게 기운 대전 후기에 귀항하던 몬순 보트들은 스노클을 장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손쉬운 먹잇감이 되었다. 이 와중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일부 유보트는 독일의 항복 직후 일본에 노획되어 이(伊)급 함명을 부여받은 채 종전을 맞이했다.[16]

4.2. 지중해


1941년 9월부터 1944년 5월까지 총 62척의 유보트가 지중해로 파견되었 다. 그러나 연합군의 살벌한 경계를 뚫고 지브롤터 해협을 돌파한다는 것부터가 매우 위험한 시도였고,[17] 막상 들어간 지중해는 북대서양보다 환경이 평온하다 보니 악천후를 이용해 몸을 숨기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대부분의 해류가 대서양에서 지중해로 몰려들다 보니 마음대로 나갈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고, 결국 작전에 투입된 모든 유보트가 지브롤터의 벽을 넘지 못하거나 지중해 내에서 격침 혹은 자침되었다.
특이한 케이스로 루마니아 콘스탄차를 모항으로 두고 흑해에서 활동하던 30전단이 있었다. 2형 유보트로 구성된 이 전단은 유보트 운송 경로가 매우 독특한데, 해로는 사실상 불가능 관계로 다뉴브 강과 운하, 심지어 육로를 거친 대장정 끝에 유럽 대륙을 횡단해 흑해에 도착했다. 이들은 1944년 9월 루마니아 왕국이 쿠데타로 전복되고 연합국으로 돌아서자 전부 자침했다.

5. 유보트 함장



6. 종류



이 표에는 유보트라 불리는 대전기 이후의 독일 잠수함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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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파생형들이 존재하는데, 정찰이나 기뢰 부설을 맡았던 초경량급 2형[18], 전략초계 임무를 수행한 주 작전을 맡은 주력함인 7형9형이 있었고 대전 후반기에는 궁극의 개량형인 21형이 등장한다.
U-511일본에 공여된 후 일본 해군측이 로500이라는 이름까지 붙였는데 다소 늦게 들어온데다(1943년 5월) 별 활약이 없어서인지 의외로 언급이 많지 않다. 실전에 투입된 경력 자체가 0이라서 실전에서의 전과는 당연히 없었고, 대신 잠수함 발사 로켓의 발사 실험에 동원된 유보트로서 유명하다.

7. 현재 남아있는 U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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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남아 있는 유보트는 몇 척 되지 않는다. 영국에는 종전 직전에 격침되었으나 거의 멀쩡한 상태로 인양된 9C/40형 U보트 U-534가, 독일에는 종전 직후 노르웨이 해군에 압류되었다가 반환받은7C/41형 U보트 U-995가, 미국에는 전시에 카사블랑카급 호위항공모함 과달카날(CVE-60)이 나포한 9C/40형 U보트 U-505[19]가 시카고 산업과학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여기에 1945년에 자침한 것을 인양해서 독일 연방군 해군이 실험함으로 1984년까지 운용한 21형 U보트 U-2540이 브레머하펜에 박물관으로서 보존되고 있다. 또한 핀란드헬싱키에도 2차대전 당시 독일에게서 인도받은 2형 유보트가 남아있다.

8. 기록들


  • 양차대전을 통틀어 가장 많은 상선을 격침시킨 유보트: U-31형 유보트 SM U-35. 제 1차 세계대전 중 무려 224척의 상선/함선을 격침시켰다. 격침시킨 함선들의 총톤수는 무려 539,741톤! 현재까지도 이 대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대전이 끝날 때가지 살아남았고, 이후 영국이 승전한 형식으로 가져간 뒤 1919년-1920년 사이에 해체되었다,
  • 제 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많은 3일 자침. 참고로 아직도 자침한 그 자리에 있다고 한다.
  • 제 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많은 격침수를 기록한 유보트: 9형 유보트 U-37. 톤수로 따지면 총 202,528톤으로 위의 U-48에 비해 10만 톤이나 낮지만, 격침시킨 상선/함선의 수는 55척으로 제일 많다. 이후 위의 U-48과 같이 훈련함으로 돌려진 뒤, 1945년 5월 8일 자침했다.
  • 마지막으로 연합국 상선을 격침시킨 유보트: 23형 유보트 U-2336. 1945년 5월 7일 밤 11시 3분 경[20] 캐나다 국적의 상선 “SS Avondale Park”를 격침시켰고, 이것은 세계 대전에서 유보트가 격침시킨 마지막 함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21] 이후 U-2336은 1946년 1월 3일, 현창 작전에 동원되어 가라앉았다,

9. 관련 창작물



9.1. 소설


  • 당신들의 조국: 연합군이 유보트 에니그마 해독에 실패하는 데에서 시작해 2차대전에서 독일이 유럽을 정복한 배경의 1964년을 다루는 대체역사물. 주인공인 베테랑 경찰 크사비어 마르크는 전직 유보트 함장 출신이다.
  • 여왕폐하 율리시즈호: 영국 작가 앨리스테어 맥컬런이 집필한 전쟁소설. 가상의 영국 해군 순양함 HMS 율리시즈가 주역이지만 유보트의 공포를 잘 알 수 있다. 주인공 함선인 HMS 율리시즈는 대소련 수송선단의 기함이었기에 대소련 수송선단이 겪은 고통 역시 묘사되어 있다.
  • The Temple: 크툴루 신화로 유명한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드물게 세계 1차 대전 당시의 독일 제국의 유보트를 배경으로 다루고 있으며, 바다 속의 어떤 초자연적 유적에 다가갔다가 승무원들이 하나 둘씩 죽어나가는 내용이다.

9.2. 영화


  • 상과 하: # 딕 포웰 감독, 로버트 미첨, 쿠르트 유르겐스 주연의 1957년작 전쟁 영화. 미 해군 호위함과 U보트와의 대결을 그린 고전 영화로 이후의 전쟁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러닝타임 중 중반 이후 전체를 차지하는 대잠전이 백미다. 국내에도 DVD가 출시되었으며, 인터넷에 제법 재고가 돌아다닌다. 다만 번역의 질은 의역을 넘어 기본적인 맞춤법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케이스에는 엉뚱하게도 크림슨 타이드를 연상케하는 새빨간 오하이오급 잠수함이 실려 있다.
  • 특전 U보트: 전쟁영화에서 걸작을 꼽으라면 반드시 들어가는 작품.
  • U-571: 에니그마 탈취 에피소드를 영화화한 작품.
  • 그레이하운드: 여왕폐하의 율리시즈호와 마찬가지로 대서양 전투에서 유보트와 맞선 호송선단 구축함이 주인공이지만, 유보트도 적으로 비중있게 등장한다.
  • 마지막 U보트: 1945년 5월, 항복 직전에 두 명의 일본 해군 장교(대좌), 극비 문서, 우라늄과 분해해 실은 제트 전투기, 로켓 설계도가 담긴 마이크로필름 등을 싣고 일본으로 이동하려고 했던 U-234함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1993년 독일 공영방송사 ZDF가 만든 TV영화다. 유보트 비밀일기라는 책에서도 나온다.
  • U-900: U-900이라는 가상 함명의 U보트를 주제로 한 독일의 2차 세계대전 코미디 영화. U보트를 다룬 영화라서 그런지 같은 독일 U보트 영화 특전 U보트패러디한 씬이 많다. 주연은 독일의 유명한 코미디언 아체 슈뢰더(Atze Schröder)이며, 영화 몰락에서 오토 귄셰(Otto Günsche) 역을 맡은 배우 괴츠 오토(Götz Otto)도 조연으로 출연했다.
  • 인 에너미 핸즈: 미국의 잠수함 승조원들이 독일군 유보트에 포로로 잡히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 이미테이션 게임: 에니그마 해독을 둘러싼 앨런 튜링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영화.
  • 머피의 전쟁: 유보트 측이 꽤나 사악하게 나오는 영화.[22] 유보트의 공격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상선 승조원의 복수를 다루는 1971년 작품이다. 유보트의 모습이 어딘가 어색한데 발라오급 잠수함을 고쳐 촬영했기 때문이다.

9.3. 게임


  • 사일런트 헌터 3
  • 사일런트 헌터 4[23]
  • 사일런트 헌터 5
  • 사일런트 헌터 온라인[24]
  • Naval Front-Line[25]
  •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아틀란티스의 운명 The fate of Atlantis - 존스 박사가 유보트에 숨어들어가 아틀란티스의 보물을 찾으려는 나치와 싸운다. 엔딩에도 유보트로 탈출.
  • 메탈슬러그 시리즈 유일하게 메탈슬러그 3 해저 루트[26]에서만 등장하고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고. #
  • 울펜슈타인 시리즈 - 더 뉴 오더 7챕터부터 에바의 망치란 이름으로 등장한다,다만 이게 유보트인지 아니면 잠수하는 스텔스 항공모함인지 구분이 안 갈 수준으로 거대하고 이후 레지스탕스 크라이사우 서클이 이 유보트를 탈취해 마지막 챕터에서 핵 대포를 시원하게 쏜다. 이후 더 뉴 콜로서스에서는 계속 크라이사우 서클의 본진으로 사용 중.[27]
  • 전함소녀U-47, U-81, U-96, U-156, U-505, U-1206, U-1405가 등장한다. 특히 U-47, U-156, U-1206은 관련된 일화를 일러스트에 잘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 함대 컬렉션U-511이 등장한다.
  • 벽람항로에서 U-47, U-73, U-81, U-522, U-556, U-557, U-101, U-110이 등장한다.
  • 언차티드: 엘도라도의 보물에서는 엘도라도를 찾기 위해 남미로 갔다가 방치 된 유보트가 나온다. 해당 유보트는 조사를 위해 내부로 들어갔던 네이선 드레이크에 의해 어뢰가 유폭되어 폭발한다. 이후 엘도라도가 있는 섬에 유보트 기지와 함께 유보트가 나온다.
  • UBOAT - 스팀 WW2 Survival Sandbox
  • UBOOT
  • Air attack 2 스테이지5, 6에 등장한다. 스테이지7에는 가만히만 있다가 폭격맞으면 파괴된다(...).
  • 문명 6에서 독일 문명의 고유 유닛으로 등장한다.
  • 월드 오브 워쉽 현재 테스트 진행 중에 있으며, 이탈리아 구축함 트리 이후 등장할 예정이다.

9.4. 음악



  • 사바톤의 Primo Victoria의 Wolfpack 유보트에 의한 92수송선단의 습격이 소재다. 영상은 패러독스 인터랙티브 갤러리에서 만들었다.
  • 오오츠카 아이 3집 《Love Jam》 5번 트랙 U-ボト

[1] 독일어로는 '우보트'다. U는 '우'라고 읽기 때문.[2] 사운드 오브 뮤직주인공 게오르크 루트비히 폰 트랍 소령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 유보트 에이스였다.[3] 해군 대위를 독일어로 Kapitänleutnant(영어로 직역하면 Captain Lieutenant)라고 불렀는데, 영화 특전 U보트에서도 묘사되듯이 이것의 약자인 Kaleu(칼로이)는 U보트의 함장을 뜻하는 호칭으로 쓰이기도 했다.[4] 당연히 지휘관도 함장이 아니라 정장.[5] 사건 이후 독일이 멕시코에 미국에 대한 공격 요청을 타전했다 중간에 감청당한 치머만 전보가 미국의 참전에 불을 지폈다...고 알려졌는데, 실제로는 멕시코에 잃어버린 영토를 찾기 위해 함께 미국과 전쟁을 벌이지 않겠느냐는 소리에 미국 내 참전 여론이 들끓었지만 여전히 미 정부는 전쟁을 꺼려했다. 도화선에 불을 지른 건 러시아에서의 2(3)월 혁명으로 유럽에서의 동부 전선이 붕괴되면 독일의 승리가 확실케 된다는 판단하에 미 정부는 이를 기점으로 전쟁에 참전한 것이다. 도리어 상선의 경우 독일이 보상을 해 준데다 미국인 승객들이 여럿 사망했던 여객선 루시타니아 호 침몰 사건 때는 독일이 재발 방지를 약속하며 알아서 기는 바람에 참전 여론이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멕시코는 현실성 없는 독일의 제안을 거부하겠다고 미국에게 말했다고 한다.[6] 탈출해야 하는 수로가 좁았고 밀물이어서 강한 조류가 스캐퍼플로 쪽으로 흘렀던 탓에 프린은 탈출시에 디젤엔진에다 모터까지 켜서 겨우 조류를 거슬러 탈출했다고 한다. 그 와중에 그 옆을 지나던 자동차한테 들키기까지 했다.[7] 공격원잠이 아닌 현대의 재래식 추진 잠수함 역시 보통 수중속도 20노트를 조금 넘는 정도의 속도를 가지는데 기본이 30노트를 넘는 수상함에 비해선 턱도 없이 부족한 속도이다. 당연히 잠수함 기술이 훨씬 떨어지는 제2차 세계 대전의 시점에선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므로 잠수함 1대가 단독으로 기습하는 것은 미드웨이 해전 같이 급박한 난전이 벌어지는 경우가 아닌 한 일단 발각되면 무조건 실패한다고 봐도 좋을 정도였기 때문이다.(수송 선단이 최대 출력으로 도망가면 된다.) 하지만 늑대떼 전술로 포위망을 구축하면 수송 선단이 최대속도로 도망가도 공격 기회를 여러번 가질 수 있으므로 훨씬 격침확률이 높을 수 밖에 없었다.[8] 대체역사소설당신들의 조국에서 영국이 항복하는 대체역사도 원래는 작가가 유보트에 의해 완전히 바다 수송로가 봉쇄당한 영국을 상정한 것이다. 개전 초기에 그 몇 척 안 되는 U보트가 영국을 매우 괴롭혔던 것을 생각하면 그 시기에 대서양을 100척의 유보트가 매일같이 들쑤시고 다니면서 영국을 말려죽였을지도 모른다.[9] 처음 랜드리스 물품은 가장 가까운 북극항로를 통해 옮기기로 되어 있었는데 북극항로 특유의 계절적인 요소와 독일의 이 유보트들 때문에 북극항로는 위험성이 매우 컸고 실제로 운송중 상실한 화물이 매우 많았다. 그리하여 이 가장 짧은 루트는 유보트가 거의 전멸한 이후인 대전 후기에서나 주 운송로로 쓰일 수 있게 된다. 북극항로가 반쯤 막혀버리자 미국은 페르시아를 통해 육로로 소련에 넘겨주는 인도양 루트를 선택했고 이 루트는 매우 안전했지만 너무 심하게 멀었기 때문에 독일의 대대적인 공세가 한계에 도달한 42년이 중반이 지나서야 그럭저럭 재대로 돌아가기 시작한다.(반면 소련은 일본과 중립이었기에 비전투 물자에 한해서 태평양을 통해 자기들 배로 랜드리스 물품을 옮기게 된다.)[10] 21형의 경우는 수중속도가 오히려 수상속도보다 빠르다.[11] 21형은 현대식 잠수함의 기본을 마련했으며 AIP가 등장하기 전까지 성능에 큰 발전이 없었다. 그런데 21형의 발상은 단순히 기존 잠수함에 배터리를 많이 넣고 수중항행을 수상항행보다 더 중요시 여긴다는 개념으로 1차대전 수준의 기술로도 가능한 것이였다. 다시 말하자면 발상의 전환이다.[12] 현대의 잠수함은 작전시간 내내 물속에서 돌아다니거나 선체일부만 드러내서 산소를 공급받고 다시 잠항한다. 하지만 제1, 2차 세계 대전 때의 잠수함은 (독일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의 잠수함들도) 평소에는 부상해서 돌아다니다가 필요한 경우에만 잠수하는 식으로 운용했다. 참고로 유보트의 최대 잠수 가능시간은 공기 정화 캐니스터를 동원하여 최장 72시간이다.[13] 대잠수함용 박격포이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개를 MRLS처럼 다연장으로 넓은 범위에다 쏘는 178mm 접촉식 방식의 폭뢰로 유보트가 무슨 방법으로든 걸리면 당연히 유보트의 내구력으로는 절대로 직격으로 한발도 못 버티는 화력을 가지고 있었고 U보트도 물속에서는 속력이 매우 느려지고 잠항까지 시간이 걸리는데 잠항이고 뭐고 없이 물 속 끝까지 내려가서 접촉으로 폭발하고 거대한 지역에 떨어지기에 최대 7%밖에 파괴성공률이 안 되었던 일반 폭뢰와는 달리 헤지호그는 25%라는 경이적인 성공률로 독일 유보트의 씨를 말렸다.[14] 연합군 공군력(Air)이 도달할 수 없는 간극이라(Gap) 이렇게 불렸다. 유보트는 이런 지역에서 기습의 걱정 없이 편안하게 부상해 배터리를 충전하거나 보급잠수함으로부터 재보급을 받았다. 공중 초계기가 없으니 호송선단 습격도 용이하다.[15] 이들은 아프리카 대륙을 한바퀴 돌아서 인도양으로 진입해야 했는데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면 그나마 시간이 많이 절약되었겠으나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 지중해로 진입하는 것 자체가 난관이었으며 당시 이집트는 영국군이 장악하고 있던 상황이었다.[16] 독일 승조원들은 현지에 억류되어 있다가 종전후 고향으로 돌아갔다. 일부는 소련이 주둔한 지역으로 갈까 봐 돌아가지 않았다고...[17] 영화 특전 유보트에서 이 시도를 하다가 죽음 문턱까지 갔다.[18] 항속거리가 500km정도로 짧았지만 대전 초기에는 독일 U보트의 실질적인 주 전력이었다.[19] 함장은 배가 가망이 없다고 생각해서 배를 포기했는데 생각보다 멀쩡해서 응급 수리 약간 해서 미국으로 끌고갔다. 평소에 수송선단 소속 함장들은 심심풀이로 '''유보트를 포획할 기회가 생기면 어떻게 할까''' 를 종종 대화의 주제로 삼곤 했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필리핀 전투때 스페인 선박 나포 이후 두번째, 1812년 전쟁 이래 미 해군 승선팀이 탈취한 첫 선박 나포인데다다가 그것도 미 해군을 괴롭혀 적 장비 연구가 절실하던 U 보트를 끌고 왔고 더불어 이루 말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진 에니그마와 해독용 코드북, 암호 기자재들까지 죄다 가지고 와서 당연히 훈장표창의 비가 내렸으나, 수여받은 사람들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왜 받았는지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포로로 잡힌 U-505의 함장조차 전쟁이 끝나도록 자기 잠수함이 멀쩡한 걸 모르고 있었다고 하니 기밀 유지는 철저히 한 듯 하다.[20] 독일의 공식 항복이 이루어지기 딱 1시간 전이었다.[21] 독일의 항복 이후에도 일본에는 독일이 넘겨준 유보트가 있었고 마음만 먹었다면 추가 전공을 세울수는 있었겠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연구용이었기 때문에 실전에는 일체 투입되지 않았다.[22] 살아남은 상선 승조원들을 기관총으로 학살하고 불시착한 연합군 파일럿을 육지까지 따라잡아 사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23] 엄밀하게 말하자면 태평양에서의 미 잠수함대가 배경이지만 DLC 로 독일 잠수함을 운용할수가 있다.[24] 유비소프트에서 만든 웹게임, 그래픽은 썩 좋은건 아니지만 그래도 수작이다, 기회가 되면 해보자[25] 정확히는 유보트뿐만이 아니라 2차대전 전함들이 주를 이룬다. 이런 류의 게임을 좋아한다면 한번쯤 해보자.[26] 미션1, 미션3 해저루트[27] 전작에서 베를린 지하에 있던 본부가 털리면서 에바의 망치로 옮겼기 때문. 핵 포탄은 그 이후 후속작에서 한 번 더 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