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츠 해방전쟁

 


7년전 바츠 해방전쟁을 추억하며 2011년 NC소프트에서 선보인 아트컷.[1]
1. 개요
2. 배경
3. 전개
3.1. 제1차 (2004년)
3.1.1. 이후
3.2. 제2차 (2007년)
3.2.1. 이후
4. 영향
5. 바츠 해방전쟁을 다룬 매체


1. 개요



MMORPG 리니지2서버 중 하나인 바츠에서 벌어진 전쟁.# 보통 미디어에서 '바츠 해방전쟁'이라고만 하면 1차 전쟁만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지위를 내세워 바츠 서버를 장악한 '드래곤나이츠 혈맹' (Dragon Knights, 이하 DK 길드)의 폭거에 모든 서버의 이용자가 연합한 전선(이하 바츠연합군)을 만들어 맞서는 구도로 전개되었다. 이 전쟁에 참여한 사용자는 연인원 20만 명에 달했다.
온라인 게임의 전쟁들 중 보기 드물게 큰 규모로 일어난 전쟁이었고, 온라인 게임에서는 드문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온라인 게임에서의 커뮤니티가 현실에 미치는 영향과, 온라인 게임에서의 사회 형성에 대한 사례를 제시하여 각종 매체를 통해서 온라인 게임의 사회성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으며, 국내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분석 논문도 발표되었을 정도이다. #

2. 배경


D.K (Dragon Knights) 혈맹은 리니지에서 '강력한 혈맹'의 대명사와 같은 혈맹이었다. 리니지 1에서 데포로쥬 서버의 모든 성을 공성전에서 점령하고 몇 년간 장기집권에 성공했다. 하지만, 동시에 원성을 사는 혈맹이기도 했는데 높은 세금을 책정하고 사냥터 통제를 실시하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DK혈맹의 행태는 타 유저와 혈맹에게 반감을 불러일으켜서 많은 전쟁이 벌어졌지만, DK혈맹은 끝까지 승리를 거뒀다.
DK혈맹은 높은 세금과 사냥터 통제를 통해 많은 아덴을 얻고 있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기란성 앞 다리 척살 사건이다. 기란성에 출입하려는 모든 길드 외 유저들을 PK하고 무수한 PK 때문에 호출된 GM들의 개방 명령을 군주님이 지키라고 했다는 말로 거부하고 단체 블록당할 정도였다.
이렇게 얻은 게임머니를 통해서 높은 레벨과 좋은 장비를 갖추고 여기에 더해 지도부의 정치력과 단합력 덕분에 오랫동안 장기집권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전개



3.1. 제1차 (2004년)


리니지 2에 불현듯 등장한 DK 혈맹[2]은 뛰어난 단결력으로 제1서버인 바츠 서버를 장악해버리게 된다. 그들은 바츠 서버의 모든 영지를 장악하고 사냥터에 대한 통제와 함께 오토 프로그램으로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누리기 시작한다.
2004년 DK혈맹은 모든 영지의 세율을 10%에서 15%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상점에서 판매되는 아이템 등 해당 영지의 경제적 이익은 그 영지를 소유한 혈맹의 세금이 되는데 이는 바츠 서버에서 게임을 즐기던 게이머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게 됐고 바츠섭의 전 플레이어는 반발하기 시작한다.
2004년 5월 9일. DK연합에 반기를 들어 오던 '붉은혁명' 혈맹은 DK연합이 차지하고 있던 기란성을 점령하고 기란성의 세율을 0%로 선언한다. 곧 이어서 DK 혈맹의 보복 공성으로 붉은혁명 혈맹은 기란성을 잃게 되지만, 이는 바츠 서버에서 불만을 품고 게임을 즐기던 수많은 일반 유저들의 민심을 자극하기 이른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중립을 고수하던 여러 중소 혈맹들이 나서기 시작해 급기야는 反 DK 바츠 연합군이 결성된다.
거대 혈맹 연합에 의해 정상적인 레벨업을 할 수 없었기에 상당수가 저레벨이었던 이들 바츠 연합군은 거의 일방적으로 DK혈맹에 의해 도륙된다. 그러나 이런 일방적인 학살이 오히려 리니지 유저들의 정의감을 자극했다. 거기에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독립선언문을 연상하게 만드는 호소력 있는 호소문이 올라와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다.

바츠 서버의 이 전쟁은 일반 유저들의 힘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바츠동맹이 패배할 것입니다.

단 1렙짜리 캐릭이라도 수십 명이 모여서 DK연합에게 공격을 가하면 물리적으로만이 아닌 심리적으로도 큰 위축을 가져올 것입니다.

(중략) 이번 전쟁은 바츠 서버만이 아닌, 전 서버가 그 결과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히 거대 혈맹에 억눌려 있는 많은 저주서버 유저들이 함께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자신감을 주어야 합니다.

다시는 어떤 서버에서도 이러한 독재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전 지금 이 순간 바로 바츠 서버에 캐릭을 만들어 내복단에 합류할 것입니다.

제 가슴 속에 끓어오른 피를 주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말할 겁니다.

그 거대했던 바츠 서버 해방 전쟁에 내복단의 일원으로서 그 자리에 있었노라고.

2004년 6월 16일, 내복단의 일원인 겸댕이대왕이 올린 호소문

게시판은 들끓고 이 소식을 들은 전 서버의 리니지 2의 유저들이 자신들의 서버에서 육성하던 캐릭터를 내려놓고 바츠 서버로 몰려와 DK 혈맹을 타도하겠다는 명분으로 초보자 캐릭을 만들어 거대 혈맹 연합에 맞선다.
2004년 당시 리니지 2에서는 캐릭터 서버 이전이 허용되지 않았으므로 타 서버 유저들은 바츠 서버에서 신규 캐릭터 생성으로 3대 혈맹과 맞서야 했다. 이때, 그들이 착용한 기본 초보자 장비가 내복을 입은 것과 비슷하다고 하여 이들을 '내복단'이라고 불렸다.
내복단은 착용한 아이템이 스펙이 대체로 매우 낮은 편이기 때문에 인해전술과 인간 바리케이트로 DK 혈맹을 압박했다. 일례로 당시 고레벨 사냥터인 '용의 계곡'과 그 던전에서 수십 명씩 진을 치고, DK 혈맹과 그 동맹이 출현하면 떼를 지어 공격했다. 참고로 리니지 2는 기본 데미지가 0~1이 아니라 4였기 때문에 저레벨이 인해전술로 고레벨을 잡는 건 의외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점점 악화하는 여론과 내복단의 지속적인 공격에도 불구하고, DK 혈맹은 전쟁을 지속하였다. 하지만 명분을 등에 업은 연합군의 세력은 대폭 증가했다.
2004년 6월, 3대 혈맹의 하나인 제네시스 혈맹이 작은 충돌[3]을 계기로 DK 혈맹과 동맹을 파기하고 사과문을 게시하고 연합군에 투항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7월에는 32개 혈맹으로 불어난 연합군이 5개의 요충지 중 하나인 오렌성을 차지한다. 2004년 7월 17일. DK혈맹이 장악하고 있던 리니지 2 최대의 성인 아덴성 공성전이 발발한다.
여기서 잠깐 부연하자면 리니지 2에서는 공성전이 시작되기 24시간 전 양쪽은 '공성 등록' 혹은 '수성 등록'을 해야했다. Dk혈맹의 아덴성을 공성하느냐 연합군의 오렌성을 수성하느냐에 대해서 이번 전쟁 최대의 거점답게 치열한 눈치 싸움과 심리전이 벌어졌다.
등록 마감 10분 전, 아덴성에 공성 등록했던 제네시스 혈맹을 제외한 모든 연합군은 오렌성 수성 등록을 했다.
등록 마감 8분 전, 제네시스 혈맹마저 아덴성 공성 등록을 포기하자 DK 혈맹은 아덴성 수성 등록을 취소하고, 오렌성으로 진군했다.
그 틈을 노려 매복하고 있었던 제네시스 혈맹과 연합군은 아덴성으로 달려가 마감 3분 전 공성 등록을 신청한다.
당황한 DK 혈맹과 그 동맹은 시간상 늦어버린 아덴성 수성 등록은 할 수 없었고, 오렌성 공성 등록을 하고 만다. 이때, 아덴성 공성 등록 혈맹은 26개, 수성 등록 혈맹은 단 1개였다. 이로써 첫 번째 전략은 성공했고, 연합군은 수적 우위에 서게 된다.
공성전 당일, 바츠 연합군은 DK 혈명의 아덴성을 공성하기 시작한다. 연합군은 수적으로 우위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DK 혈맹과 그 동맹의 노련한 전술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리니지2 최초 만레벨 달성자이자 DK혈명의 고문 아키러스는 뛰어난 전략으로 연합군의 공격을 모두 봉쇄했고,아키러스와 9명으로 구성된 그의 친위대는 어마어마한 돌파력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바츠동맹군 3개 파티를 전멸시키고 바츠동맹군의 최전선 진지를 초토화시키기 시작했다. 때문에 연합군은 공성을 시작한지 1시간이 지나도록 진지조차 세우지 못했다. 결국 바츠 연합군의 사령관은 전군 후퇴를 명령한다, 바츠 연합군은 산지사방으로 도망을 가기 시작했고 승기를 잡은 DK 연맹은 오랜성으로 진군을 명령한다.

그러나 이것은 바츠 연합군 고도의 전략이었다, 바츠연합군의 별동대가 전장 외곽에 매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DK 혈명의 대다수가 오랜성으로 간 것을 확인하고 바츠 연합군의 총사령관은 공격 명령을 내린다. 그것도 모르는 채 DK 혈명은 단단히 착각을 하며 신나게 오랜성문을 두들기며 공격할 뿐이었다. 오랜성을 정복하기 직전인 DK 혈맹은 아덴성이 공격받는 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크게 당황한 DK 혈명은 다시 아덴성으로 회군을 지시한다
그러나 그들이 오렌성의 성문에서 만난것은 그들의 폭정에 분노한 나머지 다른 서버에서 건너온 수백명의 내복단이었다. 이들은 마을 입구를 막고 시체로 바리케이드를 쳐가며 DK혈맹원들의 아덴성 진군을 필사적으로 저지한다. DK연합군은 급한 마음에 카오나 보라를 불사하고 내복단을 죽여가면서 마을을 벗어나려 하였으나 내복단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여담으로 내복단이 막타를 날려 떨어진 DK연합의 아이템을 챙겨가기도 했다.그리고 DK혈맹이 내복단의 인간 바리케이드에 고전하는 사이 마침내 아덴성은 바츠 연합군의 손에 넘어간다.
리니지 2 최대의 거점 아덴성을 탈환하며 바츠 연합군은 물론 전 서버의 리니지 유저가 환호한다, 이날은 '바츠 해방의 날'로 선언되었다. 바츠 해방의 날을 기념하는 수천개의 글에 게시판은 폭발했으며, 심지어 언론에서 바츠해방전쟁을 기사화하기도 했다.
아덴 공성전에서 패배한 DK 혈맹은 2004년 11월까지 기란성, 글루디오성 마저 모두 연합군에 빼앗기고 고레벨 사냥터 '오만의 탑'으로 도망가게 된다. 한때 리니지 2 제1섭의 지배자가 이제는 몬스터들을 상대하며 숨어지내는 신세에까지 몰리게 된 것이다.

3.1.1. 이후


패전의 책임을 지고 DK혈맹에서는 군주 shadow여솔이 물러나고 고문 아키러스[4]가 새로운 군주로 선출된다. 그러나 그 직후 연합군은 초심을 잃게 된다. 승리의 전리품을 둘러싼 분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리벤지스 혈맹은 오렌성, 제네시스 혈맹은 아덴성을 차지했으나 정작 초기부터 가장 분투했던 붉은혁명 혈맹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 이런 갈등은 연합군이 기란성까지 함락시키고 나자 더욱 가중되었다.
뒷수습이 석연치 않은 연합군의 모습에 지지하는 세력은 크게 줄었고, 연합군이 내부 분열로 인해 구심점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혁명을 가장 초창기에 이끈 붉은혁명 세력과 그 후기에 등장한 혈맹 조직인 반 붉은 혁명 세력의 갈등은 고조되기 시작한다. 반면 그 사이 아키러스는 바츠 연합군의 이런 상황을 정확하게 읽어낸 듯 사비를 들여서 혈맹의 군자금과 물약값 등의 장비들을 지원하며 DK혈맹을 재정비하기 시작했다.[5]
결국, 양측의 감정이 폭발하며 반 붉은 혁명 조직은 붉은혁명 혈맹에 선전포고를 하기에 이른다.
바츠 연합의 내부 분열을 오만의 탑에서 지켜보던 아키러스는 마침내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다. 때마침 다수의 일반 유저들이 실망해 떨어져나갔으며 내복단들도 각자의 서버로 돌아간 상태였다. DK길드는 비록 공성에는 실패했지만 오만의 탑에서 몬스터들과 치열하게 맞서면서 전열을 정비해놓은 반면 연합군은 내부분열에다 단합도 안 된 상태였다.
아키러스는 드디어 오랫동안 오만의 탑 안에서 은거하고 있던 DK연합에게 총진군을 명령한다. 사실 이때 아덴성 공성 등에서 뼈저린 패배를 당한 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아이템도 죄다 바츠 연합에게 뺏겼던 DK연합이었기에 바츠 동맹군과 일반 유저는 그들의 저력을 깔보고 있었다. 결국, 바츠연맹의 분열과 아키러스의 진두지휘로 DK 연맹은 다시 빼앗겼던 성을 모두 수복하게 된다. 리니지2 제 1섭 바츠서버가 아키러스의 발 밑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2005년 1월 27일 아키러스는 연합군에 가담한 유저를 무제한 학살하는 척살령을 선포했다. 이 당시 DK 연맹이 척살한 유저는 하루에 700명에 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DK 혈맹에 대항할 만한 존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비참한 패배를 맛본 일반 유저들과 군소 혈맹들은 소극적이 되어 뭉쳐서 저항하기보단 흩어져 살아남기에 급급했다. 결국 시작은 창대했던 바츠 해방전쟁은 결국 씁슬한 결말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3.2. 제2차 (2007년)


제1차 바츠 해방전쟁 이후 DK는 독점적인 혈맹의 지위를 계속 누리나 혈맹 내부의 갈등과 아키러스 등 지도부가 크로니클 업데이트 후 게임을 접고 나가면서 DK혈맹은 6혈의 동맹 형태로 유지된다. 그러나 과거에 비하면 조직력과 힘은 약해질 수밖에 없었고 이후 여기저기서 반 6혈을 내건 혈맹들과의 전쟁에 들어가면서 계속해서 힘이 약해진다.
이후 6혈이 전력강화를 위해 사냥터 통제에 들어가면서 중립혈맹들을 압박하자 중립혈맹들은 중립연대를 발족하며 6혈과의 전쟁에 들어가면서 제2차 바츠전쟁은 6혈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이후 6혈은 계속되는 전쟁으로 인한 피로와 내분으로 결국 붕괴한다. 전쟁 승리 이후 중립연대는 해산한다.

3.2.1. 이후


2차 전쟁의 승리로 바츠 서버에는 평화가 찾아오는 듯 했다. 그러나 2009년 바츠 서버 최대 혈맹 중 하나로 자리잡은 붉은혁명 혈맹이 사냥터 통제를 선언하면서 전쟁이 발발하였다. 참고로, 붉은혁명 혈맹은 1, 2차 바츠 해방전쟁 때부터 반 DK, 반 6혈의 중심에 서있던 혈맹 중 하나였다는 게 아이러니한 사실이다. 2004년 5월, 기란성을 점령하고 세율 0% 선언을 한 바로 그 혈맹이었기 때문이다.[6]
2010년에는 붉은혁명에게 패배하여 다른 서버로 이전한 DK의 후예인 리버스 외 수많은 DK계열 혈맹이 1섭으로 총집결. 대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바츠 서버에서는 현재까지도 크고 작은 공성전이 일어나고 있지만, 이 전쟁들은 바츠 해방전쟁과는 달리 순전히 이권만을 위한 싸움이라는 점에서 온라인 게임에서 흔히 일어나는 공성전과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1차 바츠 해방전쟁 이후에 대해서는 특별히 서술하지 않는다.
이 후 10년이 지난 2014년 5월 20일 NC 소프트는 바츠해방전쟁과 관련된 행사를 진행했다. 이날 아키러스와 인터뷰가 진행되었는데 아키러스의 말에 따르면 본인은 그날 이후 리니지를 접고 개인 사업에 몰두했으며 다른 게임에서 아키러스라는 아이디를 쓰는 사람은 모두 자신을 사칭한 것이라 밝히기도 했다.

4. 영향


바츠 해방전쟁은 한국 MMORPG 역사상 가장 큰 서버 규모 전쟁이었다는 점에서 유저들 사이에서나 언론에서나 큰 관심을 보였다. 특히 바츠 해방전쟁이 보여준 양상은 현실세계의 정치와 비슷해서 이것에 주목하여 사이버 세계 내에서의 사회현상에 대한 훌륭한 사례로 꼽히게 되었다.
또한 이 전쟁은 비슷한 시기 '''도서대여점에 유행하던 게임 판타지 소설에 매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게임 판타지 소설에서 클리셰를 넘어 법칙처럼 굳어진 서버 통제를 일삼는 악역 길드와 통제에 고통받는 일반 플레이어들, 일반 플레이어를 규합해서 악역 길드에 맞서는 주인공의 구도는 바츠 해방전쟁의 구도를 본따 만들어진 클리셰이며, 주인공이 악역 길드를 게임 내 전쟁을 통해 물리치고 게임의 영웅이 된다는 게임 판타지 소설의 서사 역시 바츠 해방전쟁에서 유래되었다.

5. 바츠 해방전쟁을 다룬 매체


  • 대표적인 글은 이인화[7]의 〈바츠 해방전쟁-돌아오지 않는 전사들>이 있다.[8][9] 온라인에서만 게재된 글로는 '슈리아'라는 필명의 사용자가 연재한 제 1, 2차 바츠 해방전사가 있다. 게임어바웃의 역사시리즈 중 바츠 해방전쟁 또한 볼만하다. 다만 1차 바츠해방전만 기록되어 있다.
  • 문제는 아무도 핵심이 되는 1차 바츠 해방전쟁에 제대로 참여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과, 또 하나의 당사자인 DK의 입장에서 사건을 제대로 다룬 글이 없다는 것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당시에 관련 글을 감초라는 아이디로 연재하였던 이가 적은 '바츠 히스토리아의 표절인가 오마쥬인가라는 글이 존재한다. 후자에 대해서는 DK의 총군주였던 아키러스가 게임을 접으면서 쓴 멋진 악당론이 존재해서, 그와 용개를 엮은 이야기로 스토리가 형성되었다. 용개에 대한 에서 함께 묘사된 아키러스의 캐릭터가 이인화 등의 글에서도 같이 묘사되지만, 이건 극히 일부의 모습일 뿐이다. 아키러스의 DK는 용개가 무한 PK하고 다니던 EE와는 전혀 다른 배경 속에서 존재했기 때문이다. 특히 후자에 있어서 과거 DK에서 활동했던 이들은 대단히 불만스러워 해서 관련 댓글에서는 논쟁이 벌어지는 것도 흔하다. 2차 바츠 전쟁의 결과 때문에 그런 것도 있다.
  • 소설가 명운화가 쓴 《바츠 히스토리아》라는 제목의 책으로도 나와 있다.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전-해리포터 혈맹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서버의 전쟁을 역사책처럼 서술했다기보다는, 실상을 근거하여 해리포터 군주 입장에서 재밌게 각색한 소설에 가깝다.
  • 제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강희진의 '유령'에서도 바츠 해방전쟁을 주요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 SNL 게임즈에서 으리니지 2로 패러디 되었다. 내복단도 나름 충실하게 구현. DK 혈맹의 군주 배역으로 캔의 배기성이 특별출연하였다. 실제로, 배기성은 리니지 2를 오랫동안 즐긴 열혈팬이라서 출연한 듯 하다. 게다가 배기성은 해방전쟁 10주년 기념행사의 MC까지 맡았다.
  • 노네임드에서 언급된 게임 사건 중에 하나이다. 스포일러가 있으므로 자세한 건 문서 참고.
  • 2013년에 나온 독립영화인 잉투기에서 류혜영[10]이 이 사건을 짧게나마 언급한다.
  • 버프툰 제카툰에서도 바츠해방전쟁에 대해 다룬다.
  • 영향 문단에 서술된 것처럼, 대부분의 한국 게임 판타지 소설에서 바츠 해방전쟁은 사실상 필수요소가 되었다. 서버 통제를 일삼는 악역 길드와 고통받는 일반 플레이어들, 그에 맞서는 주인공의 구도가 안 나오는 작품이 거의 없는 수준.
  • 다만 상술되었듯이 숭고한 민주투쟁이 아니라 그냥 이권다툼+엔씨의 개판난 운영으로 인한 해프닝에 불과했다는 증언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 게다가 리니지 유저들과 게임 자체의 크나큰 문제점으로 최근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썩 긍정적인 시선은 아니다.

[1] 아무래도 당사자이다보니 의미에 집중한 것을 알 수 있다. 아래의 바츠혁명전 일러스트와 비교하면 가장 특징적이고 자랑거리인 내복단의 묘사가 잘 된 편이지만, 역으로 사실관계에는 문제가 있다. DK는 자진 해산한 것이기 때문이다. 2차 바츠전쟁의 육혈혈맹을 역시 DK의 후신으로 봐서 적은 것이라면 뒷맛이 좀 안 좋다. 아래의 전시회에서는 저 문구와 액자틀이 빠진 형태의 대형 그림으로 전시되었다.[2] 바로 위에 소개한 리니지 1의 DK 혈맹과 바츠 해방전쟁의 주요 길드중 하나인 리니지 2의 DK 혈맹은 이름만 같고 별개의 혈맹이다. 리니지 1의 DK혈맹은 데포로쥬 서버에서 리니지 최초로 사냥터 통제를 시작할 정도로 악명이 난 길드였다. 리니지 2가 나오면서 기존 DK 혈맹의 이름을 차용한 혈맹이 등장한 것이다.[3] 제네시스 혈맹의 영지에 멋대로 DK가 사냥을 하고다니자 제네시스가 룰을 어긴 DK혈맹에게 항의를 했으나 DK혈맹이 역으로 화를 내버리자 서로의 자존심과 이런저런 이유로 서로 전쟁을 하게된 사건이다. DK보다 오랜기간 전쟁터를 누비면서 싸워온 베테랑들이 많이 있던 혈맹이 제네시스였기 때문에 예상외로 DK에게서 승리를 거두게 되나 이후 2개의 혈맹이 DK쪽에 붙어서 4혈맹이 제네시스를 다구리쳐서 결국 제네시스를 굴복시켰다.[4] 나중에 울티마 온라인 커뮤니티 forg에 글을 썼는데, 울티마온라인에서 용개와 함께 E*E길드로 활동하던 사람이었다. 요즘들어 용개와 울온의 E*E길드는 시대를 잘 만났을 뿐, 지금이면 비매너 플레이어 이상의 소리를 듣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아키러스는 용개에게 상당한 영향을 받아 DK혈맹을 이끌 때 '멋진 악당', '당당한 악'이라는 표현을 강조했다.[5] 근데 DK혈맹이 내복단에게 장비가 다 털린 점을 고려하면 오만의 탑에서 몬스터를 잡아 장비를 획득하는 건 불가능, 그 장비들은 현거래에 혹한 내복단이 배신했다고 봐야 한다.[6] 실제 역사에서도 혁명가가 독재자로 변하는 건 흔한 일이다.[7] 본명 류철균. 영원한 제국을 쓴 소설가이자 이화여자대학교수. 8년간 리니지 2에 빠지는 바람에 흐지부지. 그리고 바츠 해방전쟁을 바탕으로 지옥설계도라는 소설을 썼다. 게임규제법 문제가 불거지자 진중권과 함께 게임규제법 반대를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마는데...[8] 도깨비 뉴스 링크[9] 그리고 이 글은 이후에 신동아와 한국형 디지털 스토리텔링이라는 책에 수록되었다. 한국형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네이버의 디지털 아카이브에서도 포함되어 있지만 이미지를 볼 수 없고 인용문과 본문을 구별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10] 응답하라 1988성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