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헌

 





'''대한민국 제32대 공군참모총장
박종헌
朴鍾憲 | Park Jong-heon
'''
'''출생'''
1954년 5월 9일 (70세)
경상북도 포항시
'''복무'''
대한민국 공군
1976년 ~ 2012년
'''재임기간'''
제32대 공군참모총장
2010년 9월 30일 ~ 2012년 4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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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경북고등학교 (졸업)
육군방공포병학교 위탁교육반 (졸업)
공군방공포병학교 (졸업)
국방대학교 (행정학 / 학사)
동국대학교 안보행정학과 (행정학/석사)
'''임관'''
공군사관학교 (24기)
'''최종계급'''
대장
'''최종보직'''
공군참모총장
'''주요보직'''
공군교육사령부 기본군사훈련단장
제20전투비행단장
합참 인사/군수본부 인사부장
공군본부 전력기획참모부장
공군사관학교장
국방대학교 부총장
공군교육사령관

1. 개요
2. 생애
2.1. 공군 복무시절
2.2. 공군 참모총장 취임 및 재임 시절
3. 전역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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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군인.

2. 생애



2.1. 공군 복무시절


1954년 2월 14일포항시에서 태어났다. 경북고등학교(53회)를 졸업하고, 1972년 공군사관학교 24기로 입교했다. 1976년에 임관했으며, 당시 주기종은 F-5였다. 이후 대한민국 공군F-16을 도입하면서, F-16으로 주기종을 전환했다. 덕분에 대한민국 공군의 첫 번째 F-16 조종사 출신 참모총장으로 기록된다.[1] 1983년 조선인민군 공군 소속의 이웅평 상위의 귀순 당시 소령 신분으로 출격, 귀순을 유도하였다. 이 공로로 화랑무공훈장을 수훈했다.[2]
2002년 준장으로 진급했다. 공군기본군사훈련단장, 제20전투비행단장을 역임했다. 소장 진급 이후로는 합참 인사군사본부 인사부장, 공군본부 전력기획참모부장, 공군사관학교장, 국방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했다. 유독 소장 시절 보직이 너무 많고, 공군사관학교장은 중장 보직임에도 소장 계급으로 보임되었던 것은 당시 공군 인사가 좀 많이 꼬여서 그렇다. 중장으로 진급한 후 교육사령관에 보임되었는데, 교육사령관 보직을 2년 6개월 동안 맡는 등 당시 인사가 여러모로 꼬이긴 했다. 통상 6개월 ~ 2년이 보직인데, 한 자리에서 2년을 훌쩍 넘겨버렸으니... 후임은 김용홍 중장이 되었다.[3]

2.2. 공군 참모총장 취임 및 재임 시절


2010년 10월 1일 공군참모총장에 취임되었다. 2010년 당시 같은 24기 동기인 황원동 중장이 국방정보본부장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당시 황 중장이 차기 총장으로 유력하단 의견이 많았다.[4] 황 중장은 중장 1차로 진급한데다, 요직을 두루 거쳤기 때문. 그러나 천안함 피격사건으로 당시 정보본부장이던 황 중장의 승진이 물 건너갔고, 동기생이던 박종헌 장군이 참모총장으로 승진했다. 아래 기수인 당시 공군 작전사령관도 물망에 올랐지만, 그 분 역시 천안함 사건으로 물을 먹었다.[5] 2기수를 내리면 타군과의 차이가 너무 나니, 당연하게도 박종헌 장군이 승진하게 된 것.
재임시절 군 내의 부조리를 척결하려고 노력하였으며, 선진병영을 위해 힘썼다. 특이할만한 점은 추락한 항공기가 있으면 재개비행을 할 때 본인이 솔선수범하여 그 기종으로 비행을 하려고 하였다는 것이다. 특히 당시 추락기종은 최신예 기종이 아닌 노후기종이였는데 공군 최선임자임을 생각하면 KF-16후기형이나 TA-50, F-15K를 탈 수 있었음에도 굳이 추락기종을 선택해 그것도 재개비행을 하였던 것이다. 2010년 말 RF-4C 추락사고 이후 재개비행, 2011년 신년 F-5E/F 비행[6] 및 T-103 추락사고 이후 재개비행 때 솔선수범하였다고 한다. 특히 F-5E/F추락은 본인 임기 전의 일였는데도 본인이 애착을 가지고 신년비행을 하였다. 높은 지위에 올라갈수록 으레 최신예 기종을 타려는 관행을 생각해보면 이례적인 일[7]
그런데 2012년 4월에 2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공군참모총장에서 물러났는데, 여기에 말들이 많았다. 언론에는 애초 "인사적체 문제가 있으니 용단을 내리겠다"며 박종헌 총장이 직접 국방부장관에게 사의를 표명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국방부 측에서 교체를 주문했고 박 총장은 반발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후 언론에는 박 총장의 자제가 공군 정비업체에 취업했던 것을 거론하며 마치 부당이득을 취한 것처럼 냄새를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박 총장의 자제는 박종헌 장군이 참모총장에 취임한 뒤, "공군참모총장의 아들이 공군과 이권이 있는 업체에 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퇴사했다. 애초 해당 군수업체에 취업했던 것도, 정비와는 상관없는 교육사령관 시절이었다.
당시 천안함 피격사건연평도 포격 도발로 청와대는 통합군 형태로 군 구조를 바꿀 것을 검토했다. [8] 그러나 육해공군 모든 예비역 장성들이 이에 크게 반발했다. 현역들은 대놓고 거스르기 힘드니, 민간인 신분인 예비역들이 대신 반발하는 것 아니냐며 청와대 측에선 불쾌한 기색을 보였다. 당시 "통합군제가 되면 정치권이 군의 눈치를 보게될 수도 있다"는 주장도 나왔을 정도#. 한데 당시 박종헌 총장은 현역 장성 중 거의 유일하게 공개된 자리에서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는데, 이것이 밉보여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3. 전역 이후


전역 4년 만인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되었다. 그러나 전역 직후인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더민주의 전신인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국방정책을 비난하며 공개적으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던 행적이 드러나면서 '당 정체성' 차원의 논란을 빚었다.[9] 여기에 앞서 전역 전후, 언론에 흘렸던 자제의 방산업체[10] 근무가 새삼 지적받으면서 비판이 가중되었다.
결국 다른 비례대표 공천자들, 특히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셀프 공천' 논란까지 더해져 더민주 비대위는 박 전 참모총장의 공천을 취소했다.
저렇게 끝나나 했는데 현재 문재인의 안보 싱크탱크 일원으로 참여해 있다(...) 아마도 실제로 박근혜 후보 쪽 캠프에 있었고, 박근혜 정부에서 장관급으로도 근무했으나, 박근혜 정부 정책에 반발하여 탈당하고 민주당으로 넘어간 진영과 같은 경우로 보인다.
[1] 훗날 F-16을 운용하는 제20전투비행단이 창설되었을 때, 단장을 역임했던 것도 주기종이 F-16이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공군의 F-16 전력화에 기여하였다.[2] 당시 방송에서 비행중이던 이웅평 상위의 전투기가 '''공습'''을 하는 것처럼 나오는 바람에, 시민들이 혼비백산했던 바로 그 사건이다.[3] 참고로 이 김용홍 중장 또한 '''성일환'''에게 밀려서 공군사관학교 교장을 역임했고, 거기서 전역했다.[4] 군내에서 돌던 소문은 정보본부장/교육사령관/작전사령관의 3자구도였다.[5] 당시 공군작전사령관은 예규에 따라 적법하게 작전을 수행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왜 출격이 늦어졌냐며 군법회의에 회부하려는 등 만만찮은 육방부의 기상을 드러냈다. 이 때 공군에서 육방부의 무식함 때문에 굉장히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안 그래도 육군 vs 해공군일 정도로 사이는 안 좋은데, 9년 전 쯤에 육군 마인드로 냅다 들이받았던 전례가 있었기 때문. 결국, 그 교전수칙은 바뀌었다.[6] 비록 본인의 임기 때 일어난 일은 아니었지만 2010년에 유독 F-5E/F의 추락사고가 많았다[7] 이와 비슷한 예로 2012년 박신규 공군작전사령관도 맥스 썬더 훈련 때 가상적기 역할을 하기 위해 F-5에 탑승하기도 했다#.[8] 통합군제로 가면 안 그래도 육군의 비율이 높은 국군 특성상 해공군은 공기가 다름없게 되버린다. 따라서 초반에는 육군뿐 아니라 특히 해공군의 반발이 거셌다. 그래서 공본이나 해본 게시판 가 보면, 육군에 대한 불만이 많다.[9] 다만, 이 건 짚고 넘어가야 했는데, 더불어민주당참여정부국민의 정부와는 성향이 많이 다르다. 정확히는 문민정부 시절과 매우 비슷하다.[10] 해당 방산업체는 예비역 공군 정비사가 만든 업체인데, 예비역 장성들을 고문으로 앉혀 로비하는 등, 정비불량 및 비리문제가 불거졌다. 다만 자제의 취업 시기는 교육사령관 시절이고, 자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