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

 


[image]
1. 개요
2. 사건 진행 과정
2.1. 무기 입수
2.2. 범행 과정
3. 범인과 범행 동기
4. 희생자
5. 사건의 여파
6. 관련 문서


1. 개요


Virginia Tech Shooting (Virginia Tech massacre).
2007년 4월 16일(한국 시각 4월 17일으로 넘어가는 자정 무렵) 미국 버지니아 주 블랙스버그에 위치한 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이다. 교내의 웨스트앰블러존스턴 기숙사와 노리스 홀 두 군데에서 순차적으로 총기 난사가 일어났고 이 사건으로 '''32명이 사망하고 29명이 다쳤다.'''[1] 범인은 '''한국인''' 조승희로 밝혀졌고 사건 직후 자살했다.

2. 사건 진행 과정



2.1. 무기 입수


2007년 2월 2일, 조승희는 인터넷으로 발터 P22 권총을 구매했으며, 해당 권총은 1주일 후인 2월 9일 배송되었다. 물론 버지니아 주 법으로는 합법적인 경로이다. 버지니아 주의 법 자체가 총기 소지에 대한 규제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후 3월 13일에는 글록 19 권총과 9×19mm 파라벨럼의 표준탄약인 9mm 풀 메탈 재킷탄 50발을 구입했다. 3월 22일에는 글록 19의 15발들이 탄창 4개를 오프라인으로 구입하고 발터 P22의 10발들이 탄창 2개도 이베이에서 구입했다. 3월 23일에는 또 이베이에서 10발들이 탄창 3개를 구입했다. 이후 3~4차례에 걸쳐 범행에 쓸 탄환도 구입했는데 나중에 밝혀진 것으로는 총 500여발에 달했다.

2.2. 범행 과정



1번째 총격은 현지 시간으로 오전 7시 15분에 있었다. 조승희는 웨스트 앰블러 존스턴 기숙사에 있던 에밀리 제인 힐셔의 방에 들어가 그녀를 저격하여 치명상을 입힌다. 그 뒤, 총소리를 듣고 나온 기숙사 사감 대학원생인 라이언 C. 클라크에게도 총을 쏴 즉사시키고 현장을 떠난다. 에밀리 힐셔는 총격을 받고도 살아있었으나, 병원으로 옮겨진 뒤 3시간 만에 사망했다.
일부 언론에는 에밀리가 조승희의 여자친구라거나 조승희의 구애를 거부하여 사건이 발생한 것처럼 알려져 있는데, 경찰 측의 수사결과 에밀리 힐셔는 조승희가 누군지도 몰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에밀리의 룸메이트인 헤더 하우가 7시 30분에 기숙사에 왔을땐 이미 경찰 특공대가 출동하여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중이었다. 헤더 하우는 경찰관에게 에밀리의 남자친구인 칼 던힐이 '''2주전에 총을 가지고 사격연습을 하는 걸 봤다'''고 증언하며 의도치 않게 수사에 혼선을 빚었고, 경찰관은 흔한 치정에 의한 살인사건으로 파악하고 에밀리의 남자친구인 칼 던힐을 용의자로 지목한다. 그리고 수업을 마치고 차를 타고 집에 가던 칼 던힐의 신변을 확보한 뒤 심문을 한다.#
이렇게 경찰관이 엉뚱한 사람을 잡는 동안 조승희는 2차 범행을 준비한다. 2번째 총격이 벌어질 때까지 약 2시간의 시간 간격이 있었는데 조승희는 이 사건에 대한 편지와 사진을 넣은 소포를 USPS Express 배송으로 NBC 방송국으로 부치느라 우체국에 다녀온다. 발송 시간은 오전 9시 01분으로 기록되어 있다. NBC 방송에서 보도한 조승희의 사진이 바로 여기 들어 있었던 것들이다.
이때 학교측은 총격이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기숙사가 대학과는 떨어져 있었기에 학교 전체에 대한 비상 사태를 발령하지는 않았다.
이때 당시 경찰관은 조승희가 도주한걸로 판단하고 주변에 공격 대상이 될수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등에 경찰관들을 파견했다.
이러한 학교측의 조치는 결과적으로 2번째 총격을 불러 일으켰다. 우체국에 다녀온 조승희는 배낭에 물건을 챙겨서 노리스 홀로 갔다. 그가 챙긴 물건은 체인, 자물쇠, 망치, 전투 나이프, 발터 P22, 글록 19, 10~15발씩 들어있는 탄창 9개와 여분의 탄환 400발이었다. 이때 조승희가 휴대한 탄환은 500발이 넘었고, 이는 실전 투입시 실탄을 지급받는 육군 보병 1명이 휴대하는 탄환의 분량보다도 많은 수였다.[2] 노리스 홀로 향한 그는 바깥으로 통하는 문을 사슬로 칭칭 감아 자물쇠로 잠가놓고는 범행을 시작했다.
조승희는 강의실을 돌며 총을 난사했는데 206호 강의실에서는 그를 막아서는 리비우 리브레스쿠 교수를 살해했고 강의실에 있는 학생들에게도 총격을 가해 9명을 살해하고 2명을 부상을 입혔다. 이 총격 직후 911에 신고가 접수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그는 옆 강의실인 207호로 자리를 옮겨 크리스토퍼 제임스 비숍 강사를 포함하여 4명을 살해하고 6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이후 여러 강의실을 돌아다니며 총을 난사했다. 총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책상칠판 등을 이용하여 바리케이드를 쌓아놓은 강의실도 있었는데 조승희는 이를 비집고 들어가거나 문 너머로 총을 난사해서 문 근처에 있던 사람이 죽거나 다친 경우도 있었다. 그는 총기를 174발을 난사해서 이곳에서만 30명을 죽이고 29명을 다치게 했다. 사망한 30명 중 28명이 머리에 의한 총격으로 사망하였고, 사망한 이들 모두 3발 이상의 총격을 받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오전 9시 50분경, 211호에 들어간 조승희는 자신의 머리에 권총을 난사하였고, 그가 자살하면서 상황은 종료되었다.

3. 범인과 범행 동기


You had a hundred billion chances and ways to have avoided today. But you decided to spill my blood.

You forced me into a corner and gave me only one option. The decision was yours. Now you have blood on your hands that will never wash off.

너희들에게는 오늘을 피할 수 있는 천억 번의 기회와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너희들은 내 피를 흘리게 했다.

나를 궁지로 몰아넣었으며 한 가지 선택만을 남겨놨다. 결정은 너희 것이었다. 이제 너희들의 손에는 영원히 씻기지 않을 피가 묻었다.

Like Moses, I split the sea and lead my people.

나는 모세처럼 바다를 가르고 내 동포들을 이끌 것이다.

-조승희 선언문 中-

조승희(범죄자) 문서로.

4. 희생자


버지니아 공대 추모 사이트
1. 라이언 클라크(Ryan Clark) - 22세, 심리학/화학/영어 4학년
2. 에밀리 힐셔(Emily Hilscher) - 19세, 축산학과 1학년
3. 미날 판찰(Minal Panchal) - 26세, 건축학과 석사과정
4. G. V. 로가나탄(G. V. Loganathan) - 53세, 토목공학과 교수
5. 재릿 레인(Jarrett Lane) - 22세, 토목공학 1학년
6. 브라이언 블룸(Brian Bluhm) - 25세, 토목공학 석사과정
7. 매슈 궐트니(Matthew Gwaltney) - 24세, 환경공학 석사과정
8. 제러미 허브스트릿(Jeremy Herbstritt) - 27세, 토목공학 석사과정
9. 파타히 룸반토루안(Partahi Lumbantoruan) - 34세, 토목공학 박사학위
10. 대니얼 오닐(Daniel O'Neil) - 22세, 환경공학 석사과정
11. 후안 오르티스(Juan Ortiz) - 26세, 토목공학 석사과정
12. 줄리아 프라이드(Julia Pryde) - 23세, 생명공학 석사
13. 왈리드 샤알란(Waleed Shaalan)[3] - 32세, 토목공학 포닥
14. 제이미 비숍(Jamie Bishop) - 35세, 독일어학과 교수
15. 로런 매클레인(Lauren McCain) - 20세, 국제학 1학년
16. 마이클 폴 주니어(Michael Pohle Jr.) - 23세, 생명과학 4학년
17. 맥신 터너(Maxine Turner) - 22세, 화학공학 4학년
18. 니콜 화이트(Nicole White) - 20세, 국제학 3학년
19. 리비우 리브레스쿠(Liviu Librescu) - 76세, 기계공학과 교수
20. 조셀린 쿠튀르누아크(Jocelyne Couture-Nowak)[4] - 49세, 프랑스어학과 교수
21. 로스 앨러메딘(Ross Alameddine) - 20세, 영어학/비즈니스학 2학년
22. 오스틴 클로이드(Austin Cloyd) - 18세, 국제학/프랑스어학 1학년
23. 다니엘 페레스 쿠에바(Daniel Perez Cueva) - 21세, 국제학 3학년
24. 케이틀린 해머런(Caitlin Hammaren) - 19세, 국제학/프랑스어학 2학년
25. 레이철 힐(Rachael Hill) - 18세, 생명과학 1학년
26. 매슈 러포트(Matthew La Porte) - 20세, 정치학 2학년
27. 헨리 리(Henry Lee) - 20세, 컴퓨터공학 1학년
28. 에린 피터슨(Erin Peterson) - 18세, 국제학 1학년
29. 메리 캐런 리드(Mary Karen Read) - 19세, 학제학 1학년
30. 리마 사마하(Reema Samaha) - 18세, 도시계획 1학년
31. 레슬리 셔먼(Leslie Sherman) - 20세, 역사학/국제학 3학년
32. 케빈 그라나타(Kevin Granata)[5] - 45세, 공학 교수
이 중에는 백인들만 있는게 아니라 유대인, 흑인, 아시안, 히스패닉 등 소수인종들도 있다.

5. 사건의 여파


이 사건으로 현지 한인들이 신변에 불안함을 느꼈고 여행객들도 미국 여행을 많이 취소했다고 한다. 또한 미국 유학을 가있거나 현지에 있었던 한인들도 대다수 귀국했다고 한다.[6]
당시 블랙스버그에서는 한인에 대한 증오 범죄는 없었고 미국인 한국인이 모두 추모하는 분위기였다. 이미 몇개월 전에도 고등학생이 총격난사한 사건이 있어서 당시 주민들의 충격이 대단히 컸다.
일부 미국 네티즌 사이에서는 "한국은 악의축", "김치에는 독성이" 같은 정치부터 문화적인 멸시가 들어있는 반한감정이 들끓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내에서도 총기사건이 빈번히 일어나는 대두이기 때문에 "총기소지를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며, 오히려 더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라며 "법이 아니라 문화를 바꾸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내놓기도 하였다. 기사[7]
일부 한국 누리꾼들은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을 버지니아 대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6. 관련 문서



[1] 범인 포함 시 33명 사망.[2] 물론 보병이 가진 탄환은 소총탄으로 권총탄보다 다량 휴대하기에 애로사항이 있고, 보병은 20kg에 달하는 군장까지 메야 하므로 그 피로감은 더욱 높다. 조승희처럼 목숨을 버릴 심산으로 공격배낭에 탄환만 한가득 채우면 수백발을 소지하는데 무리는 없다. 탄환 500발 소지가 문제가 되는 것은 경무장한 경찰관들이나 학생들에게 무차별 난사하기에도 엄청난 수량을 지녔기 때문이다. 조승희의 능력이 특출났다고는 볼 수는 없다.[3] 이집트 출신[4] 캐나다 퀘벡 주 출신[5] 강의실의 학생들 20명을 자기 사무실로 데리고 가 숨겨주고는 자신은 조승희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6] 이 당시 미국에서 유학하셨던 모 지인에 의하면 그 때 미국 사회의 분위기가 장난 아니어서 대다수의 한인들은 자신이 한국인인것을 숨기고 다녔으며 만약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이 들키면 '''밖을 돌아다니지 못하고 집에만 있어야 했을정도'''로 살벌했다고 한다. [7] 미국에서의 총기난사 사고는 2020년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인 재앙적 사회문제이며 (매년마다 대학, 고등학교는 물론 초등학교에서도 사상자가 발생한다.) 법은 커녕 문화조차도 바뀔 조짐이 없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