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광주역
1. 개요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에 있었던 옛 경전선의 폐역이다. 1974년에 폐역되었으며, 폐역 후 50년이 가까워지는 현재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2. 역사
1922년 전남철도주식회사가 부설한 사철인 광주-송정간 철도(현 광주선)가 개통될 때 극락강역과 같이 개업했다. 이후 1928년에 국철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다만 간이역 수준이라 승강장과 작은 대합실 정도만 있었고, 역무원도 없었다고 한다.
사실 이 역은 ‘운암역’이라는 공식 명칭을 가졌었다. 1922년 첫 개업 당시에는 운암역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후 당시 ‘운암리’, ‘동림리’ 지역이 광주시에 편입되면서 북광주역이라는 명칭을 갖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추정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이유는 1955년 경에 두 지역이 광주시에 편입되었고, 알려진 바로는 1959년 경에 운암역이 북광주역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명칭이 바뀌고 나서도 영업을 이어갔지만, 1974년 공식 폐업하였다.
3. 역 정보
사실 이 역의 위치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가 없다. 광주역사문화스토리텔링에 따르면 현 운암고가교 아래 운암동 786-18번지 앞에 대합실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1910~30년도 시기 지도를 보면 해당 위치에 역 하나가 있다. 공식적인 정보이기에 가장 유력한 장소라고 볼 수 있다. 위 사이트에 들어가서 운암동 786-18을 검색한 뒤 구 지도 사진을 보면 1930년대 말고도 1960, 70, 80년대 지도에도 북광주역 표시가 뜬다.
4. 여담 및 기타
- 지금은 존재감은 커녕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역이지만, 나름 역사에 길이 남은 사건 현장이었다. 바로 광주학생항일운동의 도화선 중 하나였던 ‘운암역 사건’의 현장이 바로 이 ‘운암역’이었기 때문. 1929년 6월 26일에 일어난 운암역 사건은 광주고등보통학교(현 광주제일고등학교)와 광주중(현 광주고등학교)[1] 학생들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난 사건이다. 당시 열차가 운암역을 지날 때 일본인 학생들이 ‘조선인은 야만인이다’라는 말을 했고, 이를 들은 광주고보 학생들이 크게 반발하였다. 열차가 광주역에 도착하면서 큰 충돌없이 지나갔으나, 28일에 해당 발언을 한 일본인 학생과의 실랑이 끝에 사과를 받아냈다. 하지만 이후 열차에 지도교사가 탑승하고, 역에서도 감시가 이어지게 되었다.
- 운암역이 폐역된 뒤에 북광주역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개업한 적이 있었다. 북구 동림동에 있는 대마산 앞에 화물취급역으로 운영되었다고 한다. 대마산의 채석장[2] 에서 채취한 골재를 옮기는데 이용된 것으로 보이며, 2000년대 초반에 폐역되었다. 현재 해당 구간을 지나더라도 역시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