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맛
1. 개요
식재료가 고온의 불꽃에 직접 닿았을 때 그 부분이 살짝 타면서 요리에 스며드는 독특한 풍미. 엄밀히 말하면 냄새에 가까우니 '불 향', '불냄새' 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화요리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훈제 문서에서도 알 수 있듯[3] 사실 불맛을 내서 요리에 풍미를 주는 기법과 그 기법을 활용한 요리는 세계 각지에 퍼져 있다. 프랑스 요리의 플람베(Flambé)[4] 라거나... 보편적으로 인간이 좋아하는 풍미인 셈. 이에 대해서는 원시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불의 사용이 주는 이점이 막대했기 때문에 부가적인 효과로 '''불이 더해주는 향미를 맛있다고 느끼는 기질'''이 유전적으로 선택받은 결과로 설명되기도 한다.[5]
보통 불맛 자체는 육류, 특히 '''돼지고기'''와 아주 잘 어울린다. 고온의 불꽃이 육류에 닿으면 마이야르 반응이 단기간에 일어나면서 재료의 맛을 보존하면서도 불맛을 잡을 수 있다. 물론 솜씨 있는 주방장은 해물, 야채 등 다양한 재료에도 불맛을 낼 수 있다. 또 '''간장'''과 아주 잘 어울린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간장이 불맛의 필수요소인 셈인데, 우리나라의 돼지갈비나 일본의 데리야키 등 간장으로 간한 돼지고기에 불맛을 내는 요리가 많다.
웬만해서는 취향을 안 타지만, 불향이 지나치게 나서 재료향을 덮는 경우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2. 중화요리의 불맛
중화요리에 사용하는 넓적하고 큰 냄비 웍, 돼지기름 라드 등을 아낌없이 사용해서 볶아내는 중화요리 특유의 불맛을 광동어로 '웍 헤이'라고 부르며, 아예 영어로도 wok hei라고 부를 정도로 중화요리 특유의 맛으로 인정받고 있다. 웍의 특징은 전체가 통철로 되어 있으면서도 면적에 비해 두께가 얇다는 것인데, 여기에 200℃가 넘을 정도의 강한 고온의 화력을 더해 라드 전체로 코팅을 하면서 재료에 맛을 낸다. 넓고 둥근 웍의 특성상 같은 웍 내부에서도 마치 공기의 대류를 연상시킬 정도로 온도가 다르며, 주방장이 손목을 돌려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재료를 다양한 온도에서 조리하면서 특유의 풍미를 내는 것. 여기에 손목을 꺾으면서 직화에 재료가 순간적으로 닿게 하는 것이 중화요리 불맛의 비결.
다른 요리 방식과는 달리 불맛, 특히 중화요리의 불맛 자체는 업소용 대형 주방에 있는 화구가 아닌 일반 가정집의 가스레인지 정도 레벨에서는 흉내내기가 상당히 어렵다. 일단 '불'을 써야 맛이 나오므로 '''화력'''이 안 되면 맛이 잘 나오지가 않는다. 파를 기름에 최대한 잘 볶아서 파기름을 내면 그나마 불맛 비스무리한 향이 나오긴 하지만 당연히 식당 불맛보다는 못 하다.[6] 하다못해 짜장라면이나 짬뽕라면을 제조하는 식품업체들의 고민 역시도 이 불맛을 잡는 것에 집중될 정도. 사실 목초액을 사용하면 편하고 또 일부 음식점에서 실제로 사용하기는 하는데, 해당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상당히 문제가 많은 재료인지라...더불어 이과두주를 뿌림으로써 잡내를 잡음과 동시에 연소시키고, 술향을 첨가하는 작업도 동반된다. 매체에서 음식에 불을 붙이는게 바로 이것.
다만 일부 사람들과의 생각과는 다르게 중화요리에 불맛이 안나면 중화요리가 아니라느니, 중화요리의 핵심이라니 하는것은 옳은 것은 아니다. 중국 본토, 홍콩 등의 가정에서 업소용마냥 10만BTU를 훌쩍 넘기는 가스레인지를 설치하고 이러지는 않는다. 그런 주장에 따르자면 중국 가정에서 만드는 요리는 불맛이 없어서 제대로 된 중화요리가 아니다(...).
어쨌든 기름, 주로 돼지기름(라드)에 태운 간장의 풍미, 이과두주의 잡내제거와 풍미첨가가 중화요리 특유의 불맛의 요체인데, 이연복 셰프 같은 경우 '그거 그냥 탄 건데...'라며 우려 섞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속설처럼 탄 음식을 먹는다고 암에 걸리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최근의 불맛 열풍은 과한 면이 있어 요리의 풍미 자체보다 불맛에만 집중하는 식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기 때문.
가정에서 야매로 불맛을 내는 방법은 소량의 간장을 태우거나, 성냥에 불을 붙인 후 황 부분이 다 타면 살짝 불어 불을 끈 후 바로 그 연기를 요리에 입히거나 불맛을 내는 향미유를 쓰거나 조리용 가스토치를 켜서 불꽃을 음식 위에 슥슥 비벼주면 된다. 어떤 방법을 쓰든지 간에 너무 욕심내서 숯향 내지는 탄맛을 내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는 게 포인트.
남는 시판 양념(특히 돼지갈비 양념)을 1티스푼 정도 넣고 빠르게 재료를 뒤섞으며 볶으면 불향 비슷한 느낌이 난다. 간장, 파, 고추 등이 들어있기 때문인데, 많이 넣으면 맛도 돼지갈비가 되어버리니 가급적 적게 넣는게 좋다. 파기름도 좋고 아예 가벼운 프라이팬을 사서 웍헤이를 연습해도 좋다. 조미를 안하고 기름에 달걀물 적신 찬밥이나 시판 볶음밥 볶는 연습만 해도 충분히 불향을 내는 요령을 알 것이다. 볶음밥으로 연습하는 거면 이때 무조건 계란을 넣어야 하는데 밥의 찰기를 무시할 수 있게 계란이 빠르게 익어 건조해져서 웍질하기에 수월하기 때문이다. 밥맛도 좋아진다.
3. 매운 맛과의 관계
한마디로 '''그런 거 없다.''' 불맛이 유독 중시되는 중화요리, 그 중에서도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은 사천요리가 특히 매운 요리가 많으며 불맛이 매운 음식에 어울리기 때문인지 불맛이 국내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이상하게 '불맛=매운맛'으로 의미가 와전되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문서의 맨 위의 분류에서도 보이듯이 '''불맛과 매운맛은 서로 별개'''다. 현재 국내에서 불맛으로 홍보하는 요리점이나 각종 인스턴트 식품들 중에서 불맛이 제대로 나오는 경우는 사실상 별로 없다. 그냥 조미료만 냅다 퍼넣어서 맵기만 할 뿐. 그러니 진짜 불맛을 맛보고 싶다면 불닭볶음면처럼 캡사이신을 들이부은 매운맛만 나는 음식을 사먹을 게 아니라 고급 중화 레스토랑을 가는 게 낫다.
돈이 없다면 집에서 간장을 둘러 팬에 연기를 내게 해서 재료에 눌은 간장의 향을 배게 해서 볶아 먹자. 그게 불맛이다. 불맛에 있어 청양고추나 캡사이신 따위는 배만 아프게 한다. 현재는 불맛을 재현해주는 화유(火油)라는 기름 제품을 팔기도 한다. 불맛이 필요한 요리에 한스푼 넣어주면 중국식 짬뽕에서 나는 그 향이 난다.
[1] 보통화 발음은 huò qì(훠치)이며 광동어 발음은 wok6 hei3(웍헤이)다.[2] 광동어 발음을 음역해서 그대로 쓴다. 가끔 표준중국어 발음을 음역한 Wok chi(웍치)나 영어로 직역해서 Breath of the wok, 즉 “웍의 숨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3] 물론 엄밀히 말하면 훈제는 재료에 불꽃이 닿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 등을 태워서 고열의 연기로 조리하는 기법이긴 하다.[4] 요리에 술을 부어 팬 내에 불을 잠깐 붙이는 것. 흔히 불쇼라고 불리는 그것이다. 다만 플람베는 불맛 외에도 잡내를 없애거나 알콜 자체를 날리는 등 다양한 의미가 있다.[5] 이는 잡식성 동물들이 과실류의 당분에 반응하기 위해 단맛에 민감한 반면 육식성 동물은 아예 단맛을 느끼는 미각수용체가 없는 경우와 유사하다고 볼 수도 있다.[6] 이것도 가스레인지에서나 되는 거지 전기 인덕션으로는 더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