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기름
1. 개요
Lard. 쇠기름에 대응하여 한자어로 돈지(豚脂)라고도 한다. 원래는 돼지의 콩팥 주변 지방[1] 덩어리에서 추출한 기름을 가리키는 용어였지만, 현재는 돼지에서 추출한 기름을 모두 일컫는 용어로 쓰인다.
2. 특징
돼지 기름은 약간 산패되더라도 튀김을 했을때 그럭저럭 괜찮을 만큼[2] , 의외로 맛이 깔끔한 편에 속하는 기름이다. 발연점도 꽤 높은 편이라 튀기거나 볶는 것에 크게 부담이 가지도 않는 요긴한 기름. 버터에 비해 고소하고 달달한 풍미가 없어 좀 콩라인 같은 느낌이 있다.
버터의 비교적 저렴한[3] 대체재로 요긴하게 쓰인다. 버터는 발연점이 낮은 편이라 뭔가를 볶거나 지지는 식의 요리를 할 때는 버터가 타기 십상이다. 단, 크리밍이 좋지 않고 버터에 비해 풍미가 밋밋하여 제빵에 쓰는 건 무리다. [4] 다만, 제과에는 큰 무리 없이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파이에 크러스트를 만들기 위해 라드를 쓰기도 한다. 중국 과자 월병은 라드를 써서 만든다. 물론 회족 등 중국의 무슬림 민족들은 월병을 만들 때 라드 대신 탤로(소나 양의 비계를 가공하여 만든 것)를 쓰기도 한다. 라드의 대체재로 쇼트닝을 쓰기도 하는데, 몸에 나쁜 포화지방산 함량이 높은 문제도 있지만 맛이 떨어진다. 라드는 김치와의 조합이 특히 뛰어나서, 김치 볶을 때 쓰면 다른 기름에 볶는 것보다 맛있어서 인기가 좋다.
돼지고기 조리 시 사용하면 고기의 맛을 더욱 증강시키는 효과가 있다. 의외로 깔끔한 맛이 나기 때문에 풍미로는 요즘 나오는 웬만한 식물성 식용유들보다 낫다. 현재는 동물성 지방이 건강에 나쁘다는 속설과, 돼지고기의 부산물이라는 특징상 생산 관리가 복잡한 문제 때문에 다소 기피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돼지고기 유통도 안전하게 되고 있고, 한식 요리에 잘 맞는 기름이기도 해서, 김치를 사용하는 요리나 삶은 고기와 섞어 쓰는 용도로 넣는 걸 추천한다.[5]
돼지기름은 사람의 체온(36.5도) 정도에서는 액체로 존재하는 몇 안 되는 동물성 지방이기도 하다. 덕분에 입 안에서 부드럽게 녹는다. 다만 실온 상태에서는 고체 상태로 존재하는데, 이 때문에 돼지기름으로 요리를 한 후 그릇을 설거지하면 돼지기름이 하수관에 달라붙어 결국 관이 막히는 원인이 된다. 알고 보면 이게 요즘 라드를 안 쓰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중국집들이 라드 대신 콩기름이나 옥수수유 같은 기름을 쓰는 이유로 가격 문제도 있지만, 주 원인은 저놈의 하수관 막힘 덕분이다. 이렇게 라드를 쓰지 않게 됨에 따라 중국집 음식맛이 예전과 꽤 달라졌다. 이를테면 라드를 쓴 볶음밥과 식물성 기름을 쓴 볶음밥은 풍미가 다르다. 튀김으로 가면 그 차이는 더 커진다.[6] 하수구에서 라드 덩어리가 떡지는 것이 워낙 골치아픈 탓에, 돼지기름을 다량으로 사용하는 일본 라멘 전문점은 기름을 따로 포집하는 전용 하수 설비를 설치하기도 한다.[7]
돼지기름이 식어 굳어버리면 설거지 하기에도 상당히 번거로운데, 돼지기름을 씻어내는 데에는 '''온수'''가 효과적이다. 선술하였듯 인간의 체온 정도만으로도 돼지기름은 액체 상태로 유지되기 때문에 손을 담그었을 때 조금 따뜻하게 여겨질 정도의 온수만으로도 녹아내린다.[8] 온수와 주방세제를 함께 사용하면 쉽게 씻겨 내려간다. 다만 역시나 녹은 돼지기름이 하수관에 들러붙을 수 있으니 설거지가 끝난 후에도 온수를 일정량 흘려 보내주도록 하자. 아예 기름 상태라면 뜨거운 물로 설거지할 때에도 주방세제 원액을 섞어 휘저어 뿌옇게 만든 후에 흘러 보내야지, 그대로 씽크대 하수구에 부으면 뜨거운 물을 부어도 물이 식는 어딘가에서 결국 굳어서 막혀버린다.
당연하게도 생 비계는 보존성이 꽤나 나쁜 축에 속하기 때문에 냉동을 하든지 해서 신선하게 유통할 수밖에 없는데, 역설적으로 불포화 지방산의 산패를 방지해서 기름의 질로 치자면 식용유 중에서는 가히 최상급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삼겹살 등으로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어서 그렇지.
국내에서는 대부분 13~14kg짜리 통(한 말 들이 통)으로 유통한다. 중국집이나 치킨집에서 사용하는 사각 깡통식용유와 똑같은 통에 판매하며 보통 원재료명에 돈지라 써있다. 소량의 팜유 또는 우지(소기름)와 혼합된 형태가 대부분. 700g짜리 유리병에 담아놓은 것을 파는 곳도 있으나 14kg 짜리에 비하면 가성비가 너무 안 좋아서 오히려 버터보다 비싸다. 소량으로 산다면 2개 세트로 사는 게 좋다. 혹은 인터넷에 100g당 450원이라는 매우 저렴한 가격선에서 가공되지 않은 돼지비계를 판매하고 있으니 찾아 보는 것도 좋다.
시중 가공식품 중에는 우지와 함께 돈지가 들어가는 것이 생각보다 많다. 분말 크림스프, 인스턴트 고형/분말 카레에 들어가며 소시지, 햄버거 패티 같은 돼지고기 가공품에는 50%까지도 들어간다. 육즙이 터진다고들 하는 돈육 가공식품의 육즙의 많은 부분을 돈지가 맡고 있는데, 육즙 터진다는 중국식 찐만두 같으면 그 육즙 절반 이상이 돈지다.
3.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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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요리에서는 아예 비계를 통째로 절여 먹는다. 라르도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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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요리에도 살로(Salo)라는 이름의 돼지비계를 소금에 절인 음식이 있다.[9] 절인 뒤 살짝 발효시켜서 먹는데, 추운 겨울을 버티기 위한 매우 소중하고 유용한 음식이라고 한다. 보드카에 어울리는 최고의 술안주로 회자되기도. 그리고 이게 러시아군에서는 전투식량에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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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회사 Casaponsa의 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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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에 발라 먹는 라드.
유럽권에서는 가공하여 버터처럼 포장하여 판다. '''빵에 발라 먹기도''' 한다. 보통 생 라드를 발라먹지는 않고, 비계를 녹여서 기름만 뽑아내어 정제한 라드에, 양파와 마늘같은 향신 채소와 베이컨 조각 따위를 섞어 하얗게 굳힌 가공 라드를 스프레드처럼 발라 먹거나, 녹인 것에 말린 빵조각을 찍어먹는다.
오히려 기름 맛 자체는 버터보다 깔끔하지만, 버터 특유의 고소하면서 달달한 풍미는 없어 버터 이상으로 느끼하다고 느낄 수 있는, 그야말로 기름맛이지만, 한국에서 흔한 과자급 유사 빵(?)이 아닌, 텁텁한 "진짜" 빵을 먹는 유럽에서는 오히려 버터보다 나은 점도 많아 꽤나 인기가 많다.[10] 기름맛이 꽤나 깔끔(?)한 탓에 버터 대신 요리에 쓰기도 한다.
유럽식 원조 빵(?)이 아니라 달달한 한국식 빵에도 맛있다고 잘 발라 먹는 한국인도 있는 것을 봐서 개인의 취향이다. 한국사람들은 삼겹살로 돼지 기름 맛에 익숙하니[11] 버터와는 좀 다른 다소 어색한 느낌만 넘어선다면 크게 불편할 건 없다.
아예 빵과 베이컨을 함께 먹는 조합도 유명한 만큼, 의외로 딱히 특별할 것은 없는 맛이 난다. 김소희 셰프의 말로는 청양고추 좀 썰어서 넣으면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맛이 된다고 한다.[12]
유럽에선 기름이 잔뜩 나오면서 맛도 그럴싸한 삼겹살의 비계에서 추출해 가공한다. 유럽에선 삼겹살 부위는 거의 라드 추출용으로나 사용되지 잘 안 먹던 부위였다. 전세계적으로 돼지고기는 국가마다 특정 부위만 소비되고 나머지는 잘 먹지 않던 탓에 국가간 남는 부위 서로 바꿔먹는 일이 가장 많은 종류의 육류이다. 그래서 유럽에서 생산된 라드를 최대 소비처인 한국으로 수출을 많이 하는 편. 한국의 저가의 백반집이나 고깃집에서 사용되는 네덜란드나 덴마크산 식재료는 삼겹살 밖에 없다.
서양권에서는 돼지껍데기를 라드 혹은 기름에 튀긴 스낵도 있다. 영어로는 포크 라인드(Pork Rind), 혹은 Crackling이라고 불리는데 미국에서는 주로 남부에서 소비하기 때문에 남부 레드넥들의 상징 중 하나로 인식되는 음식. 과거에는 몸에 해로운 대표적인 간식거리 중 하나로 꼽혔지만 저탄수화물 고지방 식이요법으로 인해 지방의 명예가 일부 회복된 이후 오히려 (상대적) 건강 식품으로 그 평가가 극에서 극으로 달리고 있다.
미국과 영국의 군인 비상 전투식량 중에는 라드덩어리가 통째로 포함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적당히 빵에 발라먹든지 하는 용도. 버터 보다 저렴하면서 보존면에서도 그나마 더 유리하고, 기름 덩어리 답게 고열량이고, 기름이니 나름 먹는 재미도 있어 꽤 쓸만한 군량이다.[13]
로마군도 전투식량으로 돼지기름을 지급받았다. 추울 땐 살이 트지 않게 바셀린처럼 몸에도 발랐다. 지금도 바셀린의 좀더 비싼 대용품으로 쓰인다. 바셀린 자체가 라드 같은 기름 덩이를 대체하기 위해 석유로 만든 물건이다.
한국에서도 과거에 바셀린 용도로 쓰기도 했다. 동의보감에도 "겨울철 튼살에 돼지족발 등을 끓이고, 물에 뜬 기름을 식힌 후 기름이 굳으면 그걸 살에 바르면 좋다." 정도로 나와있다.
소든 돼지든 버리는 부위 없이 다 뽑아 먹는 한국에서는 희한하게도 라드를 직접적으로 쓰지 않고, 간접적으로 돼지기름을 섭취하는 편인데, 빈대떡, 삼겹살이 대표적인 음식이다. 특히 삼겹살을 구울 때 나오는 기름으로 김치나 마늘을 구워먹으면 상당히 맛이 좋다.[14]
일본의 유명한 라멘집으로 알려진 이치란라멘에서 출시한 인스턴드 버전 라면에는 이 기름이 별첨되어있다. 기호에 맞게 넣지 않으면 너무 느끼해진다.
중국에서는 유저육이라 해서 라드에 돼지고기와 비계를 넣어 저장하는 요리가 있다. 비계에 비계를 첨가하는 것이 좀 괴악해 보이나, 막상 요리 후에는 생각보다 느끼하지 않다고 한다.
한편, 옛날 말갈족들은 한겨울에도 하의를 제외하고 다 벗고 다녔는데, 이 돼지기름을 수 cm(!)에 달할 정도로 엄청나게 두껍게 발라 추위를 피했다고 한다.
4. 라드 만드는 방법
재료: 두꺼운 냄비, 약간의 물, 돼지비계
비계에 고기가 붙어 있으면 기름의 산패가 빨라진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살때 A지방을 달라고 하면, 고기에 덤으로 얹어주거나, 싼 값에 판매한다. A지방은 돼지의 등쪽에 있는 비계로 라드로 만들기에 적당한 비계만이 있는 부위이며, 다른 부위의 비계에 비해 질이 좋다. 껍질이 붙은 판 통삼겹을 살 경우에 껍질 바로 아래에 붙은 지방이다.
1. 두꺼운 냄비에 약간의 물을 깐다. 그냥 비계만 넣으면 일정량의 기름이 배어나오기 전까지는 삼겹살마냥 타 버린다.
2. 돼지비계를 넣고 약불에서 돼지비계를 녹여낸다. 이 때 비계를 5mm 정도로 얇게 썰어서 넣으면 빨리 추출되고, 남은 찌꺼기도 처리/이용하기 편하다.
3. 추출한 기름을 덜어 놓고 요리에 사용한다.
기름이 일정량 정도 나오면 이걸 덜어낸 다음에 계속 추출한다. 뜨거울 때 병에 7/8까지 넣고 밀봉한 다음 건냉한 곳에 보관한다. 장기간 보관을 위해 병조림 전용 찜기를 사용하거나, 냉동보관하기도 한다. 밀폐 유리병에 담아 냉장실에 넣고 깨끗한 숟가락으로 퍼내며 쓰면 반 년쯤은 문제 없다.
뽑아 낸 기름에 통후추, 로즈마리 같은 향신료를 넣어 가열해 향을 더하면 서양요리에 쓰기 좋은 라드가 되고, 통마늘이나 마른 고추를 넣으면 한국요리에 좋은 라드가 된다. 간단하게 하려면 라드 뽑아낼 때 용기에 향신료를 던져 넣으면 된다.(타면 안 되니 조심)
기름을 짜낸 바삭바삭하고 진한 갈색 찌꺼기는 식용이 가능하다. 훈연향이 없고 간이 안 되어 있을 뿐 베이컨 가루와 쓰임은 거의 같다. 절구에 빻거나 기계로 갈아서 샐러드에 뿌려 먹어도 되고 샌드위치 소스 위에 뿌려도 좋다. 크림스프에 넣어 먹어도 그렇듯하다. 김치찌개 끓일 때 넣어도 된다. 이를 이용한 그람멜이란 음식도 있다. 비계를 자체 기름으로 튀겨서 만든 음식. 물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야 먹을만 하므로 귀찮으면 그냥 먹지 않고 버려도 무방하다. (참고로 개 주면 잘 먹는다. 기름이 많아 많이 먹이면 탈 나니 조금씩 주자.)
비계가 타지 말라고 물을 넣지만, 물이 남아있는 동안은 기름이 잘 나오지 않는다. 라드가 있다면 라드를 약간 까는 게 훨씬 빠르다. 화력에 따라 라드 나오는 속도 차이가 크지만 강불에선 눈을 잠시만 떼면 순식간에 숯이 된다.
5. 더 간단하게 라드 만드는 방법
1. 내열용기에 돼지비계를 넣고 뚜껑을 닫는다.
2. 전자렌지로 약 10분간 가열시켜 기름에 지방이 뜰 정도로 빠지면 기름을 따라낸다.
3. 남은 비계를 마저 5분 정도씩 더 가열해서 기름을 짜낸다.
※2번 과정에서 기름을 따라내지 않고 계속 진행하면 기름의 열 때문에 돼지껍질이 타서 기름에 탄내가 배이고 색이 짙어진다.
[1] 우지도 콩팥 주위 지방에서 뽑아낸 것을 최고로 친다. 돼지도 소목 동물이라 많이 비슷하다.[2] 물론 몸에 안 좋은 것 이전에 풍미가 훨씬 떨어지는 것은 감수해야한다.[3] 국내에서는 병에 들었거나 막대 모양으로 포장한 라드 가격이 버터보다 비싼 경우도 많다. 일단 가정용은 국산이 없다. 싸다는 건 식재료로 대량으로 살 때 얘기이고 가정용은 원래 버터보다 얼마 싸지도 않다.[4] 식빵 만들 때 버터나 식물성 기름 대신 쓰면 버터처럼 향이 강하지 않으면서도 촉촉하고 부드러운 빵이 된다. 그렇다고 식물성 기름처럼 기름지기만 한 것도 아니고. 라드를 집에서 만든다면 월등히 싸다는 것이 장점.[5] 예를 들면 백종원. 자기 채널에서 만두, 함박스테이크 같이 갈은 고기를 쓰는 메뉴를 만들 때 비계를 좀 더 넣으라고 추천한다. 50%까지도 넣어보면 맛있을 거라고.[6] 맛을 위해 하수관에 기름 처리 시설을 하고 라드를 쓴다 해도, 식으면 하얗게 굳기 때문에 홀에서 뜨겁게 낼 때만 괜찮지 배달 음식에는 라드를 쓰지 못한다. 원가도 높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퇴출.[7] 이런걸 모아다 정제하여 공업용 기름을 추출하는 업체도 있다.[8] 그릇에 돼지기름이 많이 붙었거나 설거지감이 많다면 고무장갑을 끼고 최대한 뜨거운 물을 충분히 뿌려가며 설거지하는 것을 권한다.[9] 타타르인 등 러시아 내 무슬림 소수민족들은 소나 양의 비계로 만든 할랄 살로를 먹기도 한다.[10] 버터보다 딱히 더 싸지도 않다.[11] 라드 자체가 삼겹살에서 뽑은걸 많이 쓴다. 그게 적당히 많이 나오면서 풍미도 괜찮은 편이기 때문.[12] 실제로 고추를 첨가한 스프레드용 라드도 있다.[13] 물론 기름은 산패되는 만큼, 염장하더라도 그리 오래 보존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다. 괜히 옛날 유럽 군함들에서 조리관과 조리병의 특권이 요리후 남은 기름 독점이었던게 아니다.[14] 그런데 소고기에서 반드시 부산물로 대량이 나오는 우지(탈로)는 이상할 정도로 활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