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복

 

'''이연복
李連福 | Lee Yeon-bok[1]
'''
2015년도 화보사진
'''출생'''
1959년 7월 11일 (65세)[2]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
'''거주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
신체
168cm[3]
'''국적'''
(귀화)
'''가족'''
아내, 1남(이홍운)[4], 1녀
'''소속'''
목란(오너셰프)[5], 한국호텔관광전문학교 석좌교수[6]
'''SNS'''

1. 개요
2. 생애
2.1. 소년기
2.2. 청년기
2.3. 후각 상실
2.4. 일본 시절
2.5. 목란 개업
2.6. 방송 출연
2.7. 은퇴 이후 계획
3. 그 외
4. 주요 프로그램
4.1. 방송 중
4.2. 방송 종료
4.3. 게스트
4.4. 책
4.5. CF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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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중화요리 전문점 '목란' 오너셰프#s-1. 한국호텔관광전문학교 석좌교수.
[image]
2008년 한국 중화요리 4대 문파[7]기사하면서 소개한 사진. 이연복 (사진 맨 오른쪽)은 호화대반점 출신이다.
당시 사진을 찍었던 권혁재 사진 전문 기자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화요리 4대 문파의 대가를 한 자리에 모아 사진을 찍을 때였다. 그때 모인 14명 중 한 명이었다. 한 자리에 모이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모여 사진을 찍었다. '''당시 서로 간에 미묘한 기 싸움이 있었다. 누가 앞에 서고 뒤에 설 것인가의 자리배치, 대가들에겐 그 순서를 정하는 일도 미묘했다.''' 겨우 배치를 해서 사진을 찍다보면 슬금슬금 앞으로 나서는 대가 몇 때문에 대열이 흐트러지곤 했다. '''당시 이연복은 스스로 제일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었다"'''는 후문이 있다. 기사.
여담으로 후술되어 있다시피 당시 같이 사진을 찍었던 여경래, 유방녕 대가들과 함께 SBS Plus 강호대결 중화대반점이라는 요리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4대 문파 출신이었지만,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업계에서 인지도는 크게 없었는데, 한국 중식연맹회장을 맡고 있는 여경래 대가는 한 인터뷰에서 "명실상부 현재 최고의 중식 스타이며, 중식의 2차 전성기를 이끌고 있고 그만큼 왕성하게 활동해서 중식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고 2019년 기준 한국의 5대 중식 주방장을 뽑을 때 한 명으로 지목했다.[8]. 4대 문파니 5대 주방장이니 다 방송을 타면서 알려진 그들만의 설정이지 식당을 찾는 일반인들과는 별로 무관한 얘기다. 한 때 광고를 타던 7성급 쉐프 권씨나 연돈이나 마찬가지로 자기네들 안에서 서로 주고 받는 권위일 뿐 방송을 안 탔으면 국민 대부분이 그런 게 있 는줄도 몰랐을 그런 거다.
안그렇게 보여도 올해로 무려 '''65세'''로, 동갑 연예인으로는 배우 김미숙, 이보희, 김흥국이성미가 있다. 그리고 상당한 동안이다. 얼굴 피부뿐만 아니라 손도 굳은살 없이 보드랍다. 왠지 치유력이 좋아 베인 상처도 금방 낫는다고.


2. 생애



2.1. 소년기


중화민국화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중국 산둥성 무핑(牟平)[9] 출신이고, 어머니도 산둥성 라이양(莱阳) 출신. 서류상 화교지만 자서전 <복 사부만 따라하면 집에서도 중화요리가 된다>에서 말하길 자신은 왕십리에서 태어났다고. 부모는 본토 중국 출신인데도 중화민국계(대만)를 자처하는 이유는 과거 대한민국 정부가 국내 화교는 일괄적으로 중화민국적으로 취급을 했기 때문.[10] 이연복 본인은 성인이 될 때까지 산둥에 가본 적도 없단다.[11] 한국 사람과 결혼하고 중식당도 자리잡으면서 대한민국으로 귀화했다.
어린 시절 부모님 중식당이 잘 안 돼 가세가 기울자, 사립인 화교 초등학교의 높은 학비를 견딜 수 없었다. 어릴 적 짱깨라는 놀림도 자주 받았다고. 6학년 때 중퇴를 결심, 13살의 나이로 처음 철가방을 들었다. 처음에는 아버지 지인 가게에서 견습을 했으나, 직원들이 사장 똘마니라고 왕따를 시키자 다른 중식당에 취직한다. 17살에 명동 사보이 호텔 중식당 <호화대반점>의 막내로 들어간다. 일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둘째 칼판[12]까지 오르고, 일손이 필요할 때면 자기 친구들도 호화대반점에 취직되도록 다리를 놔줬다. 그러다 어느 날 주방 파벌간 패싸움에 휘말리면서 그만뒀다. 평소 의리로 도와줬던 사람들이 반대로 내가 곤경에 처했을 때는 모르는 척 해 마음의 상처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방송이나 술이 좀 취하면 당시 얘기를 하는 듯하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었는지 성격이 상당히 세고 날카로웠다고 한다. 그래서 어릴 때 식당에서 외상 손님에게 밀린 돈을 받는 험한 일도 도맡아 했다고 한다. 이 날카로웠던 성격과 인상은 청년기 때까지 계속 이어지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아내와 함께 중식당을 열었을 때부터 현재와 같이 성격과 인상이 유순해졌다고.

2.2. 청년기


유년기를 어렵게 보낸 후, 22세가 되는 해인 1980년, 선배의 추천으로 주한 대만 대사관 조리장에 지원한다. 최종 후보 3인이 실기 면접을 보았는데, 이 때 자신을 최연소 조리장으로 합격시켜준 동파육은 지금까지도 운명의 요리라고 한다. 대사관 근무로 안정적인 수입이 생겨 생활이 평탄해지고 가정도 꾸린다. 또 대사관은 연회를 자주 여는데, 매번 다른 손님에 또 매번 다른 요리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실력이 일취월장하게 된다.

2.3. 후각 상실


1984년, 26살 때 축농증 수술의 후유증으로 후각을 잃는다.

대만 대사관에서 일할 때였다. 대만 대사가 1년에 한 번씩 자기 나라로 들어가는데 내 코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같이 들어가자고 했다. 그땐 대만 의료 기술이 한국보다 나았다. 당시 대수술을 했다. 수술하고 났는데 그 뒤부터 냄새가 안 나더라. 지금도 아예 못 맡는다.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셰프 편)

요리사로서 후각의 문제는 치명적이므로[13]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미각과 촉각[14]만으로 후각을 대체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한다. 후각을 잃은 대신 미각이 발달하여, 음식 맛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간 조절을 더 정확하게 할 수 있게 된다. 말하자면 작곡가가 청력을 상실한 핸디캡을 극복한 것과 마찬가지의 인간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는 후각을 상실하면 미각은 당연히 대부분 상실된다. 노력이나 승리의 문제가 아니다. 달거나 짠 등의 기본적인 것을 제외하면 인간이 미각이라고 착각하는 대부분이 후각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원래 무덤까지 갖고 갈 생각이었는데, 기자 한 명에게 몰래 언급했더니 기사를 내어 일파만파 퍼지는 바람에 공개되었다고 한다. 냄새도 못 맡는 주방장이 하는 식당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손님들이 뚝 끊길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후각을 상실했음에도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내는 주방장이라는 소문이 퍼지며 식당이 더욱 잘 되었다고 한다. 한 번 퍼지고 난 이후에는 본인도 스스럼 없이 밝히곤 하는데, 2015년 9월 7일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서양 재료 중에는 트러플처럼 향으로 유명한 것은 맛을 알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2.4. 일본 시절


일본에 있던 친구의 권유로 일본으로 건너간다. 일부러 경력을 숨기고 다시 설거지부터 시작하였고, 야간업소의 주방장으로 일을 하며 돈을 모으다가 도일 4년만에 투자를 받아 도시락 가게를 창업한다. 이 시기 한중일 손님의 다양한 입맛을 주변과 차별화된 메뉴로 사로잡는다. 또한 웃으면서 손님을 접객하는 일본 특유의 서비스 정신을 배우게 된다. 처음에는 드나드는 손님에게 일부러 인사하였으나, 나중에는 그것이 진심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일본 오사카에서는 10년 간 체류한다.
한편 일본 시절 파칭코를 배우는데, 대사관 시절의 월급인 몇 만엔씩을 매일 딸 정도로 잘 쳤다. 그러나 돈을 물 쓰듯 쓰고 담배도 많이 피우면서 점점 폐인화되는 것을 느껴 그만둔다.

2.5. 목란 개업


1998년 대한민국으로 귀국하여 중식당 '목란'을 개업한다. 유래는 중국의 설화 주인공인 화목란.[15]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대신해 군대에 갔던 화목란의 이야기가, 마치 어린 나이에 철가방[16]을 들어야 했던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게 느껴 상호명으로 생각해두었던 이름이다.
목란은 한국 자영업자의 설움으로 월세 인상에 쫓겨 몇 차례나 위치를 이전했다. 수요미식회 짬뽕 편에서 월세 스트레스를 언급한 적이 있다.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최현석에게 반쯤 농담으로 셰프 몇이 힘을 합쳐 건물을 같이 올려 각자의 레스토랑을 개업하자고 했는데, 그에 동참하며 이 분 혼자만 눈빛이 농담이 아니었다. 썰전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서장훈이 임대 기간이 끝나고 정 마땅한 곳이 없으면 연락해 달라고 명함을 건네기도 했다.[17]
2018년 현재는 연희동에 위치하고 있다. 임대료에 쓸 돈으로 맛에 투자한다는 신념으로 번화가가 아닌 외진 주택가에 자리했지만... 365일 24시간 예약이 폭주하면서 위치 따위는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게 되었다. 가게 관련 내용은 아래를 참조.

2.6. 방송 출연


2011년 올리브 쿠킹 타임에 출연해서 마지막 5회 동안 중국 요리를 선보였다. 2006년 4월 14일자를 시작으로 생활의 달인에서 중화요리의 달인으로 몇 차례 출연하였고, 2014년 O'live 오늘 뭐 먹지에 출연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2015년 냉장고를 부탁해최현석 대신 게스트로 출연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방송 출연을 시작한다. 40여 년이라는 경력, 장난과 농담을 좋아하는 예능감으로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잇따라 섭외된다.[18]
방송 출연 후 가게가 유명세를 얻게 되면서 월 매출이 2,000만원 이상 하락하는 곤욕(?)을 치른다. 목란은 원래 코스 요리를 즐기는 단골 손님으로 자리가 꽉 차는 식당이었다. 그런데 방송 후에는 다양한 중식 메뉴에 익숙하지 않은 손님들도 몰리면서 짜장면, 탕수육과 같은 식사류만 시키는 경우가 많아 객단가가 떨어지면서 매출 감소를 겪는다.[19] 방송으로 인기가 오른 후 여러 광고에 출연하자 과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수요미식회에서 밝힌 바로는 월세가 올라 힘들다고 한다. 매출은 줄고 월세는 올라 이중고.
하지만 다행히도 2015년 말부터는 "예약이 너무 힘들다보니 손님들이 '''단단히 벼르고 찾아와서 각종 요리를 다 맛보고 가시면서''' 오히려 전보다 매출이 늘었어요."라고 밝히기도 한다.
예약이 얼마나 힘드냐면 500통은 기본으로 깔고 가야 한다. 전화 500통이다. 운 나쁜 경우는 1000통을 돌려도 안 된다. 200~300통 돌려서 예약을 잡으면 운 좋은 케이스.[20] 예약 방법 관련된 글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론상으로는 언제든 예약 가능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내가 원하는 예약 날짜 한 달 전, 그것도 1일 또는 16일 이틀만 예약이 가능하다. 직접 방문해서 펑크가 나면 예약이 가능하지만 실제론 불가능하다. 죄다 200통씩은 전화 돌리고 오는 판국인데 그거 아까워서라도 펑크 내기 어렵다. 당연히 예약 자체가 너무너무너무너무 어려우니 한 번 갈 때 어지간히 쓰고 올 수밖에 없다. 인당 8만원 하는 스페셜 코스에 동파육을 시키는 것이 사실상 거의 기본 코스다 보니, 2명이 가도 최소 20만 원은 찍고 나온다. 당연히 매출이 오를 수밖에 없는 부분.
본인이 직접 주방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 목란은 월요일이 휴무일이며 이 때 방송 촬영을 한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격주 간격으로 월요일에 2주 분량을 한꺼번에 촬영한다.[21] 그 외 인터뷰 같은 것은 식당 영업이 끝나고 자정을 넘어가는 시간대에 한다. 정말 부득이한 일로 식당을 비울 때는 본인 다음 가는 실력의 2인자가 주방을 잡는데, 바로 사모님이다. 보통은 계산대 옆이 사모님 포지션이고 남편을 사장이 아니라 주방장으로 부른다. 사실 유명 셰프가 있는 식당들의 운영은 대부분 비슷한데, 일단 해당 셰프 얼굴을 보기가 굉장히 힘든 것이 특징이고 운영 시간을 매우 줄이든지[22] 아니면 보조 요리사들을 대거 고용해서 늘어난 고객을 응대하고 유명 셰프는 거의 얼굴마담만 하든지 하는 형식이다. 목란은 후기에서도 보면 알다시피 이연복의 얼굴을 보는 경우가 매우 많고, 이연복이 있든 없든 요리의 맛이 별로 변화가 없다는 특징이 있다.
방송 출연 자체는 본인이 즐겁기 때문에 계속 하고 있다고 한다. 막상 목란 식구들은 아무도 방송 출연을 원치 않는다지만, 본인은 이미 중식 요리사로서 열심히 살아오면서 이룰 것은 다 이뤄냈고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방송은 취미 비슷한 것으로 설사 경제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자칭 맛 칼럼니스트인 황교익은 이연복의 방송 출연 계기를 두고 "그냥 좀 심심하셨던 것 같다."라고 추측했다. 이미 업계에서 탑 티어인 데다가 홍보가 필요한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냉장고를 부탁해에서는 고급 재료는 물론이고 '''냉장고에 있는 싸구려 저질 재료로도 순식간에 고급 중화요리로 둔갑'''시키는 마술과도 같은 실력을 선보인다. 그 덕에 쟁쟁한 쉐프들 중에서도 2연패를 달성했다.
여담으로 자신의 SNS에 잊을 수 없는 요리 프로그램을 뽑으라면 냉장고를 부탁해를 뽑을 것이라고 밝혔다.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하는 셰프들은 정말 실력파들이고, 자신도 겸손해진다고.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요리를 한 입장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기술이 계속 나온다고 한다. 실제로 모토가와가 특별 출연했을 때 처음 보는 요리법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요리의 길은 멀고 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어쩌면 고든 램지제이미 올리버보다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맛깔스럽게 잘 이끌어준 김성주안정환의 재주에 존경을 표한다고 했다. 그리고 연예인들을 섭외하는 제작진들의 섭외력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는 짤막한 글을 올렸다.

2.7. 은퇴 이후 계획


은퇴한 후에는 유기 동물을 거두어 보호하는 시설을 운영하며 노년을 보내고 싶다고 한다.
지금도 쉬는 날에는 아내와 함께 유기견 보호센터에 봉사활동을 다닌다(MBC 스페셜 셰프테이너 편). 또 목란 옆에는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밥그릇도 있다. 그런데 돌보던 길고양이가 다른 사람에게 폭행을 당하고 죽은 일이 있어, 야생동물 학대죄에 대한 토론에서 언급되기도 했다. 관련 기사. 이연복도 분노가 컸는지 평소의 온화한 모습과 달리 폭행범에게 ''''너 내가 잡으면 똑같이 해준다''''는 일갈을 날렸다. 이에 인터넷상에서는 애꿎은 동물을 죽여서 대응한 폭행범을 비난하는 반응도 많았지만, 전용 공간까지 만들어서 대놓고 길고양이들을 끌어들인 이연복을 비판하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수제자 두 사람에게 가게를 내주고 세를 받아 노후를 살고 싶다고 방송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중화대반점에 데리고 나온 수제자들을 언급한 것이라면 둘 다 독립했고, 이후 방송에서도 딱히 노출되는 수제자는 없다. 다만 아래 목란 항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부산에 분점을 냈는데, 현재는 이연복과 부인, 이연복의 아들이 돌아가면서 부산에 내려가서 관리를 하고 있다. 이연복의 말에 의하면 사모님의 음식 솜씨도 대단하다고.
그 외에, 중식 레시피를 단순화하여 소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의 구상을 내비친 적도 있다.
교자란이라는 만두 브랜드를 시작했다.

3. 그 외


  • 후각을 잃은 대신 예민한 미각을 유지하기 위해 담배를 피우지 않고, 과음도 하지 않으며, 배가 부르면 간을 보는 혀가 무뎌진다고 여겨서 아침을 거르고 오후 3시에 첫 끼를 먹는다. 대신 달달한 캔커피를 수시로 즐겨 마시는 편으로, 개인 냉장고에 캔커피를 가득 채워놓지 않으면 불안해질 정도로 집착한다고 한다. 캔커피의 강한 향도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그냥 카페인 좀 든 달달한 갈색 설탕물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카페 아메리카노는 자신에겐 쓴 한약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캔커피가 제일 낫다고 한다. 이런 식습관 때문인지 채널 A의 구원의 밥상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건강에 무리가 올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 다마스쿠스 강 특유의 줄무늬가 선명한 중식도를 사용한다. 참고로 KAI사의 旬시리즈 중식도(38만원). 직구하면 좀 더 저렴하다. 링크.
  •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마늘을 칼판으로 내려찍어서 다지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일반적인 기술이지만 세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아 방송에서는 퍼포먼스처럼 보였던 듯. 중식도를 하사받은 김풍이 이것도 보고 배워서 종종 따라한다. 다만 일반 식칼로 함부로 이걸 했다간 칼이 부러지는 사태가 생길 수 있으니 요주의.[23] 김풍도 집에서 선물 받은 중식도로 계속 연습했는데, 요령이 없다 보니 칼몸이 휘었다고 말했을 정도. 냉부를 꾸준히 보는 시청자라면 어느 순간부터 김풍이 중식도를 들고 나오지 않는 모습을 알 것이다.
  • 중화요리의 다양성을 알리는 데 관심이 많으며, 그 일환으로 방송에서 가정용 중화요리 레시피를 자주 소개하는 편. 이 때는 집에서도 쉽게 따라할 수 있도록 오리지널 레시피 단계를 반 정도로 단순화하여 고안한 레시피라고 한다. 팔도와 협업해서 내놓은 팔도 짜장면, 팔도 불짬뽕, 팔도 탄탄면도 이런 맥락인 듯. 이연복 본인도 인스턴트 라면을 즐겨 먹는다.[24]
  • 목란에 왔다가 예약을 못해서 돌아가는 손님들이 안타까워서 방법을 찾다가, 가장 품질 관리가 잘 될 것으로 보이는 홈쇼핑을 통해 동파육, 깐쇼새우, 탕수육의 통신 판매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탕수육은 가정 조리용 탕수육 중에서는 다소 가격이 높은 편이지만, 확실히 고기의 양과 튀김옷의 비율에서 훨씬 낫고, 요리 실력이 조금만 된다면 정말 맛있는 탕수육을 재현할 수 있다. 인기도 좋은지 구하기도 어렵다고.
  • 탕수육의 부먹 vs 찍먹에 대해서, 소스를 잘 흡수하는 튀김옷이 있고 소스에 눅눅해지 않는 튀김옷이 있으니, 튀김에 따라 자연스럽게 먹으면 된다고 하였다(사부의 요리).
  • 왼손잡이다. 다만 어디까지나 요리할 때 그렇다는 거고 젓가락이나 펜 등은 오른손으로 쓰는 듯하다.[25]
  • 화교 출신이여서 그런지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트와이스쯔위가 나왔을 때 쯔위의 고향 음식과 중국어로 안부 인사를 한 덕에, 그 보기 어렵다는 쯔위의 눈물을 화면에서 볼수 있게 했다. 그리고 오사카에서 10년 간 살아본 경험이 있어서 일본어 회화도 어느 정도 가능한 듯하다. 쿡가대표 일본 편에서 일본어를 구사하는 장면이 몇 번 나왔다. 한국어까지 합치면 총 3개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다.
  • 이연복처럼 성장기 시절에 2개 이상의 문화적 배경을 경험하며 자란 사람들을 TCK(Third Culture Kid, 제 3문화 아이)라고 한다.[26]
  • 2015년 당시 중식 경력이 43년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중식 경력이 43년이라면 13살부터 중식을 요리하기 시작했다는 소리인데[27], 어린 나이에 묵직한 조리 도구로 중식 특유의 거센 화력에 지지고 볶는 요리를 한다는 것에 대한 안전 상의 문제도 있고, 주방 허드렛일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올라오는 주방의 특성 상 50대 후반의 나이로 40여 년의 중식 경력을 보유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28] 사보이 호텔 때 본격적인 경력이 시작됐다고 보면 호텔에 들어간 것이 17세 때, 둘째 칼판에 오른 때가 2년 뒤인 19세이므로 그래도 40년 가량의 경력.
  • JTBC 한끼줍쇼에 우연히 출연한 적이 있다. 연희동 지역에서 한끼줍쇼를 촬영하던 도중 출연진과 우연히 만난 것. 게스트인 성소와 유창한 중국어로 대화했다. 그리고 얼마 후 최현석과 함께 정식 게스트로 출연하였다.
  • 치즈 케이크김치와 함께 먹는다. 오래 전부터 그렇게 즐겨 먹었다고 한다.[29]
  • 역시 현지에서 먹힐까? 방송분에서 보여지는 모습으로, 상당한 도전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시즌 2의 한국식 중화요리를 중국 본토에서 판매하는 것도 "과연 이 요리와 내 실력이 본토에서도 먹힐까?"라는 생각에 도전해 본 것인데, 시즌 3는 아예 이연복 본인이 제안한 것. 시즌 1이 별로 시청률이 높지 않았기 때문(2% 전후)에 담당 PD부터가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이연복과 허경환이 먼저 "시청률 5%를 넘으면 한 시즌 더 하자"라고 제안했고, 실제로 5%를 넘겨 시즌 3가 확정되자 미국을 목적지로 정해 과연 한국식 중화요리가 먹힐 것인지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며 의욕을 보였다. 이미 탑급 셰프임에도 새로운 도전에 전혀 주저함이 없는 대가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중이다.
  •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이제훈을 위해 일탈을 주제로 샘 킴김풍이 만든 요리를 시식한 후 "샘 킴의 요리는 기껏해야 대사관 시절 대사 아침밥 굶긴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김풍의 요리에 비해 파괴력이 덜하다는 뜻에서 한 말이었으나, 대사 아침 준비를 안 한 것은 정말로 큰 일이었기에 출연진들은 '일탈을 넘어선 초대형 사고'라고 경악했다. 물론 심각한 발언은 아니고, 지금은 세월이 지난지라 예전 일을 예능용 멘트로 날린 것. 훗날 아는 형님에서 대사관에서 일하던 시절 나이트클럽에서 노느라 대사 아침밥을 차려주지 않은 적이 몇 번 있었다고 밝혔다. 그때는 철이 없었다고.
  • 롯데자이언츠의 허문회 감독과 닮은 구석이 보인다.

4. 주요 프로그램



4.1. 방송 중



4.2. 방송 종료


  • 올리브 쿠킹 타임(2011) : 46회~50회 출연
  • O'live 올리브쇼 : 셰프들의 레시피 게임 - 올리브 채널의 간판 프로그램 올리브쇼가 2015년 8월 25일부로 새로운 시즌을 맞이하면서 셰프 군단 중 1인으로 출연하고 있다.
  • O'live 원나잇 푸드트립 - 1박 2일 해외 먹방 여행. 여행지는 대만.
  • E채널 The 맛있는 One샷 - 4회까지 출연하고 하차
  • MBC 이연복 셰프의 맛있는 잔치 - 추석 특집 1부작
  • SBS Plus 강호대결 중화대반점 : 중식 명인들인 유방녕, 여경래, 진생용 명인들과 함께 출연. 3화에서 3색 춘권으로 승리[30], 6화 단체전에서 위샹러우쓰(어향육사)와 수제자가 만든 게살 볶음밥으로 승리, 8화에서 춘장회과육(춘장 삼겹살 튀김볶음)으로 우승하여 최소 공동 우승을 확보하였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3승을 확보한 여경래 대가가 있고, 2승과 1승이었던 유방녕 대가와 진생용 대가 역시 3승이 걸린 마지막 라운드의 코스 요리 대결에서 각자 1승씩 추가하며 3승과 2승으로 올라서며 우승은 최종회에 마지막 대결에서 결정지어지게 되었다. 최종회에서 다른 대가들과 치열한 접전 끝에[31] 결국 중화대반점 현판을 차지했다.
  • JTBC 쿡가대표
  • JTBC 취존생활
  • tvN 현지에서 먹힐까? - 중국편, 미국편
  • TV조선 아이엠셰프
  • 채널A 유쾌한 삼촌 착한 농부를 찾아서
  • 채널A 위대한 수제자
  • SBS 자기야 - 백년손님
  • 중화TV 주유천하 #
  •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아들인 이홍운 팀장과 함께 출연. 2019년 2월 4일, 2월 5일 파일럿에 출연한 뒤 정규 고정 멤버로 출연하였다.
  • JTBC 냉장고를 부탁해 - 게스트로 출연했다가 고정 멤버로 발탁. 자세한 사항은 문서 참조.

4.3. 게스트


  • 올리브 오늘 뭐 먹지? - 6회(가지볶음, 배추찜), 24회(탄탄면, 등갈비찜)에 대가로 출연. 81회에 신동엽성시경의 중화요리 대결(마파두부, 탕수육)에 심사위원으로 출연해서 승자에게 중식도를 증정했다.[32] 92회에 9개월만에 요리를 가르쳐주러 출연하였다.
  • KBS 2TV 해피선데이 1박 2일 - 셰프 특집에서 레이먼 킴, 강레오 등과 함께 출연. 멤버들이 찬밥 취급하자 강레오와 레이먼 킴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맛있는 탕수육을 만드는 분께 뭐 하는 짓이냐'고 핍박하는 게 묘미. 대결 도중에 또 칼에 베였지만 칠리전복냉채와 마파두부로 시민들 입맛을 저격하면서 우승했다. 시중일관 마이페이스데프콘과 좌중을 웃게 만든 건 덤.
  • SBS 예능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2015.06.15) - 최현석과 함께 게스트로 출연
  • SBS 생활의 달인 (2015.02.16) - 중화요리 최강 달인
  • JTBC 썰전 (2015.05.21) - 냉장고를 부탁해 서장훈 편 맛보기. 그 텅 빈 냉장고에 그나마 있었던 쇠고기, 소시지, 달걀만으로 그럴 듯한 요리를 구상했다
  • MBC 다큐 스페셜 '별에서 온 셰프' (2015.06.15) - 최현석, 샘 킴과 함께 출연
  • KBS 해피투게더3 (2015.07.02, 2015.07.09, 2015.07.16, 2015.07.23) - 과거 레이먼 킴이 자기를 소개한 것이 계기가 되어[33], 여름 스페셜 특집으로 출연.
  • 올리브 한식대첩 시즌3 - 심사위원으로 특별 출연
  • tvN 수요미식회 - 라면편, 짬뽕편, 중국만두편 게스트 출연
  • 채널A 구원의 밥상 (2015.07.30) - 게스트 출연 해물 볶음 짬뽕
  • KBS 1대 100 - 400회 셰프 특집 1인 출연 (with 레이먼 킴)
  • KBS 생생정보 (2015.09.10) - 여러 중화요리와 조리 시 팁 등을 소소하게 보여주었다. 방송이 끝날 무렵, PD가 '대가라는 호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을 하자, '요리계에서 내 위에 계신 분들도 많은데, 대가라는 호칭은 과분하다' 라는 의견을 피력하며 겸손함까지 보여주었다.
  • 내 일을 부탁해 (2015.08.01) - '셰프의 파이팅 키친' 코너 출연
  • MBC 기분 좋은 날 (2015.10.14) - 집에서 만드는 궁보계정, 마파두부, 경장육사 레시피
  • TV 조선 인생 다큐 마이 웨이(2016.07.03)
  • MBN 속풀이쇼 동치미(2016.08.27)
  • MBN 알토란 (2016.12.18, 2017.05.14, 2017.11.19) - 집에서 만드는 달걀 볶음밥, 짬뽕, 마파두부, 간짜장
  • SBS 살짝 미쳐도 좋아 - 홍수아가 중국 요리를 배우러 목란에 방문했다.
  • SBS 가로채널 - 1회
  • SBS 집사부일체 (2019.01.27, 2019.02.03) - 26대 사부로 출연
  •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2019.02.05, 2019.02.06)
  • 목포MBC 바다한상 - #
  • JTBC 정산회담 (2020.02.18)
  • JTBC 유랑마켓 (2020.02.23)
  • 채널A 아이콘택트 (2020.03.02) - 전유성과 함께 게스트로 출연

4.4. 책



4.5. CF



5. 관련 문서


  • 목란(식당)
  • 인물 관련 정보
  • 요리사
  • [34]

[1] 중국어로는 Li Lianfu[2] 현장토크쇼 TAXI 출연에서 알려졌다.[3] 컬투쇼에서 처음 밝혔다.[4] 목란에서 같이 일하고 있으며 직급은 팀장. 2017년 원나잇 푸드트립에 동반 출연. 2019년 2월 5일 ~ 2월 6일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파일럿과 2019년 4월 28일 정규 편성으로 아버지와 함께 출연. 현재 목란 부산점 대표 겸임.[5] 홈페이지는 없다.[6] 2016년에 취임하였다[7] 아서원, 호화대반점(사보이호텔), 홍보석, 팔선(신라호텔)을 가리킨다. 2015년 현재는 팔선만 영업 중이다. 한편 생활의 달인에서는 여기에 더해 봉황(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 금룡(쉐라톤워커힐호텔), 서궁(더팔래스호텔), 대려도를 신 4대 문파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여기서는 금룡과 서궁, 대려도가 영업 중이다. 봉황은 타이판으로 바뀌었으며(코스 이름에 '봉황'이 남아있다), 대려도는 2015~6년 휴점했다가 다시 영업 중.[8] 나머지 4명은 후덕죽, 왕육성, 여경옥 그리고 자신을 지목했다.[9] 현재는 옌타이 시의 옆동네인 현급시로 사실상 옌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10] 어차피 이연복의 부모님이 태어난 시기는 일제와 싸우던 국민당 정부시절이었기 때문에 중화민국 국적인게 크게 이상할 것은 없다.[11] 당연한 것이 재한 화교라도 중국 본토에 가려고 할 때 제한이 없어진 것이 1980년대의 일이기 때문이다.[12] 재료를 칼로 썰고 다듬는 담당. 대형 중식당 요리사는 재료를 익히는 불판, 면이나 빵 요리를 담당하는 면판 등으로 분업화되어 있다. 위 사진이 실린 기사에 따르면, 저 당시에는 칼판이 가장 위세가 좋았다고 한다. 반면 오늘날에 제일 대우받는 것은 불판. 현재 위에 중화요리 어벤저스에서 가장 유명한 불판장은 유방녕 셰프.[13] 인간이 맛을 구별하는 능력은 미각보다는 후각에 훨씬 많은 영향을 받는다. 실제로 미각이 구별하는 맛의 영역은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고, 나머지는 모두 후각으로 인해 느껴지는 맛이다. 감기에 걸리면 입맛이 없어지는 것도 후각이 마비되어서 미각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 요리사한테 후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면 후각 문서 참조.[14] 수증기를 손으로 만져서 조리가 진행된 정도를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마이웨이 3화 중.[15] 디즈니 애니메이션《뮬란》이 이 인물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16] 그 당시에는 중국집 배달 가방도 철이 아니라 '''나무 가방이었다.''' 실제 배달용 가방은 무거운 철이 아니라 알루미늄 합금판으로 만든다. 요즘 배달 가방은 플라스틱으로 만든다고 한다.[17] 서장훈은 다들 알다시피 건물주이며 시세에 악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임대료를 저렴하게 받고 있다.[18] 방송인들로부터 예능 감각이 있다는 평을 받는다. 해피투게더에서 이홍렬은 개그맨의 피가 있다는 평을 했다. 해당 방송분에서는 박명수에게 전혀 밀리지 않고 빠르게 츳코미를 넣는 것을 볼 수 있고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그렇다.[19] 강레오도 방송으로 유명해진 쉐프들의 식당은 매출 하락이 심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20] 심지어 예약 방법에 대한 글이 네이버에 찾아보면 쫘르륵 나온다.[21] 따라서 한 번만 촬영을 쉬어도 냉부 촬영은 한 달에 한 번밖에 되지 않는다.[22] 한정된 양의 음식만 파는 식.[23] 집에서 하고 싶으면 칼을 마늘 위에 눕혀 올리고 손으로 누르는 게 낫다. 아니면 그냥 얇게 썰어서 다지든지.[24] 식당을 찾는 고객들의 보편적인 식사 시간이 요리사들에게는 한창 일해야 되는 시간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끼니 시간대에 식사를 하기 어렵다. 그래서 빠르고 간편한 인스턴트 식품을 즐겨 먹는 요리사들이 많은 편이다.[25] 왼손잡이 문서에 들어가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과거 왼손잡이를 금기시하던 시절 가정에서 오른손을 쓰도록 강요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가정(식사, 양치, 필기 등 주로 일상과 관련된 일)에서는 오른손을 쓰지만, 사회(스포츠, 요리, 가구 제작 등 주로 직업과 관련된 일)에서는 왼손으로 하는 왼손잡이가 많다.[26] 성장기(1세~18세) 시절 2개 이상의 문화적 배경을 경험하며 자란 사람들이다. 부모 나라의 제 1문화에도 완전하게 속하지 못하고, 체류했던 해외의 제 2문화에도 완전하게 속하지는 못하지만, 양쪽 모두를 수용하며 받아들이는 또 다른 제 3의 문화 속에서 살아간다는 뜻이다. 이들을 TCK (Third
Culture Kid, 제 3문화 아이)라고 한다. 주로 혼혈, 재외 동포, 조기 유학생, 해외 주재원 자녀, 한국에서 성장했지만 국제학교를 다닌 한국인학생 등이 모두 TCK에 속한다. 성장기(1세~18세)는 자녀의 문화적 가치관정체성이 확립되는 시기로, 향후 귀국 또는 귀향 이후에도 이 때의 경험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성인의 경우 외국 문화 경험이 '문화 차이' 정도로만 인식되며, 해외 체류 경험 역시 '특별한 추억' 정도로만 기억되는 반면 성장기에 속하는 아동의 경우 인생의 결정적인 경험으로 남아 본인의 문화적 사고 방식과 정체성을 구성하는 일부분이 된다. 2개 이상의 언어와 문화를 넘나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재들이며, 포용성·열린 마음의 자세·적응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문제를 해결할 때 단순히 한 나라의 관점이나 시점이 아니라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이상의 문화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이를 해결할 수도 있다. 비슷한 케이스로는 추성훈, 권리세, 주현미, 필서진 등이 있다. #1, #2, #3, #4, #5
[27] 당장 위의 생애 부분을 보면 13살의 나이에 식당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되어 있다. 즉 배달 , 주방 경력을 다 포함한 것으로 보인다.[28] 다만 사보이 호텔에 들어간 뒤 금방 자리를 잡는 데에 성공한 걸 보면 이전에 있었던 중식당들에서 주방 일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29] 이해할 만한 것이 후각을 상실한 이연복 쉐프의 입장에선 치즈 케이크와 김치 특유의 풍미는 거의 느껴지지 않고 케이크의 단맛과 김치의 짠맛만 느껴지는, 즉 흔히 말하는 단짠의 조합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고구마에 김치를 얹어 먹는 것과 치즈 특유의 풍미를 제외하면 식감, 맛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30] 당시 춘권피 반죽을 직접 손으로 돌리는 묘기에 가까운 방법으로 제작했다.[31] MC 박미선에 의하면 이는 단 한 표 차이였다 한다.[32] 6회에서 칼에 베였다. 냉장고를 부탁해에서의 양희은이 출연했을 때도 요리 도중 칼에 베여서 다들 놀라서 물어볼 때, 이전 방송에서도 칼에 베인 적이 있고, 신동엽이 놀려먹었다고 언급하는 부분이 그 부분.[33] 2015.03.19 방영분. 당시에는 자막에 이라고 오자가 있었다.[34] 힙합곡이다. 전혀 상관 없어 보이겠지만 그 훅을 한 번 들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