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든 제닝스
1. 개요
전 NBA 가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밀워키 벅스 소속이었으나 2013-2014 시즌부터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선수 2016-17시즌 뉴욕 닉스의 벤치 에이스로 대활약중에 있다가 워싱턴의 구애로 워싱턴에서 다시 벤치 에이스로 활약했다. 그 후 중국리그로 갔다가 밀워키로 다시 복귀하였으나 기량을 찾지 못하고 방출되었다.
2. 커리어
2.1. 성장기와 고교시절
캘리포니아 컴프튼 출생으로 그의 아버지는 제닝스가 어렸을적에 자살했다고 한다. 그후 자신의 고향에 위치한 도밍게즈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후에 농구명문학교인 오크힐 아카데미로 전학, 그곳에서 평균 32.7점 7.4 어시스트, 5.1 리바운드를 기록하는 특급 고교생으로 우뚝섰다. 2008년에 위에 프로필에 언급된 Naismith Prep Player of the Year Award 를 수상했다.
팀도 2006~2007 시즌에 41승 1패라는 성적을 찍었고, 제닝스 본인은 USA투데이가 선정한 올해의 고교 유망주 25인중에 한명으로 언급되었다. 이때 수많은 대학에서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는데, 제닝스는 제리드 베일리스와 함께 뛰고싶다는 이유로 애리조나 대학교에 가기로 결정했는데...그만 베일리스가 NBA로 가버리는 바람에 제닝스는 계획을 바꾸게 된다.
2.2. 유럽행
제닝스는 애리조나 대학교에 가기로 한 걸 철회하고 유럽진출을 선언하며 이탈리아 프로팀인 로토마티카 로마와 계약을 맺은 것. 이 당시 제닝스의 유럽행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것이 그동안 유럽리그는 NBA 드래프트에 낙방하거나 좀 한물간 미국선수들이 가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브랜든 제닝스는 고졸 당시에도 드래프트 로터리픽(1~14순위 내) 지명이 가능할 정도로 촉망받던 특급 유망주였으며, 고졸 선수의 드래프트 제한이 걸린 2005년 이후에도 대부분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지만 않으면 1년만 학교 다니고 NBA 진출하는 One and Done을 하면 했지 유럽에 갈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더욱 쇼킹한 것. 몇 년전 애틀란타 호크스 소속으로 좋은 활약을 펼쳤었던 조쉬 칠드레스가 그리스 행을 선언했을때보다도 더 충격적이었다.
이 때문에 온갖 루머가 많이 나왔다. '대학에 가기 보다는 좀 더 빨리 돈을 벌기위해 유럽행을 택했다.' 'SAT점수가 미달이었다.' '고의로 SAT를 망쳤다.' 등등. 당시 애리조나 대학교 농구팀 감독이었던 루트 올슨은 "앞으로 대학에 1년만 있다가 NBA로 가버릴 선수는 우리팀에 필요없다." 며 매우 분노했다.
이탈리아에서의 그의 커리어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자신이 팀의 리더였기 때문에 플레이에 제약이 없었지만 철저한 패싱게임과 조직력을 강조하는 유럽농구 스타일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2008-2009 시즌 성적은 평균 17분 출전에 5.5점 1.6 리바운드, 2.2 어시스트와 1.5스틸. 야투 성공률은 35.1%로 매우 초라했다. 유로리그에도 출전 이때는 조금 더 많은 출전시간인 19.5분을 뛰며 7.6점, 1.6리바운드, 1.6어시스트 1.2 스틸을 기록했다. 당시 유럽농구 전문가중 한명은 "제닝스는 지금은 그저 그런 미국농구 유망주이지만 노력하면 유럽을 대표할 선수가 될 수 있다." 고 평했다.
훗날 미국으로 돌아온 후에 제닝스는 인터뷰를 통해 유럽생활이 녹록치 않았음을 고백했다. 농구 스타일도 자신이 추구하는 것과도 달랐고 무엇보다도 생활하는게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말도 안통했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았는데다, 자신이 묵던 숙소에 빨래 건조대가 없어서 세탁하는데도 어려움이 많았었다고 한다. 그래도 배울 것은 많이 배웠다고. 2년[1] 간의 이탈리아 생활을 끝낸 제닝스는 NBA진출을 선언했다.
2.3. NBA 커리어
2.3.1. 밀워키 벅스
[image]
고교시절에는 특급 유망주였지만 이탈리아에서 보여준것이 너무 미미했기 때문에 평가는 반반이었지만 제닝스는 2009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0순위로 밀워키 벅스에 지명되었다. 루키시즌에 준수한 활약상을 펼치며 올 루키 퍼스트 팀에 올랐다. 특히 시즌 7번째 경기였던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와의 경기에서 55득점을 득점하는 등의 퍼포먼스를 선보여 팬들을 열광케했다. 그의 55득점은 과거 밀워키 소속이었던 마이클 레드가 기록한 57득점에 이어 팀 역대 한 경기 최다득점 2위에 해당된다.[2] 또한 NBA 역대 최연소 50+ 득점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그 시즌에 밀워키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해서 비록 1라운드 탈락이긴 했지만 애틀란타 호크스를 7차전까지 물고 늘어지는등의 작은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제닝스는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고교시절부터 고질적인 문제중 하나였던 슈팅 성공률은 전혀 개선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더욱이 11-12 시즌에 골든스테이트에서 밀워키로 트레이드되어 온 몬타 엘리스와 백코트 듀오가 되었지만 둘 다 볼을 많이 소유하는 타입에다 즉흥적인 공격을 즐기고 오프 더 볼 무브가 나쁜 전형적인 동네농구 에이스타입이라 둘을 붙이는 것은 모든 전문가들이 이건 아니다라고 예상했고, 결국 밀워키는 둘의 공존에 실패했다. 아예 서로를 떼놓다시피하며 그때그때 감에 맞게 굴리는 운영을 해야 했으며 결국 이때문에 감독 스카일스가 경질되었다.
2012-2013시즌에 현재까지 개인 최다인 6.5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고 팀을 루키 시즌이후 다시한번 플레이오프에 올렸다. 하지만 하필이면 상대가 '''마이애미 히트'''. 당연하다는 듯이 첫 2경기를 모두 졌는데, 제닝스는 뭔가에 씌였는지 인터뷰에서 '''"우리가 마이애미를 4 대 2로 바를꺼임 ㅇㅇ"''' 이라는 발언을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나 밀워키는 남은 2경기도 완전히 처발렸고(...)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제닝스 본인도 플레이오프 평균 13.3점에 야투성공률 29.8%라는 최악의 부진을 기록해야 했다. 하지만 당시의 밀워키 선수 구성진을 보면 제닝스 말고는 사람이 없었다.
비록 플레이오프에서 부진했지만 제닝스는 RFA 최대어였다. 하지만 웬만하면 연장계약하는 1라운더들과 달리 시한폭탄과도 같은 플레이스타일 때문에 밀워키에 남을 것이냐 떠날 것이냐는 설왕설래가 많았으며 다른 팀의 관심도 많지 않았다. 파트너인 엘리스가 먼저 댈러스로 떠나고 결국 사인 앤 트레이드 방식으로 브랜든 나이트와 교환되어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로 이적했다.
2.3.2.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image]
3년 $24M 계약으로 디트로이트에 왔지만, 애틀란타 호크스에서 온 조쉬 스미스와 마찬가지로 그렉 먼로, 안드레 드루먼드 골밑 듀오가 있는 디트로이트에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했다. 야투율은 37%까지 떨어졌으며 팀 성적도 잘 안나와서 평가가 더 나빠졌다. 제닝스를 받쳐줄만한 포워드가 없어서 제닝스가 상당히 고생을 했다.
그러나 조쉬 스미스가 나간 후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였고 디트로이트는 7연승을 달성하기도 하였다. 샌안토니오와 대결에선 버저비터 역전승을 이루었고 론도가 합류한 댈러스마저도 꺾었다. 기사에서는 탈 조쉬 스미스 효과 등을 언급하기도 하였고 실제 네이버 라디오 파울아웃 에서도 주제로 다루기도 했었다. 브랜든 제닝스 본인의 기록도 올라간건 덤. 그렇게 디트로이트 반등의 선봉장으로 나서는 듯 했지만 1월 24일 밀워키와의 경기에서 아킬레스건 파열이라는 중상을 입으며 시즌아웃을 당하고 말았다.
2015-16시즌에는 레지 잭슨이 훌륭한 주전 가드 역할을 맡아주고 있기 때문에 트레이드가 예상 되고 있었으나, 일단 제닝스가 벤치에서 뛰는것도 나쁘지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
결국 2016년 2월 6일에 올랜도 매직으로 트레이드 되었다.
2.3.3. 올랜도 매직
올랜도 매직에서의 데뷔전에서 25분동안 18득점 3리바운드 4어시스트를 기록했고 팀은 승리했다. 그러나 그 뒤로는 이렇다할 활약이 없었고 시즌이 끝난 후 뉴욕으로 가게된다.
2.3.4. 뉴욕 닉스
데릭 로즈의 백업 가드로 출전을 했는데 출전을 할 때는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으나 역시나 아킬레스건 부상 이전의 날카로운 모습은 많이 사라졌다.12월 31일에는 32득점을 올렸으나 팀은 승리를 하지 못했다. 결국 2017년 2월 27일 닉스로부터 방출되었다.
2.3.5. 워싱턴 위저즈
별 다른 활약이 없었고16/17 종료 후 중국 리그(CBA)로 진출했다. 뉴욕과 위저즈 최종성적은 81경기 출전 22분 7득점 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27세에 불과한 제닝스가 NBA를 떠나 CBA로 진출한 점은 흥미로운 사건이다.[3]
2.4. 중국리그로
CBA에 진출해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지만 이름값 대비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는 중. 당장 NBA에서 완전히 실패한 후 CBA를 씹어먹는 짐머 프레뎃과 비교하면 한참이나 모자란 수준이다.
결국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2.5. 다시 NBA로 복귀하다
2.5.1. 밀워키 벅스
밀워키 벅스 산하의 G-리그팀인 위스콘신 허드와 계약을 맺었다. 말콤 브로그던과 매튜 델라베도바의 부상으로 가드가 부족해진 밀워키는 결국 제닝스와 10일 계약을 한다. 그리고 제닝스의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폐혈전으로 경기에 나오지 못하는 미르자 텔레토비치를 방출한다.
제닝스는 3월 12일 멤피스전에 복귀전을 가졌고 24분을 뛰며 16득점 8리바운드 12어시스트를 기록하여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밀워키에서 가드진 정리를 결심했고, 그 과정에서 제닝스는 방출당했다.
3. 플레이스타일
화려하고 기술이 좋다. 듀얼가드 성향이긴 해도 패싱능력과 핸들링을 갖춘 1번으로 돌파, 슈팅 등 여러가지 스킬을 갖췄으며 가장 큰 장점이라면 일단 자신의 플레이에 대한 창의성이 뛰어난 편이다. 또한 폭발적인 득점력과 게임의 흐름을 뒤집을수 있는 강심장을 갖췄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할수 있다.
그렇긴 하나, 근본적으로 패싱센스는 좋은데 효율적인 패스보다는 화려한 패스를 선호하다 보니 실책이 많은 편이다. 그리고 이런 류의 포인트가드들이 그렇듯 공을 너무 오래끌고 드리블이 좀 길다는 것, 일명 볼호그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패싱센스를 언급했지만 하프코트에서 이따금씩 좋은 패스를 찔러넣어주는 건 좋지만 경기흐름을 읽고 팀의 패턴플레이를 주도하기보단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플레이하려는 경향때문에 슛 셀렉션과 타이밍도 나쁘고 팀원들이 못받아주면 턴오버 기계가 된다. 거기다 리듬슈터라 잘 터지는 날에는 문제가 없지만 안터지는 날에는 보는 사람을 답답하게 할정도 안 터지는게 문제.
그러나 픽앤롤 돌파후 상대 수비수와 부대끼면서 레이업을 성공시킬 피니쉬가 완벽해 득점 사냥꾼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며, 슈팅 자세가 간결하고 또한 상대 수비를 찢을 선택지가 다양하고 드리블 스킬이 좋아 패스를 전방위로 뿌릴 수비능력도 좋고 상대의 스크린에 대한 대처능력도 좋다.
하지만 체중이 너무 적게 나가기 때문에 골밑에서 컨택이 일어나면 성공률이 확연히 떨어진다. 키는 작지만 몸은 다부지기 때문에 골밑 성공률도 준수한 아이재아 토마스의 경우와는 반대.
4. 기타
NBA 리그에서 흔치 않은 농구화인 언더아머를 신고있다. 제닝스는 신인 시절부터 당시에는 농구계에서 입지가 전무했던 언더아머와 후원계약을 맺고 농구화를 사용했다. 또한 스테판 커리 이전 '''언더아머의 최초 시그니처 농구화 모델'''이기도 했다. 제닝스 이후 언더아머 농구화를 쓰는 선수는 스테판 커리, 레이몬드 펠튼, 디안드레 조던, 켐바 워커, 그레비스 바스케즈 등이 있고, 일본 농구 국가대표팀의 후원업체이기도 하다.
2014-2015시즌에 12월 NBA 갤러리에서 어느 유동 유저가 자신이 만들어낸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선수 곤크하르딘을 찬양하며 '레바논 폭격기', '건장적 무장섹스 혁명'과 같은 횡설수설을 하는 꾸준글이 달리기 시작했었는데, 마침 이 꾸준글이 달리기 시작할때 브랜든 제닝스의 팬을 자처하는 한 유저와 스테판 커리, 데릭 로즈같이 NBA 갤러리의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포인트 가드 팬 유저들과의 트러블이 생겼었다. 싸움은 2일간 진행이 되었고 이때 브랜든 제닝스의 팬 유저는 갤러리 내에서 여러 선수들의 팬 유저들한테 다굴을 당하고 있었으며 결국 브랜든 제닝스 팬은 이성을 잃었고 상대방 팬 선수들의 부상 사진을 꾸준글로 달리며 어그로를 자행하기 시작했다.
이것을 보다 못한 어떤 갤러가 역공이랍시고 브랜든 제닝스를 곤크하르딘같은 녀석이라며 아랍풍의 합성짤을 달리면서 조롱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NBA 갤러리 유저들에게서 큰 호응을 얻었는데, 마침 그 시기에 조쉬 스미스 방출효과로 제닝스의 스텟이 급상승함과 동시에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성적 또한 급상승하다 보니 NBA 갤러리에서 브랜든 제닝스라는 존재는 '무장 혁명가 곤크하르딘' 그 자체로 굳어져 버렸다.
위에서 언급한 제닝스 → 곤크하르딘의 시초
당시의 생생한 과정을 담은 매트릭스 패러디
Tuff Crowd라는 의류 브랜드를 운영 중이다.
R&B 가수 크리스 브라운과 친분이 있다. 둘 다 동갑이며 19년부터 크브가 Tuff Crowd를 자주 입어주고 있다.
[1] 위에도 언급했지만 차라리 1년이라도 일찍 NBA에 갔다면 커리어가 많이 달라졌을 가능성은 높다.[2] 두명 다 왼손잡이 가드인건 덤.[3] 아킬레스건 부상 이후로 기략이 크게 하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