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신
1. 개요
'''忠臣'''
간신이나 역적과 반대로 충성스러운 신하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국가와 백성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일하는 신하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이 임금을 그리워하는 노래를 충신연군지사라고 부른다.
1.1. 개념의 정의
그러나 위의 대략적인 정의와는 달리 실제로는 충신을 쉽게 구분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충(忠)이란 개념이 유교에서 유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충은 다른 유교적 덕목(인, 의, 예, 신 등)들과 마찬가지로 고정적이거나 절대적인 성질이 아니라 상황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수 있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이 때문에 "loyalty"라는 영어 단어로 1:1 직역이 되지 않는다. 아래에서 기술되었지만 정몽주가 충을 다한 대상은 고려의 어느 특정한 군주가 아니라 고려왕조의 종묘사직과 피폐해진 민중의 삶이었다고 보는게 옳을 것이다.[1] 또한 아래 항목에서 예시로 기술된 충신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충의 대상이 어느 때는 군주이기도 하고 어느 때는 민중이나 국가 그 자체이기도 하다. 따라서 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체적 맥락을 함께 고려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충은 대체로 정치적인 분야에서 발현될 때가 많기 때문에, 현실정치의 필요에 의해 나라와 백성을 위한다기보다는 실제로는 군주 개인에 대한 충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실제로 위에 언급된 정의에 맞지 않지만 군주 하나만을 위하여 충심을 바치고 목숨을 건 경우의 사람들도 충신이라고 불러주는 경우가 존재한다. 이 경우, 당장 군주에게만 충성을 바치기 때문에 군주라면 누구나 이런 종류의 충신을 대량으로 육성하고 유지하길 원하는게 보통이니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기록하곤 한다. 예를 들어 정몽주를 제거한 태종은 왕권 강화 과정에서 정몽주를 대단히 높이 평가하면서 왕에 대한 충성을 강조한 적이 있다.
다만, 주의할 점은 정몽주는 군주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바친 우매한 경우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가 여말에 펼친 활약이나 시책은 국가를 재건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려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태종이 충효를 강조하느라 정몽주를 끌어다 쓴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도 그에게 실제로도 능력이나 인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태종이 충효를 강조하기 위해 정몽주를 끌어다 쓴 것은 정몽주 입장에서는 어이없을 일인데 정몽주는 고려의 특정 군주에게 충성했다기 보다는 고려라는 왕조 자체에 충성했기 때문 물론 조선에서는 폐가입잔의 논리에 따라 우왕과 창왕을 폐했고 때문에 정몽주를 공양왕에게 충성한 인물로 규정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정몽주 입장에서 보면 황당할만한 논리다.
또한 숙종대에 있었던 여러 복권사례도 그와 비슷한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정말 답이 없는 막장 국가나 군주한테도 자신이 태어난 나라 or 자신이 모시는 존재란 이유 하나만으로 계속 충성을 바쳐서 주변사람이나 후세를 답답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순신과 선조의 관계도 이렇게 볼 수 있겠다. 선조가 노답 암군인건 아니지만 자기보신에만 골몰한 인간이라 평이 나쁘고 이순신은 그런 선조에게 무슨 짓을 당해도 충성하니 후세인인 우리 입장으로선 답답하게 보일 수 있는 것. 다만 실질적으로 이순신은 당시 역성혁명을 일으키거나 쿠데타를 일으켜 (예를 들어 광해군으로) 군주를 바꿀만큼 '''정치적''' 기반을 닦아놓진 못한 상태였다. 이순신은 어디까지나 천재적 전략가이자 지휘관이지 정치인은 아니고, 당시 권세가들과 동료 장수들이 그를 능력,인간적으로 신뢰하는 것과 유교국가에서 가장 금기시하는 역적의 멍에를 쓸 위험을 무릅쓰고까지 쿠데타에 동참하는 건 전혀 다른 얘기다. 조선에서 군주를 바꾼다는 건 확실한 명분이 없으면 불가능했다. 선조가 아예 명으로 도망쳤다면 모를까, 어쨌거나 나라 안에서 (명목상이나마) 투쟁을 계속하는데 갈아치우려고 했다간 역적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백성들이 계속 왜적에게 짓밟히고 있는데 성공가능성이 높지도 않은 쿠데타를 시도해 내란으로 전력 소모와 민초들의 고통을 늘리느니, 차라리 백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걸 택했다는게 더 타당하다. 이순신 입장에서는 설마 원균이란 작자가 그렇게까지 잘 만들어지고 강력한 조선 수군을 단 한 방에 날려버릴 거라고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 막장인 국가나 군주라면 충의를 지킨 충신이라도 보통 후대가 평가할 때 그와 관련해서 안좋은 평가가 어느 정도는 들어간다. 무엇보다 '''유교가 권장하는 충은 우매한 왕까지도 받들라는 개념이 아니라 왕이 잘못된 판단을 내릴 때는 목숨을 걸고 반대하는 게 신하의 도리라고 가르친다.''' 공자와 함께 유교 하면 빠질 수가 없는 사람인 맹자를 그 예로 들기로 하면, 제 선왕으로부터 '탕왕이 걸왕을 쫓아내고 무왕이 주왕을 정벌했다는데 신하가 자신의 임금을 시해해도 괜찮은 것이냐' 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한 말이 '인(仁)을 해치는 자를 흉포하다 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악하다고 하는데 흉포하고 잔악한 사람은 그냥 필부에 불과한 것이니 '''필부인 걸이 죽임을 당했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시해했다는 말은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라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정치를 못 하는 왕에게는 반대를 해도 좋은 정도가 아니라 '''폐위를 해도 된다는 것.''' 결국 맹자의 논리에 따르면 인하지 못하고 의하지 못한 이는 왕이라 해도 사실상 왕을 참칭하는 필부 수준이고 그런 인간은 죽이건 말건 상관없다는 거다.[2]
오히려 우매한 군주만을 모시는데 진력하여 나라와 백성에 어려움을 준 신하를 좋게 평가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역사는 그런 인물을 우충(愚忠, 미련한 충신)[3] 이라 칭한다.[4] 대신 일종의 홍보전략으로 무리가 있는 인물을 국가가 나서서 충신으로 추켜세워주는 경우는 존재했으나 이런 경우도 후대로 가면 비판적인 소리를 듣게 마련이다. 다소 극단적인 주장이지만, 명말청초의 유학자인 황종희는 '(군주의 마음과 행동이)천하의 도리에 합당하지 않는데도 충성하는 건 환관이나 궁녀 따위의 충성이지 올바른 신하의 충성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물론 이것도 시대에 따라 달라서 백이, 숙제 형제의 경우에는 누가 봐도 폐위해 마땅할 주왕을 폐하려는 주무왕을 말렸지만 후세에 의로운 일을 한 것으로 남았다.
가장 피곤한 경우는 나라나 백성을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군주에게 충성을 바치는 인물들이다. 군주의 잘못은 어떻게든 바로잡으려고 헌신적으로 노력하지만, 그렇다고 역성혁명 같은 것에 대하여는 절대 반대입장이라 여러모로 갈굼을 당한다. 군주는 군주대로 귀찮게 여기고, 역성혁명을 하려는 입장에서도 어떻게든 제거해야 할 걸림돌이다. 결국 군주의 노여움을 사서 숙청당하거나 역성혁명에 의해 제거당하는 선택지만이 있을 뿐이다.
어쨌든 보통 충신 소리를 듣는 인물은 후대의 인식이나 평판이 좋은 것이 보통이다. 충신소리를 들을 정도라면 상당한 고난이나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왕조나 군주, 아군이나 국가에 대한 절의를 지킨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즉 충신은 극단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나라나 군주를 지키려고 한 사람이고 낮게 봐도 자신의 능력을 총동원해 나라를 발전시키고 군주를 도운 사람이니 당연히 전자는 그 희생정신이 부각되고 후자는 그 능력이 부각되며 공통적으로는 사익보다 공익을 추구했으니 그런 치안을 듣는게 이상할 게 없다
그리고, 나라와 백성을 위하며, 왕조에도 충성을 바치지만, 해당 국왕에게는 충성심이 없는 희귀한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충신으로는 보지 않으며 보통 권신이지만 나름대로 충성심이 있었다 정도로 언급하고 넘어간다. 권신은 왕조국가에서 군주인 왕에 버금가는 실력(정치력, 인망, 군사력 등이 이 범주에 들어간다.)을 가지고 있는 신하를 일컫는다.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자리라고 불리는 승상 같은 자리가 있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그 자리를 정하는 것도, 날리는 것도 왕조국가에서는 오직 왕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권한이자 능력인 것이다. 그런 왕이 능히 제어할 수 없을 정도의 실력자를 권신이라 칭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한 시대의 곽광이 대표적인 인물로 창읍왕을 황제의 지위에서 끌어내리고, 선제를 옹립한 전적이 있다. 이 경우는 (표면적으로) 왕의 밑에 있으나 왕이 제어할 수 없는 신하이기에 해당되는 사례라 볼 수 있다. 조금 더 살펴보자면 권신 중에 나라나 백성에 충성심이 있는 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권신=나라와 백성에게 충성심을 가진 자'라는 정의는 성립하지 않는다. 권신 중에 저런 이도 있다, 정도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권신 중에서도 권신이면서도 충신인 사례도 존재한다.
현대에서 재평가 바람이 일고 흑백논리도 어느 정도 탈피하면서, 과거 충신 소리를 듣던 인물들에 대해서도 나쁜쪽으로 재평가가 시도되고 있는데, 이들은 대체적으로 간신, 역적들과 대립각들을 세웠던 인물들로, 이들의 행적이 군주에 대한 충성심이 아닌 단순한 권력 투쟁으로 비하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간신들도 왕 앞에서는 자기네들이 충신 이라고 주장한다(…). 심하면 주변 사람들을 시켜 자신을 충신이라고 추켜세우게 하기도 한다. 단순히 충성한다고 다 충신이 아니라 '''개념'''이 겸비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무엇보다 충신은 타인이 인정하는 것이지 자처하는게 아니다.
한편으로는 그렇기에 조선 말기에 이르면 자기 당만 충신이고 남들은 역적으로 낙인찍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당연하지만 충신은 매우 좋은 정당성이며 역적은 매우 좋은 숙청명분이기 때문이다.
1.2. 명신
이거보다 한 테크 위로 명신, 즉 '밝은 신하'가 있는데, 이건 충심을 기본으로 깔고 거기에 '''능력'''도 있어야 하는, 신하로서는 최종테크쯤 되는 호칭이다. 능력이 없으면 충신 소린 들어도 명신 소린 못 들으며, 충심이 없으면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불리는 호칭은 간신이다. 게다가 명신의 능력을 갖추어도 너무 유능한 나머지 군주의 권력을 능가하거나 맞먹으면 권신이 돼버리니 정말로 명신되기가 힘들다.
단순히 맹목적인 충성을 바칠 뿐인 충신과 충성과 능력을 고루 갖추어 임금을 도와 선정을 펼치는 명신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으로 위징이 한 말을 들 수 있다. 여기서는 명신을 양신이라 칭한다.
위징의 말의 의미는 난세에 명장이 나오듯이 나라가 어지러운 상황에서 충신이 나온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된다. 안정되어 있는 나라에 충성을 바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무너지는 나라에 충성을 바치는 건 가문과 국가를 모두 잃을 가능성이 높은 어려운 일이다. 그 무너지는 국가를 다시 일으키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므로 명신은 아름다운 이름을 남긴다는 의미. 간혹 저 위징의 논리를 가감없이 적용하면 대표적인 충신인 이순신 장군이나 연산군에게 끝까지 간하다 죽은 김처선도 군주를 폭군으로 만들고 국가와 가문을 멸망시킨 이들이 된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김처선은 국가 위기시의 사람이 아니고(정치적으로 막장 테크를 타던 시절이기는 하나, 정말로 무너지는 시기와는 다소 다른 상황), 무너질 나라를 살린 이순신 장군은 토를 달 것 없는 양신이다.[5]"양신은 후세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고, 군주가 거룩한 천자가 될 수 있도록 도우며, 자손만대까지 복록을 누립니다. 하지만 충신은 자신은 물론 일가족 모두가 몰살당하고, 군주는 폭군이 되며, 국가도 가문도 모두 멸망하여 오로지 자신만 충신의 이름을 후세에 남깁니다."
한편 저 문구 중에 충신은 일가족도 몰살당한다는 말은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는데 부당한 권력(찬탈자등)에 대항한 사람의 경우, 그 권력자에게 미움을 사서 본인은 물론 연좌제로 일족까지 학살당하게 된다. 실제로 역사에 이런 경우는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많다. 따라서 이 경우는 정말 제대로 된 충신 또한 자신은 물론 일가족까지 몰살당하는 말이 충분히 성립한다. 가장 비근한 예로는 조선의 성삼문을 들 수 있는데 그가 태어날 때 점장이가 충신으로 이름을 남길 것이라 하자, 그 조부가 탄식하였고 그 이유가 바로 충신으로 이름을 남길 상황이면 이미 막장상황이고 가족까지 연루되기 때문이었다는 일화가 있다.
2. 동아시아사 속의 충신
충이라는 개념이 한자문화권에서 강조되던 개념이다보니 동아시아권에서 충신을 기리는 경우가 많다. 한국,중국은 물론이고 일본에도 이러한 상황은 마찬가지라서 자신이 섬기는 주군에게 절의를 다하는 이들을 높이 평가했다. 다만 일본이 본격적인 유교의 충 개념을 국가지도 사상으로 활용한 것은 도쿠가와 막부 때부터라서 한중 양국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그 비중이 낮고 일본의 충신에 대해서는 충신이라는 표현을 잘 사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흔히 하는 말로 아무리 막장이고 "망해가는 나라라 하더라도 반드시 충신이 세 명은 있다"라고 하는데 이와 관련한 일화로 북송이 멸망할 때, 금나라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온 송나라 황후를 기녀 취급하며 희롱하자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송나라 대신과 장수, 왕족들이 입을 다물었는데 오로지 한 신하만이 이를 항의하다가 금나라 사람들에게 맞아 죽었다. 이를 본 다른 금나라 사람들이 망해가는 나라에도 충신이 세 명은 있다는데 송나라에 충신은 저 한 사람뿐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고사를 찾아보면 꽤 인용되는 편으로 덕분에 북송의 막장성이 두드러지는 효과를 낳는 모양으로 보인다.[6] 하지만 남송이 망할때는 육수부, 문천상, 장세걸 3 충신이 나라와 함께 목숨을 바쳐 북송과는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2.1. 한국사의 충신
2.1.1. 고조선의 충신
- 성기 - 성이(成已)라고도 불린다. 왕검성 전투 때 우거왕이 내부분열로 암살당한 뒤에도 1년동안 왕검성의 문을 걸어잠그고 우주방어를 지휘하면서 결사항전하며 버텨내다가 주화파의 사주로 암살된다.
2.1.2. 삼국 시대~남북국 시대의 충신
- 밀우 (고구려)
- 유유 (고구려)
- 을지문덕 (고구려) - 살수대첩의 주인공
- 안시성주[7] (고구려) - 여당전쟁에서 승리한 영웅.
- 연남건 (고구려) - 형 연남생이 당에 투항하고 동생 연남산과 보장왕이 항복한 뒤에도 평양성에서 끝까지 당에 맞서 싸웠으며 성이 함락되자 자결을 시도했다.
- 성충 (백제)
- 계백 (백제) - 이순신이 조선시대 충신의 이미지를 상징한다면 계백은 한국 고대 충신의 이미지를 상징할 정도.
- 흥수 (백제)
- 박제상 (신라)
- 이사부 (신라) - 지증왕, 법흥왕, 진흥왕의 3대왕을 보좌하면서 반세기 이상 신라를 위해 이곳저곳에서 활약한 충신이다.
- 김유신 (신라) - 신라 삼국통일의 주인공. 군권을 쥐고 있었지만 동시대의 연개소문과 달리 일정 이상의 권력을 넘보지 않았고 무열왕은 안심하고 그에게 군을 맡긴 채 한중일을 넘나든다.
- 관창, 반굴 (신라) - 신라의 화랑들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용맹을 떨치며 전사했다. 둘의 전사를 시작으로 신라군이 결집하게 된다.
- 시득 (신라) - 신라의 이순신. 고구려를 무너트린 설인귀를 기벌포에서 이긴 장수이자 나당전쟁에 종지부를 찍은 장수.
- 죽죽 (신라) - 642년 대야성 전투에서 백제군과 싸우다 전사한 신라의 충신이다.
2.1.3. 고려 시대의 충신
- 신숭겸 - 태조 왕건이 공산 전투에서 후백제군에게 포위되자 스스로 미끼가 되어 왕건을 탈출시키고 전사했다. 아래의 김락과 함께 팔관회에서 두 사람을 기리는 행사가 따로 있고 예종이 손수 도이장가를 지을 정도로 고려 왕실에 의해 최고의 충신으로 대우받았다. 또한 후대의 조선에서도 충신의 표상으로 우대했다. 한국사를 통틀어 많은 충신이 있으나 스스로 왕을 대신해 죽은 사례는 찾기 힘들다. 공산전투에서 신숭겸과 함께 목숨을 바친 김락, 전이갑, 전의갑 형제 등도 포함 시킬 수 있겠으나 항목이 너무 길어지므로 이와 같이 언급한다.
- 유금필 - 동북면 여진족들을 정리하고 후삼국시대 최고의 명장이자 참소를 당하고 유배를 먹음에도 오히려 고려 태조를 도운 충신으로 나말여초 호족들 중 가장 유명한 충신이다.
- 박술희 - 태조 왕건이 훈요 10조를 남길 때 이 사람만 불러서 남겼다. 그 정도로 인정받은 충신.
- 최지몽
- 유방 - 유금필의 손자로 제1차 여요전쟁에서 안융진의 낭장으로 근무 중 안융진 전투에서 소손녕이 이끄는 거란군을 격파하며 여요전쟁의 전황을 바꾸는데 큰 역활을 했고, 이 공으로 여러 벼슬을 제수받았다.
- 서필 - 광종의 숙청에 직언을 했던 강직한 충신으로, 과거제와 여러가지 개혁정책에서는 찬성을 했던 인물이다.
- 서희 - 위의 서필의 아들로, 강동 6주를 탁월한 언변으로 얻은 외교관이다.
- 하공진
- 양규 - 거란군과 전쟁에서 결사항전을 벌인 끝에 거란군을 물리치고 잡혀가던 백성들을 구하고 목숨을 바친, 제2차 여요전쟁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무인이다. 함께 세트로 다니던 김숙흥도 마찬가지.
- 강조 - 이 사람은 반역 열전에 오르면서 충신이기도 한 희한한 사례이다. 비록 목종을 쫓아내는 정변을 일으킨 점 때문에 반역자가 되었으나 본인이 친히 왕위에 오르기를 단호히 거부하고 현종을 등극시켜 사직을 지켰다. 나중에 거란과 싸우다가 잡혔을 때에도 전향을 거부하고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8]
- 지채문 - 모두가 배신하는 판국에서도 홀로 현종을 지켜냈다. 엄청난 인간흉기이기도 하다. 이 사람이 없었으면 고려 사직은 여요 전쟁에서 끝났다.
- 강감찬 - 20만 대군을 모아 거란군을 격퇴한 문관 출신 지휘관. 귀주대첩의 주인공으로 추앙 받는다.
- 윤관 - 여진정벌의 시작을 알린 장군. 세종의 4군 6진이라는 큰 아이디어가 윤관의 여진정벌로 나왔다. 문벌귀족의 부정적 이미지가 많이 사리지게 만든 대표 인물이다.
- 두경승 - 당시 일어난 많은 반란을 진압하여 명종의 총애를 받았다.[9]
- 경대승 - 무신정변 주동자 중 하나인 정중부와 그의 아들 정균을 죽이고 '의종의 시해자가 살아있으니 축배를 들 수 없다'고 외친 충신이다.[10]
- 조충 - 강동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충신이다.
- 김인경 - 강동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고 병법에 매우 능숙해 조충을 도운 인물이다.
- 김취려 - 강동성 전투에 참여했던 무인으로 조충과 함께 강동성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장수이다.
- 문대 - 몽골과의 전투 중 전사한 첫번째 사망자로, 패전 뒤 항복 권유를 거절하고 오히려 고려군의 항쟁을 주장해 변을 당한 인물이다.
- 김경손 - 무신정변 이후 최고의 명장이자 최고의 충신으로 귀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무신정권 이후 김방경과 더불어 양대 충신 중 하나로 간신배들로 가득찬 최씨정권의 흉계에 빠져 생을 마감한다.
- 박서 - 김경손과 더불어 귀주성전투를 이끌었던 충신 중 하나인데, 적재적소의 전략으로 몽골군에 승리를 이끌었던 사람이다.
- 최춘명 - 최충의 후손으로 다른 무인들이 투항을 해도 홀로 항전을 주장하자 숙청될뻔 하였으나 오히려 원나라 측에서 충심을 인정받아 살아남은 충신이다.
- 김윤후 - 처인성과 충주성에 활약했던 승군장으로 전쟁의 활약 속에 살리타이를 죽였던 인물 중 하나이다.
- 김방경 - 김경손과 더불어 무신정변 이후 무인들중 으뜸가는 대충신으로 무인권력자들과 부원배의 끊임없는 회유와 참소를 버티고 삼별초의 난을 진압하고, 여몽연합군을 이끈 무인으로 여몽연합군 준비조차 그 가혹함이 극에 달해 비판했던 장수이다.
- 김천록 - 김방경 장군을 숱하게 보호한 전우이자 여몽연합군에 전공을 세운 장수이다.
- 김통정
- 원충갑 - 원주에 있는 치악성의 별초로 카다안의 침입 당시 결사대를 이끌고 카다안 반군의 기병을 격파하고 적병 400명을 전사 시키고 말 25필을 노획했다. 그 후 벌어진 치악성 수성전까지 잘 지휘해 전황을 바꾸는데 큰 활약을 했다. 후대 왕조인 조선 때는 원주 충렬사에 배향 되었다.
- 이조년 - 이인임의 조부로 충혜왕에게 직언을 한 유일한 인물이다.
- 이인복 - 이인임의 형으로 조일신의 난을 진압하고 동생 이인임에게 권력욕을 버리라고 충고했던 인물. 이조년과 같은 충신으로 이후 개혁정치에 앞장서고 신돈에게 파직당하지만 이내 복귀한다.
- 안우, 김득배, 이방실 - 홍건적을 격퇴한 고려조의 실질적 마지막 충신들로 홍건적을 격퇴하자 마자 정세운과 더불어 김용의 흉계와 공민왕의 무능함으로 죽었던 고려말 비운의 인물이다. 정세운과 더불어 통칭 4원수로 칭하나 정세운의 경우는 전공이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하며 3원수로 지칭된다. 특히 정몽주의 스승이 김득배이며 정몽주에게 극찬을 받은 충신들이다.
- 정세운 - 홍건적을 격퇴한 계획을 짠 인물 중 하나로 김용의 흉계로 살해당했다.
- 최영 - 고려의 충신의 표상 같은 존재. 정몽주와 더불어 고려의 충신하면 떠오르는 두 사람중 하나.[11]
- 유숙 - 이색과 더불어 수 많은 학자들을 키워낸 대학자이며 그의 제자는 이숭인. 정도전이다. 흥왕사의 난때 공민왕을 구했고, 3원수와 관련되어 추모하는 시를 쓰다가 신돈에게 숙청되었다. 목은 이색과는 인척 관계이다.
- 기자오 - 충렬왕때 카다안의 침입에서 강화도로의 피난을 호종한 충신. 하지만 아들, 딸 농사는 잘못된 비운의 아버지
- 홍언박 - 이제현과 같이 이색같은 학자들을 키워냈고, 흥왕사의 난때 참변을 당한 인물 중 하나이다.
- 안도치 - 공민왕을 따르던 환관으로 흥왕사의 난때 공민왕으로 위장하여 공민왕을 구출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던 고려 환관을 대표하는 충신이다.
- 유탁 - 고려말 왜구의 침입 초기에 대승을 거두었던 인물로, 최영의 정치 군인적인 모습에 첫번째로 등을 돌리고, 영전공사에 가장 반대한 인물로 변을 당한 인물이다. 이성계가 최영과 더불어 존경하던 무장이다. 그의 아들 유습은 대마도 정벌에서 활약한다.
- 이원계 - 이성계의 이복형. 홍건적과 왜구를 물리친 명장으로 고려 국왕에게 충성을 바치는 충신이기도 했다. 그런 탓인지 위화도회군을 일으킨 이복동생 이성계에게 회유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결국 독약을 먹고 자결한다. 이런 이유로 조선 건국 이후 그의 후손들은 왕족 대우도 못 받은 채 일반 귀족의 대우를 받고 살아가야 했다.
- 정몽주, 이색, 길재, 이숭인 - 충신의 표상. 그리고 특히 정몽주 같은 경우에는 충신이란 개념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3원수를 고려의 실질적 마지막 충신으로 올린 첫 인물이다.
- 이방우 - 조선 1대왕 태조 이성계의 장남. 역성혁명 반대와 고려의 신하로 '남겠다'하여 건국 이후에 산속에서 술로 보네다가 여생을 마친다.
2.1.4. 조선과 대한제국의 충신
2.1.4.1. 조선 전기
- 최윤덕 - 세종대왕 시절 세종이 극찬한 최고 충신으로 4군 6진 중 4군을 개척하여 세종조차도 인정한 신하로 군공을 세우자 이후 견제와 참소를 받게되었으나 세종이 그걸 물리치며 문관들조차도 그를 인정했다.
- 김종서, 황보인, 정분 - 세종, 문종의 유지를 받들어 수양대군으로부터 단종을 보호하다 사망했다.
- 사육신(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 생육신(김시습, 성담수, 원호, 이맹전, 조려, 권절 or 남효온)
- 김처선 - 연산군에게 바른 말을 삼가지 않다가 연산군의 손에 처참하게 최후를 맞이한 환관. 사극 왕과 나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 허조
2.1.4.2. 조선 중기
- 권율 - 이치 전투와 행주 전투를 대승으로 이끈 충신으로, 원균의 행태에 수없이 질타했으며 당대 문관 중 으뜸 충신이다.
- 김시민 - 당시 임진왜란 진주대첩 대승을 거둔 영웅, 10배나 넘는 왜군과 힘겹게 맞써 싸우다 전사했다.
- 김충선 - 일본에서 귀화한 장수로, 임진왜란부터 병자호란까지 혁혁한 공을 세웠다.
- 류성룡
- 송상현
- 신각 - 조선초에 왜군을 맞아 육군 최초로 해유령 전투에 승리했던 장수이나 행정적 실수로 인하여 숙청된 비운의 충신이다.
- 윤흥신 -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다대포에서 부하들이 몸을 피하라고 권고한 것도 거부한 채 왜군과 싸워 전사했다.
- 이경석
- 이순신 - 한국사 명장, 충신의 대명사. 말이 필요 없는 충신 그 자체. 임금인 선조의 여러 차례 견제에도 위기에 빠진 조선을 구하기 위해 왜군과 여러 차례 싸워 승리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정문부 - 전쟁 중 반역자 국경인의 반란을 진압하고 북관대첩 때 전쟁 중에 큰 공을 세웠으나 이후 임해군, 순화군같은 망나니 왕자들과 재수 없게 엮인 바람에 결국 찍히고 이괄의 난때 숙청되는 비운의 인물이었다.
- 정발
- 정충신
- 정탁 - 사형 직전까지 간 이순신 장군을 구명했다.
- 최경회 - 최충의 후손이자 의병장으로, 금산과 무주에 승리했으나 진주성에서 패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인물이었다.
- 김상헌, 최명길 - 병자호란 당시, 비록 화친과 싸움을 두고 대립하기는 했으나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은 두 사람 모두 같았다.
- 삼학사
- 원연 - 개막장인 형인 원균 아버지 원준량과 달리 진위현에서 일본군의 용장인 와키자카 야스하루를 상대로 기병을 이용해 승리를 거두었고 연기현감 시절에도 선정을 베풀었다. 그러다가 왜군을 막다가 장렬히 전사했다.
- 이정암 - 조선의 의병장으로 1400명의 의병을 이끌고 5000명의 왜군을 상대로 큰승리를 거두었고 그후 이몽학의 난까지 진압해 전후 2등선무공신에 제수가 되었다.
- 고경명, 고인후, 고종후 - 이들 부자 모두 임진왜란 시기 의병장으로 여러가지 전공을 세웠고 고경명과 차남 고인후는 금산전투에서, 장남인 고종후는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전사했을 정도로 이들 부자의 나라에 대한 충심은 유명했다.
- 김여물 - 조선 중기 무관으로 임진왜란 시기 신립의 부장으로 충주 사수의 임무를 띠고 파견돼 상관인 신립에게 충주지형의 불리함을 간파하고 의견을 냈으나 신립에 의해 묵살되자 전투의 패배함을 미리 예지하고 나라를 위해 죽는다는 유서를 남기고 탄금대 전투에서 전사했다.[12]
2.1.4.3. 조선 후기 및 구한말
- 박문수
- 채제공 - 정조 대의 영의정이다. 정조가 담배에 중독됨을 넘어 담배를 백성들에게 장려하기에 이르자 사표까지 던져가면서 정조를 말렸으며 정사도 뛰어났던 명신이었다.
- 정약용 - 체재공과 같은 시기, 그리고 그뒤의 순조 대까지 생존한 실학자이다.
- 양헌수
- 어재연 - 조선 후기의 장군으로, 초급장교시절 변방에서 비적을 토벌하고 시장을 열어 지방의 경제를 활성화 시킨공으로 순무중군이 되어 강화도에 파견되어 광성보에서 무기가 훨씬 우세한 미군과 싸우다 휘하 군사들과 함께 전사했다. 이에 조정에서는 충절을 기려 쌍충비를 세워졌고 병조판서에 추증했다.
- 어재순 - 어재연의 동생으로 본래 선비이나 무작정 형을 따라가 종군하는데 형이 불효를 저지를 작정이냐며 혼을 냈지만 나라가 어지러운데 어찌 떠나냐며 형을 따라 종군하다가 형과 함께 전사했고 후에 이조참의에 추증된다.
- 박규수
- 헤이그 특사(이상설, 이위종, 이준)
- 민영환 - 구한말 중앙의 개화파 관료로 만민공동회와 독립협회를 지원하는 등 각종 개혁정책들을 내놓았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중앙의 관료로서 나라의 망국을 막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자결했다. 196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받았다.
- 박승환 - 구한말 군인으로 오늘날로 따지면 소령계급의 군인이었다. 부하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던 참군인이었으며 일제의 군대해산 당시 군인으로써 나라를 지키지 못해 원통하다는 유언을 남기고 권총으로 자살했다. 이 영향으로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에 합류해 정미의병의 시작점이 된 인물로 196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받았다.
2.2. 중국사의 충신
- 역사가 긴 유교의 본산지답게 충신이 정말 많다. 수가 너무 많으므로 충의의 대명사로 알려진 이들만 서술해주길 바란다. 중국사가 패권과 전쟁의 역사고 수많은 군벌이 난무한데다 어느 정도 이익에 따라 움직였던 일본 무사계급과 달리, 이쪽은 유교 사상을 받아들여 그냥 주인 따라 죽어버리는, 다른 나라에서는 특급 충신급의 인물이 발에 채일 정도로 많기 때문.
- 간손미 - 관우, 장비, 제갈량과 마찬가지로 죽을 고생을 하면서도 유비를 절대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따랐다. 사실 유비의 1세대 세력은 휘하 병사들까지 포함해 의리남들의 모임인데, 유비가 장판파에서 그랬듯이 수도 없이 다른 세력에게 깨지고 도망쳐도 주군이 어디에 있는지만 알아내면 바로 찾아가는 강력한 충성심을 보였다.
- 강유 - 제갈량 사후 그의 유지를 이어받아 단신으로 30여년간 계속해서 북벌을 감행했다. 그의 능력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적어도 그 충의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항상 악조건에서 싸웠고 결국은 촉한이 멸망한 이후 자기는 이름 높은 항장으로 잘 대우 받을 수 있었는데도 다시 목숨을 내던지면서 나라를 부흥하려고 했던 충신이다. 특히 강유는 원래 위나라를 섬기던 항장 출신임에도 제갈량이 믿고 맡길 정도의 충성심을 보여줬다.
- 고순 - 마지막 순간까지 여포에게 충성한 몇 안 되는 인물로, 그 우직함과 충성심은 물론 전투 지휘 능력까지 뛰어나 여포군의 핵심이나 다름 없었다. 고순이 이끄는 부대가 워낙 뛰어나서 함진영이라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통솔력과 무력을 빼면 모든 게 빵점인 여포는 여포에게 과분한 충신도 못알아보고 항상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고순을 홀대한다.[13] 하지만 그럼에도 고순은 여포를 향한 충성심을 버리지 않았다.
- 곡률광 - 북제의 명장으로 늘 침입해 오던 북주의 침략을 막아낸 장수였으며, 그 공으로 딸이 황후로 책봉되는 등 권세의 정점에 올랐고 그 뒤로도 묵묵히 북제를 위해 일했으나 그 누구도 아닌 사위였던 고위 때문에 죽고 말았다.
- 기신 - 초한전쟁 때 스스로 유방을 대신해 미끼가 되었으며 초군에게 사로잡힌 후에도 유방의 행적을 가르쳐주지 않은 채 죽음을 택했다. 항우에 의해 그 자리에서 화형을 당했으나 목숨이 다할 때까지 계책에게 속은 적에 대한 비웃음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신숭겸이 그의 고사에서 착안해 왕건을 살리고 죽었다. 다만 논공행상에 기신의 일족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것이 옥의 티. 공신열표의 해연이나 기통이 기신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진 않다.
- 개자추 - 춘추오패 가운데 한 사람인 진문공의 신하. 진문공이 왕위에 오르기 전 망명생활을 하며 곤궁했을 때 허벅지 살을 베어먹인 고굉지신(股肱之臣)의 고사가 유명하다. 훗날 진문공이 왕위에 오른 뒤 자신을 따른 신하들을 포상했으나 개자추는 조용히 은거했다. 포상하려 해도 끝내 거부하자 산에 불을 질렀으나 나오지 않고 타 죽었다. 그를 기리기 위해 덥힌 음식을 삼가는 명절이 한식(寒食)이다.
- 곽자의 - 엄청난 권력을 보유했다는 데서는 권신, 충심을 잃지 않았다는 데서는 충신인 인물. 명신 항목이 작성된다면 그곳에도 이름을 올릴 수 있다. 단적으로 이 사람이 존재했기에 당시 개판 5분전으로 돌아가던 당나라가 수명을 무려 150년이나 연장시킬수 있었다. 또한 인생의 승리자이기도 했다. 자세한 건 항목 참조.
- 관우 - 그야말로 충의의 화신이자 대명사 격인 인물로, 관우 무덤의 호칭인 림(林)을 보면 알겠지만 중국에서 관우의 의로움은 공자에 대비된다.
- 문천상 - 그 절의는 몽골측에서도 감탄하여 목숨은 살려주려고 했으나 그가 있어서 잔존세력의 저항이 계속된다는 사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죽였다. 처형 당하기 전에 남긴 '오사필의'[14] 라는 말은 나라에 대한 충절과 죽음에 대한 의연함으로 후세에까지 남게 되었다.
- 방효유 - 영락제의 즉위를 끝까지 반대한 인물로, 결국 엄청난 형벌을 받았다.[15] 쉽게 말하면 '명나라판 성삼문'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다. 물론 성삼문보다 전대 사람이긴 하지만.
- 비간 - 상나라의 신하. 폭군 주왕에게 살해 위협을 받으면서도 계속 잘못을 간하다가 끝내 심장이 뽑히는 참혹한 형벌을 받아 죽었다. '충신'이라는 단어가 호칭처럼 불릴 정도며 항목 내에서도 시기상 가장 빠른 인물.
- 악비 - 중국인들이 우국충정의 충신이라고 하면 첫 손가락에 꼽는 영웅. 금나라의 침공을 막고 분투하며 옛 도읍으로 돌아가려 노력했지만 권신 진회의 모함을 받고 죽고 만다.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한세충이 진회에게 악비가 죽을 이유를 대라고 말하자 진회가 "莫須有"(막수유, 아마 있을지도 모르오)라고 말한 것은 천년이 지난 지금도 까이고 있다.
- 오자서 - 춘추시대 인물로, 오나라를 강국으로 만든 사람 중 하나로 자신의 주군, 오왕 부차가 미녀 서시와 정단에 빠져 나랏일에 소홀하자, 옆에서 충언하였고, 끝까지 적국 월나라를 경계할 것을 조언했다. 하지만 분개한 부차는 오자서에게 자살을 명령하여 끝내 오자서를 죽게 만들었다.
- 엄안 - 유비군에게 투항한 부분에서 의문을 가질 수 있으나, 장비가 오히려 감복하여 설득했을 정도의 충의 때문에 후세에는 충의의 한 사례로 회자되었다. 가끔 조선 시조에 '엄장군의 충의'라는 대목이 나오곤 하는데 여기서 엄장군이 엄안이다. 사실 투항한데다 투항 후에도 활약을 보이거나 진짜 충신의 면모를 보인 적이 없으므로 여기 있기엔 다소 모자란 인물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충신의 대명사 중 하나로 굳었다.
- 여강 - 당시 환관들은 대부분 부패했지만 얼마 안되는 청렴한 환관으로 당인들을 사면하는 상소를 올렸으며, 도리어 환관들의 모함을 사서 자살했다.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환관 중에서 충성스러운 이로 언급되기도 한다.
- 여몽 - 비록 형주 공략에 관해서는 평이 많이 갈리는 인물이지만 밑바닥 출신에서 단맛 쓴맛 먹으면서 자기 실력으로 오의 군권 1인자가 되어 오나라를 부강하게 하려고 한 인물이라는 것은 의심하는 사람이 없다.
- 왕윤 - 정치술의 부재로 난세를 끝장내지는 못하고 그로 인해 후한의 멸망을 막는것에는 실패한 인물이였으나 충심 하나만은 의심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물론 여기서 충심은 한나라에 대한 충심이다.
- 왕촉 - 제나라의 대신으로, 명장 악의가 이끄는 연나라군이 침입했을 때 연나라로 귀순하라 제의받았으나, 충신불사이군 열녀불경이부, 즉 여인이 두 남편을 섬길 수 없듯이 신하가 두 군주를 섬길 수 없는 법이라는 말을 남기며 자결했다. 중국 고대사에서 충신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 우겸 - 이 사람을 평하자면 최악의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역적으로 몰릴수도 있는 일의 총대를 매고 나라를 살렸으나 결국 스스로를 망친 충신. 명나라의 신하로, 간신 왕진의 농간으로 명군은 토목보에서 참패하며 황제가 포로로 잡히는 기반을 뒤흔드는 대사건이 일어났으나, 천도론을 잠재우고 새 황제를 옹립해 항전태세를 굳혀 결국 위기를 극복해냈다. 그러나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새 황제를 옹립한 부분이 문제가 되어 결국 죽음을 당했다.
- 원숭환 - 명나라의 이순신이라 불릴만한 충신으로 다 쓰러져가는 명나라를 위해 국경지역의 방어사령관으로 최선을 다해 적을 막아내었으나 모함을 받아 죽었다.
- 육수부 - 나라와 같이 운명을 다했다. 남송이 멸망하게 되는 최후의 해전인 애산 해전에서 어린 황제와 함께 병사들과 똑같이 소박한 식사를 하며 지휘했다. 전세가 불리한 상황에서도 소제에게 학문을 가르치다가, 함선으로 원나라 군사들이 들이닥쳐 병사들이 쓰러지자, 마침내 어린 황제와 함께 바다로 뛰어들어 자결하고[16] 남송은 멸망하고 만다.
- 육손, 육항 부자 - 오나라를 위해 온몸을 다 바쳐 충성했지만 둘 다 막장 황제 밑에서 고생만 하다 떠났다. 아버지인 육손은 최고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구국 영웅에 항상 오나라를 떠받든 기둥, 그리고 황제인 손권의 폭주를 막으려고 직언을 올린 충신이다. 아들인 육항 역시 오나라를 마지막으로 수비한 명장중 하나이며 오나라의 멸망을 10년 정도 늦춘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 임칙서 - 몰락해가는 청 말기 최고의 충신. 포청천에 빗대어 '임청천'이라 불릴 정도로 청백리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아편전쟁을 유발했다는 이유로 폄하하는 견해도 있으나, 당시 청의 관료 중 임칙서만이 영국의 침략에 그나마 제대로 맞선 유일한 경우였을만큼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강했으며, 아편전쟁의 배경과 현대사회에서도 대부분의 마약이 금지되는 이유를 안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후대 중국인들은 '임칙서기념관'을 건립하여 그를 국가적 영웅으로 추앙하고 있다.
- 장비 - 의외로 관우와 비교하여 이상할만큼 충의가 부각되지 않는 장수인데,[17][18] 장비 역시 관우와 마찬가지로 처음 유비를 섬기기 시작한 후 죽을 때까지 두 사람을 배신하지 않으며 끝까지 함께 한 사람이다.
- 장세걸 - 육수부와 비슷한 사례.
- 전단 - 제나라판 이순신으로, 악의가 이끄는 연나라군의 침입으로 멸망의 위기에 놓인 제나라군의 사령관에 올라 3년간 결사 항전하며, 연나라의 명장 악의를 실각시키고 그후 연나라군을 총공격해 빼앗긴 70여개의 성을 수복하며 멸망의 위기에 노인 조국 제나라를 수렁에서 건져냈고, 전후에도 제양왕을 잘 보필했다.
- 전위 - 자신의 주군을 목숨 걸고 지켜낸 인물이다. 전위가 죽은 뒤 조조가 직접 그를 위해 곡을 해주었다.
- 정성공 - 반청복명을 같이한 이정국과의 호흥거부 등 기타논란이 많은 인물이지만 청나라가 제시한 부귀영화를 준엄히 거부하고 평생 명나라 황실을 복구시키기 위해서 청나라와 계속 싸웠다. 또한 남명의 황제인 융무제가 그를 사위로 삼고싶었다는 일화, 청나라 황실에서 정성공의 충심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명나라의 마지막 충신으로 불리고 있다.
- 제갈량 - 역사 속의 권신들은 많다. 하지만 창업 군주가 무지막지한 권력을 대놓고 일부러 떠넘겨준 사례는 희소하다. 게다가 그렇게 받은 권력을 권신이 사유화하지 않은 사례는 더더욱 희소하다. 유비 사후 그 아들인 유선을 잘 보필했고, 온몸을 바쳐 촉한을 부강하게 하려 했다. 제갈량의 출사표를 읽고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인 충신의 표상.
- 제갈첨 - 제갈량의 아들로, 제갈량 사후 촉한의 내정을 맡았고 면죽에서 위군을 막다가 37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항복을 거부하고 위군과 끝까지 싸웠으며, 그 재주와 지혜는 아비보다 못했으나 충심은 아비 못지않았다고 했을 정도로 충신임에는 틀림없다.
- 주유 - 적벽대전에서 오나라의 승리를 이끈 오의 군권 1인자이자 전략가, 그리고 구국영웅으로 손책 휘하때부터 그를 곁에서 보좌하며 수많은 전공을 세우고, 이후 손권 휘하에서도 여전히 오를 위해 적벽대전 같은 어려운 전투에서도 승리를 이끄는 모습을 보였다.
- 조운 - 주군인 유비의 가족을 구하고자 조조의 대군이 혼란스럽게 날뛰는 장판 일대로 주저없이 뛰어들었던 충신. 그는 공과 사를 구분하여 몸가짐을 단정히 했고, 주군의 결정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간언도 주저하지 않았던, 평생 조국인 촉한을 위해 살다 간 충신이다.
- 진태 - 하후현과 함께 조위에 충성을 다한 인물. 가충이 성제(삼국지)를 시켜 황제 조모(삼국지)를 시해한 후에, 사마소는 진태에게 황제를 시해한 일을 어떻게 세상사람들에게 사과할 수 있겠느냐 물었다. 하지만 진태는 '가충을 죽여야만 한다'고 말했다. 사마소는 가충을 죽일 수 없다며 다른 방법은 없냐고 물었지만 진태는 "오직 그 이상이 있을 뿐입니다[19] "라고 대답하였다. 진태는 그 후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원인불명으로 죽게 된다. 하후현과 함께 위나라가 멸망하는 상황에서 유이했던 충신.
- 하후영 - 한고제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특히 한고제가 수레를 빨리 달리게 하려고 자녀들을 수레 밖으로 던졌을 때 목숨 걸고 한고제의 자녀들을 구해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충성스러운 이미지를 보여온 덕에 숙청당하지 않고 천수를 누렸다.[20]
- 하후현 - 가히 조위의 마지막 충신이라고 불리는 인물로 역심을 품은 본인의 매제를 막으려다 목숨을 잃는다.
- 한세충 - 남송 때 방랍의 난을 진압하고, 금나라에 대항한 명장이다. 한세충은 악비(岳飛)와 유기(劉錡) 등과 함께 금나라 군대의 침입을 막아 송나라(宋朝)의 명맥을 유지하고 없어진 영토를 회복하려고 힘쓴 무장이다.
- 황개 - 손견-손책-손권을 다 모신 손가 3대의 공신으로서 적벽대전을 비롯한 수많은 전투에서 손가 3대를 위해 용맹하게 싸운 인물이다.
- 황숭 - 이릉대전 당시 패배하고 항복한 황권의 차남으로, 아버지 황권이 항복해 위나라에서 벼슬을 한 것과 달리 촉한에 충성을 다했으며, 제갈량의 아들인 제갈첨과 함께 촉한의 마지막 저항을 이끌다 끝내 전사했다.
2.3. 일본사의 충신
- 구스노키 마사시게 - 일본 제국에서 덴노 숭배의 아이콘으로 많이 써먹었다.
- 닛타 요시사다
- 키타바타케 아키이에
- 야마나카 시카노스케
- 후쿠시마 마사노리 - 오사카의 진 당시 도요토미를 도우면 도쿠가와에게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을 것을 알고 있었지만 도요토미에 병량을 보냈다.
2.4. 베트남사의 충신
- 쯩 자매 (치 자매) - 1세기 후한의 지배 하에 있던 남월의 반란을 주도한 쯩니(치이)와 쯩짝(치측) 쌍둥이 자매를 말한다. 서양의 부디카, 잔다르크. 인도의 락슈미 바이[21] 와 비슷한 사람이었다.
- 쩐흥다오 (진흥도) - 원나라를 무찌른 월남 진 왕조의 장군. 월남사 명장, 충신의 대명사.
- 응우옌 찌 프엉 (완자방)
- 또 히엔 타인 (소헌성)
2.5. 서양사의 충신
서양은 평생을 주군과 나라에 충성하는 동양과 달리 주군이나 나라가 힘을 잃으면 배신하는 게 보통이었지만[22] , 이 쪽에도 기사도가 있었기 때문에 나라와 주군에 평생 충성을 다한 사람들이 있다.
- 벨리사리우스 - 동로마 제국의 명장으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시절의 계획인 로마 제국 영토 수복에 앞장섰다. 고트족과 반달족을 격파하고 시칠리아, 코르도바, 그리고 이탈리아 본토 수복에 공을 크게 세웠지만 나중에 유스티아누스 대제와 반목을 일으키며 실각한 뒤 사망했다. 그래도 죽을 때까지 유스티니아누스를 위해 싸웠다. 사실 공적으론 반목을 했지만 사적으로는 사이가 좋았다.
- 발리앙 디블랭 - 예루살렘 왕국의 기사이자 영주. 당시 예루살렘 왕국의 왕인 보두앵 4세 밑에서 종군했는데, 보두앵 4세는 나병을 앓아서 다른 영주들이나 기사들이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발리앙은 보두앵 4세를 진심으로 따르며 그를 보필하여 여러 군공을 세웠다. 보두앵 4세 역시 감격해 자신의 계모와 발리앙을 엮어주거나, 자신이 죽었을 때 조카인 보두앵 5세의 안위를 부탁하는 등 이들은 지금까지 서양판 최고의 협과사 관계로 묘사가 된다.
- 잔 다르크 - 백년전쟁에서 프랑스 왕국을 구해낸 구국영웅으로, 당시 왕이었던 샤를 7세가 매우 적은 병력을 보내주었는데도 불평하지 않고 수많은 전투에서 영국군을 격파하며 조국 프랑스와 샤를 7세를 위해 싸웠다. 그러나 끝내 샤를 7세에게 토사구팽당해 영국군에게 잡혀 화형당했다.
- 요한 체르클라에스 폰 틸리 - 30년 전쟁동안 계속 신성로마제국과 가톨릭에 충성을 다했다. 물론 비록 말년에 구스타브 아돌프 2세에게 깨지고 마그데부르크에서 부하들의 학살을 막지 못한게 있지만 덴마크와 북부 신교도를 꿋꿋하게 막았고 단 한번도 황제를 배신하지 않고 충성을 다했기에 충신이라 할만하다.
- 주세페 가리발디 - 이탈리아 통일전쟁의 영웅으로, 붉은 셔츠단이라는 민병대를 조직하여 시찰리아를 비롯한 남부 이탈리아 지방을 점령했다. 가리발디가 훌륭한 위인이고 그의 군대인 붉은 셔츠단 역시 군율이 엄격한 군대로 대중에게 인기가 있었지만, 그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시칠리아를 비롯한 남부 이탈리아 지방을 바쳤고, 통일전쟁 이후에도 이탈리아 군을 이끌고 여러번의 전쟁에서 공을 세웠다.
3. 창작물 속의 충신
- \#컴파스 전투섭리분석시스템 - 아담 유리에프, [23]
- 가담항설 - 하난[24] , 최종규
- 가면라이더 시리즈
- 가면라이더 드라이브 - 브렌, 메딕
- 가면라이더 아마존즈 - 카노 쇼고
- 가면라이더 지오 - 워즈(가면라이더 지오)
- 갓 오브 하이스쿨 - 샤오첸
- 강철의 연금술사 - 후, 란팡
- 고양이 당인전 테얀데에 - 이누야마 완코노카미, 겐나리사이[25]
- 기동전사 건담 철혈의 오펀스 - 아인 달튼
- 길티기어 시리즈 - 베놈, 포템킨
- 꽃만 키우는데 너무 강함 - 엘프들, 전럭협, 레드[26] , 줄칸
- 남주의 첫날밤을 가져버렸다 - 실비아
- 노라가미 - 카즈마[27]
- 노블레스 - 라자크 케르티아[28] , 프랑켄슈타인
- 닌자펭귄 만마루 - 란코
- 동방 프로젝트 - 대부분 5면 보스들
- 드래곤볼 - 기뉴, 도도리아, 데브라[29] , 쿠우라의 부하들인 쿠우라 기갑전대, 손오반[30]
- 디아블로 시리즈 - 라크다난
- 라이온 킹 시리즈 - 자주
- 랑그릿사 2 - 레온
- 레전드 히어로 삼국전 - 작중 대부분의 영웅패들, 특히 영웅패 우길
- 록맨 X6 - 레이니 터틀로이드, 실드너 셸던
- 록맨 제로 시리즈 - 팬텀, 하르퓨이아, 히트 겐블렘
- 리그 오브 레전드 - 신 짜오
- 마탄의 왕과 바나디스 - 리무아리샤
- 몬무스 퀘스트 - 치천사 에덴[31]
- 미스터 션샤인 - 고사홍, 이정문
- 바람의 검심 - 어정번중의 에도성 구성원 4인(베시미, 히오토코, 시키죠, 한냐)
- 바람이 머무는 난 - 웨스트 스트라빈
- 별의 커비 스타 얼라이즈 - 삼사신 시스터즈
- 봉신연의 - 문중
- 북두의 권 - 류우가
- 블랙리스트 - 뎀베 주마
- 블레이블루 - 시시가미 반그
- 소울 칼리버 시리즈 - 볼도
- 소드 엠페러 - 애슐릿 공작
- 슈퍼전대 시리즈
- 스타크래프트 시리즈
- 스트리트 파이터 - 팡
- 신의 탑 - 그레이스 미르치아 루슬렉, 알피네, 크랑카
- 아기공룡 둘리 - 고길동의 직원들[40]
- 아르슬란 전기 - 다륜[41] , 바흐리즈, 삼, 잔데
- 아랑전설 - 빌리 칸[42]
- 악마성 시리즈 - 사신
- 야인시대 - 김영태, 문영철, 김무옥, 신영균, 홍만길, 눈물의 곡절, 유지광, 조열승, 이억일, 평양박치기
- 언니는 살아있다! - 최 비서
- 얼음과 불의 노래 - 다보스 시워스, 아담 벨라리온, 포드릭 페인, 케반 라니스터
- 엘더스크롤 시리즈 - 루시엔 러찬스
- 역대급 영지 설계사 - 하비엘 아스라한[43] , 바이에른 경, 환상종들, 골병대
- 영웅전설3 - 듀르젤
- 영웅전설5 - 에굴자작
- 오버로드(소설) - 나자릭 NPC전원, 가제프 스트로노프, 클라임
- 외모지상주의 - 권지태
- 운명의 화살은 제멋대로 날아간다 - 섬섬이[44] , 장보
- 원펀맨 -
- 원피스 - (등장순서) 도르돈, 이가람, 챠카, 페루[45] , 한냐발[46] , 퀴로스, 페드로(원피스)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 켈투자드[47] , 볼바르 폴드라곤, 나즈그림, 말코록[48]
- 유희왕 DM - 마하드[49] , 이소노
- 유희왕 ZEXAL - 오비탈 7
- 은하영웅전설
- 은혼 - 마츠다이라 가타쿠리코
- 자이언트 - 고재춘
- 재혼 황후 - 엘리자 백작부인, 로라 탈리탈, 주베르 백작부인을 비롯한 나비에의 시녀들[55] , 로즈 퀘벨, 마스타스 바이올렛
- 전장의 발큐리아 시리즈 - 셀베리아 블레스[56]
- 젤다의 전설 시리즈 - 임파
- 죠죠의 기묘한 모험[61]
- 창세기전 시리즈 - 죠엘
- 캐피탈리즘 호 하는 만화 - 아타호, 점부장
- 코드 기아스 반역의 를르슈 - 제레미아 고트발트[62][63]
- 퀄리디아 코드 - 카나가와 사천왕
- 킹스메이커 - 신수혁, 가레스, 에녹, 시하브
- 트랜스포머 시리즈
- 트로피코 시리즈 - 페눌티모 : 엘 프레지덴테와 트로피코의 무한한 영광을 위해서 온갖 트롤링, 전투, 공작, 외교를 다한다.
- 파이널 판타지 15 - 이그니스 스키엔티아
- 폴아웃 4 - 코즈워스
- 푸른사막 아아루 - 히뎁트 리 프타흐
- 형제전사 에이스맨 - 실비아
- 혹성탈출 시리즈 - 로켓, 모리스, 벅
- 홈스턱 - 스크래치 박사
- 히어로메이커 - 힐리스(아난 제국), 디에서 콱(마튼 왕국), 몽난이 허턴(세날 왕국)[66]
- BLOOD-C - 쿠토
- KOF 시리즈 - 오리지널 제로, 크리자리드[67] , 이진주, 채림, 야부키 신고, 아사미야 아테나, 시이 켄수[68]
- Sdorica - 나야 로세트, 딜런 레온, 시온 알드릭[69] , 레이저 버나드,[70] 쟈샤파[71]
- Warhammer(구판) - 흑암의 아칸
- Warhammer 40,000
4. 매직 더 개더링의 카드
Loyal Retainers 항목 참고. 말 그대로 충신이라는 개념을 이용한 카드이기에 충신 일람이 아니고 단락에 따로 작성한다.
5. 마르크 함싱크의 소설
조선 영조 시대를 다룬 역사소설이다. 저자 마르크 함싱크는 한국계 벨기에인[73] 인데, 한국어를 모른다고(!).
6. 관련 문서
[1] 군주 개인을 위한 충이었다면 이성계가 창왕을 폐위시키고 공양왕을 즉위시킨 폐가입진에 찬동하지 않았을 것이다.[2] 그러나 이 때문에 맹자는 후세의 군주들의 비판대상이 된다. 맹자의 논리에 따르면 군주는 인하고 의로운 정치를 펼쳐야 자신이 자리를 유지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언제라도 쫓겨나는걸 각오해야 하는데 세상 어느 군주가 이런 논리를 좋아하겠는가.[3] 이런 경우를 간신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애매한 면이 있다. 이쪽은 군주나 정권 자체에 충성했다기보다는 이들에게 빌붙어서 단물을 빨아먹는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봉신연의에서 등장하는 문중을 다른 진짜 간신배들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4] 때문에 이런 충신들의 경우에는 진짜 나라 혹은 군주가 급한 위기에 처하면 간신과는 달리 어떻게든 나라나 군주를 지키려고 한다. 즉 충심만은 진짜라는 것이 간신과의 큰 차이점 섬기는 군주가 어리석다는 점은 간신과 유사하지만[5] 진순신은 이 위징의 말을 두고 그가 본래는 당태종과 적대 관계에 있던 형 이건성의 수하였던 특수성에서 나온 말이라는 해석을 남긴 바 있다.[6] 이에 대해 당대에는 북송 황실의 가계가 조광윤 계가 아닌 동생 조광의(송태종) 계로 계승되었다가 남송 때에 가서야 다시 조광윤 계로 계승되는 것을 인용해 일종의 '사필귀정'인 것으로 해석하지만, 관점이 다른 현대인들 눈에는 그저 북송의 비참한 최후에만 눈이 갈 뿐이다.[7] 흔히 양만춘으로 알고 있으나, 양만춘이라는 이름은 조선 후기때 부터 나온 것으로 본명과 다를 확률이 매우 높다.[8] 반면 그의 부관 이현운은 거란에 전향해버렸다.[9] 동시에 고위 무관이자 중방의 일원으로서 고려를 엉망으로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10] 동시에 무신 집권자가 된 후 수 많은 옥사를 일으켜 비판 받기도 한다.[11] 하지만 이 둘은 살아생전 서로 정적이었다.[12] 김여물 본인은 충신이지만 아들인 김류와 손자인 김경징이 온갖 추태를 보여주면서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명성에 금을 냈다.[13] 이전 서술에는 여포조차 알아줄 정도라고했는데 여포는 결국 고순의 충성심은 알았으나 본인의 성격은 고치지 못했고 결국 나중에는 고순에 대한 믿음조차 흔들려서 고순의 군대를 빼앗아 위속한테 줬다가 싸울 때만 고순한테 다시 돌려주는 너무나 몰염치한 짓을 했다. 그리고 고순이 해준 피같은 조언을 무시했는데, 그 대가는 여포 본인의 죽음으로 돌아왔다.[14] 나의 할 일을 다했다.[15] 구족보다 더한 십족주멸의 형벌이었다.[16] 태후와 황족들, 신하들도 수없이 바다로 뛰어내렸다고 한다,[17] 중국 민중에게 관우는 선망과 숭배, 존경의 대상이지만 장비는 동일화의 대상이라 그렇다는 설이 유력하다.[18] 그러나 그런 대중적 이미지는 실제 행적에 따라 결정된 것이기 때문에, 조조가 유비를 패망시켰을때 둘의 행적 때문에 평가가 달라졌을 확률이 높다. 관우는 단순히 유비를 죽을때까지 따른 것 뿐만 아니라 천하를 거머쥔 조조 밑에서 부귀영화를 누릴 기회가 있었음에도 포기하고 갔다. 비유하자면 중소기업이 망했을 당시 관우와 장비 둘 다 대기업에 취직할 능력이 충분히 있었고 사장이 사업을 다시 시작하자 뒤도 안 돌아보고 돌아간 것은 같으나, 관우는 그동안 대기업에 헤드헌팅되어 회장의 신뢰와 포상도 두둑히 받은데다 출세 코스까지 탄 상태에서 돌아간 것이다. 장비의 충성심이 덜 하다는게 아니고, 관우가 택한 길이 더 어려웠기에 그만큼 관우가 더 충의지사로 부각되는 것이다.[19] 가충이 아니면 그보다 더 높은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 즉 진짜 역적인 사마소가 죽어야 한다는 의미.[20]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후손인 하후씨들인 하후돈이라던가 하후연 등은 조조를 도와서 결국 한나라 멸망에 이바지했다.[21] 세포이 항쟁 때 영국과 싸운 인도 영주.[22] 정확히 말하면 보통은 아니고 여기도 배신이 터부시되는 건 마찬가지지만, 불효와 불충을 동일선상에 놓아 역적=쓰레기나 다름없는(즉, 쿠데타에 실패하면 역사에 남는 쓰레기가 되는) 동양보다는 저항심리가 덜했다. 또한 이건 절대왕정의 얘기고, 봉건국가의 경우 왕과 영주들이 군주와 신하라기보단 계약관계에 가까웠기 때문에 얘기가 좀 다르다.[23] 이쪽은 그냥 이름만 충신(忠臣,타다오미라고 읽는다)이다(...). 오히려 지위는 총수라는 설정으로 상당히 높은 지위이다.[24] 현재 폭군이 된 신룡이 뭘 하든 생각없이 사는 누구랑 관심을 두지 않고 방랑시인으로 사는 누구하고는 참 다르게 유일하게 사군자중 그에게 온갖 학대를 받으면서도 충언과 직언등 바른말을 아끼지 않는다. 단, 춘매는 신룡이 타락하기 전에 죽었으니 제외다.[25] 이쪽은 친한 콘노카미를 충성스럽게 대할 뿐만 아니라 친구처럼도 대한다.[26] 워낙 약을 빤 작품이라 그런지 이들은 충신을 넘어 황재호가 진리라고 믿는 광신도에 가깝다.[27] 사실 이 캐릭터는 비샤몬텐의 충신이기도 하지만 연인 관계로도 볼 수 있다.[28] 루케도니아를 지키기 위해 배신한 가주들과 웨어 울프와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했다.[29] 악역들이지만 나름 자신의 보스에 대해 충성스러웠다. 특히 데브라가 마인 부우를 처치하려는 모습은 암군에 대해 불손한 마음을 품은 역신을 저지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데 정작 주군이라는 자는 즐기며 방관하는 구도라서 더 눈물겹다. 도도리아의 경우 다른 친위대인 큐이나 자봉이 막판에 프리저 욕을 하는 것과 달리(물론 기만전술이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끝까지 프리저의 이름을 말하다 죽는다. 자신을 살려달라고 협상할 때도 사이어인의 비밀을 말해주며 그 와중에도 너를 특별히 예뻐해서 살려주신 프리저님께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기도.[30] 항상 피콜로를 충신하게 여긴다 피콜로도 오반이를 자랑스러운 제자라고 한다.[31] 공식 Q&A에 의하면 에덴에게 충성심을 제외하면 남는건 촉수(...)뿐이라고 한다.[32] 장로님에게 충성할 뿐만 아니라 은하의 숲에 있는 높으신 사람들에게도 충성한다.[33] 높은 대장인 제이하브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다.[34] 옆에 셰린다 하고 비슷하다.[35] 동족에 의해 사형선고까지 받았지만 위기에 빠진 동족을 위해 초월체에게 가미카제로 들이받고 사망[36] 친구이자 상관이 듀란의 속임수에 빠져 자신을 죽게 했지만 자신은 죽으면서 듀갈에게 승리를 할 수 있을 방법을 알려주고 죽음[37] 종족전쟁의 중격으로 술마시는 대장님을 끝까지 믿고 보좌했다.[38] 사실, 군체의식에 가까운 저그고 윤리관이 인간과 달라서 직접 적용은 힘들지만 니아드라는 대사 하나하나가 상당히 임팩트 있는 편이다. 반대로 효율을 중시하는 아바투르는 초창기에 군단이 아몬 휘하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39] "군단은 죽는 그 순간까지 여왕을 도우리라","여왕이시여 당신을 모실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40] 염려대왕편에서 고길동 과장님이 없으면 안된다고 언급을 한적이 있다.[41] 아르슬란의 신하들이 충성심 하나가 끝내주게 높지만 다륜은 그중에서 가장 높다.[42] 기스 하워드에게 언제나 충의를 보여주는 부하다.[43] 김수호 빙의 전 원작에서도 자신의 주군은 오직 프론테라 남작 뿐이라며 고위 귀족, 심지어 한 나라 국왕들의 영입 제안을 거절했다.[44] 백하의 생모인 비래에게 입었던 은혜를 갚고자 백하에게 충성한다. 백하가 황궁을 나가자 슬프게 울었고, 이미지메이킹을 위해 사 온 쌀을 나눠주자 콧대를 한껏 세우고 신백하 황녀님이라며 당당하게 말한다.[45] 페루의 살신성인 정신이 없었다면 알라바스타 왕국은 통째로 날아갔을 것이다. 죽었으면 더 극적이었겠지만...[46] 한냐발은 스스로는 야심가라고 말하긴 하고 실질적으로 야심이 크긴 한데 하는 행동을 보면 해군 입장에서든 마젤란 개인 입장에서는 충신 맞다.[47] 불타는 군단의 음모로부터, 그리고 실바나스의 배신으로부터 아서스를 구했고 끝까지 충성을 바쳤다.[48] 악당에다 간신의 전형이지만 주군인 가로쉬를 위해 마지막까지 충성을 바쳤다.[49] 파라오 아템의 충신일 뿐만 아니라 선대 파라오인 아크나무카논에게도 충성을 바쳤다.[50] 동맹으로 망명하긴 했지만 시바 성역 회전에서 전사할 때까지도 에르빈 요제프 2세의 안위를 걱정하던 골덴바움 왕조의 마지막 충신. 그래서인지 메르카츠의 부관 베른하르트 폰 슈나이더는 그에게 진심으로 충성했다. 메르카츠가 전사하던 때에도 옆에 있었을 정도. 심지어는 동맹 망명 이후 동맹에서 메르카츠 제독의 계급을 두 계단 깎자(본디 한 계급 깎이는게 정상인데 메르카츠는 상급대장이었고 동맹은 상급대장이 없어서 대장에서 한 계단 깎인걸로 취급해 중장이 되었다.) 자기도 똑같이 깎아달라고 주장했다가 양 웬리의 중재로 한 계단 깎이는 걸로 대신했다(...).[51] 밑에 있는 안스바흐처럼 주인 잘못 만나 신세망칠 뻔했지만 라인하르트에게 등용된다.[52] 막장 주군 밑에서 자기만 고생한 충신의 대표적인 예. 사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왕도 무엇도 아니지만.[53] 골덴바움 왕조 최고의 성군인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 시기의 사법상서. 사이가 안 좋았던 잉골슈타트가 억울하게 군사법정에 소환되자 그를 성심성의껏 변호할 정도로 강직한 성격이어서, "탄핵자 뮌처"라는 별명을 얻었다.[54] 베스터란트 학살사건에서 라인하르트의 행위를 비판했다가 특권을 박탈당했음에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심지어 암살 위기에 처한 라인하르트를 살리고 죽었다. 어쩌면 이 세계에서 충신의 표본이라 봐도 될 인물. 위의 나머지 충신들과 비교해보면 메르카츠는 행동력이 없었고 슈트라이트는 전향, 안스바흐는 주인을 좋은 길로 이끌지는 못했고(베스터란트 사건 직전 브라운슈바이크를 필사적으로 뜯어말리기는 했다. 그건 누가봐도 병신짓이고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뻔했기에 주인의 멍청한 짓거리를 보고만있을 수 밖에 없었던 안스바흐로서도 도저히 말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지만) 뮌처는 그럴 일이 없기는 했지만 어쩄건 희생정신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자신의 상관를 바른 길로 인도하려던 행위에 그걸 들어주지 않음은 물론 기존의 특권까지 박탈당하고도 그 상관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 키르히아이스는 은영전 최고의 충신이 될 수 밖에 없다.[55] 이들 중 나비에를 따라간 사람은 영애라서 유학 핑계를 댈 수 있는 로라, 남편과 사이가 나쁜 주베르 백작부인 뿐이었고, 나머지는 남편과 사이가 좋거나 개인 사정으로 따라가지 못했다.[56] 원작인 게임이든, 미디어믹스인 TVA든 자신의 상관이자 군주인 막시밀리안 가이우스 폰 레긴레이브에게 자신의 목숨까지 걸 정도로 충성스런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막시밀리안은 그저 그녀의 힘을 이용하기만 하였지만 그 상황에서도 셀베리아는 자폭이나 다름없는 최후의 불꽃마저 막시밀리안을 위해 발동시킬 정도로 충성스런 모습을 보였다.[57] 디오 브란도의 시생인으로서 충성하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라 생전에 메리 여왕에게 충성했던 걸 의미한다.[58] 부하보다는 동료에 더 가깝기 때문에 부하라 치긴 애매하나 어쨌던 카즈보단 서열상 아래로 취급되기 때문에 서술한다.[59] 바닐라 아이스의 경우엔 그 정도가 지나쳐서 광신도 문서에도 올라와있다.[60] 디아볼로의 다른 인격이지만 영혼도 따로 존재하는 등 사실상 다른 사람 취급이므로 기재.[61] 세뇌되어 수하가 된 부하도 있고, 고용된 부하도 있고, 딱히 배신하는 모습은 없던 부하도 있고, 최종보스의 밑에서 자라 수하가 된 부하도 있는 등 여러가지 종류의 부하들이 묘사되지만, 최종보스에게 자의로 충성을 맹세하는 장면이 강조된 경우를 주로 서술한다.[62] 를르슈 람페르지의 충신이라지만 정확히는 를르슈의 어머니인 마리안느의 충신으로, 제레미아가 를르슈에게 바치는 눈물겨운 충성은 궁극적으로는 마리안느에 대한 충성의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63] 그래도 를르슈를 끝까지 섬기면서 제로 레퀴엠의 진상을 아는 몇 안되는 인물 중 하나이고 이후 물러나 오렌지 농사나 지으며 초야에 묻혀 사는 걸 보면 를르슈의 충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64] 애니판 한정.[65] 처음 께어났을 때 프로그램대로 자신을 충실한 하인이라고 말했지만 라쳇은 오메가 슈프림을 부하가 아닌 친구로 대한다. 오메가 슈프림 역시 라쳇을 주인이라기 보단 친구로 대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충신으로서 지키려 한다.[66] 작중에서 힐리스는 백성에 대한 충성, 콱과 허턴은 군주에 대한 충성을 바치는 충신의 대표적 유형이라 할 수 있다.[67] 01부터.[68] 둘은 친 겐사이를 충신하게 여긴다.[69] 셋은 공주인 안젤리아 카를로스랑 베프이면서 동시에 그녀의 가장 믿음직스러운 부하이기도 하다. 메인 스토리에서 3명은 시어도어 카를로스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공주한테 충성을 맹세한다.[70] 오직 사막왕국 여왕인 다이애나 후안 고메즈한테만 충성을 맹세한다. 그의 배경 소개를 보면 그녀에 대한 충성심이 엄청나다는 걸 알 수 있다. 실제로도 다이애나랑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는데 이건 둘의 군신 관계가 매우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71] 9년 동안 연방에 인질로 잡혀있는 티토리마에게는 쟈냐마, 팅코와 더불어 충성을 맹세하는 부하이다.[72] 대부분의 충성파들은 반역파와 맞서 최후를 맞이하거나 충성파에게 합류했지만 라일라너처럼 만년이 넘는 세월을 충성만으로 견디는 경우도 있었다.[73] 7살 때 입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