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변사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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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備邊司謄錄. 비변사등록은 조선시대에 설치되었던 기관인 비변사의 활동에 대한 일기 형식의 기록물이다. 현전하는 것은 총 273책이며, 원칙적으로는 1년을 1책으로 하였으나, 사건이 많을 때에는 1년에 2책 ~ 3책씩 나올 때도 있었다.
비변사등록을 잇는 현대 대한민국의 자료는 '''대한민국 국회 속기록'''이다. 비변사에 있던 낭청들이 곧 현대 한국 국회의 속기사들이다.
비변사등록은 1973년 국보 제152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2. 내용
임시 기구 형태의 비변사가 설치된 초창기에는 기록이 작성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명종 때 상설 기구가 된 이후로는 쭉 작성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임진왜란으로 인해 소실되었다. 1617년부터 1892년까지의 기록이 남아 있으나 중간에 없어진 부분이 상당수 있다.
비변사등록은 비변사에서 회의가 있을 때마다 회의를 기록하는 낭청이라는 관직의 사람이 같이 들어와서 회의록을 작성한 것으로,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과 함께 1차 사료로 활용된다.
조선 시대의 경제사나 사회사, 군사사, 또한 붕당 당파 분야를 전공하는 사람들에게는 조선왕조실록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책이다. 승정원일기와 마찬가지로 실록에 등장하지 않는 내용이 자세하게 나올뿐만 아니라, 당시 최고 의사 결정 기관이었던 비변사의 기록이다 보니 '''채택되지 않은 안건까지 기록'''[1] 되어 있어 매우 중요한 사료로 여겨진다. 그래서 조선왕조실록과 함께 가장 먼저 번역에 착수된 사료이다. 다만 워낙 흘려쓴 초서이다 보니 1950년대 ~ 1960년대 역사학자와 한문학자들이 이를 일반적인 한자(해서)로 바꾸는 작업(탈초)를 해서 원고지에 한장 한장 써 놓은 것이 먼저 영인되어 출판되었고, 번역도 그 영인본을 기초로 하여 원본과 대조하여 이루어졌다.
3. 기타
대한민국에서는 번역 사업이 완료되었다. 종이 책으로는 영조 대 초반까지 나오다가 어느 순간 이 뒷 부분은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 데이터 베이스에서만 제공 중이다. 나머지 부분도 출판할 생각이 있다고는 하는데 언제가 될지는 모른다.
각종 한국사 시험에서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을 물어볼 때 같이 슬쩍 물어보는 단골 소재 중의 하나이다. 역사적 가치나 사료로써의 가치가 뛰어난 데도 불구하고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이 되어 있지 않아 함정 지문에 자주 인용된다.
북한에서는 2009년 비변사등록을 완역했다고 한다. 2011년에 비변사등록 번역 출판본이 나온다고 한다. 원본이 규장각에 있고, 영인본마저 한참 후에나 전달되었으니 번역이 늦을 수 밖에...
4. 바깥고리
- 한국어 위키백과 : 비변사등록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비변사등록
- 한국고중세사사전 : 비변사등록
- 기록학용어사전 : 비변사등록
-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숨쉬는 갈색 도자기 옹기의 이야기 창작소재 개발) : 비변사등록
- 두산백과 : 비변사등록
- 두산백과 : 비변사등록부의정부등록
5. 국보 제152호
조선중기 이래 국정의 핵심 업무를 담당했던 최고 의결기관인 비변사(備邊司)에서 매일매일의 업무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비변사의 약칭이 비국(備局)이었으므로 ‘비국등록(備局謄錄)’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이전의 『비변사등록』은 모두 소실되었고, 현재는 1617년(광해군 9)부터 1892년(고종 29)까지 276년간의 기록 273책이 남아 있다. 등록은 1년 1책으로 작성하는 것이 원칙이나, 사건이 많을 때에는 2책 또는 3책으로 작성하는 것도 있었다.
비변사는 고종 2년(1865)에 폐지되었음에도 1892년까지 등록이 기록된 것은 비변사 폐지 이후 의정부가 비변사의 역할을 계속 담당하면서 『의정부등록』과 같이 명칭만 다를 뿐 종전과 똑같은 체제의 등록을 작성해왔기 때문이다.
조선후기 국정 전반에 대한 기본 자료들이 수록되어 있어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일성록(日省錄)』등과 함께 『조선왕조실록』편찬의 중요한 자료로 이용되었다. 조선후기 사회·경제적 변화의 양상을 추적할 수 있는 내용들이 충실히 수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