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성록
1. 日省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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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개요
조선 왕조 시기 만들어진 왕의 일기. 1760년(영조 36년) 당시 왕세손이었던 정조가 처음 시작하여 1910년(융희 4년)까지 약 151년간 저술되었다. 총 2,329책. 국보 제 153호이며,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1.2. 내용
정조는 어린 시절 논어 학이편에 나오는 증자(曾子)의 말인 一日三省(일일삼성) 혹은 三省吾身(삼성오신), 즉 "나는 매일 세번 스스로를 반성한다(吾日三省吾身)"는 말에 큰 감명을 받아 자신을 반성하는 자료로 삼기 위하여 매일 일기를 썼다. 이것이 존현각일기(尊賢閣日記)로, 이후 정조가 왕이 된 후 개인 일기에서 국정 일기로 성격이 변화하면서 존현각일기는 일성록이 되어 조선의 공식 국가 기록으로 편입되었다.
1827년(순조 27년) 유본예(柳本藝)[1] 가 일성록범례(日省錄凡例)를 만들어 일성록의 내용을 크게 천문류(天文類), 제향류(祭享類), 임어소견류(臨御召見類), 반사은전류(頒賜恩典類), 제배체해류(除拜遞解類), 소차류(疏箚類), 계사류(啓辭類), 초기서계별단류(草記書啓別單類), 장계류(狀啓類), 과시류(科試類), 형옥류(刑獄類) 등으로 분류하였다.
승정원일기에는 실리지 않은 예조의 의주(儀注), 관찰사의 장계, 환급(還給)한 상소, 의금부와 형조의 죄수에 대한 심문 기록인 수공안(囚供案) 및 살옥안(殺獄案), 격쟁 등의 상언(上言), 사대와 교린의 외교 문서, 암행어사나 사신의 별단(別單)과 같은 자료들이 많이 실려 있다. 또한 하루 하루 매일의 일을 바로 기록한 것이므로, 사초를 기초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편찬자나 집권 세력의 입장에 따라 상당한 정도의 취사선택과 첨삭이 이루어졌던 조선왕조실록에 비하여 더욱 근본적인 사료로 여겨진다. 또한 같은 일록 형식의 승정원일기에 비해 내용이 요점 중심으로 정리되고 기사마다 표제가 붙어 있어 이용하기에 편리할 뿐만 아니라 승정원일기에 수록되지 않은 자료들도 많이 실려 있다.
특히 고종 대 이후의 조선왕조실록은 국권을 빼앗긴 뒤 일본인이 중심이 되어 편찬되었기 때문에 그 공정성과 사실의 정확성을 기대하기 힘들고, 승정원일기는 많은 부분이 소실되어 개수하는 일이 자주 있었으므로, 수많은 신하들이 확인하고 왕이 직접 참여, 매일 관리했던 일성록의 사료로서의 중요성은 조선 후기 역사를 알아보는데 있어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정조 676책, 순조 637책, 헌종 199책, 철종 220책, 고종 562책, 순종 33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827년(순조 27년)부터 1830년까지 효명세자가 대리청정할 때의 3년간의 일기는 일성록이 아닌 세자의 국정 처리 내용을 담는 익종대청시일록(翼宗代聽時日錄)에 따로 작성되어 있다.
일성록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와 함께 조선 왕조 3대 연대기로 꼽힌다. 여기에 비변사등록을 더해 조선 4대 사서(史書)로도 불린다.
1.3. 기타
일득록과 비슷해보이지만 다른 책이다.
세자들의 일기는 동궁일기 항목을 참조.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사이트에 원문이 등록되어 있다.##
2015년 12월 3일, 총 2천329책 중 정조가 쓴 부분에 해당되는 677책이 번역 완료되었다.## 전체 완역에는 21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현재 영조 시대부터 정조 시대까지 번역본은 한국고전종합DB에서 볼 수 있다.
1.4. 바깥고리
1.5. 국보 제153호
1760년(영조 36) 1월부터 1910년(융희 4) 8월까지 조선후기 151년간의 국정에 관한 제반 사항들이 기록되어 있는 일기체의 연대기이다.
『일성록』의 모태가 된 것은 정조(正祖)는 세손(世孫) 시절부터 직접 자신의 언행과 학문을 기록한 일기인 『존현각일기』였다. 정조는 『논어(論語)』에서 증자(曾子)가 말한 “나는 날마다 세 가지 기준을 가지고 스스로에 대해 반성한다”에 깊은 감명을 받아 일찍부터 자신을 반성하는 자료로 삼기 위해 일기를 작성하였다.
1776년 즉위 후에도 직접 일기를 작성하던 정조는 직접 처결할 국정 업무가 점차 늘어나 일기 작성이 어려워지자 1783년(정조 7)부터 규장각 관원들이 시정(施政)에 관한 내용을 중심으로 일기를 작성하고, 작성된 일기를 5일마다 왕에게 올려 재가를 받도록 하였다. 이로써 『일성록』은 국왕의 개인 일기에서 공식적인 국정 일기로 전환되었다.
『일성록』이 현재와 같은 체재를 갖춘 것은 1785년(정조 9)경이다. 정조는 규장각에 명하여 자신이 탄생한 후부터 『존현각일기』에 이르기까지 기간의 일기 및 자신이 즉위한 이후에 기록된 『승정원일기』등을 기본 자료로 하여 일목요연한 체재를 갖춘 일기를 편찬하도록 명하였고, 책의 제목은 ‘일성록(日省錄)’으로 하였다. 그 결과 1760년(영조 36) 1월부터의 일기가 일정한 체제에 맞추어 정리되었다.
『일성록』은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비변사등록』과 함께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관찬 연대기라는 점, 다른 연대기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은 정치적 사건이나 사회 상황 등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2011년 5월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2. 日星錄
조선 말 최익현이 위정척사파의 확고한 입장과 강경책에 대해 모아놓은 글을 조우식이 엮은 책. 총 5권 2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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