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로잡힌 악령
1. 개요
이문열의 단편소설. 한 시인[1] 의 1960년대~1980년대의 행보를 다룬 소설. 1994년에 출간된 '이문열 중단편전집 5'(표제작: '아우와의 만남') 초판에만 수록.
사로잡힌 악령 전문
2. 내용
검사(법조인)인 서술자[성별] 에게 '악령'이라고 지칭되는 그 시인은 일상 속에서 망나니나 다름없이 행동하면서도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 대외적으로는 진보적인 지식인으로서 행동한다. 그 와중에도 기회가 올 때마다 주변에 있는 여자들을 건드리고 다니는 등 추잡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고, 결국 운동권이었으면서도 더 이상 진보적인 인사로 자신을 포장할 필요가 없어지자 기득권층이 되어 여생을 보낸다.
총무 스님은 그래 놓고 무언가를 머뭇거리다가 결심하듯 말을 이었다. “업(業) 중에서도 구업(口業)이 가장 무섭다지만, 그날 큰스님께서 그에게 맞대 놓고 꾸짖듯 하신 말씀은 이랬대. ‘놈, 네 꼬리가 하마 여덟 발은 되는구나. 한 발만 더 자라면 요사 둔갑을 떨다가 무간지옥에 떨어질 터인데 때맞추어 잘 왔다. 네가 여기서 끝내 배겨나면 그 꼬리가 떨어질 것이요, 이 산문을 나서면 그날로 무간지옥이 너를 기다릴 것이니라.’”
그의 악이 번성하는 한 파렴치한 엽색(獵色)의 식단도 풍성했다. 자랑스레 휘젓고 다니는 색주가는 기본이었고 손쉽고 뒷말없는 유부녀는 속되게 표현해 간식이었다. 더욱 악의 섞어 말하자면 신선한 후식도 그 무렵에는 그에게는 흔했다. 시인의 허명에 조금했다가 화대도 없이 몇 달 침실봉사만 한 신출내기 여류시인이 있는가 하면, 뜻도 모르고 관중의 갈채에만 홀려 있다가 느닷없이 그의 침실로 끌려가 눈물과 후회 속의 아침을 맞는 얼치기 문학소녀가 있었고, 그 자신이 과장하는 시인이란 호칭에 눈부셔 옷 벗기는 줄도 모르다가 살이 살을 비집고 들어서야 놀라 때늦은 비명을 지르는 철없는 여대생도 있었다.
그는 이제 거짓, 뻔뻔스러움, 천박, 비열 따위 다분히 감정적인 험구의 사정권을 가뿐히 벗어나 거창한 반독재의 대의 뒤에 숨어 버렸다. 그리고 뒤이은 유신 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더욱 휘황한 빛을 뿜기 시작한 반독재의 대의는 그의 지난 행적에 대해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것조차 어렵게 만들었다.
이 거짓과 위선은 폭로되어야 하고 이 허영과 뻔뻔스러움은 벌받아야 한다. 이 악은 파괴되고 절멸되어야 한다... 그런데 다음 일년이 다해 갈 무렵부터 나는 차츰 그 열정에 지치고 절망적이 되어 갔다. (중략) 그러다가 그 절망감과 무력감은 마침내 그의 악에 대한 엉뚱한 축원으로 변해 갔다. 이 악을 지울 수 있는 길은 이 세상에 없다. 그의 죄가 탕감받을 수 있는 벌은 없다. 있다면 오직 하나 그가 자신의 악 속에서 영원히 번성하는 것이다. 자신의 악 속에 영원히 갇히는 일이다. 너는 너의 악 속에서 영원하라.
힘이 없는 악은 의미가 없다 . 악이 악다워지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권력이든 물리적 폭력이든 재력이든, 지식이나 기술 혹은 특수한 재능이든 상대를 강제하거나 마비시킬 수 있는 힘을 지녀야만 악은 악답게 자랄 수가 있다. 그의 악이 의지해 자란 힘은 말과 글을 다루는 재능이었다. 말의 재능은 그의 ‘명사 (名士) 사냥’ 시절에 이미 충분하게 발휘되었다.
“글세, 얄팍한 속임수랄까, 거짓이랄까 뭐 그런 것인데 …… 옳지, 미당의 시와 비교하면 설명이 쉽겠군. 미당도 그처럼 거지고 광대지. 속임수도 쓰고. 그런데 말이오. 미당의 시를 읽으면 그 영감이 장난을 치거나 속임수를 쓴 것에도 그중에 한 줄은 반드시 미당이 아니면 못해내는 진짜 시가 있단 말이오. 그런데 그 사람은 그 정반대요. 정색을 하고 진지하게 쓴 것도 읽다 보면 참지 못할 속임수나 거짓이 끼어 있단 말이야. 나나 저나 나이 먹고 점잖아진 처지에 나쁘게 말할 수도 없고 …… 그렇다고 마음에 없는 말로 들러리 서기도 싫고. 그래서 일껀 그 사람의 시집을 빼들었다가도 일을 손을 못 대고 다시 꽂게 되고 말아요. 말이 났으니까 하는 소린데 시집 후기(後記)까지 그래요. 그 사람의 시집은 내게 여러 판이 있는데 판마다 후기가 달라진단 말이야. 초판에는 아무개 선생님이라고 깍듯이 경의를 표했던 사람이 재판에는 아무개씨가 되고 삼판이 되면 아예 존칭이 날아가 버리는 식으로.”
3. 평가
저자는 '''진보를 자처하면서 윗자리에 오르니 자기가 욕했던 옛 기득권층보다 더 추해지는 운동권의 위선과, 같은 진영 사람이라고 범죄를 옹호하는 그들의 패거리 의식'''까지 심층적으로 다루었다.[2]
이문열은 '이 작품을 보면 어떤 시인의 행보가 연상되겠지만 그를 개인적으로 공격하는 작품이 아닌 1980년대의 시대상을 담아내는 작품으로 봐 달라.'고 했지만 ,민족문학작가회의에게 항의가 들어오자 결국 이 작품을 작품 목록에서 제외했다. 원래는 이문열 중단편 전집 5권(표제작은 '아우와의 만남')에 수록되어 있었지만 지금 유통되고 있는 저 단편집에서는 이 작품이 없다. 1994년 12월 발행한 1판 1쇄와 1995년 1월 발행된 1판 2쇄에는 실려있으니 읽으려면 중고책 시장에서 해당 판본을 구하거나 도서관을 찾아야 한다.
이문열은 이후에도 어느 지면에서 '나는 그 시대의 한 특이한 개성을 소설적으로 형성화했을 뿐, 특정 인물을 공격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민주화 운동경력을 내세운 고은의 입지가 워낙 견고했던 당시에는 특정 인물을 공격하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이문열의 항변이 당사자로 지목된 인물의 반론 기회를 봉쇄하기에 더 큰 문제라는 반응이 주류였다.
참고로 이문열은 전업 작가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고은을 상당히 존중했다. 이문구의 <산 너머 남촌>에 실린 송기숙의 발문, 시골 밭둑의 싱싱한 수풀을 보면 1982년, 79년 지미 카터 내한 반대시위에 대한 재판을 받기 위해 대구교도소로 이감되어 있던 고은을 면회하기 위해 송기숙, 이문구, 황석영, 김지하 등이 대구로 왔는데 대구에 살던 이문열도 찾아와 함께 면회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3] 그런 이문열이 어째서 10여 년 뒤에 <사로잡힌 악령>을 썼을까 관심하는 사람이 그때는 없었다.
당시 대중은 고은이 어느 정도로 기득권층인지 얼마나 강력한 문단권력인지 의식이 전혀 없었다. 정규웅의 문단 뒤안길-1970년대 <13>비운의 시인 구자운 이 글 중간에 '''"그의 아내는 그 전부터 눈이 맞았던 어느 시인을 따라 노모와 취학 전의 어린 두 아들을 내팽개치고 출분한 뒤였다."'''라는 대목이 있다. 2009년 5월 실린 글인데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만큼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대놓고 언급할 수 있었던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고은과 그를 둘러싼 소위 진보문단의 위세는 대단했다.[4]
3.1. 재평가
2017년 12월에 최영미 시인이 종합인문계간지 황해문화에 '괴물'이라는 시를 내면서 성추행 상습범으로 En을 말했고, 2018년 2월 6일경 이 문제가 불거지자 최영미는 언론에 En은 꼭 고은을 특정 지은 것이 아니고 En도 '은'이 아닌 '이은'이라고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최영미도 이문열처럼 비판 대상으로 고은을 사실상 연상하게 했음에도 고은을 특정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럼에도 이에 관해 여론에서 별 비판이 없어''' 기존의 이문열이 고은을 연상하도록 글을 쓴 것이 비겁한 행위라는 비난도 힘을 잃었다. 2018년 2월 6일 네이버-머니투데이 문화계도 '미투(Me Too)'…최영미 詩 '괴물' 재조명.
이로써 이문열의 고은 비판은 2018년 2월에 들어 재평가를 받아, 오히려 문단 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던 고은의 성추문에 대한 이문열의 내부고발을 민족문학작가회의를 비롯한 좌파 문단세력의 주류가 진영논리로 묵살했음이 명백해졌다. 이후 20년 이상 이문열이 추가로 이에 대해 언급한 사실은 없다.
이문열이 고은의 면모를 조중동 등 언론에 폭로하면 충분히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 텐데 왜 하지 않았냐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그 시절 고은은 정계에도 줄이 닿아있었고 진보 예술단체를 총망라한 민예총 수장으로 권력과 위세가 등등했다. 80년대 최고 작가라곤 하나 어디까지나 개인이었던 이문열이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이문열은 진보의 위선 못지않게 천민자본주의, 물질만능주의도 싫어해서 이를 비판하는 작품도 썼기 때문에 보수에도 적이 상당했다. 내부고발에 필수적인 지원세력이 어디에도 없다는 뜻이다. 이문열이 작품속에서 비판한 대상을 꼽아보면 《미로의 날들》에서 자본가, 《사람의 아들》에서 해방신학, 《영웅시대》에서 (자기 아버지 모델로) 이데올로기, 《변경》에서 4.19와 5.16 사이의 정치싸움, 《구로 아리랑》에서 좌파 노동운동가, 《사로잡힌 악령》에서 문단, 《달아난 악령》에서 전교조, 《오디세이아 서울》에서 서민 속물, 《전야, 혹은 시대의 마지막 밤》에서 경제인과 지식인 사회 전반 등 이문열 펜대에서 안 까인 부류가 거의 없다.
게다가 이미 내부고발을 했다가 그로 인해 불이익을 당한 사람에게 왜 더 집요하게 내부고발하지 않았냐고 하는 것은 가해자의 책임을 오히려 고발자에게 전가하는 부당한 비난이다. 또 조중동에 폭로했다고 진영논리에 빠진 사람들이 조중동의 말을 믿는다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조중동의 음모라면서 고은의 성추행조차 진실을 묻어버리고 역공하여 이문열을 더욱 비난했을 확률이 굉장히 높았다. 위선자들의 진영논리에 당해왔던 이문열 본인이 이러한 사실을 더 잘 알기에 하지 않았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5]
사건이 발생한 이후 서울신문에서는 작가인 이문열과 전화통화를 해 기사를 실었다. 이문열은 "'''지인에게 들었던 이야기 중 일부를 모티브로 삼았고, 직접적인 사실관계로부터 벗어난 상황에서 자유롭게 창작한 작품이다. 어떤 특정인을 공격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닌데''' 그 작품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소지가 있다면 작가가 가해자가 되는 게 아니냐는 생각 때문에 출판사 쪽에 다시는 작품을 재수록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고 밝혔으며, "이미 20여 년 전 폐기하고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는 데다 작품 원고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하면서 "이번 사태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작품이기에 더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다." 말하고 선을 그었다.#
사실 그간 여러 작품 속에서 꾸준히 드러낸 이문열의 인생관을 생각하면 재평가 운운도 그의 입장에선 우스운 일이다. 온갖 볼 꼴 못 볼 꼴 다보며 대중과 여론이란게 얼마나 휙휙 바뀌는지 경험했던 이문열 작가의 시각에선 지금까지 실컷 욕하더니 이제와서 분개하며 그의 편을 들어주는 대중들이, 충실히 복종하고 동조한 주제에 나중엔 엄석대를 고발하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속 초등학생들로 보이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6]
고은을 고발한 최영미 시인은 경제개념 전무하고 학사 학위 하나들고 시간강사 자리 청탁했던 일화나 호텔발언 같이 부적절한 언사가 다소 있었지만, 최시인에게 네가 행실을 잘 못해서 그런 일 당한 거 아니냐고 따지고 드는 사람은 없다. 그것과는 별개의 일이니까.
월간조선에서 '사로잡힌 악령'의 전문을 무단으로 올렸으나[7] , 곧 삭제하였다. 위 링크는 아카이브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