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1. 개요
이문열의 대표적인 단편소설.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초등학교 학급이라는 작은 사회로 표현한 우화라는 것이 보편적인 평이며 이문열은 이 작품으로 1987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선정이유에서 "이상이 살아 있어 이 작품을 접하더라도 높은 평가를 아끼지 않으리라" 며 극찬했다.[1][2] 대중적인 인지도가 매우 높은데 초등학교 교육과정부터 국어 교과서의 단골 소재이며 시험 지문으로도 종종 등장한다. 영화화도 이루어졌으며 영화 또한 이문열 소설의 영상화 중 가장 성공한 작품으로 통한다. 한 마디로 이문열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의 역작.
작중 시간적 배경은 1959년~1960년으로, 소설 초두에 "자유당 독재가 아직은 마지막 기승을 부리고 있던 그해..." 이라는 문구와 엄석대가 몰락한 시기를 다룰 때 "그리고 얼마 후 4.19 혁명이 일어났다" 라는 문장이 있다. 어른 한병태가 과거 일을 떠올린 시기도 나름 의미심장한데, 군사독재가 끝나고 민주화가 시작된, 중학교 입학 후 26년 후인 1987년이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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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판. 해외 독자들 사이에서도 좋은 평을 받고 있다. 해외판은 엄석대가 성장해서 몰락한 첫 번째 결말이다. 이름 표기는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문열'의 매큔-라이샤워 표기 'Yi Munyŏl' 에서 특수 부호를 떼면 Yi Munyol이 된다.
이문열식 영웅 찬가가 새로운 발돋움을 했다는 평을 듣는 이문열의 기념비적 작품. 영화화되었고, 해외에 번역되어 출간되어 그의 명성을 쌓는 데에 가장 일조한 것으로 알려진 소설이다.
이문열은 《사람의 아들》이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면서 유명 작가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문열을 중견 작가로서 인정을 받게 해준 작품은 바로 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다. 그만큼 이문열의 작가 경력에서 중요한 작품이며, 한국 문학사의 입장에서 봐도 여러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우선, 우리나라의 굴곡진 현대사를 초등학교 학급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구현한 솜씨가 매우 빼어나며 소설적 재미를 살렸고 통상적인 교양 소설의 형식으로도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 뛰어난 소설임에는 분명하다.
2. 등장인물
3. 줄거리
이야기는 잘 나가는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좌천으로 서울에서 시골로 이사를 오게 된 국민학교[4] 5학년 소년 한병태의 시점으로 시작된다. 당연히 학교도 시골에 있는 조그마한 학교로 전학을 오는데, 서울에서의 유복하고 안락한 생활이 몸에 밴 병태에게 새로운 학교는 촌동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도시 아이를 외국인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보는 반 아이들도, 학생들에게 좀체 살갑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교사들도 못마땅하기만 했다.
그런데 전학을 온 지 얼마 안 되어, 그는 무척이나 이상한 아이를 보게 된다. 전학을 온 학급의 급장(반장)인[5] 엄석대였다. 학급은 철저하게 석대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교사들은 이런 석대를 무척이나 훌륭한 아이로 평가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석대는 그것을 바탕으로 폭력과 회유를 적절히 섞어가면서 반의 학생들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그런 석대가 무서워서, 그리고 '''다른 학생들도 모두 그러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엄석대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엄석대는 그런 권력 속에서 자신만의 친위대들을 이끌고 마치 주인이 노예를 대하듯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물건을 빼앗고, 시험을 칠 때는 '''대리시험'''이라는 부정으로 공부 잘 하는 모범생으로 위장을 하기까지 했다.[6][7][8] 그리고 새롭게 같은 반이 된 한병태 역시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만들려고 한다.
병태는 그런 석대의 행동이 틀렸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자신의 가치관을 토대로 행동하려 하지만, 학급이 굴러가는 꼴은 이미 병태의 가치관과는 안드로메다급 차이가 있었다. 급장 선거도 결국 석대의 손아귀에서 굴러갈 뿐이고, 심지어는 서울 출신이라 병태가 자신이 있었던 공부조차도 대리시험 셔틀을 부리는 석대를 이기지 못해서 등수에서 밀려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선생님들조차도 병태를 골칫거리로 여기게 되고, 자신의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자 결국 병태는 자신의 굴욕을 인정해[9] 어쩔 수 없이 엄석대가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 표시를 한다. 아예 다음날 샤프 펜슬까지 뇌물로 바쳐가며 석대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러자 석대는 병태에게 자신의 권력을 일부 맛보게 해주며 한 편으로 끌어들인다. '''정확히는 아예 자신의 오른팔 자리에 앉힌 것'''으로, '''그 동안 불공정했던[10] 싸움 권력서열도 다시 바로잡았고 사실상 넘버 2가 된 것'''이다.
본문에서는 '싸움서열도 예전보다 두세 단계 오른 '''열두 번째'''로 올라섰다'고 나오는데 한 반에서 60명 가량의 학생들 중 12등이면 20~30명 수준인 요즘 학급으로 치면 대략 '''5짱''' 정도니 서울 출신 범생이로서는 상당한 수준이다. 엄석대는 한병태에게 다른 아이들이 반드시 해야 하는 당번, 셔틀짓 등에서 제외시켜주는 특권[11] 과 이익[12] 을 안겨주었다.
이 내용을 통해 병태가 그만큼 석대의 권력에 위협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비교적 엄석대 치하에 머무른 시기가 짧았지만 자유에 대한 갈망도 더 컸던 병태는 '''반 전체를 적으로 돌린 채, 한 학기 가량을 버텼다.''' 비록 한 번 꺾였지만, 가만히 냅둔다면 언제 다시 반란의 불씨가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기 편으로 포섭해서 끌어들이기로 한 것이다. 석대가 주는 특권과 이익에 맛이 들려 병태도 점차 급우들과 동화되었다. 심지어 넘버 2가 되고 난 뒤에 연필을 사주며 잘 해줬지만 자신을 도와주지 않은 친구들에게 제대로 앙갚음도 했으며, 분명 규칙위반은 맞지만 다른 아이들은 그냥 넘어가는 사소한 것들도 병태의 경우에만은 칼같이 고발이 들어와 혼나게 되는 일[13] 도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병태는 시험시간에 석대의 측근 박원하의 이상한 행동을 목격하게 된다. 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자기 이름을 지우고 석대의 이름을 쓰는 것이다. 까막눈이 아닌 이상 자기 이름조차도 쓸 줄 모르는 바보는 없었기에 병태는 남몰래 원하를 찾아가 꼬치꼬치 캐묻고, 박원하는 망설이다가 석대의 부정행위 사실을 얘기해준다.[14] 병태는 이것을 교사들에게 고발해야 할지 말하야 할지 고민한다. 그냥 모른 척을 하자니 어딘가 찜찜하고, 그렇다고 고발하는 데에 성공해 교사들이 석대를 처벌해도 예전보다 더한 아싸 생활을 해야 될지도 몰랐고, 더욱이 라이터 사건의 실패를 겪은 적이 있었기에 일단은 함구하는 길을 택했다.[15] 공교롭게도 같은 날 오후에 석대가 벌인 시험 뒤풀이에 따라가야 했기에 선생님에게 고발할 기회가 없었던 것도 이유였다.[16]
그리고 한 해가 지나 학년이 바뀌었다. 병태와 석대는 6학년 때도 같은 반이었고 서울에서 새로 부임한 젊은 남교사가 담임이 된다. 그런데 새 담임은 초반부터 이상한 분위기들을 여럿 느꼈다. 급장 선거를 할 때 만장일치로 엄석대를 뽑는 것,[17] 명색이 2년간 한 번도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다는 아이가 정작 수업시간에 문제를 풀라고 시키면 몰라서 쩔쩔매는 것,[18] 아이들이 담임교사가 아닌 석대에게 청소 검사를 비롯해서 모든 것을 검사받는 등 알려진 평판과 실제 행동이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 때문에 석대를 수상히 여겼다. 그래서 다른 교사들에게도 이야기를 하지만, 그들은 '자기가 잘 알아서 하는 학생이다', '성적도 1등, 청소도 1등, 운동도 1등인 학생이다', '엄석대 반은 뭐든 1등 반이다' 등으로 일관할 뿐이다.
석대는 대리시험으로 성적 바꿔치기가 들킬 것에 대한 불안함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끝내기에는 이른바 전교 1등 엄석대로 지낸 수 년의 세월에 대한 부담이 컸기 때문에 그만둘 수 없었고, 그렇게 또 나름대로의 술수를 부리며 감시망을 빠져나가려 했지만, 꼬리가 길면 잡힌다더니 새 학년이 된지 한 달이 다 될 무렵, 사고가 터졌다. 학교에서 시험을 하나 쳤는데, 석대의 시험지에서 '''다른 이름을 쓰다 지운 자국이 발견된 것'''이었다. 게다가 아이들 성적도 조금 이상했는데, 석대는 독단적으로 전교 1등을 한 것에 비해 다른 공부를 잘 한다는 아이들은 전부 10등 밖으로 밀려난 것이었다. 아무리 봐도 누군가 조작을 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나올 수 없는 비상식적인 성적이었기 때문에 그는 예리한 직감으로 석대가 부정시험을 치렀음을 알게 된다. 이후 엄석대에게 매를 때리기 시작하고, 결국 아픔에 견디다 못 한 석대는 '''"잘못… 했습니다."'''라며 처음으로 자신의 죄를 인정한다. 김 선생은 석대의 대리시험 셔틀들도 불러내어 누가 셔틀을 시켰는지 질문했고 이미 엄석대가 약해진 것을 본 셔틀들은 엄석대가 시켰다고 자백했다. 김 선생이 그들에게 기분이 어땠냐고 묻자 각자 죄스럽고 들킬까 봐 겁이 났다는 반응이었고, 이에 김 선생은 자기 몫을 빼앗기고도 분한 줄 모르고 불의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도 몰랐던 이 바보들에게도 분노해 매질을 했다.
결국 새 담임으로 인해 엄석대의 권위는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졌다. 엄석대의 잘못을 나머지 아이들에게 질문하자 아이들이 하나하나 나서서 앞뒤를 다투며 엄석대의 잘못들을 너도나도 꺼내 담임에게 일러바친다. 원작에서는 뒤로 갈수록 엄석대를 향한 '임마', '새끼', '자식' 등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욕설들이 튀어나왔으며[19] , 대화의 방식도 '''선생님에게 이르는 식에서 석대 면전에다 욕을 퍼붓는 식으로 변했다'''고 서술한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이 석대를 매도하는 와중에도 병태만은 전학을 온 지 얼마 안 되었다는 핑계로 엄석대의 잘못을 단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이때 다른 아이들은 병태까지 비난하나[20] , 김 선생은 알겠다는 말만 하고 다음 아이에게 발언권을 넘긴다.
이런 병태의 행동에 대해서도 해석할 여지가 많은데, 병태는 자기나 학우들도 엄석대의 잘못에 동참한 악인이라는 심정으로 엄석대의 부정을 말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건 원작에서는 그냥 설명해준다. 쉽게 말해 비겁하다는 것. 대충 "저 녀석들은 석대한테 개길 용기도 없이 바로 배 깔고 누운 주제에[21] 실각하기 전에는 석대 밑에서 꿀 실컷 빨아놓고 석대가 권위를 잃으니까 쓰러진 놈 등 밟으면서 까대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다. 덧붙여 병태는 실제로도 '''의외로 석대의 악행에 대해 잘 모르기도 했다'''. 5학년 한 학기 동안 석대에게 반항하다 반에서 왕따가 되고 나머지 한 학기는 역으로 석대의 오른팔처럼 지내는 식이라서 속을 터놓고 지낼 친구는 없었다. 게다가 교활한 석대는 병태를 괴롭힐 때도 뒤에서 시켜서 음습하게 괴롭히는 식으로, 병태 앞에서는 악행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적이 없었다. 병태도 알고 있는 것은 번호가 뒷번호이다 보니 이미 다른 애들이 다 말한 뒤였고... 그리고 김 선생은 아이들이 지난 날에 저질렀던 비겁함의 값과 앞으로 삶에서 교훈의 값으로 아이들 모두에게 매질 5대씩을 하였다.[22]
결국 모든 것이 틀어진 석대는 새로운 급장 선거 도중, 자신의 표가 하나도 나오지 않자 학교에서 뛰쳐나가고, 이후에는 등교길에서 애들을 습격하며 끈질기고 집요한 복수를 하지만 선생님의 일갈에 자극을 받은[23] 아이들의 저항에 부딪혀서 패하고 완전히 잠적한다.[24][25] 김 선생은 당시 아이들에게 인기 있던 책(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용기 있는 사람들>)을 복수에 성공한 아이들에게 선물한 다음, 반 아이들이 부러워할 만큼 그들을 치켜세우는 식으로 아이들이 엄석대에게 저항하도록 자극했다. 그리고 석대는 재가한 어머니를 찾아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버리고 서울로 떠났다는 소문만이 들려왔다고 한다.
4. 결말
잘 알려진 원래 결말은 엄석대가 몰락하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현재의 병태는 지극히 평범한[26] 인생을 바쁘게 살아가던 도중, 가족과 휴가를 보내려고 기차를 타고 지방으로 갈 때, 강릉역에서 석대를 우연히 보게 된다. 잘 나간다는 소문이 무성하던 그였지만, 그는 형사들과 몸싸움을 벌이다 두들겨 맞고 결국 체포돼 연행된다. 엄석대는 병태와 잠깐 눈이 마주치지만 알아보았는지는 불확실하다. 병태는 그 날 저녁,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술을 마시다 눈물을 흘린다.
2005년 경 작가의 말에 또다른 결말을 언급했는데, 이 결말은 엄석대가 화려하게 성공을 하는 결말이다. 현재의 병태가 가족과 바다로 여행을 하다가 숙소를 잡지 못 했다. 그러던 도중, 엄석대를 만나고 엄석대가 호텔로 예약을 하게 되었다. 석대는 병태의 가족에게 만찬을 제공하고, 석대랑 병태가 만나서 술을 마시며 석대가 "나중에 들었다. 그 무효표 둘. 한 표는 틀림없이 너의 것이었겠지. 세월이 지나도 그 귀중한 한 표를 잊을 수 없었다."라고 하면서 병태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병태가 방에서 나가는 석대를 앞질러서 오래 전부터 모셔온 사람처럼 문을 열고 맞이하고 끝난다.
단, 이 결말은 정식 결말이 아닌, 개정판을 내면서 작가가 일종의 부록으로 넣은 것이다. 개정판에서도 본문은 원래의 결말대로 끝을 맺는다.[27]
이 때 또 다른 세번째 결말도 존재했으나, 현재 작가 본인도 찾을 길이 없다고 언급했다. 석대가 몰락했는지, 성공했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내용이라고 한다.
4.1. 김 선생에 대하여
강압적이고 부정을 저지르는 권력자인 엄석대, 거기에 저항하나 결국 무너지고 엄석대의 회유에 넘어가는 소시민적 지식인 한병태, 엄석대의 압제에 굴복하는 학급 아이들의 경우, 소설에서의 성격이 상당히 정형화되어 있으며 또한 비유한 세력에 대해 생각할 여지가 적은 편이지만 소설 후반부 등장하는 김 선생의 경우에는 상당히 입체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나는 되도록이면 너희들에게는 손을 안 대려 했다. 석대의 강압에 못 이겨 시험지를 바꿔준 것 자체는 용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동안 너희들의 느낌이 어떠했는가를 듣게 되자, 그냥 참을 수가 없었다. '''너희들은 당연한 너희 몫을 뺏기고도 분한 줄을 몰랐고, 또 불의 앞에서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을 몰랐다.''' 그것도 한 학급의 우등생이라는 녀석들이...... 만약 너희들이 계속 그런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앞으로 맛보게 될 아픔은 오늘 내게 맞은 것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그런 너희들이 앞으로 어른이 되어서 만들 세상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모두 책상 위에 손 들고 꿇어앉아 다시 한 번 스스로를 반성하도록.[28]
대다수의 해석에선 김 선생 역시 엄석대와 똑같이 '폭력과 권모술수'를 통해 학급의 정권을 탈환하고 엄석대 비판작용을 통해 새로이 권력을 공고히 한 '일그러진 영웅'이라고 언급하고 있으며 특히 영화판의 결말에서 등장하는 '국회의원 김 선생'의 모습은 이러한 의식을 보다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민주주의와 정의를 외치던 담임선생님은 장례식에 와서 그 개막장스러웠던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훌륭한 교사"라고 치켜세우는 아부까지 하고 있는 변절해버린 모습이 나온다.[29] 이러한 해석을 기반으로 하였을 경우 김 선생은 '기존 압제세력을 제거하여 권력을 가지려는 새로운 압제세력'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문열의 언급으로 인하여 이런 해석이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 김 선생의 사회적 위치나, 극중 배경인 1960, 70년대를 생각해 보면 김 선생을 '해방자 같은 압제자'로 보기만도 어려운 노릇이다. 일단 엄석대와는 달리 김 선생은 '선생', 즉 '학급 운영에 대한 합법적이고 정당한 권한을 가진 인물'이며 사실 엄석대도 김 선생에 비하면 아랫 직위(반장)에 있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엄석대는 전 학급 담임 선생의 방관과 신임 속에서 힘을 얻었을 뿐, 엄밀히 말하면 일개 학생에 불과하다. 군대로 비유하자면 같은 병사 계급인 이등병, 일병, 상병 등의 후임 병사에게 '사적제재'를 가하는 병장과 중대원에게 '얼차려'를 주는 중대장 정도의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애초에 더 상위에 있는 사람에게 '압제자'라는 표현은 바람직하지 않다. 애초에 지휘권이나 교육권을 가진 자가 지시하는 것이 불법은 아닌데다가 오히려 지휘자 밑에서 불법적으로 사적제재를 가하는 불순분자를 뿌리뽑는 것이 지휘권을 가진 자의 의무다. 즉 김 선생이 엄석대를 축출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정당하며 애초에 엄석대와 김 선생은 '같은 권한을 가진 자'가 아니다. 엄석대도 김 선생의 지시와 교육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엄석대 역시 학생이고 학생은 교사의 정당한 교육 지시에 순응할 의무가 있다.
방법의 문제는 있었겠지만, 오히려 김 선생이 엄석대의 권력을 그대로 두고 보거나 전 담임처럼 이용했다면 그것 자체가 직무유기이며, 방조죄이다. 선생의 제 1의무는 '학생의 지적 수준을 특정 수준 이상까지 향상시키는 것과 학생의 인격적 도야를 돕는 것.' 이기 때문이다.
또한 김 선생이 엄석대를 축출하는 과정에서 무자비한 폭력이 있었으나, 1960년대 당시에는 '''오히려 그 방법이 교육의 왕도였다.''' 아닌 것 같다면 40대, 50대 이상의 중년 어른에게 그 당시 교육에 대해서 한번 들어보자. 죽도록 맞았다는 일화가 수도 없이 나올 것이다. 물론 21세기에는, 이런 학생의 체벌이 절대악으로 취급되고 있으나 불과 1980~90년대만 해도 합당한 체벌이라면 육체적 체벌 역시 정당한 교육방법으로 인정을 받았었다. 그 이전까지는 부모들이 선생님들에게 찾아가서 우리 아이 사람 좀 되게 최대한 많이 패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도 볼 수 있었고 아이가 병원에 실려갈 정도로 맞은 걸 항의하러 찾아가면 집에서 그리 오냐오냐하니까 애가 그 모양 아니냐고 학생을 팬 교사가 학부모에게 호통을 치며 훈계하는 것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상황으로 잘못 툭 치기만 해도 학교가 뒤집어지는 2010년대 이후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사실 21세기 초에서도 한국에서 줄빠따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과연 '엄석대에게 빌붙어서 대리시험을 쳐 주고 선생을 기만한' 학생이 죄가 없는가? 참고로 대리시험은 현재 학교에서도 정학은 기본이요, 국가시험에서도 중대한 부정행위이기에 시험자격을 수년 박탈하는 경우도 있다. 김 선생은 그 시절 당시 기준으로는 과도한 처벌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김 선생은 학생들에게 매질을 가했지만 부정을 저지른 학생들이 학교 차원에서의 공식적 처벌을 받았다거나 부모에게 혼났다는 말은 없던 걸로 보아 주변에 알리지 않고 학급 내에서 끝낸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무르게 끝냈다고 해석하기도 충분하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김 선생은 '돌아온 압제자'가 당연히 아니다. 이 경우 김 선생은 엄석대의 불법적인 권력과 권위를 제한한 선생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인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되면 김 선생은 부당한 권력이 횡행하던 학급을 제 상태로 되돌려 놓은 '해방자'로 해석을 해야 한다.
이러한 요소들 때문에 김 선생은 압제자, 해방자 등으로 해석 될 여지가 있는 입체적 인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김선생은 폭력을 동반한 위로부터의 개혁을 추진했을 뿐이고, 민중에게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하게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이러한 근본적인 측면 때문에 해방자적인 면이 있을지언정 순수한 해방자가 되기는 힘들다고 보여지는 것이다. 무능하고 폭력과 억압의 질서를 방기하는 관리자인 전 담임보다는 긍정적으로 보여지는 것은 당연하나, 무능한 민중이라는 측면을 강조함으로서 이문열 특유의 허무주의로 이어지기 쉽다.
그리고, 김 선생에 대한 해석 문제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문제 중 하나가, 김 선생에 의한 해방은 철저하게 '피해자 자신이 전적으로 그 대가를 부담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엄석대에 의한 강압적 지배구조에서 학생들은 설령 굴복하고 영합했을지언정 한편으론 일종의 피해자였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김 선생은 학생들 또한 피해자였다는 점을 고려하기보단 이들을 강압하여 엄석대에 저항하게 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즉, 엄석대의 독재로 인해 입은 피해에 더하여 엄석대에게 저항하는 대가까지 치르게 한 것.
그런데 여기서 이 작품에서 다루지 않은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되는데, '''엄석대가 가진 최대의 권력기반은 교사의 지원을 받았다는 것이다.'''[30] 실제로 한병태가 엄석대에게 저항하던 시기에 엄석대는 주로 숙제검사나 소지품, 복장 검사, 청소 검사 등 교사의 권한을 대행하는 영역에서 한병태를 탄압했다. 즉, 5학년때의 담임은 단순히 엄석대가 '''반 아이들에게 가하는 폭력을 방치한 것만이 아니라, 폭력의 도구를 제공함으로서 적극적으로 방조했던 것'''이다. 이 점에서 보면 석대에게 굴복한 학급 아이들보다 훨씬 더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은 석대의 폭력을 방조한 5학년 때의 담임인 최 선생이다. 이는 현대 대한민국이라면 '''교직에서 파면되고도 남는 것은 물론이요, 직무유기죄로 형사처벌까지도 가능한''' 중범죄이다.
그리고, 김 선생 자신이 엄석대를 방조한 것은 아닐지 언정, 학생 대 교사라는 권력 관계 내에서 동료 교사의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김 선생의 해결책은 교사가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고통받은 아이들에게 교사의 잘못을 만회할 책임까지 떠넘기는 것이었다. 특히, 엄석대가 학급 아이들에게 보복폭행을 가하던 시기에도 교사라는 입장에 있던 김 선생을 위협했다는 이야기는 작중에서 전혀 나오지 않는다. 결국 김 선생은 엄석대 문제의 책임을 진짜 책임자인 최 선생이 아니라 만만한 피해자인 학생들에게 전가하고, 자기 자신은 편안하고 안전한 위치에서 학생들을 싸움터로 내몰았을 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 이 부분에서, 학교 권력관계의 최상위 구조인 교사-학생간의 역학관계와 이로 인한 책임문제가 작품 중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다만, 그렇다고 김 선생이 모든 걸 학생들에게 전가한 것은 아니다. 김 선생의 발언과 행동을 보면, 단순히 학생들에게 대처를 떠넘긴 게 아니라 '''불의에 저항하지 않고 순응하는 짓'''을 꾸짖은 것이다. 수단이 강압적이고 인도도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김 선생의 목적은 학생들의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행태를 꾸짖음으로써 스스로 불의에 맞서 능동적으로 대항하게 만드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다만 이를 통해 학생들의 의식을 최종적으로 높인 것도 아니고, 결국 따돌림의 대상을 엄석대로 바꾸고 내쫓아버림으로써 문제를 배제한 것이기에 진정으로 학생들의 의식 성장을 노렸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것이다.
4.2. 교양물, 학원물이란 측면에서
작가 이문열이 2010년도 인터뷰에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성장소설"이라고 코멘트한 바가 있다. 여기에 대해서 "말하는 덕분에 권력에 순종하면서 사는 게 좋다는 안드로메다적인 교훈인가?"하는 야유도 있다. 그러나 이는 성장소설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반응. 교양소설, 성장소설이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하는 인간을 묘사하지는 않는다. 자연주의 계열에서는 오히려 속물적으로, 타락하는 방향으로 성장해나가는 인간을 통해서 인간성이 얼마나 쉽게 유린 될 수 있는지, 그렇기 때문에 그 인간성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를 일깨워주기도 한다. 보통 독자들에게는 믿기지 않겠지만 '''사드 후작의 대표작들''' 또한 성장소설, 교양소설로 분류된다. 따라서 이 작품은 한병태의 타락과 자포자기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한 소년이 불의를 체험하는 과정을 통해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이해를 한 단계 높여간다는 점에서 분명 성장소설적 요건을 충족시키고 있다.
이 소설은 "학원소설"이라는 측면에서도 읽힐 수 있다. 특히 소위 빵셔틀로 요약되는 학교폭력 문제의 현실을 보면 이 작품은 수십년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실 내에서의 폭력의 본질이 무엇인지 매우 정확히 바라보고 있다.''' 집단괴롭힘에 대처하는 실질적인 해결방법은 교사나 공권력에 의한 통제밖에 없으며, 이 구조가 수십년동안 변화가 전혀 없었다는 볼 수 있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학원폭력이라는 관점에서 이 소설을 바라보면, 소위 "일진"인 엄석대와 그 패거리가 한병태를 "왕따"로 만들고, 복종시킨 다음에는 "셔틀"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엄석대의 일진-셔틀 행위는 집요하고 치밀하면서도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엄석대는 단순히 폭력을 휘두르는 깡패가 아니라,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이진'들을 조직하여 다양한 이득을 꾀한다는 점[31] 에서 조직폭력배의 학교 버전으로서의 일진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또한 엄석대의 실체를 알지 못하고, 혹은 실체를 눈감아주면서 오직 '성적'과 '질서'에만 골몰하는 교사들의 모습, 한병태가 엄석대의 일진패거리에 붙어서 또 다른 왕따를 만들고 으스대는 모습, 종국에 엄석대에게 대처하는 방법 마저도 "폭력교사"에게 엄석대가 학교에서 "짤리는" 결말, 그 폭력교사인 김선생 마저도 결국 아이들을 내몰아 엄석대를 공격하는 '또 다른 집단괴롭힘'을 저지르며, 교육자로서 엄석대를 대하기보다는 '문제아를 잘라내는 활동'에 집착한다는 점에서 일선 교육현장의 한계를 드러낸다. 이런 요소들은 오히려 최근에 발표된 학교를 소재로 한 소설들보다 적나라하다.
또한 작중 김 선생은 아이들의 저항정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체벌을 가했으나, 당시가 아닌 현대의 일선 교육 현장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면 교사는 "일진 한 마리한테 몇 년을 휘둘린 애들을 보듬어주진 못할 망정 어디서!" 라는 비난부터 들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소설에 나오는 아이들은 '''초등학생'''이다.
4.3. 그 밖에
이문열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일그러진 영웅"형 인물이 이 작품에서 최초로 등장했다. 이전에도 일그러진 영웅형의 인물이 없지는 않았으나 이 소설에서 엄석대를 기점으로 하여 이러한 인물상이 뚜렷하게 확립되었다. 이문열의 데뷔작인 〈나자레를 아십니까〉에 나왔던 목사의 아들이 일그러진 영웅의 시작지점처럼 보이기는 하나, 이는 오히려 훗날에 나타나는 타락한 지식인, 냉소적인 지식인의 형태에 가깝다. 물론 여기서 나타난 엄석대의 처참한 몰락은 후대의 일그러진 영웅들에게는 없는 것인데, 이에 따라 엄석대 자체도 "보다 큰 권력의 용인하에 설쳐댄 나팔수"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후에 결말을 바꿔서 엄석대가 거물이 되는 판본에서는 후대의 일그러진 영웅들과 같다.
이 작품의 작가인 이문열 특유의 엘리트 의식이 나타나는 소설이라는 평가도 있다. 우선 한병태가 전학 초기에 보였던 태도는 전형적인 엘리트 의식의 발현이고 한병태가 전반적으로 보이는 식자적 태도, 그리고 결말부에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몰락한 인간이나 실패한 인간으로 치부하는 태도에서 그런 점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엘리트의식을 싫어하는 독자들에게는 이문열의 부정적 특징이 최초로 드러난 소설로 이 소설을 꼽는다. (다만 이 작품 이전에 내놓았던 작품들 또한 그러한 엘리트 의식은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작품내에서 전반적으로 나타났던 "식자의 무력함"은 우리나라 식자계층의 자기합리화 논리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식자계층의 자기합리화 자체가 이 소설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도 없는 데다, 문학 작품을 누군가 악용한다고 해서 그 문학 작품 자체나 그 작가를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작품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관계로 악용도 많이 될 뿐이다.
작품의 절정이자 클라이맥스인 엄석대의 몰락 장면은, 현세대를 살아가는 정치가·논객들의 처신과 허탈할 정도로 많은 부분이 일치한다. '''"부당한 권력이 몰락했을 때, 그에 최대한 저항했던 지식인과 비굴하게 아첨하여 연명한 시정잡배들은 어떤 행동의 차이를 보이는가?"'''에 관하여 현실을 돌아보면, 부당한 권력이 위세당당할 때에 모든 것을 부딪쳐 저항한 사람은 그 권력이 몰락한 후에도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반면 권력이 강성할 때에는 찍소리도 못 하던 비겁자들이 오히려 그 권력이 쇠한 뒤에는 태도를 돌변하여 마치 자신은 그 권력자와 3대째 철천지 원수로 지내오기라도 했다는 듯 못잡아먹어 안달복달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엄석대가 독재하던 시절에 권위에 억눌려서 찍소리도 못했던 친구였던 만순이 있다.
서상훈은 새로운 해석을 제시했다.# 엄석대는 전두환, 어린 한병태는 당시의 지식인들, 화자인 다 큰 한병태는 이문열 자신, 다른 학생들은 일반 국민들, 5학년 담임인 최 선생은 독재를 묵인하던 미국, 6학년 담임인 김 선생은 독재정권을 버린 미국으로 6월 항쟁을 평가한 작품이라는 해석이다. 그것도 6월 항쟁에 상당히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한 것. 위의 또 다른 결말이 작가가 생각한 진엔딩이고 본래 엔딩은 돈 때문에 타협한 거라는 해석이다. 실제로 작가가 이후 한나라당을 위시로 한 보수, 우익 진영에서 활동한 것도 생각하면 뭔가 앞뒤가 맞는다는 주장이다.
5. 줄거리 해석
90년대부터 꾸준히 교과서에 실리는 작품이기 때문에[32] 이 작품과 그 해석에 대해서도 널리 알려졌다.
가장 보편적인 해석은 이 작품을 정치적인 우화로 해석하는 경향인데, 이는 90년대에 교과서에서 채택하면서 가장 대중적으로 인식된 해석이다. 그러나 세부적인 면에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씩 해석이 달라진다. 당시에는 부당한 권력이나 독재의 종식을 이야기하는 해석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양상을 띠었다. 현재에는 폭력이 또다른 폭력에 의해서 종식당하고 새로운 폭력의 시대가 열리는 것에 대한 냉소, 그리고 주인공 한병태가 향수를 느끼는 장면 등을 들어서 권력을 순응하고 동경하는 자세에 대해서 그린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그렇게 틀린 해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문열이 이 소설의 결말 부분을 개작했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에서 퍼졌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엄석대가 경찰에 의해 끌려가는 결말은 발표 당시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아마도 영화판의 결말이 소설과 다른 뉘앙스로 마무리된 것이나, 또는 2005년 출간된 버전에서 또다른 결말을 작가의 말에서 함께 실어놓은 것이 결말이 개작되어 바뀌었다고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서 결론을 짓자면, 우선 어떤 결말이든 한병태의 태도가 찜찜하게 끝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이 그저 한 소시민의 씁쓸한 회상인지 혹은 권력에 대한 향수와 동경인지는 불분명하지만, 한병태는 분명 변화된 시대상에 대해서 불만족에 빠져 있으며 동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엄석대의 몰락과 그 이후의 과정에 대해서 강한 아이러니를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엄석대의 경우도 끝이 좀 다르긴 하지만, 또 한 번 권력자의 자리에 오르는 것 자체는 동일하다.
이를 통해, 작가가 긍정과 부정을 떠나 한국의 현대사 흐름에 강한 아이러니를 느끼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입장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된다. 우리나라 현대사에 있어 식자층이 느껴온 어떤 무기력과 회의주의적인 감성이 나타난다는 측면, 다른 하나로 작가 개인의 보수적인 입장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는 측면이 있다.
사실,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지식인층의 무력감은 리얼리즘 계열 작품에서는 흔하게 묘사된다. 오히려 계몽주의 시대 이후의 작품들은 대체로 혁명가가 독재자로, 이념가가 현실에 매몰된 속물로 몰락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의 현대사 또한 결코 무탈하게 지나오지 않은 만큼, 그 과정에서 식자층들이 느끼는 무력감과 불만족은 문학 작품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었다.
요컨대 이 작품에서 다루는 바는 오히려 주류적인 담론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뚜렷한 정치적 스탠스의 문제라기보다는 식자들 사이에 만연했던 회의주의적인 자세, 현실 순응적인 자세를 여과없이 묘사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주인공 한병태가 스스로의 굴종을 타락이라고 인지하고 있으며 작중 스스로의 입으로 "굴종의 단맛에 취해" 라고 표현하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엄석대가 몰락하기가 무섭게 새로운 "일그러진 영웅"인 김 선생에게 달려가는 아이들을 보며 한병태가 느끼는 아이러니는, "나는 너희들보다는 지조가 있다." 라는 냉소처럼도 읽히며 "지금 설레발을 치는 너희나 나나 똑같지 않느냐? 왜 (내가 투쟁할 때) 나에게는 아무도 호응해주지 않았느냐?" 라는 비난처럼 읽히기도 한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결말부에서 한병태가 "엄석대의 새로운 왕국이 생기고, 거기에서 예전과 같은 호사를 누리는" 상상을 하는 장면이다. (판본에 따라 조금 다르긴 하다.)
위와 같은 대목들에 대해서는 몇 가지 유념해야 할 점이 있는데, 첫째는 작중 한병태는 바뀐 환경에 대해서 강한 괴리를 느끼는 캐릭터이며 항상 거기에 쫓아가지 못 하고 소외되는 인물이다. 둘째는 결말부의 한병태는 보잘것없는 소시민 신분으로 각박한 삶에 염증을 느끼고 있으며, 무엇보다 엄석대는 결국 또다시 실패하고 잡혀가는 신세로 나온다. 여기서 나타나는 한병태의 감정은 결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는 자기 삶에 대한 자조에 가까운 것이며 당시 한국 사회에 고개를 들기 시작한 물질주의와 개인주의를 생각해 보면 자포자기에 가까운 망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 이후의 다른 작품들, 특히 90년대 이후에 보여준 작품활동에 대한 비판이 이 작품으로 번진 것도 고려해야 한다.
결론을 내자면,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우화라는 양식에 충실한 작품이다. 정치색에 대해서 살펴보면 다른 이문열의 작품들, 장편 선택, 시인이나 단편 〈아우와의 만남〉, 〈구로 아리랑〉, 〈달아난 악령〉 등과 달리 노골적이지 않다. 정치색에 대한 여과없는 어필을 전제로 하고 있는 이후의 몇몇 작품들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그러한 작풍과 비교하면 명백하게 차이가 있다. 이 작품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일그러진 영웅' 이며 그 성장과 절정, 그리고 몰락, 새로운 일그러진 영웅으로 이어지는 '영웅의 연쇄' 에 있다. 그 사이에서 쫓아가지 못 하는 사람들, 식자이든 소시민이든 그 틈바구니에서 희생되는 사람들이 느끼는 아이러니가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다.
마지막으로, 작품 해석과 다소 동떨어진 부분으로 서울에서 부임한 김 선생의 입장에 대한 해석에도 논란이 있다. 사실 이 부분은 작품 전체의 해석과는 연관된 부분은 아니다. 우선 김 선생이 엄석대와 마찬가지로 폭력과 정치적 술수로 권력을 장악한 새로운 '일그러진 영웅' 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김 선생의 역할을 통해 '영웅의 연쇄' 라는 순환고리가 완성되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도 똑같다. 그러나 분명히 작중에서 김 선생은 또다른 폭력이며 그 증거로 한병태가 초기 엄석대에게 느꼈던 저항감을 김 선생에게도 똑같이 느끼는 점을 보아야 할 것이다. 김 선생을 '해방자' 로 해석하는 경향은 작품의 해석을 '독재타도' 로 보았던 과거의 것이며 오히려 김 선생이 '해방자가 아닌 또다른 억압자' 로 해석된 것이 이 작품을 재평가하게 된 계기였다. 이문열 자신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철저하게 우화적인 구도를 가진 소품이다. 거기서 엄석대가 보여 주는 행태의 원관념은 정당성과 정통성이 없는 권력이고, 그를 둘러싼 분단장급의 상위 그룹은 지식인 출신의 관료 내지 행정기술자들이다. 첫 번째 담임선생은 미국이며, 그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레이먼드 보너가 '독재자와의 왈츠' 라 이름 붙인 미국의 6,70년대 외교 정책이다. 또, 두 번째 담임선생은 경직되고 권위주의적인 이념이며, 그가 아이들의 의식을 일깨워주는 방법은 그 폭력성에 다름이 아니다.
6. 표절 의혹
영화화될 무렵, 황석영의 단편 〈아우를 위하여〉[33] 를 표절했다는 소문이 잠시 돌았으나 영화의 흥행으로 인해 별 반응없이 묻히고 말았다. 하지만 2004년, 문학평론가인 반경환이 직접적으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아우를 위하여〉를 표절했다는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꺼내게 된다. 반경환은 이 주장으로 책도 냈다.
표절설에 대해 이문열은 자신의 위치를 시샘하는 이들이 억지주장을 한다는 식으로 넘어갔는데, 2008년 즈음부터 다시 재논란 되었다.
반경환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아우를 위하여〉가 전달하려는 구조와 스토리가 아주 유사하고, 화자로서 5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위치와 성격, 전달하는 부분이 모두 똑같다는 점을 지적하며 집필당시 정치색을 그리 띄지 않았던 이문열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유독 강렬한 정치색을 주입한 이유는 이와 같은 표절 때문이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그밖의 표절 의혹에 관한 의견은 아래에 나와 있다.
- 황석영의 소설인 〈아우를 위하여〉는 1970년대초에 출판 되었으며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1987년에 출간되었다.
- "〈아우를 위하여〉는 그의 초기 단편선 '객지(1974)'에 수록된 단편중의 하나로 황석영의 작품세계를 논의할 때 필수적으로 언급된다. 이런 작품을 이문열이 표절했다는 것은 난센스이다. 표절설은 반경환이란 이가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으로, 이런 주장에 응답하는 이는 평론계에 없다. 2008년에 재점화된 것도 이문열의 촛불집회 비난이 물의를 빚자 데일리 서프라이즈가 이문열을 공격하기 위해 반경환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선전된 것에 불과하다."라는 견해도 있다.
- 〈아우를 위하여〉는 가시와바라 효조의 〈먼 길 長い道〉(1968)을 표절했다는 설이 있는데 2008년 시점에선 표절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상태이다. 무엇보다 〈먼 길〉은 일본 근대사를 기반으로 한 소설로 같은 계보주의인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은 왕국〉(1918)의 비극적인 결말에 대해, 다른 해석과 희망을 제시하기 위해 집필된 것이란 평론을 고려해야 하며, 〈먼 길〉의 대립구조는 〈아우를 위하여〉와 반대되는 형태(입장이 역전되어있다)라, 표절이라고 이야기 하기 어렵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막상 작품이 발표되었을 때는 비평계에서 〈아우를 위하여〉보다는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과 많이 비교되었다고 한다.
7. 각색
7.1. 영화화
7.2. 연극
연극판의 경우 엄청난 악평을 듣고 있다. 한 학교는 학교에서 단체로 관람을 했는데 선생님들이 완전히 멘붕 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왜냐하면 해당 연극은 원작을 각색하여 현대식으로 풀이했는데,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석대와 병태의 대립을 거의 전부 생략했고, 석대가 한 비행도 엄청나게 축소되어, 마치 '''병태같이 반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을 인도적인 폭력으로 다스리나, 그것도 먹히지 않자 사람적인 대우를 해주는 학교폭력 미화물'''로 재탄생을 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무능도 대부분이 생략됐고, 부모님들은 아예 극중에 나타나지도 않는다.
새로온 선생님도 강압적인 체벌이 아니라 손바닥만 때리는 것 정도로 완전히 가감되어, 극 자체만 본다면 학교폭력은 경우에 따라선 아주 많이 필요하다. 라는 주제를 담고 있는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방백이 지나칠 정도로 많은데, 이 작품은 인물들의 표정과 심리가 잘 묘사되어야 완벽해지지만, 연극은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모든 관객에게 보여줄 수가 없으므로 거의 대부분을 방백으로 처리했다.
8. 관련 문서
[1] 1987년은 이상의 50주기로, 당시 살아있었다면 이상의 나이는 77세였을 것이다. 이 해는 1977년 이상문학상이 제정된지 1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2] 참고로 이때의 심사위원들이 '''김동리, 김윤식, 이병주, 이어령, 이청준'''이었다.[3] 이를 근거로 역산하면 작중 한병태와 급우들은 1948년생(공교롭게도 이 해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해이다.)이 되고, 작중 회상 시점인 1987년 시점에서는 38~9세이다. 엄석대는 출생신고가 늦었다는 작중 언급을 고려하면 그보다 몇 살 정도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4] 이 시기에는 초등학교라는 말이 아직 생기기 전이었다. 국민학교는 '''1996년에 초등학교로 전환'''되었다.[5] 급장이라는 말은 1970년대부터 반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6] 과목별로 그 과목을 제일 잘 하는 학생을 뽑아 셔틀로 만드는 방식이다. 석대의 측근들 중 한 명인 박원하의 말에 의하면 의심을 피하기 위해 한두 과목 정도는 자신의 실력으로 시험을 본다는데, 시험마다 자신이 진짜 시험을 칠 과목들과 셔틀짓을 할 아이들을 모두 바꾼다. 여러 해 동안 위장생활을 해온 치밀함이었다.[7] 이 얘기가 나올 때쯤에는 병태도 석대의 셔틀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퀘스트가 좀 별 볼일 없는 것이었는데, 그림 솜씨가 시원찮은 석대를 위해 미술 시간에 그림을 그려주는 일이었다. 그림을 대신 그려주는 거야 걸려도 도와주고 있었다는 핑계를 대면 무사히 넘어갈 수 있지만, 시험은 그게 절대 안 되기 때문에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이름만 지웠다가 바꿔쓰는 원시적인 방식이기 때문에 현대에는 불가능한 방식이다.[8] 그리고 바꿔치기를 하는 과목에서 석대가 진짜 본인 실력대로 받는 점수가 보통 80점 안팎이라는 것을 볼 때 특출난 수준은 아니지만, 원래부터 공부 실력은 어느 정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엄석대는 중학생들을 부리고 고등학생들과 어울리는 걸 보면 영락없는 고등학생 나이인데, 그 나이에 5학년 시험에서 80점을 받는 건 자랑할 만한 게 아니다.[9] 한병태가 창문을 제대로 닦는데도 엄석대는 꼬장을 놓으며 보내주지 않았다. 이때 한병태가 엄석대에게 저항을 포기하며 드는 심경 변화 묘사가 일품이다.[10] 친구들과 싸움에서 이기면 권력서열이 올라가고 지면 내려가는 구조였지만 한병태가 싸울 때는 싸움 구경을 하는 애들이 비겁하게 뒷치기를 하게 만들거나, 상대 아이를 일방적으로 응원하며 기를 죽게 만들어서 지도록 조장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서열도 내려갔다.[11] 병태는 미술시간에 그림을 대신 그려주는 비교적 사소한 셔틀짓을 '''자발적으로''' 했을 뿐이다. 더군다나 점수를 아예 석대와 바꿔야 하는 다른 과목들과 달리 미술만큼은 예외적으로 두 장 그려서 낼 수 있으므로 석대 그림을 대신 그려주고도 자기 그림도 잘 그릴 수 있다. 덕분에 학급 1등은 못 해도 2등은 확실하게 지켰고, 엄석대를 제외하면 급우들 중 유일하게 전교 10등 이내에 들어갔다. 책에서 나온 바에 의하면, 보통 석대의 과목을 대신 시험치는 애들은 보통 그 과목에서 10점 이상은 기본적으로 손해보고 들어간다고 한다.[12] '''"내가 주는 물건은 받지 않았고, 어쩌다가 한 번 받게 되면 반드시 배로 갚아주었다."'''라고 나온다. 그게 전부 엄석대가 다른 학생들에게 강제로 뺏은 거라서 한병태는 찝찝하긴 했다고 나오기는 한다.[13] '조금만 손톱이 길어도, 조금만 이발이 늦어져도' 지적을 받았다고 한다. 결국 다른 선생들까지 병태를 골칫거리로 여기게 되었다.[14] 짧은 과정을 살펴보자면, 공부를 못 하는 엄석대와 공부를 잘 하는 박원하가 나란히 수학시험을 친다 → 박원하는 시험지 이름을 엄석대라고 적어서 냈고, 반대로 엄석대는 박원하의 이름을 적어서 낸다. 그럼 누가 더 공부를 잘 하는 걸로 나올까? 사실 엄석대가 아주 공부를 못 하는 건 아니어서 과목당 80점 정도는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두 과목 정도는 대리시험 셔틀을 두지 않고도 90점 이상의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물론 대리시험 셔틀이 있는 과목 공부는 대강대강하고, 그게 없는 과목 공부에만 신경을 집중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박원하의 원래 실력대로라면 100점이나 최소 95점은 받으니 큰 점수 손해를 보는 셈이다. 작중에서도 이 이야기를 들은 병태가 '''"그럼 너는 15점이나 손해를 보잖아?"'''라며 경악한다. 하물며 그 시대는 중학교도 입시시험을 치고 들어가는 시대였으니 더욱 끔찍한 일이다.[15] 또한 엄석대가 다른 범생이들의 발목을 잡는 것에 침묵함으로써 1등을 넘보지 않으면 2등을 거저 얻을 수 있다는 이유도 있어서 일부러 모른 척을 택한 것이다.[16] 정황상 박원하가 엄석대에게 한병태와 나눈 이야기를 알렸을 가능성도 있다. 한병태는 자신의 기색이 심상찮다는 것을 엄석대가 눈치채고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 한 일이라 추측했다. 실제로, 엄석대는 그날의 뒤풀이를 거의 병태를 위한 자리 수준으로 만들었고 권력의 맛을 살짝 맛본 후, 한병태는 엄석대의 체제에 안주하기로 했다.[17] 총 61표 중 무효표 1표와 엄석대 본인의 표를 제외하면 전원 일치였다. 결과를 본 담임이 재투표를 지시하자 다른 9명의 후보들에게 1표만 주고 자기에게 51표를 몰빵했다.[18] 특히 한두 과목은 수월하게 풀면서 다른 건 전혀 못 한다는 사실이 더욱 의심을 불렀다.[19] 그 시절에도 청소년들의 욕설은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단, 해당 대목은 감히 그 엄석대에게 그런 욕을 한다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었다는 의미이며, '''그것도 담임교사 앞에서''' 저런 욕을 서슴없이 대놓고 내뱉는다는 점에서도 충격적이다. 그 점에서는 1980년대나 2000년대나 마찬가지이다.[20] 군중심리에 의해 다른 급우들까지 모두 동참해 병태를 욕하며 정신적으로 다구리를 쳤다. '''이 역시 담임교사가 보는 앞에서 벌어진 일'''이었다.[21] 최소한 병태는 한 학기 가량 석대의 위치를 위협했다. 게다가 엄석대에게 '''가장''' 비굴하게 굴던 놈들이 이제서야 '''가장''' 적극적으로 석대를 욕하고 있으니 오기가 생길 수밖에 없다.[22] 엄석대와 셔틀들을 때릴 때와 '''같은 강도'''의 매질이었다고 한다.[23] 담임이 석대에게 당한 것을 일러바치는 아이들에게 오히려 '너희들은 손 묶어 놓고 있었어? 다섯명이 한명한테 하루종일 끌려다녀? 병신같은 놈들!" 하면서 '''"왜 네가 스스로 대항을 못 하고 어른의 힘을 빌리려 하느냐?"''' 라면서 무자비한 욕질과 매질의 체벌을 가했다.[24] 반 아이들 중 가장 한따까리 하는 소전거리 아이들 다섯이 맞붙었다. 석대는 그날도 똑같이 표독을 떨었지만, 5:1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쳤다. 이후 미창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자 아이들 앞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리 엄석대가 중학교3학년~고등학교1학년 나이고 학교짱을 먹을 싸움실력이지만 현실에서도 중학교3학년~고등학교1학년 짱도 덩치큰 초등학생 6학년 다섯명은 당해내기 힘들다 [25] 만화책에선 석대 때문에 결석하던 5명의 아이들이 석대에게 복수를 하고 싸움에서 진 석대는 병태에게 샤프 펜슬을 돌려주고 또 보자며 어디론가 사라진다.[26] 대기업에 취직했다가 퇴사하고는 외판원 생활을 거쳐 사업을 하다 실패하여 학원강사로 재취업했다고 나온다.[27] 현실에서 민중의 힘으로 몰락한 독재자들이 어떻게 됐는지를 생각하면 적절하다. 전두환은 감옥에 가면서 몰락했지만 곧 특별사면되어 잔존한 추종자들의 후원으로 부와 영향력을 누리며 안락한 노후 생활을 즐기고 있고, 박정희는 본인은 비명횡사했지만 그의 큰딸에게 후광을 주었다.[28] 이후 김 선생은 반 전체 아이들에게 회초리로 손바닥을 각각 다섯 대씩 때린다.[29] 엄연히 선배 교사이고 고인인 사람에게 이 정도 립서비스는 당연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 그렇다 해도 젊은 시절의 의기로운 이미지와는 상당히 동떨어졌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30] 한병태가 엄석대의 비행을 고자질했을 때 되레 엄석대를 감싸고 한병태에게 훈계한 내용, -"석대가 하는 행동이 못되먹게 보일 수 있다"는 논지-을 감안했을 때 그는 엄석대가 비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묵인했다.[31] 집이 가게나 농가인 아이들에게 물건을 바치게 하는 것은, 현대 일진이 돈을 상납하게 하는 것과 일치한다.[32]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렸는데 삽화가 고증오류에 위화감 투성이다. 1공화국이 배경인 소설에서 남학생반, 여학생반이 나누어져 있었다고 언급하고 있는데도 남녀공학에 두발자유화에 사복까지(!).[33] 1972년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