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조
1. 散調(산조)
비교적 최근인 19~20세기에 등장한 국악 중 한 갈래로, 민속악에 속하는 '''기악 독주곡'''이다. 흩을 산 자를 쓴 것부터 좀 석연치 않은데, 처음 산조가 나왔을 때 예인들이 가진 다소 부정적인 시각을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시나위의 가락에서 파생된 음악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개중에는 백낙준류 거문고 산조나 박종기류 대금 산조, 한일섭류 아쟁 산조같이 판소리의 더늠으로 만들어진 산조도 있다. 진양조부터 시작해서 중모리, 중중모리, 엇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단모리(또는 세산조시)까지 점점 빨라지는 장단에 맞추어 자유분방하게 연주하는 음악이다. 가락은 계면조나 평조, 우조, 경조 중에서 택하는 것이 보통이고, 연주하다가 청이 바뀌며 조바꿈되는 경우도 있다.
반주(?)는 장구 혹은 소리북으로 한다. 특히 산조에서 타악 반주는 판소리의 고수에 해당하는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산조를 듣다 보면 장단 사이사이에 절묘하게 녹아들어가는 장구 연주자의 '얼↘쑤↗!'라거나 '으이!', '좋↗다!' 하는 추임새도 들을 수 있다.
민속음악인 만큼 구전심수로 사사받기 때문에 상당히 유파가 많고, 같은 유파 안에서도 연주자마다 자신만의 애드립을 많이 넣어 연주자들의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음악성이 발휘되는 음악이다. 재즈 음악과 같이 즉흥성이 상당히 강하다.
처음으로 산조 가락을 연주하기 시작한 것은 김창조(1865~1919) 의 가야금산조라고 전해지며, 거문고산조는 백낙준, 대금산조는 박종기, 해금산조는 지용구/지영희/한범수, 피리산조는 지영희/이충선, 아쟁산조는 한일섭에 의해 연주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각 장단 하나하나 곡은 그리 길지 않지만 진양조부터 휘모리까지의 전 바탕은 상당히 길다. 원래 짤막하게 짜놓은 산조도 전수 과정에서 계속 새로운 가락이 짜넣어지며 길어지는 경우도 많고, 성금연류 가야금 산조처럼 제대로 연주하면 한 시간 걸리는 대규모 산조도 있다. 이 때문에 혼자 여는 독주회가 아니거나 여러 곡을 연주해야 하는 경우, 장단 하나만을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예를 들어 '한범수류 대금 산조 중 자진모리'라든가). 요즘에는 '짧은 산조' 또는 '새산조'라고 해서 길이를 줄여 한바탕을 연주하기도 한다.
1.1. 가야금 산조
1890년경 김창조가 처음으로 연주했다고 하며, 이것이 산조의 효시가 된다.
가야금 산조에는 주로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단모리 등의 장단이 쓰인다.
진양조와 중모리와 같이 느린 악장에서는 현을 뜯은 뒤 흔들듯이 눌러주는 농현과 미분음의 처리가 중요하며, 자진모리나 휘모리에서는 엇박과 헤미올라의 복잡한 리듬이 특징이다. 휘모리와 단모리에서는 빠른 가락을 연주하는 기교가 들을 만 하다. 전체적으로 보면 가야금 산조는 긴장과 이완, 즉 죄었다 풀었다하는 맛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중요한 유파는 한성기류-김죽파류, 안기옥류, 정남희류,성금연류, 최옥삼류 (이후 함동정월이 사사받음), 강태홍류, 김병호류, 김윤덕류, 김종기류, 심상건류 등의 유파가 있다.
여담으로 안기옥,정남희,최옥삼은 김창조에게 직접 가야금을 배워서 김창조의 산조가락을 연주할수 있었는데 이게 필연인지 우연인지 세사람 모두 한국전쟁이후 모두 월북or납북이 되는바람에... 정작 가야금 산조를 만든 김창조의 산조가 전해지지 못했다.
1.2. 거문고 산조
충청남도 강경 태생의 거문고 연주자인 백낙준이 판소리의 더늠을 이용하여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제자인 신쾌동과 박석기가 맥을 이었고, 박석기의 제자 한갑득에 의해 발전하였다.
농현으로 표현되는 미분음과 심오하고 섬세한 가락이 특징이다. 기본 형식은 진양-중모리-자진모리의 3악장 형식이나 중중모리, 엇모리가 삽입되는 경우가 많다. 간혹 천년만세의 양청도드리를 변주한 휘모리도 드물게 연주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거문고의 16개의 괘 중 정악은 가장 높은 음을 13괘로 내어 괘를 13개만 사용하지만 산조를 탈 때는 15괘까지 타고, 유파나 전수자에 따라 15괘에서 줄을 더 밀어 16괘의 음까지 내기도 해서 실질적으로 모든 괘의 음을 다 사용한다. 여담으로, 처음 거문고로 산조를 연주했을 때 '선비의 악기로 속된 음악을 연주한다'고 하여 세간에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고 한다.
유파는 신쾌동류, 한갑득류, 김윤덕류 등이 있다.
1.3. 대금 산조
20세기 초 대금 연주자인 박종기에 의해 처음 연주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정악대금보다 훨씬 짧은 산조대금으로 연주한다.
장단 구성은 진양-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의 4악장 구성으로 가장 많이 연주되고, 때때로 굿거리, 엇모리, 동살풀이, 휘모리 등을 첨가하여 다양한 장단으로 구성된다. 특히 도섭으로 진행되는 자진모리의 푸는 가락들은, 빠른 장단의 달아가는 긴장감을 순간 이완시켜 긴장과 이완을 고루 보여주게 된다.
조(길 또는 악상조)는 우조와 평조, 계면조를 사용하게 된다. 유파에 따라 경조(경드름)를 첨가하기도 하고, 4도 내지 5도 6도 윗음으로 전조되는 변청을 넣어 다양한 느낌을 주기도 하며, 엇청으로 또다른 맛을 내기도 한다.
현행 가장 많이 연주되는 유파는 이생강류, 서용석류, 원장현류가 있다. 이 외에도 박종기제, 강백천류, 한주환류, 한범수류, 김동진류 등이 있다.
1.4. 해금 산조
해금으로 연주하는 산조. 기본 구성은 진양-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로 구성되어 있다. 지영희류는 중중모리와 자진모리 사이에 굿거리가 첨가되어 있다.
현재 전하는 유파는 지영희류(지용구 사사), 한범수류(김경선 사사) 등이 있다. 한범수류는 전통적인 남도계면조의 성향을 띄어 슬프고 극적인 선율이 주를 이루고, 지영희류는 계면조를 바탕으로 경토리, 경기 도살풀이 장단이 첨가되어 경기시나위적인 느낌을 준다. 비교하자면 한범수류는 부드럽고 유연하며 지영희류는 섬세하고 굴곡이 많은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지영희의 제자인 김영재가 짠 김영재류 해금 산조와 대금 연주가인 서용석이 짠 서용석류 해금 산조도 연주되고 있다.
1.5. 아쟁 산조
본래 아쟁은 정악에 쓰이던 악기였는데 일제강점기를 전후하면서 무악용 악기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민속악에 사용되었다.[1] 그랬던 것이 1940~50년대를 거치면서 민속아쟁으로의 개조가 이루어졌다. 이때를 전후하여 정철호, 장월중선, 한일섭 등이 아쟁을 활용한 새로운 산조, 시나위 가락을 선보였다. 이것이 아쟁산조의 시초가 된다.
아쟁 산조는 계보에 의한 한 바탕(본바탕)이 없고, 시나위 가락을 혹은 판소리 더늠을 모아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의 장단에 얹어 연주하고 있다. 그것은 소위 아쟁산조의 3대 창시자로 불리는 정철호, 장월중선, 한일섭 등이 모두 다른 산조주자와는 달리 판소리와 시나위 가락을 먼저 익혔던 부류이기 때문이다. 특히 장월중선을 제외하고는 도드리니 당악이니 하는 풍류 연주를 제대로 학습하지 않았고, 대신 판소리와 민요, 시나위에 더 친숙했으며, 장월중선의 경우에도 풍류를 배우기는 했지만, 그 자신이 풍류 연주자가 아니라 판소리, 병창, 산조, 시나위 등으로 더 많이 활동했기에 더욱 판소리, 시나위 계통과의 친연성이 강조된 것이라 하겠다. 거기다가 결정적으로 한일섭과 정철호는 본래 판소리꾼에서 악사로 전업하면서 창극과 여성국극 반주자로 자주 활동했는데, 자연히 판소리와 음악적 친연성이 컸다.
아쟁산조는 1970년대를 거치면서 양적, 질적 성장을 이루었는데, 유파로는 고형에 해당하는 한일섭류, 정철호류, 장월중선류 등이 있고, 이들의 제자 세대로서 박종선(한일섭 계), 김일구(장월중선 계) 등이 또 유파를 새로 만들었다. 이 외에도 여성국극단 악사 출신인 윤윤석이나 백인영 등이 자신의 유파로서 아쟁산조를 발표하기도 했다.
1.6. 피리 산조
비교적 최근에 시작된 산조이다. 1960년대 초 국악사 양성소(현 국악고등학교) 강사로 있던 이충선에 의해 시작되었다.
현재 피리산조는 한바탕을 완주하는 연주자가 흔하지 않고, 있다 해도 사사 계보가 불분명하여 체계적으로 전해지지 못하였고 다른 산조에 비해 인지도도 다소 낮다. 한때 한주환의 대금산조 가라을 피리로 연주한 적도 있다. 오늘날과 같은 피리산조 가락은 이충선이 연주한 피리 가락을 서한범이 채보하고, 더불어 다른 악기의 산조 가락을 피리에 알맞게 옮겨 채보하고 가락과 장단을 정리해 틀을 짜 한 바탕으로 전해지고 있다.
피리산조의 발달이 늦은 까닭은 몇 가지가 있는데, 주된 이유로 꼽히는 것은 피리의 음역 제한 문제이다. 정악에서는 애초에 사용되는 음역이 넓지 않은 관계로 피리가 주선율을 담당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넓은 음역을 자유자재로 사용해야 하는 산조에서는 음역의 제한이 치명적인 문제가 된다. 특히 음 진행 중 한 옥타브 이상 혹은 이하의 음으로 급하게 도약할 경우는 망했어요가 될 심산이 크다. 또 피리를 불 때는 볼과 입술에 힘을 많이 줘야 해서 한바탕 완주가 힘든 것도 피리산조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이다.
이러한 단점이 있지만, 피리 산조 역시 음악적 아름다움은 충분하다. 특히 악기 자체가 가지고 있는 크고 아름다운 음량을 통해 다이나믹한 효과를 잘 살려 낼 수 있고, 한 포지션에서 2~3도 이상의 음정을 만들어 내거나 미분음 처리를 하는 것, 꺾는 대목 등의 기교나 표현을 자유로 구사할 수 있다는 점 등이 피리 산조의 장점이라고 들 수 있다.
여러모로 안습 포지션이지만, 피리 악기의 개량이나 주법의 발달이 기약된다면 피리 산조의 앞날도 밝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전해지는 유파로는 정재국류, 서용석제 한세현류, 박범훈류 등이 있다. 박범훈류 산조의 경우 작곡자가 오선보에 기보하는 식으로 작곡된 최초의 국악기 산조로 알려져 있다.
1.7. 단소 산조
단소는 체제도 작고 조옮김도 힘들어서 산조 연주가 힘들다고 생각되어 왔으나, 단소의 명인인 추산 전용선(1887~1967)에 의해 단소 산조가 개발되었다.
앞편의 지공을 3개만 사용하는 일반적인 주법과 달리 5개의 지공을 모두 사용하며, 조옮김은 반규법(지공을 반만 막는 법)을 사용해서 연주한다.
하지만 반규법으로 정확한 소리를 내는 것이 어렵고, 산조의 굵은 요성을 단소로 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많이 연주되지는 않는다.
유파로는 전용선류, 최옥삼류 등이 있다.
1.8. 서양 악기 산조
요즘에는 서양악기를 사용해 산조를 짜기도 한다. 기타 산조(일렉트릭 기타 산조도 있고 클래식기타 산조도 있다), 플루트 산조, 첼로 산조, 피아노 산조 등. 이러한 새로운 산조의 경우 처음부터 오선보 등 악보에 작곡되는 경우가 많다.
1.9. 기타 다른 악기들의 산조
2. 아이실드 21의 등장인물
신류지 나가의 러닝백. 백넘버는 20. 당연하지만 본명은 아니며, 산조는 삼장법사의 '삼장'을 말하는 일본 발음이다. 본명은 카마타 겐조(釜田玄奘)인데 여기에도 (서유기의 삼장법사의 다른 이름인) 현장(玄奘)이 들어 있으며, 성의 '카마'는 일본에서 '여자처럼 구는 남자들'을 가리키는 말인 '오카마'를 암시한다.
사실 선수로서는 별거 없는 2류 러닝백이다. 신류지에서 주전으로 뛸 정도면 실력이 없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봄 관동 대회 결승 후 평가표에서 (아곤 없는) 신류지의 모든 능력치가 A급이었는데 '''런만 B'''였던 것을 보면 결코 일류는 아니다. 나중에 등장한 테이코쿠 알렉산더즈에는 예전 신류지의 에이스 러닝백이 스카우트되어 등장하는데, 둘의 압도적 실력차를 보건데 러닝백 자리에 공백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쓰일 일이 없었을 듯. 어떤 의미에서는 신류지의 구멍이다.
그의 진가는 오카마라는데 있다. 잘생긴 남자를 주로 좋아하지만 코이가하마의 하츠죠도 흥미범위에 들어가는걸로 보아 수비범위는 꽤나 넓은 편이다.
'사쿠라바가 메이드복 입었을때 환호하던 무리'의 일원이었다. 또한 쥬몬지 카즈키의 후장도 노리고 있다. 다만, 몬타나 쿠로키가 수비범위에 안들어가는 점에서 여성독자들에게 수준이 낮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3. 일본 니가타현의 도시
4. 몬스터 헌터 라이즈의 아케노시름의 별명
산조(傘鳥) 아케노시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