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1호-허베이 스피릿 호 원유 유출 사고

 



'''삼성 1호-허베이 스피릿 호 원유 유출 사고'''
<colbgcolor=#bc002d> '''발생일'''
2007년 12월 7일 오전 7시경
'''발생 위치'''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만리포해수욕장 북서방 8km 해상
'''유형'''
'''선박 간 충돌 및 원유 유출'''
'''원인'''
기상 악화
'''재산 피해'''
'''7,384억 원'''
1. 개요
2. 명칭
3. 사건 상황
4. 피해
5. 방제작업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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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징어가 그랬을까요?''' -박한솔-

우리는 우리는

늘 푸른 바다만 보고 살았습니다

이제는 이제는

그 푸른 바다가 검게 변하였습니다

오징어가 먹물을 쏜것일까요?

아니면 우리들의 검은 마음 때문에 그럴까요?

기다리겠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푸른 바다를 보는 그 날 까지

무한도전 태안 특집 도입부에 등장한 시

2007년 12월 7일 오전 7시경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만리포해수욕장 북서방 8km 해상에서 예인 중이던 크레인선 삼성 1호가 지나가던 유조선 허베이 스피릿호와 충돌, 원유 12,547㎘[1]가 유출된 사건이다. 이는 한국에서 1997~2007년에 일어난 3,915개의 유출사고를 합하고도 남는다.

2. 명칭


'태안 기름유출 사고'라는 명칭은 국내 언론사들이 통용시킨 것이다. 이는 삼성그룹이 사건 명칭에 자사의 사명이 포함되면 이미지가 추락될 것을 염려하여 언론사를 압박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는데, 이 때문에 가뜩이나 원유 유출로 여러 피해를 입었던 '''전적으로 피해자인 태안군민들은''' 지역 이미지가 하락하고 관광수입이 감소하는 등의 이중고를 겪어, 이후 삼성이라는 기업 자체를 싫어하게 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법률상의 명칭은 "예인선 삼성T-5호, 예인선 삼호T-3호의 피예인부선 삼성1호와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 충돌로 인한 해양오염사건" (대법원재결 2009추015 "예인선 삼성T-5호, 예인선 삼호T-3호의 피예인부선 삼성1호와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 충돌로 인한 해양오염사건")이나 이를 줄여 "허베이 스피리트호 유류오염사고" 라고 한다.(허베이 스피리트호 유류오염사고 피해주민의 지원 및 해양환경의 복원 등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2호).

3. 사건 상황


당시 인천대교 공사를 마친 삼성중공업은 회사 소속선 해상기중기 부선 삼성1호(1만 2000t급)를 경남 거제로 철수시키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예인선 2척(삼성T-5호ㆍ삼호T-3호)을 동원하여 운송을 계획하고, 새벽을 이용하여 운송을 시작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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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기상상황은 별로 좋지 않았고, 예인선 두 척은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게 된다. 이때 항만 당국도 예인 선단의 운항이 의심스럽다고 판단하여 오전 5시 23~24분 즈음에 비상 호출 채널로 두 차례나 호출을 시도하였으나, 해당 선박은 응답하지 않았다. 이후 담당자는 수시로 연락을 시도했으나 여전히 선박에서는 응답하지 않았고, 허베이 스피릿호(선장, 1등항해사가 모두 인도인) 측에서도 삼성T-5호에 호출을 시도했으나 응답이 없었다고 한다. 간신히 삼성T-5 선장의 휴대전화번호를 알아내, 사고 발생 1시간 전인 6시 15분에 연락이 닿긴 했다. 이미 예인선단은 복원력을 상실하였고, 설상가상으로 연결된 와이어가 절단되면서[2] 태안 앞바다에 정박하고 있던 홍콩의 유조선 허베이 스피릿호(14만 6868t)와 충돌하였다. 이로써 유조선의 화물탱크 3개에 구멍이 뚫리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높은 파도 때문에 초기방재 및 충돌부위 긴급보수에 제동이 걸려 결국 기름이 다량으로 유출되는 사고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이 사건은 사실 크게 번지지 않을 수 있었다. 아니, 몇몇 부분들을 보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가 사건을 크게 키워버렸다.
  • 무엇보다도 삼성중공업 측에서 기상상황 등을 고려해 운항일정을 조정했더라면 문제 없었을 일이었다. 당장 12월 6일의 날씨 예보만 보았어도 파도가 3m 이상이 될 가능성이 있는 풍랑주의보를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이를 반추해보자면 막으려면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 아니면 풍랑주의보를 만난 시점에라도 즉각 반응했다면 문제가 없었을 일이다. 당일 3시에 풍랑주의보가 발령되었다면, 이미 어느 정도 파도의 높이가 올라왔다는 이야기이고, 이는 다르게 표현하면 충분히 대처할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즉 '괜찮겠지...' 하는 안전불감증이 사건을 키운 것이다. 더군다나 바지선이 허베이호 쪽으로 접근할 때 항만 당국에서 누누이 경고했는데도 삼성 쪽에서 씹었기 때문에 빼도 박도 못할 안전불감증이 맞다.[3]
  • 마지막으로, 허베이 스피릿호의 선체 구조에도 아쉬운 점이 있었다. 1992년에 IMO(국제해사기구)에서 개정된 MARPOL 92(해상오염방지규칙)은 1993년 7월 이후로 계약되는 모든 유조선들은 이중선체가 강제의무화 되고 1984년 이전에 계약된 선박의 경우 2005년에서 2009년 사이에 모두 퇴출시키며 1984년 이후로 인도된 단일선체 유조선의 경우 2010년까지 퇴출되게끔 의무화시켰다. 허베이 스피릿 호의 경우 건조시기가 1993년이지만 당시 MARPOL이 개정되기 전에 인도된 단일선체선박이라 2005년에서 2010년 사이에 퇴출되게끔 되어있었다. 당시 허베이 스피릿호는 해사법 적용상 유예시기에 있었고 그 시기에 불행하게도 원유 유출 사고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당시 풍랑주의보가 발령되는 등 해상 상태는 최악이었고 대형 선박인 허베이 스피릿호의 조종성능 상 단시간 내 삼성1호를 피항하기는 어려웠겠지만 당시 정박당직에 임하고 있던 사관들은 적어도 본선에 접근하는 선박에 대해 선내에서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적극적으로 충돌위험을 피할 의무가 있었다. 그리고 사고 이후에도 해상상태가 좋지 아니하였더라도 원유 유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했어야 하였다. 결국 2009년 4월 23일 대법원은 삼성1호가 해양수산청의 경고 호출 등을 무시하고 불안전한 항해로 크레인 절단을 초래한 것이 선박 충돌의 주된 원인이지만, 허베이 스피릿호의 소극적인 피항 태도 및 기름오염에 대한 대응조치가 미흡했다는 점에도 책임을 물어 쌍방과실이 성립한다고 보고, 「해양오염방지법」 위반 등으로 양측 모두 유죄를 선고하였다.[4]
결국 이 사건은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전형적인 인재(人災)였다.'''

4.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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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바다 한가운데에 와이어가 끊긴 무동력 바지선을 버려두고 가는 바람에 정박해있던 허베이호와 충돌하며 발생한 기름유출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가뜩이나 위에 언급한 풍랑주의보 탓에 초기방재에도 실패하여, 원유는 충남 서해안을 넘어서 군산, 목포 그리고 제주도 근처까지 남쪽으로 퍼져나갔고, 피해는 눈덩이처럼 부풀려졌다.
추가유출은 2일 만에 간신히 막았지만, 이미 유출된 기름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물론 그 원유를 흡수하는 마땅한 수가 없다고 하여도, 정부역시 현실적인 대응 방안을 못 내놓았다. 타르 덩어리가 이렇게 빨리 확산한 데는 조류, 강풍 등의 기상 악화 원인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관계 당국이 저지선 구축에 소홀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해경 방재대책본부는 '해안오염지도'를 제작해 해안 오염 특성에 따른 전문 방재 작업을 할 예정였다고 했지만 이는 초기대응 치고는 너무 늦은 조치였고, 현실적으로 유출된 원유 7만8918배럴은 막을 도리가 없었다. 이 때문에 태안군과 서산시 양식장, 어장 등 8000여ha가 원유에 오염돼 어패류가 떼죽음했으며 짙은 기름띠는 만리포, 천리포, 모항, 안흥항과 가로림만, 안면도까지 유입되었으며, 당장 세계적인 철새도래지로 손꼽히는 천수만까지 위협받는 상황이 초래되었었다.

5. 방제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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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군민들은 절망에 빠지고 국가도 손쓰기 힘든 대형 재난에 난감해하고 있을 때,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해결책이 제시됐다. 어마어마한 수의 자원봉사자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직접 기름을 제거하기 시작한 것. 주말마다 동호회원, 대학생, 수능 끝난 고3, 군인, 부녀회 등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연인원 964,0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수작업으로 일일이 기름때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태안 지역 중·고등학생들도 수학여행·졸업여행 등을 반납하고 기름닦기에 나섰었다. 보호복이 없어서 이전 봉사자가 입었던 보호복을 다시 입거나 흡착포가 없어서 헌옷으로 기름을 닦았다.[6] 이들이 쏟은 열정 덕택에 점차 태안의 해안가는 제 모습을 찾아갔다.
태안군 차원에서도 생태환경회의를 열고 해외의 방재분야 전문가를 초빙하여 자문을 받는 등 여러 방면을 통해 지원에 나섰고 지상파에서는 앞다투어 태안 어민들을 위한 모금행사를 마련했다. 이렇게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 덕분에 최소 10년, 그러니 2017년 12월까지 걸릴 것이라 예상한 방재작업에도 속도를 붙여서 겉에 보이는 기름일 뿐이지만 2달만인 2008년 2월에 작업이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루었었다.

정부 차원에서도 현실성 있는 지원을 펼쳐서 40여 개 지역의 오염조사 및 방재작업에 나섰고, 재난지역선포 및 재난장병휴가 세제혜택 등 전방위적인 지원을 펼치는 등 기름 유출을 막고자 하는 노력 및 이를 지원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자원봉사자들 덕분에 이 글이 작성된 7년이 지난 2014년 12월에는 어장도 복구되고, 빠르게 정화되는 등 회복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다만 자원봉사자들에게 제대로 된 보호장비 없이 저런 유기화합물 투성이의 환경에 노출시켰다는 사실은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다. 자원봉사자들은 상술한바와 같이 보호장구를 돌려쓰거나 헌옷으로 기름을 닦는 등 장비부족 상황을 겪어야했다.

6. 여담


하지만, 위의 사건경황 및 책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의 당사자이자 가장 큰 가해자라 할 수 있는 삼성중공업의 책임은 가려졌다. 일단 이 사건의 명명에 있어 일반적 명명법 대신 태안 기름유출 사고라는 표현이 사용되면서 '''삼성이라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은 것 자체가 책임자를 은폐하는 작용을 했다'''.[7][8] 심지어 삼성중공업은 12월이 다가고 해가 넘어갈 때까지 사과 한마디 없다가, 태안 어민들이 자살하고, 사회적인 비난이 쏟아지자 1월 말에 가서야 부랴부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과에도 불구하고 삼성 측은 도의적인 사과일 뿐 책임적 문제가 없다며 유죄로 나온 1심 판결에 항의하기도 했다. 심지어 2007년 12월 삼성중공업의 변호인단은 삼성의 책임한도액을 50억 원으로 제한해달라는 선박책임제한절차 개시 신청을 법원에 제기하기도 했다. 50억의 이유는 보험금이 50억이었으니까.
2008년도쯤 어느 정도 환경이 회복된 이후 빅뱅의 '붉은 노을' MV에서 태안군이 등장했다. 피해를 입은 태안군 홍보차 등장시켰다고 한다 관련 기사
기름 유출 사고 6년 만인 2013년 11월 22일 삼성중공업이 피해지역에 3,600억 원을 보상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관련 기사
태안 갯벌에서 기름 먹는 미생물이 발견됐다고 한다. 사고 이후에 환경에 적응한 듯하다. 관련 기사
사고 직후 SBS 예능 이경규 김용만의 라인업에서 사고 현장을 찾아 방제 작업에 나선다. 이전까지 막장 예능을 표방하면서 독한 예능, 매니아만 보는 예능(=대중성이 없는 예능)을 추구하며 늘 이 방송 오래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따라다녔던 프로그램이지만, 이때 방제 작업을 하면서 시청률이 살아나게 된다. 다만, 이후로 막장성을 버리고 감동 노선으로 가면서 기존의 독한 예능 팬들은 떠나게 되고 이 집토끼를 잡기 위해 요리 특집편을 방송하자, 감동 예능 팬들이 떠나가게 되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잃게 된다. 단기간의 생존기간만 늘려줬을 뿐, 태안 봉사활동 편이 죽은 프로그램을 살릴 수는 없었다.
MBC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이 이 사고 이후 2008년 5월 10일 태안을 방문해 기름 방제를 돕고 어린이 도서관 건설, 무료 미용 서비스, 마을 잔치를 열어 마을 주민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2016년, 상태가 많이 나아진 듯하다. 돌고래의 일종인 상괭이 무리가 많이 발견된다는듯.관련기사
삼성 크레인선이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를 들이받아 비롯된 서해안 유류유출사고 이후 충남 태안은 남성 전립선암과 여성 백혈병이 평균 발병치를 크게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와 발병 원인을 밝히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관련 기사
참고로 사고 이전에 태안 앞바다에는 소나무가 한 그루 떠 있었는데, 있다! 없다?에서 보도된 바 있다. 안타깝게도, 이 사고로 소나무도 기름을 뒤집어쓴 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http://blog.daum.net/serryq/10746921 주민들이 어떻게 살려서 다시 심었다고 한다. 다만 이제는 버티지 못하는지 다시 옮겨심었다고 한다.
기름 유출 당시 태안군 안에서도 비교적 바다와 먼 지역이면서 시내인 태안읍에서도 기름 냄새 때문에 두통을 호소하는 등 후각이 예민한 사람들이나 해안가에 살던 사람들이 많이 고생했다. 해산물 시장은 소수의 몇몇 가게를 제외하고 모두 문을 일시적으로 닫았었다. 해산물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 반 정도가 태안읍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기도 하고, 대부분 바닷일을 해오신 사람들인지라 태안읍에서 혼란이 컸었다. 태안읍이 아닌 만리포 쪽 해안선에 사는 사람들은 이장을 통해서 조치를 하거나 몇몇사람들은 대피를 시켰지만 큰 사건이 갑자기 닥친 상황에 어찌할지 당황한 이장분들 또한 많았다. 당시 태안군의 도로상황은 대부분의 중요 도로가 아무리 넓어봤자 4차선이었고, 그마저도 수와 길이가 적었다. 이런 혼란을 겪은 이후로 삼성을 싫어하는 분이 많아졌고, 이 일이 트라우마 잡힌 분도 있다.
이후 2020년, 모리셔스에서 일본 선적의 미쓰이상선 소속 벌크선 MV 와카시오 호가 좌초해 와카시오 호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함에 따라 이 사건이 다시금 주목받기도 했다.
[1] 1,254만 리터[2] 예인선의 와이어가 끊어지는 일은 드물다고 한다. 와이어가 끊어진 이유와 시점은 의문으로 남아 있다.[3] 씹었다는 표현이 과한 게 아니다. 항만 당국에서 계속 바지선과, 예인선 양쪽에 연락을 시도했으나 다 무산되었고, 결국 항만 당국에서 예인선 선장의 휴대전화로 직접 전화해서 충돌 가능성을 알려줬는데도 표류하고 있는 바지선을 되찾아올 생각은 안 하고 가만히 있었다. 이 정도면 항만 당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그냥 갔다.[4] 네이버 백과사전 - 허베이 스피릿호 원유 유출사고 참조[5] '''저 사진 속 검은색이 전부 바다에 유출된 기름이다.'''[6] 부직포를 모으기 위해서 곧 졸업하는 중고등학생들의 교복을 학교측에서 수거하기도 했다.[7]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도 진도 여객선 침몰사고라고 명명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사고 명명법에 있어 당사자를 명시한다는 것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8] 게다가 피해지라고 할 수 있는 태안이라는 지명이 본 사고 명명에 포함되면서 지역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언론에서 삼성-허베이 원유 유출 사고라고 나오는것과 태안 원유 유출 사고라고 떠드는것은 차이가있다. 아무리 태안이 피해지역인것을 알면서도 그런 식으로 계속 부르면 태안의 이미지는 나빠진다. 심리적으로 사고지역은 가고 싶지 않아지는 게 사람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