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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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중공업 주식회사'''
'''三星重工業株式會社'''
'''Samsung Heavy Industries Co., L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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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국가'''
대한민국
'''설립일'''
1974년 8월 5일
'''업종명'''
강선 건조업[1]
'''본사'''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로227번길 23 (삼평동)
'''거제 조선소'''
경상남도 거제시 장평3로 80 (장평동)
'''신한내공장'''
경상남도 거제시 연초면 연하해안로 825 (한내리)
'''오비자재창고'''
경상남도 거제시 연초면 연하해안로 579 (오비리)
'''휴센터
(사외기숙사, 장학교실)'''
경상남도 거제시 장평2로4길 11 (장평동)
'''대표자'''
남준우
'''임원진'''
[ 펼치기 · 접기 ]
'''대표이사 사장''' 남준우
'''해양사업본부장 · 부사장''' 김준철
'''경영지원실장 · 전무''' 배진한
(사외이사 제외)

'''기업규모'''
대기업
'''시가총액'''
4조 4,289억 원[2]
'''그룹'''
삼성
'''링크'''
홈페이지
기업 정보 [ 펼치기 · 접기 ]
<colbgcolor=#004494><colcolor=#fff> '''매출액'''
7조 3,497억원 (2019년 기준)
'''영업이익'''
- 6,166억원 (2019년 기준) #
'''순이익'''
- 1조 1,194억원 (2019년 기준) #
'''상장유무'''
상장기업
'''시장
정보'''
<colbgcolor=#004494> '''상장
시장'''
유가증권시장 (1994년 ~ 현재)
'''종목
코드'''
KS: 010140 (보통주)
'''편입
지수'''
코스피
KOSPI200
'''직원 수'''
9,991명 (2019년 기준)

1. 개요
2. 상세
3. 삼성중공업 중장비사업본부(1983~1998)
4. 지배구조
5. 역대 임원
6. 사건사고
7. 여담
8. 둘러보기
9. 참고 문헌
10. 신문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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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거제 조선소'''
삼성그룹 계열 중공업/조선/건설업체. 본사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로227번길 23 (삼평동)에 있다.

2. 상세


1974년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계획에 따라 설립하여 1977년 우진조선(진로주조 계열) 및 대성중공업을 인수했다. 1978년 창원공장을 준공하고 1979년 거제조선소 제1도크를 완공했다.
1983년 삼성조선 및 대성중공업 합병 후 한국중공업 중장비부문도 양수했고, 1984년에는 미국 클라크 사와 지게차 기술제휴 계약을 맺어 지게차 시장에도 진출하고 해양플랜트 사업에 진출했다. 1985년 선박/해양연구소 설립 후 1987년 중장비/지게차공장 및 중장비유압공장, 1988년 기계 주강공장, 1989년 정밀/표준기계공장, 1990년 중장비 동력전달장치 공장을 잇따라 세웠다. 1992년 세계 최초로 아프라막스급 이중 선체구조 유조선을 건조했다.
1993년 건설업 진출 후 기업공개를 단행했고, 1994년 한국증권거래소에 주식상장 후 일본 닛산디젤과 기술제휴로 상용차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하여 1996년 삼성자동차를 세우고 상용차부문을 삼성상용차로 분할시켰다. 다른 한편 본사는 국내 조선업계 최초로 크루즈선 LOI를 체결시켰다.
1997년 외환위기 후 1998년 중장비 사업부를 매각하였는데, 지게차 사업부문은 미국 클라크, 지게차를 제외한 건설기계 사업부문은 스웨덴볼보건설기계로 쪼개져서 매각되었다. 이후 볼보건설기계코리아는 국내 건설기계 분야의 빅3로 잘 나가고 있고, 클라크는 다시 2004년에 국내 중견그룹인 영안모자에 인수되어 한국 기업이 되었다. 스크린도어 제작사로 알려진 삼중테크도 사실 이 회사의 주차설비 사업부였는데 1999년 분사하였다.
1999년 공작기계 사업부를 분사시켜 스맥이 나왔고, 발전산업 부문까지 한국중공업에 넘기고 2000년 선박엔진 부문을 떼어 한중과 합자해 'HSD엔진'을 세웠다. 이후 조선업에 집중하여 2000년 국내 최초로 대형 여객선 및 다목적 해양유전개발선(FDS)을 진수하고 2001년 전기추진 LNG선, 2007년 극지용 드릴쉽 및 쇄빙유조선, 2009년 친환경 LNG 재기화 선박(SRV) 등을 각각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등 전성기를 펼쳐 대우조선해양과 더불어 세계 조선업 시장을 꽉 잡았다. 그러나 중국조선업이 급성장하면서 입지가 많이 위태롭다. 리즈시절인 2010년까지만 해도 세계 조선업 수주물량 1위와 2위를 오갔으나, 2013년 이후 많이 위축되었다. 조선업이 위축되자 건설업 분야의 사업분야를 키워서 풍력 발전사업에 뛰어들었지만 풍력발전 사업이 DTD를 시전하여 사업 전망이 많이 어둡다.
전 세계적으로 조선 경기가 불황을 맞으면서 경쟁사인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과 마찬가지로 조선산업보다는 해양산업 쪽에 비중을 많이 두고 있으며 드릴십(Drillship)으로 대박을 터뜨려 잠깐이나마 업계 2위로 치고 나가기도 했었다. 다만 2014년으로 들어서면서 다시 조선경기가 활성화되고 일반선 쪽에 강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대우조선해양과 다시 한번 2, 3위 싸움을 하고 있다.[3]
2010년 테크윈에코를 합병하고 2014년 9월 1일 삼성엔지니어링을 합병하는 것이 결정되었다. 회사 측은 시너지 효과를 노린 모양이지만, 시장에서는 쓸데없이 혹만 붙였다는 듯한 냉소적인 반응만 돌아왔다. 노무라증권에서는 "이번 합병으로 삼성중공업은 불확실한 사업을 추가하게 됐다"며 부정적으로 평가했고 하나대투증권에서도 "삼성중공업은 실력보다 외형이 과도하다. 합병으로 규모를 늘려도 기업가치 향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혹평했다. 이래저래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 확실히 합병이 능사는 아니다.[4]
2014년 11월 19일 삼성엔지니어링과의 합병은 주식매수청구권의 벽을 넘지 못하고 무산 되었다.

3. 삼성중공업 중장비사업본부(1983~1998)


삼성중공업은 1983년 9월에 건설기계 사업진출을 목적으로 경상남도 창원시 귀현동 한국중공업 창원공장(現 두산중공업)내 건설중장비 생산공장[5]을 인수,합병하였다. 모태는 현대양행으로 1962년 현대양행을 설립한 정인영 한라그룹 창업주는 1970년대에 경기도 군포에 대단위 종합기계공장을 세움과 동시에 경남 창원시 귀현동에 대단위 종합기계공장을 세웠었고 프랑스 POCLAIN, 미국 American Crane, 이탈리아 FIAT-ALLIS 와 제휴하여 중장비를 면하생산하였다. 1980년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현대양행 창원 종합기계공장이 뺏기게 되면서 대우그룹에 넘겨지게 되었다. 대우그룹은 이 회사를 한국중공업으로 사명을 바꾸고 경영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대우의 부실경영 문제로 제5공화국 정부가 사들여서 공기업으로 전환했다. 2000년 모기업은 두산그룹에 매각 후 민영화되어 이듬해 두산중공업으로 사명이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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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중공업 창원2공장(現 볼보그룹코리아 창원공장)[7][8][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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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사진은 삼성이 생산했던 60P 타이어굴삭기, 브레이카로 암석을 뚫고 있는 모습이다.
이후 1985년 3월에 중장비연구소를 세우고, 11월에 일본[11] 코마츠 제작소와 불도저, 휠로더, 모터 그레이더 생산기술 제휴하였다.
1986년 5월 미국 클라크지게차 OEM(주문자상표부착) 수출계약을 맺었다.[12]
7월에 미국 J.I.CASE와 불도저, 휠로더 수출계약을 맺게 되었다.
1986년 09월에 중장비 1만호기가 출하되었다.
1987년 일본 코마츠 제작소와 기술제휴로 모터 그레이더[13] SG15를 생산, 시판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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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07월에 삼성은 굴삭기 고유모델 MX시리즈를 개발하였다, 이후 MX10, MX8, MX6W등의 굴삭기 모델들을 개발하여, 국내 건설현장에 진츨, 해외시장에도 수출하였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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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X8W 타이어 굴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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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X6W 타이어 굴착기(사진 속 덤프트럭은 현대자동차 91A 15t 덤프트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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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X8 크롤러타입 굴착기
같은 해 11월에 유압공장을 준공하였고, 1989년 04월에 다목적 중형타이어굴삭기 MX8W를 개발, 본격시판에 들어갔다. 뒤이어 일본 타다노(TADANO)와 기술제휴로 25톤 유압크레인 SC25H, 50톤 유압크레인 SC50H를 개발, 시판에 들어갔다.[16][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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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1월 공업진흥청[24]으로부터 89 우수품질관리업체상 수상을 받았다.
1990년 5월 신 생산관리시스템이 도입되었다.
1990년 08월에 굴삭기 고유모델 MX시리즈를 업그레이드한 MX-2시리즈를 개발하였다.[26]
1990년 12월에 동력전달 부품공장이 준공되었고, 1991년 5월에 휠로더 고유모델인 LX시리즈[27][28]를, 6월에 불도저 고유모델 DX시리즈를 각각 개발하였다.

1992년 5월에 소형굴삭기 고유모델이 개발되었다.[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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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컨스트럭션 이큅먼트'지가 삼성중공업 SE280LC 굴착기를 'TOP 100 NEW PRODUCTS'로 선정했다.
1993년에 삼성중공업의 굴삭기, 휠로더, 불도저 등 3개기종 10개의 모델이 미국 중장비전문잡지 '컨스트럭션 이큅먼트'지에 의해 세계 1백대 우수중장비로 선정되었는데 굴삭기 MX시리즈 6개모델, 휠로더 LX시리즈 3개 모델, 불도저 DX25 1개모델 등 총 3개기종 10개의 모델로 삼성중공업이 미국시장에 수출했던 건설기계 전 기종들이었다.[30]
1994년 초대형굴삭기 MX452LC를 개발하였다.[31][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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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해 1994년 4월에 일본 닛산디젤(現 UD트럭스)과 기술제휴로 빅 썸(Big Thumb)을 들여와 한국시장에 걸맞게 약간 수정된 삼성 SM트럭(덤프, 카고, 믹서)를 시판하였다. 트럭엔진은 닛산디젤 UD 신형 RF8엔진.[32][33]
1995년에 삼성 SM트럭을 하부주행체로 기반한 콘크리트 펌프카를 자체 개발 및 시판에 들어갔다.[34][35][36][image]
같은해에 휠로더 고유모델 LX-2 시리즈가 개발되었다.[37]
이후 유럽시장 진출[38]과 유럽의 중장비 생산 및 공급기지를 목적으로 영국 노스요크셔 플랙스비에 중장비 생산공장을 준공하였다.[39] 이 영국 중장비 공장에서 4개 모델의 굴삭기 생산을 시작으로 1996년에 6개 모델 650대 생산, 1998년 1200대로 확대, 2000년에 9개 모델, 2천대를 생산해 총 1200억원의 매출을 계획할 상황이었으나, 1997년 영국 파운드화의 강세와 무리한 부품현지화비율로 채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영국 중장비공장 가동을 전면중단, 철수하게 되었다.
1996년, 험지용 크레인(모델명 CX300R)이 개발, 시판되었다.[40] 같은 해 8월 상용차사업부가 삼성상용차로 분사되었다. [image]

1997년 유럽시장 공략을 본격화할 목적으로 동유럽 최대 중장비업체 체코 유넥스사와 전략제휴해 굴삭기,지게차 등 건설중장비 주문자 상표부착 생산(OEM)방식 계약을 체결했다.
1997년 02월에 휠로더 시리즈 LX-3[41]이 개발되었고, 동년 3월에 굴삭기 MX-3 시리즈가 개발되었다.[42]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998년에 스웨덴 볼보(VOLVO)가 경상남도 창원의 삼성중공업 중장비 생산부문을 인수하여 볼보건설기계코리아가 설립되었다. 이후 삼성 로고를 단 굴삭기 및 중장비를 생산하다가 볼보 브랜드를 달고 볼보굴삭기를 생산,판매하고 있다.
1998년, 지게차부문이 미국 클라크사에 인수합병되어 회사명이 클라크 머터리얼 핸들링 아시아로 변경되었다.[43] 2003년에는 미국 본사가 영안모자에 팔리자 한국법인도 같이 팔렸다. 현재 클라크 지게차의 대주주는 한국의 영안모자다.[44]

4. 지배구조


2019년 7월 기준.
'''주주명'''
'''지분율'''
삼성전자
15.98%
국민연금공단
8.06%
자사주
4.12%
우리사주조합
3.46%
삼성생명
3.06%
삼성전기
2.16%
삼성SDI
0.38%
제일기획
0.12%
삼성물산
0.12%

5. 역대 임원


  • 회장
    • 조우동 (1987 ~ 1992)
  • 대표이사 회장
    • 조우동 (1978 ~ 1984)
    • 최관식 (1990 ~ 1992)
  • 부회장
    • 김징완 (2010)
  • 대표이사 부회장
    • 최관식 (1989 ~ 1990)
    • 경주현 (1992 ~ 1995)
    • 이대원 (1995 ~ 1997)
    • 김징완 (2009 ~ 2010)
  • 대표이사 사장
    • 이은택 (1974 ~ 1983)
    • 안병휘 (1978 ~ 1980/1982 ~ 1983)
    • 최관식 (1977 ~ 1979/1980 ~ 1983/1985 ~ 1989)
    • 김영진 (1979 ~ 1980)
    • 경주현 (1984 ~ 1985)
    • 장경환 (1988 ~ 1989)
    • 김연수 (1990 ~ 1993)
    • 이해규 (1994 ~ 2001)
    • 유상부 (1995 ~ 1996)
    • 권상문 (2001 ~ 2002)
    • 김징완 (2001 ~ 2009)
    • 노인식 (2009 ~ 2012)
    • 박대영 (2012 ~ 2017)
    • 남준우 (2017 ~ 현재)
  • 대표이사 부사장
    • 안병휘 (1980 ~ 1982)
    • 장경환 (1986 ~ 1988)
    • 김연수 (1989 ~ 1990)
    • 이용길 (1989 ~ 1990)
    • 이해규 (1990 ~ 1994)
    • 안재학 (1991 ~ 1992)
    • 최훈 (1993)
    • 김무 (1994 ~ 1996)
    • 김순택 (1997)
    • 장효림 (1997)
    • 안복현 (1998)
    • 한행수 (1998 ~ 1999)
    • 김징완 (1999 ~ 2001)
    • 권상문 (2000 ~ 2001)
  • 대표이사 전무
    • 안병휘 (1977 ~ 1978)
    • 김징완 (1998 ~ 1999)

6. 사건사고


2007년 12월 7일 오전 7시경 소속 예인선이 홍콩 선적의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 호와 충돌하면서 원유 유출 사고가 났다.
2017년 5월 1일 거제조선소에서 야드 내 7안벽에서 800t급 골리앗 크레인과 32t급 타워 크레인이 충돌하는 큰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런 일이 터진 이유가 가관인데, 본래 크레인을 하나만 운용해야 할 상황에서 일정을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두 기를 운용하다 생긴 일이기 때문. 또한 근무자들 일부가 쉬는 시간이라 큰 인명피해가 안 날 수도 있었지만 휴식시간이 너무 짧아 현장 내에 있다가 참변을 당했다고 한다. 근로자의 날에, 그것도 파견직 노동자들이 근로자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해 생긴 사고라는 점이 더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2017년 6월 17일 본사 직원이 과도한 업무로 인해 경남 거제의 한 아파트에서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7월 8일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도 다뤘으며[45] 방송 내에는 어떤 회사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방송을 보다보면 한국 사람인 이상 어느 회사인지 눈치를 챌 수밖에 없다. 명문대를 졸업한, 나름대로 엘리트라 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영어를 못한다는 등의 이유로 모욕을 받았으며 초과근무는 예사로 했다고 한다. 사측은 필사적으로 자신들은 잘못이 없다고 변명하는 중이다. 반성은 없고 미안한 마음도 없는 듯하다. 같은 분야의 다른 회사만도 못하다고 해도 할 말 없다.
2017년 12월 유상증자를 발표하며 주가가 28%나 급락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2017년 4분기와 2018년 한 해 동안 7,000억 원가량의 적자가 날 것이라 공시 했다. 이에 열 받은 투자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46] 같은 시기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하며 차츰 회복세를 보이던 조선업계 전반에 찬물을 끼얹은 셈.
2020년 4월 남준우 대표이사 아들이 삼성바이오로직스로 전환배치된게 언론에 공개돼서 금수저 발령이라는 빈축을 샀으며, 임직원들 사기는 당연히 감소했다. 블라인드 앱에서는 "난파선에서 아들 구해준거 아니냐?" 라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 [47] 결국 논란이 붉어지자 남 대표이사 아들은 퇴사했다고 한다 . 관련기사

7. 여담


조선해양 빅3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는 조선업계에서도 높은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조선공학을 공부하다보면 여러 가지 특허기술들이 많은데 대부분 삼성인 실정.(애초에 한국교재로 공부해서 그렇지만 그만큼 괴물 같은 회사인 건 확실하다!)
하지만 조선해양 빅3 회사 모두 기술력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으며, 얼마나 더 원가를 절감해서 많은 이윤을 남기느냐에 따라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FPSO 건조에는 높은 기술력이 요구되는데도 불구하고 빅3는 모두 할 수 있다(실제로 건조 실적은 삼성중공업보다 타회사가 더 많다). 그래서 삼성중공업 역시 조선업 위기를 함께 겪고 있다.
특이하게도 해군에서 운용하는 구축함을 비롯한 함정건조에는 참여한 적이 없으며 계열사이자 방산업체였던 삼성탈레스와 삼성테크윈을 그룹차원에서 무기개발 사업에서 손을 떼고자 한화에 매각한 점으로 보아 앞으로도 군함 건조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의 오랜 무노조 경영 때문인지 본사의 노동자 대표단체로 노동조합 대신 '노동자협의회(구 사우협의회)'가 있다.
소속 스포츠팀으로 럭비팀을 운영해왔으나 2014년을 끝으로 해체했으며 소속 선수들은 대부분 신생팀 현대 글로비스로 이적했다.
아파트 브랜드로 삼성 쉐르빌이 있다.
주식 시장에서는 대기업 계열 주식 중 최악으로 평가되며 이름값을 못하기로 유명하다. 장기투자할수록 손해가 난다고 한다.
1990년대 초반에 전기차 개발을 했던적이 있다. 그러나 2021년 현재 당시 개발되었던 테스트카들은 전국 곳곳에 버려져버렸다. 자세한건 삼성 SEV 프로젝트 문서 참조

8. 둘러보기



9. 참고 문헌



10. 신문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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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장비제조업은 외환위기 당시 볼보에 매각.[2] 2021년 1월 13일 기준[3] 이렇게 된 이유는 상당히 간단하다. 중국이 자국 조선인력에 대한 임금인상을 연 10%로 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는데 이 때문에 중국이 자랑하는 저가수주를 더이상 밀어붙일 수 없기 때문이다.[4] 여담으로 같은 플랜트 업계일지라도 실무자 레벨에서는 육상플랜트에서는 해상플랜트 경력을 인정해주지 않은 편이며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애초부터 공법 자체부터가 다르기 때문에 실무자 선에서는 경력이 도움도 안 된다.[5] 現 볼보그룹코리아 창원공장[6] 구 삼성항공,삼성테크윈,현 한화디펜스[7] 이 공장 말고도 경남 창원시 성산구 공단로에 삼성중공업 제1공장이 있었는데, 그곳은 방산장비[6] 및 선박엔진, 기계설비 등을 생산하던 곳이었다.현재는 HSD엔진 창원공장, 한화디펜스 창원사업장으로 변경되었다.[8] 합병 이전에 한국중공업에서 생산중인 굴삭기, 휠로더, 크레인 모델에 KHIC-POCLAIN(굴삭기), KHIC-AMERICAN(크레인), KHIC-FIAT ALLIS(휠로더, 모터 그레이더)로고가 부착되어 있었다.[9] 합병이후 SAMSUNG-POCLAIN(굴삭기), SAMSUNG-AMERICAN(크레인)로고로 바꾸고 나서 건설중장비를 생산해 나갔다.[10] 현대양행 창원종합기계공장(現 두산중공업 창원공장, 볼보그룹코리아 창원공장)은 한라그룹 시절 완공되었으며 모기업은 각 사업부가 분할 매각되었고 메인이던 발전설비와 선박엔진부문이 최종적으로 두산에게 매각되었다. 이 후 선박엔진은 두산엔진으로 분사 후 사모펀드에 매각해 HSD엔진이 되었다.[11] 동시에 일본 사카이(SAKAI)사와 기술제휴로 도로장비를 생산, 판매했다. 타이어롤러부터 로드롤러까지, 기술제휴 계약이 종료되면서 삼성이 SAKAI 도로장비를 수입판매했다.[12] 90년대 초반 클라크와 결별하면서 삼성 고유의 지게차 모델이 탄생했다. 이름하여 FX시리즈가 탄생, 수출명은 'SF(Samsung Forklift)Series' [13] 땅을 고르는 도로장비[14] 삼성이 한국중공업 창원 중장비공장을 인수하기 이전에는 한국중공업에서는 현대양행부터 FIAT-ALLIS사와 기술제휴해서 FG85 모터 그레이더를 생산했다. 삼성이 인수 이후에는 후속모델 FG85A 모터 그레이더를 생산했었다.[15] 내수 모델은 MX 시리즈고 해외 수출명은 SE 시리즈다. SE의 약자는 Samsung Excavator다.[16] 하부캐리어(트럭섀시)는 닛산디젤.[17] 삼성 인수 이전에는 한국중공업이 미국 GROVE 사와 기술제휴해서 유압크레인을 만든 적도 있었다.[18] 이외에도 미국 AMERICAN사와 기술제휴로 앵글크레인을 제작,판매한 전력도 있었다.[19] 초기형 모델, 상부는 타다노 TG250E를 기반으로 두고 있다. 하부캐리어는 닛산디젤, 엔진은 닛산디젤 PE6 모델.[20] 역시 초기형 모델로 상부는 타다노 TG500E를 기반으로 두고 있다. 하부캐리어도 동일하게 닛산디젤, 엔진은 닛산디젤 RE8 모델[21] 중기형 모델, 삼성 로고와 데칼이 새로 부착되었으며, 엔진은 닛산디젤 PE6. 엔진출력은 230ps, 2300rpm 6기통 수냉식이다.[22] 닛산디젤 RE8 디젤엔진을 장착.출력은 315ps, 2300rpm, 8기통에 수냉식이다.[23] 후기형 모델, 하부캐리어 라디에이터 그릴에 NISSAN DIESEL 대신 SAMSUNG이 새겨져 있다.[24] 지금의 중소벤처기업부.[25] 컴퓨터로 굴삭기를 제어하는 시스템.[26] 이 굴삭기 모델은 새로운 스타일로 설계되어 기존 MX시리즈에 비해 성능이 우수한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세계최초로 라운드스타일로 코스믹타입 캡으로 설계되었는데 작업시야가 더욱 넓어지고 전면 대형라운드 창문은 상하 슬라이딩 방식으로 완전개폐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전면 상부까지도 유리창으로 설계해서 상부작업시야가 획기적으로 넓힌다는 장점도 있었다. 굴삭기 캡 디자인을 에어로 다이나믹하게 설계해서 그런지 헬리콥터와 비슷하다고 해서 헬기 운전탑이라고들 한다, 운전석(시트)은 당시 영국 보스트롬사의 최고급 운전석을 채택하였다고 한다. 거기에 삼성이 개발한 CA-MAX 시스템[25]을 도입해서 전 굴삭기 기종마다 CA-MAX 시스템이 달려있었다.[image][27] 코마츠 제작소와 기술제휴해서 생산.[28] LX15, LX18, LX25, LX30.[29] MX3W, MX3A[30] 수출명은 SE SERIES(굴삭기), SL SERIES(휠로더), SD SERIES(불도저)[31] 해당모델은 작업용량 45톤, 해외 수출명은 SE450LC[32] 1990년 6월에 일본 닛산디젤과 기술도입 계약을 체결하고, 1992년 7월에 삼성중공업 대형트럭 기술도입 정부인가를 취득, 같은 해 중장비 산하조직 상용차사업부가 발족되었다. 1992년 10월에 삼성중공업과 일본 닛산디젤 실행각서가 조인되어 1993년 시험생산, 성능 내구성 시험을 영국 밀부룩에서 치뤄진다. 그리고 1993년 8월에 창원 삼성중공업 중장비공장 내에 삼성트럭 조립라인이 준공되어 시제차량 1호차가 생산완료 되어 테스트 착수, 1994년 4월에 양산 및 수주, 1994년 5월에 15톤 덤프트럭과 믹서트럭이 출시되었다.[33] 당시 국내 최대 배기량을 자랑하는 16,991cc였고, 내구성이 뛰어나서 작업현장에서 호평이 자자했다. 트랜스미션의 경우, TPS 시스템을 도입해서 고급 승용차처럼 기어변속이 부드러웠다는 장점이 있다.[34] PX281S, PX321S, PX361S.[35] 이전 콘크리트 펌프카 하부차체는 아시아자동차(現 기아자동차)의 AM트럭이었다.[36] 기아 AM트럭 후속모델 기아 그랜토에도 삼성 콘크리트 펌프(붐,배관,호퍼)장비가 탑재되었다. 모델명은 PX122c-1,PX422S, PX432S, PX472S[37] LX232,LX282, LX352.[38] 1990년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중장비 현지법인을 설립.[39] 이 곳은 영국의 건설회사 테일러 우드로우사의 철구조물 공장이었는데 삼성중공업이 이곳을 사들여서 중장비 생산공장으로 개조했다.[40] 그러나 이 장비는 희귀장비가 되었다. 중고사이트에서 간간히 보일 정도로[41] LX173, LX233, LX283, LX373, LX473[42] '인간을 닮은 굴삭기 탄생'이라는 문구를 내세운 신문광고가 발행되었다.출시 당시 해당모델은 MX225LS, MX255LS[image][43] 변경 이후에도 삼성 로고를 단 지게차를 생산하다가 삼성과 관계 청산 이후 클라크 자체 브랜드로 지게차를 생산하고 있다.[44] 영안모자는 버스제조사인 자일대우상용차도 보유하고 있다.[45]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유족 측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 20곳에 보도를 부탁했으나 보도가 안 됐고, 그알 보도 뒤에야 파장이 커졌다.[46] 이 시기가 2016년에 유상증자 때 우리사주로 참여한 임직원들이 우리사주를 팔 수 있는 때였는데 보호예수 풀린지 1주일 만에 이런 일이 터져서 임직원들마저 빅엿을 먹었다. 특히 이때 대형 해양공사 프로젝트 마무리하는 임직원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대부분이 바빠서 못 팔다가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참고로 이때 금액은 2019년 지금도 복구하지 못하고 있다. 2020년도 마찬가지로, 오히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전세계적 석유수요감소 및 사우디와 이란의 미국 셰일가스 죽이기를 위한 석유증산으로 유가가 대폭 떨어지면서 2016년때 구매가격의 반타작이 나버렸다.[47] 삼성중공업은 몇년째 적자중인데 삼성바이오는 흑자를 내고있을 정도로 상황이 천지차이다. 천만원 이상 차이나는 연봉은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