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쥐스트
루이 앙투안 레옹 드생쥐스트[1]
Louis Antoine Léon de Saint-Just
1767년 8월 25일 ~ 1794년 7월 28일
1. 개요
프랑스의 정치가.
2. 생애
1767년, 니에브르 주 데시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루이 장은 기사의 칭호를 가진 농민 출신의 경기병대 대위였고, 어머니 마리 안느 로비노는 데시즈의 공증인 레오나르 로비노의 딸이었다. 그에게는 1768년, 1769년에 태어난 두 여동생들이 있었다. 어린 시절을 베르누이유 성직자였던 백부 앙투안 로비노와 함께 보낸 후, 1776년, 부모와 함께 피카르디 엔 주의 브레란크르로 이사를 갔다. 이사한지 일년 후 아버지 루이 장은 가족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1785년, 수아송에 있는 오라토리오파 학원을 마치고, 1788년 랭스에 있는 로스쿨에 입학했다. 입학 후 1년을 거치지 않고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수아송에서 검사 서기가 되었다가, 22세의 나이로 에로틱한 풍자 노래 《바티칸의 오르간》(''Organt au Vatican'')이라는 책을 지하 출판하여 전통과 권위, 가톨릭 교회, 국왕을 비판하다 쫓기는 신세가 된다.
혁명이 발발하자 국민위병에 들어갔으며 선거를 거쳐 지휘관이 된다. 이후 국민공회 의원이 되어 자코뱅파에 가담, 로베스피에르와 함께 자코뱅의 지도자로 활약한다. 파견의원으로서 각 지방을 순례했다.
사상이 꽤 극단적이었던 것으로 유명[2] . 한마디로 다듬어지지 않은 젊은 혈기로 가득찬 청년 정치인. 루이 16세의 처결에 대한 투표를 두고, 루이 16세를 죽여야만 한다는 논지의 연설을 펼친 적이 있다. 동시에 로베스피에르의 절친한 친우이며 오른팔이었다. 허나 1794년 7월 27일 다음날, 테르미도르 반동 때 마지막 연설도 하지 못한 채, 로베스피에르 등과 함께 단두대로 처형당했다. 이 때 나이가 불과 26세. 결국 루이 16세와 같은 꼴을 자신도 당하고 만 것.
실제로 제법 잘생긴 외모였지만 그 입에서는 주로 반대파에 대한 처벌이 나왔기 때문에 별명이 '''죽음의 대천사'''였다[3] . 죽을 때까지 결혼을 안 하고 총각이었는데, 훗날 로베스피에르와 생쥐스트를 숙청한 이들이 저딴 금욕주의 총각들의 히스테리 때문에 혁명이 과격해진다고(…) 국민공회 의원의 자격을 나이 많은 유부남으로 제한해버렸다는 뒷이야기가 전해진다. 하지만 생쥐스트는 의외로 어렸을 때 성의 해방을 주장한 책을 쓴 적이 있다. 뭣 때문에 금욕주의자로 돌아섰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역사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들은 흔히 프랑스 혁명기의 냉혹한 혁명가로 로베스피에르만 알고 있지, 더 무섭고 더 차가운 인물이 그 뒤에 있었다는 것은 잘 모른다. 아직 솜털도 채 가시지 않은 20대 초반에 루이 16세 처형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고, 로베스피에르와 함께 실각해 27세 때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혁명이론가 생쥐스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젊음과 천재성에 대한 인류 보편의 동경심과 사상 유례없는 공포정치의 잔인함이 합쳐져 그의 인생은 완전히 전설로 물들어 있다. 미소년이라느니, 처형장에 끌려갈 때도 냉정하고 거만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압도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그것이다.
24세에 이미 ‘프랑스의 헌법 정신과 혁명 정신’(1791년)이라는 책을 썼고, 법정 연령이 되기를 1년 기다려 국민공회 의원이 되었으며, 그해 10월 의회 연단에서 행한 연설이 그 유명한 루이 16세 논고장이다. “누구도 무죄로 군림할 수 없다(One cannot reign innocently)”라는 마지막 문장이 역사에 길이 남아 있을 정도다. ‘군림한다’는 것이 벌써 유죄라는 것, 그러니까 왕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것 자체가 유죄라는, 도저히 논박 불가능한 무서운 구절이었다. 그때까지 무명이던 이 젊은 의원의 발언이 자코뱅의 공식 입장이 되어 결국 석 달 뒤(1793년 1월 21일) 왕은 기요틴에서 처형되었다.
루소의 열렬한 숭배자였던 생쥐스트는 왕의 처형 근거를 ‘사회계약론’에서 찾았다. 사회계약론에 의하면 법이란 사회계약의 결과다. 따라서 법은 사회계약에 동의한 사람에게만 적용될 수 있다. 그런데 왕은 사회계약을 체결한 적이 없이, 법의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법의 밖에 위치해 있었다. 따라서 계약을 맺은 사람들 사이에서만 효력이 발생하는 법 조항을 그에게 적용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왕에게는 그 어떤 사회체제의 법도 적용할 수 없고, 다만 사회 전체가 적으로 간주해야 할 절대적 적일 뿐이다.
생쥐스트는 왕이 사회 전체와 같은 무게의 대칭 관계가 되는 것은 극도로 경계했다. 그래서 그는 “전제군주에 대항하는 인간의 권리는 개인적인 권리다”라는 말로 왕에 대한 개인적 적대 관계를 강조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는 왕에 대한 처리가 국민 전체의 이름으로 언급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고, 또 한편으로는 국민들 동의가 없더라도 아무나 루이 16세를 죽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왕의 처형 후 공포정치는 극에 달하여 밀고(密告)가 시민의 의무이고, 단두대는 덕의 제단이 되었다. 혁명에 열의를 표시하지 않은 사람, 혁명에 반대하는 언사를 한 사람, 혁명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 하다못해 ‘베르됭의 처녀들’(1792년 베르됭에 진주한 프러시아군을 환대한 처녀들)까지 희생되었다. 단두대도 총알도 모자라 나중에는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죽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익사형(구멍 뚫은 배에 사형수들을 실어 강물에 띄우는 방법)이 권장되기도 했다. 그야말로 사람의 목이 ‘기왓장 날듯 난’ 시기였다.
차츰 국민 전체가 단두대의 처형에 현기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로베스피에르가 의회 승인 없이 의원을 기소할 권리를 요구한 후부터 의원들은 전전긍긍했다. 불안감을 느낀 반대파 의원들이 테르미도르(지금 달력으로는 7월) 8일, 로베스피에르와 생쥐스트의 체포 동의안을 가결했다. 즉각 체포된 두 사람은 바로 다음 날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소위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불리는 이날로 2년간의 공포정치가 막을 내렸다. (중략)
'레미제라블’의 시가전은 대혁명 이후 40여 년이 지난 1830년대 사건으로 ‘혁명’이라는 명칭도 얻지 못한 일개 소요 사태였다. 그 많은 사람들의 피를 뿌린 공포정치 이후 4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민중의 삶은 비참하고, 정치는 민주적 공화제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 오히려 이 소설(영화)의 교훈일 것이다. 프랑스는 대혁명 이후 두 번의 제정(帝政), 두 번의 왕정, 그리고 가혹한 학살 사건을 곁들인 세 번의 혁명을 80여 년간 겪고 난 뒤 1870년에 와서야 현재 체제의 공화국이 들어섰다.-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
3. 어록
생쥐스트는 달변가로도 유명했는데, 이 말들이 의미심장하다.
- 빵은 인민의 권리이다.
- 혁명은 이제 자비롭고 애국적인 활동을 넘어서서 새로운 사회 건설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 프랑스 혁명 초기
- 왕이 죽지 않으면 혁명이 죽는다. - 루이 16세 처형을 주장하며[4]
- 이 사람은 죽든지 군림하든지 둘 중 하나다. 군주들은 시민이 될 자격도 없다.
- 모든 왕은 반역자요 찬탈자다.
- 자유는 먹고 살 걱정이 없는 사람들이나 누리는 것이다.
- 혁명의 반대파뿐만 아니라 중립을 지키는 자들도 처벌해야한다. - 공포정치 시기
- 자유의 적에게는 자유가 없다. - 방어적 민주주의의 토대이지만, 현대 방어적 민주주의는 생쥐스트의 사상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4. 각종 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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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오덕들 사이에서는 베르사이유의 장미에서의 화려한 등장으로 인해 잘 알려지게 되었다. 작중에서의 용모가 오스칼 급의 멋쟁이라 그 정도의 외모를 기대하고 실제 초상화를 찾아본 많은 덕후들이 배신감을 느꼈다는 후문이 전한다(...). 만화에서는 예뻤지만 앞에서 언급한 연설 외의 큰 활약은 없었던 데에 비해서 애니에서는 극단적인 공화주의자로 여기저기서 테러를 저지르고 다닌다. 같은 공화주의자이자 로베스피에르의 추종자였던 베르나르는 생 쥐스트와 안면이 있지만, 극단적인 생 쥐스트의 성향으로 인해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다. 한번은 혁명 전 시위를 지켜보던 오스칼을 기습했지만 실패로 돌아가기도 했다. 군중들 한가운데서 말 위에 있던 오스칼을 끌어내 끌고 갈 정도로 대담한 편. 혁명 후 루이 16세의 사형을 주장하는 연설을 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퇴장한다[5] . 참고로 원어판은 후루카와 토시오. 한국 성우가 오세홍(비디오버전)/이규화[6] (KBS)/신용우(EBS). 누가 더 훌륭한지는 감상자의 몫이다.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에서는 서브 미션을 하면 사람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팔던 것이 아르노에 의해 발견된다. 후에는 아르노에게 그 옷을 샀는데 이상한 느낌이 든다는 그 의뢰인에 의하여 의원 자격을 박탈 당했을 것으로 추정.
스페이스 오페라 소설인 아너 해링턴 시리즈에서 18세기 프랑스를 모티브로 한 헤이븐 인민공화국의 인물로 등장한다. 순양전함 나이키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며 헤이븐의 비밀경찰인 국가안전부 차관으로 로버트 피에르의 측근이기도 하다. 피에르를 견제하는 해리스 대통령을 돕는 상관인 국가안전부 장관 콘스탄스 파머 레비를 암살했으며, 해리스 대통령이 암살되고 피에르가 권력을 잡자 코델리아 랜섬과 함께 실질적인 삼두정 체제를 구축한다. 그러나 맨티코어 왕국과의 전쟁에서 연이어 승전을 거두어 전쟁영웅이 된 에스더 맥퀸 국방장관을 끊임없이 경계했으며, 이는 결국 맥퀸의 정치적 야심을 자극해 쿠데타를 일으키게 하는 요인이 된다.
결국 에스더 맥퀸의 쿠데타가 벌어져 피에르와 그의 측근 대다수가 사망하자 혼자 살아남아 대통령직을 승계받는다. 생 쥐스트는 맥퀸이 장악한 수도에 핵폭탄을 쏴 맥퀸과 그녀의 반란군을 몽땅 날려버리면서 반란을 진압하고, 맨티코어와도 평화협정을 맺는다. 그러나 그는 군대를 불신해 비밀경찰을 이용해서 군부 인사들을 숙청했고 결국 또다시 쿠데타가 발생해 주동자 장군에 의해 머리에 총을 맞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한국 만화 파라다이스에선 이 사람에게서[7] 외모와 이름을 따온듯한 생 쥐스트라는 프랑스 출신 초능력자(에스퍼)가 등장하나 모티브가 된 생 쥐스트처럼 극단적인 인물은 아니며 꽤 정상적인 사고방식의 아군이다. 아군 소속 에스퍼들 중에서도 강한 에스퍼이기에 큰 활약을 했으나 최종보스 쥴리어스를 당해내는데는 실패해 결국 패배하고 사망한다. 허나 사후에도 쥴리어스가 패배해 엿먹는데 일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