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 존
[clearfix]
1. 개요
1971년, 8만 9천명을 정점으로 지난 수십년간 인구가 감소하여 이전까지 최대도시였으나 20세기말 이후로 동쪽에 있는 멍크턴(71,889명)에게 역전되어 주내의 2위 도시이다. 현재 시 단독인구는 '''70,780명'''이며 광역인구는 '''126,202명'''이다.[6]
2. 역사
1604년 6월 24일 프랑스의 탐험가 사뮈엘 드 샹플랭이 처음 탐사했고 18세기 영국인과 프랑스인들과의 영토분쟁이 발생하고 영국인들이 1755년에 프랑스를 몰아내고 이 땅을 차지하며 1775년 새롭게 호 요새(Fort Howe)을 건축한다. 호 요새의 방책이 그후 재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큰정착지로 발전한 것은 1783년 영국 국왕파가 항구 주변에 파타운과 칼턴을 세우면서 이루어졌다. 1785년 두 마을이 합병되고 강 이름을 따서 세인트존으로 개칭하고 도시간 된다. 그러나 도시는 성공적으로 발전해가는 듯 했으나 이후 많은 고난을 겪는다. 1840년에서 1860년까지 세인트 존에서는 종파 간 폭력 사태가 만연하여 캐나다 역사상 최악의 폭동을 경험하고 1854년 콜레라가 창궐하여 시민 1,500명 이상 사망한다. 그리고 1877년엔 대화재가 발생하여 도시의 40%가 불타 사라지고 2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한다.
3. 경제
세인트 존은 펀디 만에 형성된 유일한 상업항이다. 세인트 존 조선소는 오랫동안 캐나다 조선업의 핵심도시로서 캐나다 해군의 함대 건설에 필요한 군함들을 건조하는데 큰 공헌을 해 온 유서 깊은 역사를 지녔다. 그러나 지역 내 마지막 조선소였던 어빙 쉽빌딩 세인트 존(Irving Shipbuilding Saint John)이 2003년에 폐쇄되고 핼리팩스의 조선소[7] 로 모든 역할이 이전 배치됨에 따라 더이상 이 지역에서 새로운 선박을 건조하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새로운 경제 전략을 채택하고자 노력하기 시작해 연구 중심의 대학과 연구소들이 새로운 기술 연구분야가 성장하고 있다. 도시의 전통적인 산업이 쇠퇴함에 따라 그 자리를 이제 관광 산업의 성장이 대체하여 인해 매년 150만명 이상의 방문객과 20만명의 유람선 관광객이 방문하며 유서깊은 도심(르 타운)으로 도시에 활기를 불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