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상대(야구선수)

 


'''손상대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펼치기 · 접기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8번'''
팀 창단

'''손상대(1982)'''

홍승규(1983)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번'''
정구왕(1982)

'''손상대(1983)'''

김성갑(198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7번'''
결번

'''손상대(1984~1987)'''

최진영(1988)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9번'''
김시진(2013~2014)

'''손상대(2015~2018)'''

결번


[image]
'''이름'''
손상대(孫相大 / Sang-Dae Son)
'''생년월일'''
1954년 10월 20일 (69세)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학력'''
경북고 - 한양대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2년 삼성 라이온즈 창단 멤버
'''소속팀'''
롯데 자이언트 (1976~1981)
삼성 라이온즈 (1982~1987)
'''지도자'''
삼성 라이온즈 1군 배터리코치 (1990)
OB 베어스 1군 배터리코치 (1991~1994)
OB-두산 베어스 2군 감독 (1995~2003)
한화 이글스 1군 불펜코치 (2004)
한화 이글스 2군 감독 (2005)
한화 이글스 2군 배터리코치 (2006)
한화 이글스 잔류군 코치 (2006)
롯데 자이언츠 2군 감독 (2015~2018)
1. 소개
2. 선수 시절
3. 지도자 시절
4. 여담
5.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前 야구선수.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 멤버.

2. 선수 시절


1970년대 초 고교야구를 휩쓸던 경북고 출신. 배대웅, 정현발, 천보성 등이 경북고 동기다. 한양대 졸업 후 실업 야구 팀 롯데 자이언트에 입단했다. 타자로서 일발 장타가 있었지만 포수로서 수비는 떨어졌다. 당시 실업 팀 최강의 멤버를 자랑하던 롯데의 유일한 약점.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며 연고 팀인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는데, 서영무 감독이 갓 대학을 졸업한 이만수를 주전으로 낙점하며 백업으로 밀렸다. 그리고 손상대는 이만수를 빼고도 타격의 정확성으로는 박정환에게 밀렸고, 수비로는 손상득에게 밀리며 선수도 적던 시절에 팀의 4번째 포수가 되었다. 그리고 참고로 박정환, 손상득 둘 다 모두 그의 경북고 후배다. 안습.
때문에 프로에서는 별다른 활약 없이 1987년에 은퇴했다.

3. 지도자 시절


1990년 삼성의 배터리코치로 삼성에 복귀했지만, 시즌 후 김명성, 김광웅 코치의 해임에 반발해 1991년 OB 베어스와 계약했다.[1] 1997년 말 OB와 계약이 종료되어 프로야구계를 떠났다.
2004년 오랜만에 프로야구계에 복귀해 한화 이글스 코치로 부임해 2006년까지 1군 배터리코치, 2군 감독, 2군 배터리코치, 재활군코치 등으로 있었다. 2006 시즌 후 내부 갈등으로 사표를 내고 코치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경동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부경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등으로 아마야구계에서 후진을 영성했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는 롯데 자이언츠의 2군 감독을 맡았다.

4. 여담


손상득과는 2살 차이에 같은 고교를 나와 형제로 오해받곤 하나, 형제가 아니다. 손상득은 '祥得', 손상대는 '相大'로 쓰는 한자가 다르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2
삼성 라이온즈
12
19
.211
4
0
0
0
2
1
1
2
.211
.286
1983
10
8
.125
1
1
0
0
0
0
0
2
.250
.300
1984
4
3
.333
1
0
0
0
1
0
0
0
.333
.333
1985
5
1
.000
0
0
0
0
0
0
0
0
.000
.000
<color=#373a3c> '''KBO 통산'''
(4시즌)
<color=#373a3c> 31
<color=#373a3c> 31
<color=#373a3c> .194
<color=#373a3c> 6
<color=#373a3c> 1
<color=#373a3c> 0
<color=#373a3c> 0
<color=#373a3c> 3
<color=#373a3c> 1
<color=#373a3c> 1
<color=#373a3c> 4
<color=#373a3c> .226
<color=#373a3c> .286

[1] 그리고 빈 배터리코치 자리는 재일교포 김무종과 후배 손상득이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