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갑
1. 소개
전 삼성 라이온즈, 빙그레 이글스, 태평양 돌핀스 소속의 내야수.
2.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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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그레 이글스 시절.(출처:스포츠동아)[3]
168cm의 작은 키임에도[4][5] 대구상고, 건국대학교 야구부(체육교육과 1981학번) 시절에는 4번 타자를 칠 정도의 강타자였다. 그러나 이는 아마 야구에서 알루미늄 배트를 썼기 때문. 프로에 입단한 후 아마 야구 시절의 파워는 사라졌고, 타율도 항상 규정 타석을 채운 야수 중에서 최하위 권을 맴돌아 "한국의 멘도사"라는 별명이 붙었다.[6] 통산 타율은 0.235이고 한 때 2할 8푼대의 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대신 수준급의 내야 수비를 자랑했다.
1985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으나 방위병으로 복무 중이던 1986년 1월 20일, 투수 성낙수와 함께 전력보강 선수 지원 차원으로 빙그레 이글스에 현금 트레이드 되었다. 그래서 전성기는 빙그레 시절. 하위 타선에서 상위 타선에 기회를 주는 역할을 많이 했으며, 김영덕 감독과의 불화로 1991년 2월 태평양 돌핀스에 현금 트레이드 된 후에는 노련한 2번 타자로 맹활약했다.
1987년 10월 3일부터 1988년 7월 20일까지 67경기 연속 3루수 무실책 기록을, 1988년 3루수 시즌 최소 실책(3개) 기록을 가지고 있다.
1994년 한국시리즈에서 태평양 돌핀스의 마지막 타자였다. 마지막 4차전에서 LG 마무리 투수 김용수에게 투수 앞 땅볼로 물러나는 모습으로 LG의 우승을 확정짓는 제물이 된 것.
3. 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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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히어로즈 시절.
1995 시즌을 마치고 은퇴한 후, 현대 유니콘스의 코치를 시작으로 넥센 히어로즈로 바뀐 후에도 단 한 번의 팀 이동 없이 지도자로 활동했었다.[7] 2011년, 원래는 넥센 히어로즈의 2군 감독으로 시즌을 시작했다가 시즌 중 1군 수비코치로 부임하면서 박흥식에게 2군 감독을 넘겼다. 그리고 시즌 후 이광근 수석코치의 SK 이적과, 2군의 이명수, 정명원 코치가 두산으로 이적함에 따라 1군 수석코치로 임명되었다.
2012년 9월 17일 뜬금없이 김시진 감독이 경질되면서 감독 대행을 맡게 되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한용덕 한화 이글스 감독대행 못지 않게 감독 경질로 어수선해진 팀 분위기를 어떻게든 추스리려고 하는 모습이 인상깊게 보인다.
2013년 염경엽 감독 체제로 들어서면서 2군 감독으로 복귀했으며[8] , 화성 히어로즈로 2군 팀이 새로 발족된 후에도 2군 감독을 맡았다. 2군에서 오랫동안 활약하던 박정준, 지석훈, 차화준 등을 트레이드하여 앞길을 틔워 주는 발단이 되었다고 한다.트레이드 관련 뒷이야기
그 외에도 열악한 상황 속에서 2군을 잘 이끌어 8월 11일 현재 남부리그 1위에 퓨처스리그 승률 1위로 끌어올리고 있었으나, 막판에 상무에 역전을 당하여 55승 6무 39패 (승률:0.585)를 거둬 남부 리그 2위로 마감하였다.[9] 사실 2군이 1군을 뒷받침해주는 역할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비록 남부리그 2위로 마감했지만 넥센 히어로즈의 KBO 포스트시즌 진출에도 꽤 비중있는 공적을 세웠다고 볼 수 있다.
2015 시즌 종료 후 SK 와이번스의 수석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김용희 감독과 커넥션이 없다는 점을 볼 때 SK 구단에서 박경완을 앉히기 전에 미리 몇 년 간 팀을 맡길 차기 감독으로 영입했을 가능성이 있다.[10]
2018년 한국시리즈 우승 후 돌연 코치직 사임을 발표했다. 후임 감독이 된 염경엽 감독과도 오랫동안 함께 했기에 같이 지낼 것으로 예상했던 SK 팬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당황스러울 만한 일. 그러나 그는 그동안 쉴 틈 없이 지도자 생활을 했다면서[11] 당분간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12] 물러난다고 밝혔다. 사실 트레이 힐만 감독이 가정사 때문에 재계약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힐 시점에 이미 본인도 시즌 후 사임하겠다고 구단에 미리 말해 놨다고 한다.
4. 여담
- 야인으로 지내던 도중 그를 사칭하고 다니는 사람이 나타나서 딸인 유이가 주의를 당부하는 일이 생겼다. 결국 이 남성은 2020년 1월 30일 재판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4.1. 유이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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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들어서는 야구 외적인 것 때문에 유명세를 탔는데, 바로 유이의 아버지로 밝혀진 것! 차녀[14] 인 유이는 김성갑이 빙그레 이글스에서 뛰던 시절, 대전에서 태어났다. 현역 시절에는 최단신 선수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가 붙어다녔지만[15][16] 유이는 173cm의 장신을 자랑한다.
하지만 유이랑 있으면 아직도 어색하다고 한다. 평생 야구 선수, 코치로 있다 보니, 스토브리그 외에는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어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유이도 방송 중 '아버지랑 둘만 있으면 아직도 어색하다' 라고 말할 정도니 뭐...
사실 유이가 '''데뷔하기 전''' 2008년에 아버지를 응원하러 목동 야구장에 왔다가 중계 카메라에 잡힌 적이 있다. 아나운서가 이를 알아보고 "김성갑 코치의 딸입니다."라고 소개하여, '목동녀'라고 불리게 됐다. 이 날 딸 덕분에 처음으로 검색어 1위를 했다고 한다.
팀을 가리지 않고 야구팬인 사람들에 한해서 간혹 김성갑을 장인어른이라고 부르는 팬들이 나오기도 한다. 특히 야구게임에서 김성갑 카드가 나올 경우.
하는 위의 상황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편이다. 물론 장난이 반이겠지만 유이의 아버지 이미지가 현재의 인기에 한몫하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A: 어? 94 장인어른 나왔네
B: 누가 니 장인어른임 내 장인어른임
넥센 선수들도 마찬가지(?)여서, 유이가 2009년 추석을 맞아서 잠시 집에서 휴가를 보내자, 김성갑에게 명절 인사를 하겠다며 찾아온 넥센 선수들이 '''유난히''' 많았다고. 그 해 유이가 목동 야구장에서 시구를 한 적이 있는데 이 때 넥센 선수들의 표정이 가관이다.
다만 김성갑 본인은 '''유이 아빠'''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서 민감해한다고 한다. 가장 근래의 예로 2012년 김시진 감독의 해임 이후 시즌 중간에 감독대행으로 선임되었을 때, 팀이 졌을 때 감독이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으며, 유이 아빠라는 호칭보다는 김성갑이라는 이름의 야구인으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외부에서 유이 아빠로 불리면서 혹시나 딸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지 않을지 염려되는 마음에서였다고.
유이와 함께 방송에 나왔다가 김병현에게 디스를 당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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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연도별 주요 성적
[1] 53회 졸업생이며 김용국, 김성갑, 이강돈, 이종두가 동기다.[2] 체육교육과(1981학번)[3] 광고판의 동서증권은 원래 국제그룹 계열사였으나 1985년 초 전두환 대통령에게 찍혀 국제그룹이 강제로 해체된 후에 1986년 9월에 극동건설에 인수되어 극동건설의 계열사였으나 1997년 외환 위기의 여파로 1998년 1월에 극동건설이 경영권을 포기하면서 부도 처리, 동년 6월에 폐업했다.[4] 게다가 몸무게도 그리 많지 않은 66kg였다. 염경엽이 64kg인 걸 감안하면....[5] 딸인 유이보다도 작다.[6] 비슷한 케이스로 태평양 돌핀스에서 같이 활약했던 염경엽이 있다.[7] 중간에 IMF 무렵 코치 감축으로 인해 1999년 한 해 동안 팀을 잠시 떠난 적이 있었다.[8] 공석이 된 수석코치는 KIA에서 이강철 투수코치을 영입해서 채웠다. 대신 양승관 2군 감독이 NC로 옮겼다.[9] 다만 이것만 가지고 지도력을 비판해선 안 된다. 일반 구단의 경우 9월이면 확대 엔트리가 실시되기 때문에 2군의 주축 선수들이 대거 1군으로 콜업되므로, 각 팀의 2군은 전력이 갑자기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에 비해 국방부 퀘스트 중인 상무의 병장 선수들은 9월 말에 전역이어서 시즌 말까지 전력을 유지할 수 있다.[10] 실제로 2011년 말 SK의 2군 감독으로 김용희가 부임했던 것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11] 1995년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뒤 1996년부터 1998년까지 현대 유니콘스에서 코치로 지냈고 2000년부터 2018년까지 18년간 단 한 해도 쉬지 않고 현대 유니콘스, 넥센 히어로즈, SK 와이번스에서 코치 생활을 했다. 1985년 프로 데뷔 이후 그가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해는 1999년이 유일하다.[12] 후술하겠지만 그의 딸 유이도 집에서 아버지를 본 적이 별로 없어 어색하다고 한 적이 있을 정도로 가족과 함께 한 시간이 적었다. 거의 1년 내내 돌아가는 야구계의 일정상 오롯이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한여름 올스타 브레이크와 시즌 후 비활동기간에 불과하다.[13] 홍서범은 농대 78학번, 김성갑은 체육교육학과 1981학번. 홍서범은 야구 명문고교인 충암고등학교를 졸업해 야구인들과도 친하다.[14] 장녀 김유나는 유이보다 3살 위이며 수영강사로 활동했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뛰던 시절 대구에서 출생.[15] 이후 김선빈이 이 기록을 경신했다.[16] 유이가 어렸을 적에는 아버지가 키가 크다고 생각했는데 신문기사를 보고 아버지의 키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