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망 사브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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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출신의 축구 선수. 자신의 이름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어느 나라에서 어떤 식으로 사용되는지 전혀 모를 것이다. 그런데 이 이름은 포르투갈어권에서 남성의 이름으로 흔한 편으로,[1] 영어의 Simon에 해당하는 이름이다.
준수한 스피드와 드리블 능력, 그리고 크로스 능력과 득점력도 수준급이었던 윙어였으나 빅클럽에서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과 유리몸 기질 때문인지 자주 부상을 당했다는 점 때문인지 국내에서는 이름을 제외하면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유럽 수준급 리그에서 벤피카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등의 쟁쟁한 팀에서 팀의 주축으로 활약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봤을 때 수준급의 기량을 가진 선수였음은 부정할 수 없다. 국가대표팀에서도 같은 포지션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루이스 나니가 버티고 있었기에 국제적으로도 크게 알려지진 못한 비운의 선수다.
1997년 스포르팅 CP에서 데뷔한 뒤 1999년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했지만 루이스 피구와 같은 포지션, 같은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주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지는 못했다. 피구의 이적 뒤에는 히바우두와 양날개를 형성하며 꽤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가능성만을 보여준 채 2001년 벤피카로 이적해 포르투갈로 돌아왔다. 이후 벤피카에서 주장을 맡으며 매 시즌 팀 내 최다득점자에 이름을 올리는 등 핵심적인 활약을 펼쳤는데, 2005/06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2차전에서 선제골을 기록해 리버풀 FC를 물리치고 8강까지 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의 제의가 있었지만 2007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해 다시 한 번 프리메라 리가에 도전했고, 좋은 활약을 펼쳐 2009/10 시즌을 앞두고 팀의 주장이 되었다. 2009/10 시즌 갈라타사라이 SK와의 UEFA 유로파 리그 32강 2차전에서 득점하는 등 팀의 우승에 기여했으며, 2010/11 시즌을 앞두고 열린 인터 밀란과의 UEFA 슈퍼컵 경기에서 승리하는 데 공헌했다.
2010/11 시즌에는 터키의 베식타슈 JK로 이적이 합의되었다. 이로써 베식타슈는 우고 알메이다, 시망, 히카르두 콰레스마의 포르투갈 3인방 공격진에 구티가 뒤를 받치는 이름값 쩌는 스쿼드를 만들게 되었고, 컵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후에 에스파뇰로 이적했다.
2015년 6월 25일 인도 슈퍼리그의 노스이스트 유나이티드로 이적 후 10경기를 뛰고 은퇴했다.
1998년 불과 19세의 나이에 이스라엘을 상대로 포르투갈 국가대표팀에 데뷔했으며, 그 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했다. 이후 2002 월드컵에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유로 2004 당시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엘데르 포스티가의 천금과 같은 동점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팀이 준우승을 차지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또한 1999년 U-20 월드컵 당시 후반 종료 직전에 PK 하나를 포함 멀티골을 넣으면서 대한민국을 털었던 적도 있었던 것은 덤. 당시 골키퍼였던 김용대를 완벽하게 속이고 넣었던 PK가 일품이기도 했다.
2006 FIFA 월드컵 D조 32강 5차 경기인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득점한 바 있으며, 유로 2008에도 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었지만 큰 활약을 하지는 못했다. 2010 FIFA 월드컵 G조 32강 4차 경기인 북한과의 경기에서 포르투갈의 2번째 골을 넣었는데, '''박문성이 말한 "시망인데요" 하는 부분이 묘하게 와닿는다.(...)
그리고 이 2010년 월드컵 국대 동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 시망당했다. 항목 참조[2]
그의 기사에 대한 댓글로 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고 전해진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종료 이후 시망은 파울루 벤투 감독[3] 아래에서는 크게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고, 교체출전에 그쳤다.
결국 2011년에 포르투갈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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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포르투갈 출신의 축구 선수. 자신의 이름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어느 나라에서 어떤 식으로 사용되는지 전혀 모를 것이다. 그런데 이 이름은 포르투갈어권에서 남성의 이름으로 흔한 편으로,[1] 영어의 Simon에 해당하는 이름이다.
준수한 스피드와 드리블 능력, 그리고 크로스 능력과 득점력도 수준급이었던 윙어였으나 빅클럽에서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과 유리몸 기질 때문인지 자주 부상을 당했다는 점 때문인지 국내에서는 이름을 제외하면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유럽 수준급 리그에서 벤피카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등의 쟁쟁한 팀에서 팀의 주축으로 활약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봤을 때 수준급의 기량을 가진 선수였음은 부정할 수 없다. 국가대표팀에서도 같은 포지션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루이스 나니가 버티고 있었기에 국제적으로도 크게 알려지진 못한 비운의 선수다.
2. 클럽
1997년 스포르팅 CP에서 데뷔한 뒤 1999년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했지만 루이스 피구와 같은 포지션, 같은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주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지는 못했다. 피구의 이적 뒤에는 히바우두와 양날개를 형성하며 꽤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가능성만을 보여준 채 2001년 벤피카로 이적해 포르투갈로 돌아왔다. 이후 벤피카에서 주장을 맡으며 매 시즌 팀 내 최다득점자에 이름을 올리는 등 핵심적인 활약을 펼쳤는데, 2005/06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2차전에서 선제골을 기록해 리버풀 FC를 물리치고 8강까지 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의 제의가 있었지만 2007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해 다시 한 번 프리메라 리가에 도전했고, 좋은 활약을 펼쳐 2009/10 시즌을 앞두고 팀의 주장이 되었다. 2009/10 시즌 갈라타사라이 SK와의 UEFA 유로파 리그 32강 2차전에서 득점하는 등 팀의 우승에 기여했으며, 2010/11 시즌을 앞두고 열린 인터 밀란과의 UEFA 슈퍼컵 경기에서 승리하는 데 공헌했다.
2010/11 시즌에는 터키의 베식타슈 JK로 이적이 합의되었다. 이로써 베식타슈는 우고 알메이다, 시망, 히카르두 콰레스마의 포르투갈 3인방 공격진에 구티가 뒤를 받치는 이름값 쩌는 스쿼드를 만들게 되었고, 컵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후에 에스파뇰로 이적했다.
2015년 6월 25일 인도 슈퍼리그의 노스이스트 유나이티드로 이적 후 10경기를 뛰고 은퇴했다.
3. 국가대표
1998년 불과 19세의 나이에 이스라엘을 상대로 포르투갈 국가대표팀에 데뷔했으며, 그 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했다. 이후 2002 월드컵에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유로 2004 당시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엘데르 포스티가의 천금과 같은 동점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팀이 준우승을 차지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또한 1999년 U-20 월드컵 당시 후반 종료 직전에 PK 하나를 포함 멀티골을 넣으면서 대한민국을 털었던 적도 있었던 것은 덤. 당시 골키퍼였던 김용대를 완벽하게 속이고 넣었던 PK가 일품이기도 했다.
2006 FIFA 월드컵 D조 32강 5차 경기인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득점한 바 있으며, 유로 2008에도 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었지만 큰 활약을 하지는 못했다. 2010 FIFA 월드컵 G조 32강 4차 경기인 북한과의 경기에서 포르투갈의 2번째 골을 넣었는데, '''박문성이 말한 "시망인데요" 하는 부분이 묘하게 와닿는다.(...)
그리고 이 2010년 월드컵 국대 동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 시망당했다. 항목 참조[2]
그의 기사에 대한 댓글로 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고 전해진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종료 이후 시망은 파울루 벤투 감독[3] 아래에서는 크게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고, 교체출전에 그쳤다.
결국 2011년에 포르투갈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