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당(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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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캐나다 사민주의 정당. 캐나다 주요 정당 중 가장 좌파 성향이 강한 정당이다. 캐나다에서 소선거구제의 단점을 가장 크게 받고 있는 정당으로, 총선에서 약 10% 중후반대 득표율을 꾸준히 얻고 있지만 의석 수는 그에 못미치고 있다. 때문에 선거제도를 바꾸자고 줄기차게 주장 중이다.
2. 역사
1960년 협동연방당(CCF) 당수였던 토미 더글러스가 원외 진보정당이었던 신당과 합당하면서 창당하였다.
창당 이래 10% 중후반대의 상당한 득표율을 기록하며 원내 3~4당 자리를 차지해왔지만, 집권하기엔 부족한 득표율이고 연정도 안해서 연방 차원의 집권 경험은 없었다. 그러다 1993년 총선때는 좌파 성향의 퀘벡 지역당인 퀘벡당과 앨버타를 중심으로 한 우파 성향의 서부 지역정당인 개혁당에 밀려 9석짜리 군소정당 신세로 쇠퇴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3년 잭 레이턴이 당수가 되면서 다시 지지율이 올라가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기존 진보 진영의 거두였던 자유당을 지지하던 진보 지지층들이 대거 옮겨오면서 2011년 총선에선 자유당을 밀어내고 제2당을 차지하기도 했다.[3]
그러나 보수당에 밀려 집권에는 실패하고 같은 해 당의 간판이던 잭 레이턴이 암으로 사망하면서 지지율은 정체된다. 이후 퀘벡 출신 톰 멀케어를 당수로 선출하였으나 2015년 총선에서 지지층들이 다시 대거 자유당으로 이탈하는 바람에 다시 제3당으로 밀려났다.
2017년 인도 이주민 가정 출신인 온타리오 주 의원 자그미트 싱이 새로운 당수로 선출되었다. 참고로 자그미티 싱 대표는 2019년 3월 버나비 사우스 보궐 선거에서 당선되며 2017년 10월 당 대표 당선 후 약 18개월 만에 하원에 입성하였다.
2018년까진 사회주의 인터내셔널과 진보동맹에 동시 회원으로 있었다가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에서 탈퇴하였다.
2.1. 2019년 연방총선
2019년 내내 지지율이 10% 중반대로 지지부진해서 집권 가능성은 그다지 점쳐지지 않았지만, 선거 직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19%까지 올라가는 등 제법 반등하며 지지층에서 기대감이 나타나기도 했다. 허나 도리어 실제 선거에선 지난번 선거보다 의석을 15석이나 잃으며 24석을 차지, 32석으로 대약진한 퀘벡당(퀘벡 블록당)에 제 2야당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다만 득표율만 보자면 여전히 15.9%를 차지한 신민당이 7.7%를 득표한 퀘벡 블록보다 많이 앞서는 제 3정당이긴 하다.
심지어 정치 신인이라고 할 수 있는 싱 대표의 개인적 인기, 평가 및 호감도는 자유당의 트뤼도나 보수당의 시어 대표보다도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게다가 여당인 자유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연정 가능성이 대두되기도 하였으나, 트뤼도 총리는 연정 가능성을 부인하고 법안마다 야당의 협력을 받아내겠다는 구상을 밝혀[4] 일단은 자유당 소수정부로 출범하였다.
3. 지지 세력
전국적으로 보자면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퀘벡 주 그리고 온타리오주에서 주로 강세를 보인다. 2015년과 2019년의 투표 성향을 보면, 모국어가 불어인 인구가 많은 지역[5] , 저소득 지역, 고학력 인구가 많은 지역[6] , 원주민 인구가 많은 지역[7] , 인구 밀집도가 높은 대도시 지역 등에서 지지를 얻는 편이다.
많은 노동조합의 지원을 받고 있다.
4. 여담
캐나다 주요 정당 중 유일하게 연방과 주의 정당이 하나인 단체이다. 즉, 캐나다 하원의 원내정당 중 각 주의 개별정당과 가장 관계가 두터운 연방정당이다.
캐나다은 연방국가로서 주의 정당과 연방의 정당이 별개로 등록되는데, 다른 주요 정당인 자유당과 보수당은 연방 당과 주 당이 비록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하나의 정당이 아닌 경우도 많고, 심지어 일부는 이념이나 정책에서도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신민당은 '''퀘벡을 제외한''' 주급 신민당에 가입을 하면 연방 신민당에 가입을 할 수 있으며 다른 연방정당에 가입을 할 수 없다. 옛 퀘벡 신민당은 주정부 방침으로 1989년 연방 신민당과의 관계를 끊고 다른 퀘벡의 당들과 합당하고 결국 소멸했다. 2014년 연방 신민당이 새로운 퀘벡 신민당의 창당을 했으나 퀘벡 법에 따라 각 주의 당과 연방당은 아무런 관계를 맺을 수 없으므로 당원 명단 넘겨주기 등의 업무를 할 수 없으며 퀘벡 신민당원들은 연방에 신민당에 이미 가입되어 있지 않는 한에 다른 당을 지지하거나 입당할 수 있다.
신민당의 초대 리더이기도 했던 토미 더글라스 전 서스캐처원 주 총리는 2004년 한 조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캐나다인으로 뽑히기도 했을 정도로[8] 캐나다에서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북미 지역에서 주 정부긴 하지만 그래도 최초로 집권한 사민주의 정치인으로서, 당대 미국에선 메카시즘 광풍이 휘몰아칠 시절 활동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그는 위니펙에서 있었던 파업 사태를 보고 정계에 입문했다.[9]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서스캐처원에 영국식 의료보험[10] 을 도입한 것으로, 그 당시 의사들은 크게 반발했지만 반발했지만 당시 대다수 서스캐처원 주민들은 이 정책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이 정책은 캐나다 국민들의 큰 지지를 등에 업고 1960년대 캐나다 연방정부 차원에서도 채택되어 캐나다 전역에서 캐나다인과 정당하게 체류하는 외국인들은 병원비가 무료이다. 토미 더글라스는 명연설도 제법 남겼는데, 대표적으로 1962년 연설한 이른바 마우스랜드가 있다. 그 내용을 기반으로 만든 영상. 노동자로 대표되는 쥐들이 쥐는 안뽑거나 오히려 욕하고 흑백 고양이만 번갈아 뽑는 시대상을 풍자한 연설이다.
5. 역대 선거
1962년 총선 19/265 13.57%
1963년 총선 17/265 13.22%
1965년 총선 21/265 17.91%
1968년 총선 22/264 16.96%
1972년 총선 31/264 17.83%
1974년 총선 16/264 15.44%
1979년 총선 26/282 17.88%
1980년 총선 32/282 19.77%
1984년 총선 30/282 18.81%
1988년 총선 43/295 20.38%
1993년 총선 9/295 6.88%
1997년 총선 21/301 11.05%
2000년 총선 13/301 8.51%
2004년 총선 19/308 15.68%
2006년 총선 29/308 17.48%
2008년 총선 37/308 18.18%
'''2011년 총선 103/308 30.63%'''[11]
2015년 총선 44/338 19.71%
2019년 총선 24/338 15.90%[12]
[1] Co-operative Commonwealth Federation, CCF[43대] A B 국회; 2020년 5월 28일 기준.[2] 상원 폐지를 당론으로 밀고 있는 당이라 상원에 진출하지 않는다. 참고로 캐나다는 하원의 권한이 상원보다 크며, 상원은 일종의 추천제로 직접 선거로 뽑는 자리가 아니다.[3] 잭 레이턴의 퀘벡 하드캐리 외에도, 스테판 디옹과 마이클 이그나티에프 당수 시절 자유당 내부분열에 따른 반사이익을 얻은 것도 있었다.[4] 캐나다 의회 역사 전체를 보아도 연립정부를 구성한 것은 단 한번에 불과하고, 그것조차 1917년의 일이라 캐나다 정치에서 연정을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굳이 연정을 안하더라도 보수당을 제외한 신민당, 퀘벡당, 녹색당 모두가 성향이 자유당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법안별로 협상할 여지가 많다.[5] 한마디로 퀘벡주. 즉, 성향이 상당히 비슷한 퀘벡당과 지지기반이 꽤 겹치기 때문에, 2019년 총선 등처럼 퀘벡당의 인기가 치솟는 선거의 경우 신민당의 의석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6] 저소득 지역과 고학력 인구가 많은 지역은 정반대의 지지계층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고학력임에도 저소득일수도 있고, 반대로 고학력층과 저소득층이 다양한 이유로(ex:고학력층은 리버럴한 성향, 저소득층은 복지 등) 각각 지지한다고 볼 수도 있다. 캐나다 자유당도 비슷한 세력권을 보이는데, 실제 두 당은 지지기반이 상당히 겹치는 편이다. 이 점은 쥐스탱 트뤼도가 자유당 당수로 취임하면서 더 두드러졌다.[7] 서스캐처원 북부, 매니토바 북부, 서드버리 이북 온타리오에서 두드러지는 편이다.[8] [9] 당시 공장 노동자들이 업무활동 개선과 임금 상승을 요구하며 파업했으나 정부는 이들을 강경하게 진압했다.[10] 의료 서비스를 전면 국영화하고 국민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11] 최초로 보수당 다음의 제1야당을 맡았다. 한국으로 치면 정의당이 민주당 밀어내고 진보 진영의 대표 정당이 된 셈.[12] 제3당의 자리를 퀘벡당에게 뺏기면서 제4당이 되었다. 다만 이는 의석 기준이고, 득표율에선 여전히 제3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