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스탱 트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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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캐나다의 정치인. 하원 의원(4선, 파피노 지역구)이자 제23대 총리이다. 자유당 소속.
2020년 기준 만 52세로, 캐나다 역사상 두 번째로 젊은 총리[4] 이자 미남 총리로도 유명하다. 캐나다의 거물 정치인 중 한 명이었던 '''피에르 트뤼도'''[5] 전 총리의 장남이기도 하다.
2010년대 현대 들어와 독자적으로 총리라는 캐나다 정치의 정점을 차지한[6] 쥐스탱 트뤼도의 삶을 아버지의 후광만으로 설명하는 건 본인에겐 매우 억울한 일이겠지만, 어쨌든 현 트뤼도 총리의 인생과 부상에서 캐나다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엄청난 거인인 그 아버지의 영향력을 빼놓을 순 없다.[7]
젊은 나이와 진보적인 정치 성향 때문인지 쥐스탱 트뤼도는 '''캐나다의 오바마'''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8] [9]
2. 생애
2.1. 총리 이전의 삶
오타와 출신으로, 1971년 12월 25일(토요일)에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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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캐나다의 총리'''를 지낸 거물 정치인 피에르 트뤼도('''1919'''-2000)[10] , 어머니는 마가렛 트뤼도[11] 로, 한창 재임 중이던 현직 총리의 장남으로 태어나 성장기 내내 캐나다 국민들의 주목을 받으며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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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
사진은 공식 행사 중 아들 쥐스탱 트뤼도가 장난을 치는 바람에 옆구리에 안고 행사장을 벗어나는 장면이다. 왕립캐나다기마경찰(RCMP) 경호장교가 아들을 안고 있기 때문에 경례를 제대로 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장난으로 총리에게 경례를 했고 총리는 이에 겸연쩍게 웃고 있다. 총리로서의 본분과는 별개로 여러가지 사적인 스캔들로 구설수에 자주 오르내리던 아버지 피에르 트뤼도도 총리의 자리를 떠나 결국 한 사람의 아버지라는 걸 보여준 인간미 넘치는 사진이라 캐나다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 같다.
총선 직전, 아버지 피에르 트뤼도가 총리 재임 당시 경호원의 아들인 현직 경찰이 그 사진을 건네주는 장면. 처음에는 가만히 있다가 기자단에게 사진을 설명한 후 자신이 그 경호원의 아들이라고 밝혀 현장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아버지 피에르 트뤼도는 총리 재임 중 여러 가지 기록을 남겼는데, 재임 중 결혼, 재임 중 아이 3명, 재임 중 이혼, 거기에 '''혼외정사+사생아'''까지.[12] 아버지 트뤼도가 워낙 야심이 컸던 양반이었던지라, 미국의 케네디 가문처럼 자신도 캐나다에 정치 가문 비슷한 것을 남기길 희망하여 지저분한 법정공방까지 불사하며 결국 세 아들의 양육권을 받아낸다.
여담으로 어머니 마가렛은 여배우 출신으로 당시 정치가였던 피에르 트뤼도와는 무려 나이가 '''29살'''차였는데, 이를 극복하고 결혼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쥐스탱 트뤼도는 외모는 어머니로부터, 말빨과 카리스마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10월 위기(October Crisis)로 캐나다가 계엄령을 선포했을 당시 피에르 트뤼도가 기자들을 말빨로 데꿀멍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한때 영부인이었던 마가렛은 다시 재혼했으나 1999년 다시 이혼한다. 이혼 사유는 1998년 피에르와의 사이에서 낳은 세 아들 중 셋째가 사망한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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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스탱 트뤼도의 어머니 마가렛의 젊은 시절.
크게 주목받은 것과 아버지의 야심과는 다르게 처음에는 정치에 미련을 두지 않았는지, 맥길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제대로 된 직장 없이 중학교 임시 교사, 스키 강사 등으로 어떻게 보면 겉도는 청년기를 보냈다. 추측컨대 부모님의 이혼, 1998년 샛째 동생이던 미셸 트뤼도(Michel Trudeau)가 브리티쉬 콜롬비아의 한 리조트에서 산사태로 사망/실종된 사건 등이 겹치면서 심적 스트레스가 컸던 듯하다.
그랬던 그가 어른으로서 성숙한 모습을 보이며 캐나다 국민들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정치인으로써의 자질을 보인 계기는, 29살 때인 2000년도에 아버지 피에르 트뤼도의 장례식 추모사를 낭독할 때였다. 이때 차분하면서 슬프기보다는 아버지와의 추억을 되새기는 추모사가 캐나다 국민들의 마음을 흔들었는지 이후 계속하여 정계 진출 권유를 받게 된다.
추모사 낭독 영상.
정치에 막 투신할 때 살짝 흑역사가 있는데, 캐나다 CBC 불어방송 인터뷰 때 파티 트릭이라며 선보인 게 계단에서 술취한 척 굴러떨어지기...
2008년 자유당의 텃밭 중 하나였던 퀘벡주 몬트리올의 파피노 지역구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공식적으로 정계에 입문하였고, 2013년 캐나다 자유당의 당수로 선출되었다. 총리로 확정된 다음 날에 파피노 지역구 지하철역에 가서 출근하는 시민들과 악수를 하는 파격을 선보이기도 했다.
3. 2015년 총선
2015년 캐나다 총선의 대략적인 배경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3.1. 당시 상황
2006년, 보수당과 보수당 당수 스티븐 하퍼는 1993년부터 13년째 장기 집권 중이던 자유당을 제치고 각각 원내 여당과 제22대 캐나다 총리로 집권하게 된다. 그리고 당시 상승세를 유지하던 유가 덕에 한창 셰일 가스를 개발하고 있던 캐나다의 달러는 강세를 보였고[13] , 덕분에 경제가 순항하자 스티븐 하퍼 총리는 장기 집권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하지만 2011년, 캐나다 정계가 크게 재편되기 시작한다. 보수당 집권의 피로감+하락세를 보이는 유가+슬슬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는 권력 누수 및 비리 사건 파장 등으로 2011년 캐나다 총선을 앞두고 잭 레이튼이 이끌던 사민주의 성향의 좌파 신민당(New Democratic Party, Nouveau Parti démocratique)이 선거에서 말 그대로 돌풍을 일으킨 것이었다. 여담으로 신민당 돌풍의 주역 잭 레이튼은 예전에 암 투병을 하다 완치선고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선거기간 중에 암이 또다시 재발했다. 하지만 선거 유세를 계속하면 목숨이 위험하니 일정을 접고 치료에 열중하라는 의사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세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선거 유세에 나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결과는 신민당이 100석이 넘는 의석을 차지하며 제1야당이 되었지만, 엉뚱하게도 보수당이 어부지리를 얻어 다시 집권하게 된다(...). 자유당과 신민당의 지지층이 상당히 겹치는데, 잭 레이튼의 카리스마에 상당수의 자유당 표가 이탈했고[14][15] , 거기에 캐나다 많은 지역은 성향이 비슷한 지지층들이 나뉘어질 경우 여러가지로 문제가 많을 수 밖에 없는 소선거구제[16] 를 투표제도로 삼고 있어 결과적으로 야권 분열 덕을 봐 어부지리로 당선된 보수당 후보들이 의회 과반을 점해 스티븐 하퍼를 총리로 재선출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
결국 2011년, 보수당은 집권 연장에 성공했고, 신민당은 의석수를 기존 36석에서 103석으로 크게 늘리며 원내 공식 야당(제1야당)으로 약진했으나 문제는 기존 공식 야당이던 자유당이 그야말로 지리멸렬한 것. 쥐스탱 트뤼도를 포함해서 일부 인사만 재선되고, 당은 원내 제3당으로 추락하는 굴욕을 맛보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신민당에 악재가 터지는데, 바로 앞서 말했던 신민당 돌풍의 주역 잭 레이튼이 선거 종료 후 약 3개월만에 암 재발로 결국 사망한 것이었다.
잭 레이튼의 부인 중국계 캐나다인 올리비아 차우가 그의 뜻을 계승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그녀는 남편에 비해 언변이 딸렸고 이민으로 시민권을 딴 경우라 야당 당수까지면 모를까 여당 당수 겸 총리로는 아무래도 모자람이 있었고 결국 이후 토론토 시장 선거에서도 패하는 등 하락세를 타다 중앙정치무대에서 밀려나게 된다. 여러 당의 역사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지만, 신민당 역시 뛰어난 우두머리가 나타나자 갑자기 세상을 다 집어삼킬 것처럼 세력을 불리다가도 우두머리가 후계자 없이 갑자기 사망하자 당세가 위태로워진 것. 이후 신민당과 자유당은 새로운 리더를 선출하며 각각 재건에 나선다.
2011년 총선에서 34석으로 쪼그라든 캐나다 자유당은 말 그대로 충격에 빠진다. 결국 2011년 총선 당시 당수였던 마이클 이그나티프(Michael Ignatieff)가 사임하고, 온타리오 주 총리를 지냈던 밥 레이(Bob Rae)가 2013년까지 임시 당수를 맡아 자유당을 이끌어나간다. 이후 2012년 11월 14일부터 2013년 4월 14일까지 공식적인 자유당 당수 선거전이 진행되었는데, 이 선거에서 쥐스탱 트뤼도 당시 파피노 지역구 의원이 총 78.76%의 압도적인 지지율을 받아 자유당 당수로 당선된다.
40대 초반의 트뤼도가 자유당 당수로 취임하자, 언론에서는 만신창이가 된 자유당을 2015년 총선 전까지 재건하려는 자유당 내부의 꼼수, 즉 아버지 트뤼도의 후광을 노린 '''얼굴마담''' 아니냐는 조롱도 당연히 많이 나왔다. 트뤼도는 나이도 어린 데다 당시 겨우 초짜를 면한 재선 국회의원이었던지라, 이후 2015년 총선 때 캐나다 보수당에서 이 경력을 가지고 선거기간 내내 네거티브를 했을 정도였다.
3.2. 1기 내각
처음에는 진보층의 지지를 많이 받는 신민당과 보수층의 지지를 많이 받은 보수당에 밀려 지지율 '''3위'''로 선거를 시작했으나, 2011년 총선에서 교훈을 얻었는지 보수당이 더이상 집권하기를 바라지 않는 신민당 지지층들이 트뤼도의 신선함을 믿고 선거 몇 주 전부터 자유당으로 다시 많이들 넘어왔고, 결국 총선에서 자유당은 과반을 넘어 184석을 획득하며 대승, 트뤼도는 캐나다 총리에 취임하게 된다.
여기도 결국 아버지의 후광을 더해 집권한 것이지만, 보수당의 장기집권에 질린 캐나다 사람들의 지지에, 이듬해 미국의 정권교체까지 더해지며 북미 지역의 기대감을 한몸에 받게 된다.
4. 2019년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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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자유당 (157석), 파랑: 보수당 (121석), 주황: 신민당 (24석), 청록: 퀘벡당 (32석), 녹색: 녹색당 (3석)
2019년 9월 10일에 제42대 의회가 해산됨에 따라 11일부터 선거전에 들어갔다.#
트뤼도의 권력 남용 스캔들과 교사 시절 인도인 분장 논란 등 잇단 악재가 터졌지면서 자유당이 선거에서 패배하는 것이 아닌가란 전망이 높아졌지만, 상대인 보수당의 앤드루 시어 대표 또한 낙태 반대, 동성결혼 반대 논란 등을 연거푸 일으키며 선거 기간 내내 박빙의 승부가 이어졌고, 최종 여론조사에서도 양 당이 0.4% 차이로 근접하여 승부를 알기 어렵게 되었다.
선거 결과, 지난번 선거 결과인 184석보다 27석 적은 157석을 얻어 과반 유지에 실패했으나 1당 유지에 성공하여 소수 정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트뤼도 총리 부자의 고향이기도 한 퀘벡 주에서 분리주의 지역정당 퀘벡 블록이 의석을 32석으로 불리며 자유당 표를 많이 깎아먹었지만, 연방총선 최대의 승부처인 GTA[17] 를 필두로 한 온타리오 주에서 의외로 매우 선전하며 이 곳에서 2015년 선거보다 고작 1석 줄은 79석을 건진 게 승리의 비결.[18][20] 다만, 총 '''득표수 자체는''' 서스캐처원이나 앨버타 몰표 버프를 받는 '''캐나다 보수당에 밀리'''기는 했다.
4.1. 2기 내각
10월 24일. 최종적으로 연정 구성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캐나다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하는 여타 국가들과는 다르게 중앙정부 레벨[21] 에서 연립정부가 구성된 적이 없어, 제1당 의석수가 과반에 미달하더라도 일단 소수정부(minority government) 형태로 내각이 출범해 왔다.[22] 쥐스탱 트뤼도의 경우 2015년 총선에서 소속당이 과반수 의석을 얻음에 따라 총리로 일단 임명은 되었고, 2019년 총선으로 새로 구성된 의회가 불신임결의안을 통과시키거나, 본인이 먼저 사직하지 않는 한 총리직을 지킬 수 있다. 현재 의회 구성 상 자유당보다 더 좌측에 있는 신민당 의석 24석을 합하면 181석으로 재적 과반인 170석을 상회하므로 트뤼도가 불신임결의를 맞을 확률은 높지 않다. 제1당이 의회 재적 과반에 미달하더라도 불신임결의를 최대한 자제하며 1당의 정부 운영을 용인해 주는 캐나다 의회정치의 불문율도 있다.
11월 20일. 2기 내각 발표하였다. 눈에 띄는 것은 신설 부총리 겸 정부간 문제담당 장관[23] 으로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현 외교부 장관을 임명했다는 것인데 그녀는 앨버타 출신으로 앨버타 달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현 지역구는 토론토[24] 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한창 고조되고 있던 2020년 1월 8일, 이란군에 의해 우크라이나 민항기가 격추되는 대형 참사가 일어났는데 사망자 176명 중 이란계 캐나다인이 많은 것[25] 으로 밝혀져 에어 인디아 182편 폭파 사건 이후 가장 많은 캐나다인이 희생당한 항공 사고가 되었다. 사고 책임을 끝까지 부정하던 이란이었지만 트뤼도 총리가 직접 나서 이란의 책임을 언급하고 비행기 블랙박스가 프랑스로 옮겨지자 끝내 알리 하메네이가 책임을 인정하고 캐나다 등 피해자들이 있는 국가들에 사과의 뜻을 전했다.
한편, 상기 비행기 격추사고 대국민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르고 있다. 재선 이후의 스타일 변화로 보인다. # 때마침 부인 소피 트뤼도가 코로나바이러스에 확진되어 매일 아침 관저 앞마당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이다.
노바스코샤 총기 난사 사건 이후 지정된 무기의 구매, 판매, 운송, 수입 또는 사용을 포함한 금지법안을 발표했다.#
총리 가족과 친분을 가진 자선단체에 정부 사업을 맡겼다가 물의를 빚고 공직자 윤리위원회의 조사를 받게 됐다.#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한 재정지출 문제 등을 놓고 빌 모노 전 재무장관이 트뤼도 총리와 충돌한 끝에 사임했으며, 이후 첫 여성 재무장관[26] 이 탄생했다.#
가을 중 불신임 후 조기 총선 이야기가 나왔지만 10월 6일, 신민당의 도움을 받아 하원 신임 투표를 가까스로 통과했다.# 대신 트뤼도 총리는 코로나19로 인한 실직이나 휴직 등에 대해 근로자 지원을 강화하라는 신민당의 요구를 수용했다.
5. 정책
이전 집권당이었던 보수당이 시민들의 표심을 잃어 2015 선거에서 트뤼도에게 정권을 넘겨주게 된 계기가 되었던 F-35 도입을 취소했다. 정확하게는 F-35 수의 계약을 취소하고, 기존의 F-35에 더하여 F/A-18E/F 슈퍼호넷과 프랑스제 라팔 등이 참여한 경쟁입찰로 바꾼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향후 5년 동안 적자를 내서라도 돈을 많이 써서 경제를 부양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스티븐 하퍼의 지도 아래 셰일 가스로 위시되는 에너지 산업에 치중했던 캐나다의 경제 구조를 바꾸는 것이 최종 목표인 듯. 또한 중산층에게 부과하던 세금을 줄이고, 1% 부유층에게 세금을 더 거두겠다고 밝혔다.
다문화주의를 중요시하여 우주비행사에서 버스운전사, 장애인, 시크교도,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 등 '''캐나다 역사상 가장 다양한 출신성분을 가진 내각'''을 구성했다. 게다가 국방부 장관이 인도계이며 '''시크교''' 신자. 취임식 당일에는 여러 장관들이 성경, 꾸란, 캐나다 원주민 사머니즘 용품을 사용해서 선서를 하는 등 다채로운 모습도 보여줬다. 그리고 단지 구색맞추기용 소수자 끼워넣기가 아니다. 아래의 사진에 나온 할지트 사잔 장관은 참전용사로서 1989년 본인이 19살이던 해 입대하여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파병되었고 아프가니스탄에도 3번이나 나갔다왔다. 밴쿠버 경찰로 11년간 근무하여 마약, 조폭 청산을 주도하는 등 보통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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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캐나다 국방부 장관 할지트 사잔(Harjit Sajjan), 오른쪽은 28대 캐나다 총독 데이비드 존스턴(David Johnston).
성평등도 중요시해서, 내각의 남녀 비율이 1:1이다. 왜 남녀 성비를 1:1로 구성하였냐는 기자의 질문에 나온 대답이 '''"지금은 2015년이니까요."'''
기호용까지 '''마리화나 전면 합법화'''를 시행했다.경향 이후 토론토에서는 합법적으로 의료용 마리화나가 판매되고 있는데, 거의 한 달에 한 번꼴로 경찰의 수사를 받는다는 카더라가 있다(...). 이유는 불법적 판매가 있었는지에 대한 첩보에 의한 단속 때문이라고.
외국 여행객 사전 입국허가 신청서의 성별 표기란에 성 중립 항목을 추가, 시행에 들어간다. #
다만 자신의 아버지이자 전 총리인 피에르 트뤼도의 입장을 이어받아 퀘벡의 독립운동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사실 경제권 자체를 영어권 캐나다에 다 뺏긴 상황이라 애시당초 독립이 불가능한 상황이기도 하다.
2030년까지 석탄을 사용하는 화력 발전소를 조기 퇴출시키기로 했다. # 이로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기 전임자의 정책으로 인한 셰일 가스와 태양광 발전의 대규모 가격 인하에 이어 본인의 에너지 정책에 또 하나의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만남에서 캐나다 가톨릭 교회가 과거 원주민 아동을 강제 수용한 기숙학교를 운영한 데 대한 공식 사과를 요청했다. #
6. 비판 및 논란
7. 여담
- 딱 봐도 장신인데, 키가 188cm라고 알려져 있다. 평소 복싱을 비롯한 운동도 꾸준히 해서 몸매도 좋은 편. 별명이 MILF의 변형인 PILF(Prime minister I’d Like to F**k)이다.
-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캐나다 장군 중 한 명을 연기한 적도 있다. 콧수염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여기서 자신이 캐나다 총리가 된다는걸 예언(?) 했다
- 캐나다의 버락 오바마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SNS를 굉장히 잘 활용하는 정치인 중 하나. 정치는 높으신 분들이 하는 어렵고 복잡한 것이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 위아래의 사진들처럼 친근한 중산층 코스프레(?)를 굉장히 주기적으로 해서 호평을 받고 있다.
- 정치인들 가운데서는 드물게 몸에 문신이 있다. 다만 패션이나 일종의 허세로 한 문신은 아니고, 1976년 아버지가 총리로 있던 시절 연을 맺은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의 원주민 중 하나인 하이다 족을 방문했을 때, 그 곳의 한 할머니로부터 입양 의식을 치르고 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는 뜻으로 새긴 것이라고 한다.
- 페리미터 이론 물리연구소의 양자 컴퓨터 센터를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가 문돌이[27] 인 트뤼도를 곤란하게 만들려고 했는지 "양자 컴퓨팅에 대해 좀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는데... (모르실 테니) ISIS나 한 번 여쭤 볼까요."라고 질문을 던졌는데, 트뤼도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아뇨. 양자 컴퓨터는요... 보통의 컴퓨터는 0 또는 1의 비트로 작동합니다. 꺼지고 켜지고. 그러나 양자 상태는 훨씬 더 복잡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물질은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그러한 양자를 둘러싼 비결정성이 더 작은 컴퓨터에 더욱 많을 정보를 담을 수 있게끔 해 주는 겁니다. 그게 바로 양자 컴퓨팅이 놀라운 이유이고,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라고 짧은 문장 안에 양자컴퓨팅의 핵심을 모두 담아 멋지게 대답하는 폭풍간지를 선보여 주위의 물리학자들에게 기립박수를 받았다.
- 핵심만 정말 간단하게 설명한 것이지만, 총리가 국가 경쟁력에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심지어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스스로 공부까지 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과학자들로서는 감개무량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모르는 분야도 알려고 열심히 공부하는 듯.
- SF 덕후로도 유명하다. 특히 스타워즈 덕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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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워즈: 에피소드 7 - 깨어난 포스 첫 상영회(이스턴 온타리오 어린이 병원 어린이 환자들과 함께 관람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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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9일 선거 결과를 기다릴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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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몬트리올 코믹콘 당시. #
- 드라마 프렌즈의 챈들러 빙 역으로 잘 알려진 미국 배우 매튜 페리와 Rockcliffe Park Public School 동창이다.[28] 매튜 쪽이 트뤼도보다 2살 연상. 2017년 3월 지미 키멀 쇼에서 매튜는 5학년 때 친구와 작당하고 트뤼도를 때린 적이 있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유는 트뤼도가 운동을 너무 잘해서 질투났기 때문이라고. 이에 트뤼도 총리는 "이제라도 다시 한 판 뜨는 건 어떠냐?" 고 농담하는 트윗을 매튜에게 보내기도 했다. #
-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 네덜란드의 마르크 뤼터 총리, 그리고 영국 왕족[29] 인 앤 공주와 함께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 뒷담화를 하는 영상이 공개됐다. 그러자 화가 난 트럼프가 트뤼도와 마크롱을 위선적[30] 이라며 GDP대비 NATO 방위비 분담금을 2% 맞추어 내라고 반격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649559
- 2019년 12월부터 수염을 기르고 있다. 최근엔 다시 깎았다....가 자가격리 하면서 다시 길렀는데 수염이 흰수염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 듯 노화가 생기고 있다.
- 2020년 4월 8일, 총리 일일 코로나19 브리핑에서 마스크를 통한 비말감염을 방지하는 설명을 했는데, "Speaking Moistly"[31] 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사용하며 하루 사이에 밈이 되버렸다. #
- 2020년 4월 17일 한국 총선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하자 문재인 대통령의 재선을 축하한다는 메세지를 트위터에 남겼다가 삭제하였다. 캐나다가 의원내각제다보니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서구권 국가에서 이런 식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예상외로 많다. 대한민국이 대통령 중심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국무총리'가 있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장관의 영어 명칭도 대통령제 국가는 장관들이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움직이는 비서에 가깝기에 'Secratary'라고 불리지만 대한민국은 내각제 국가처럼 'Minister'로 불린다. 대한민국이 대통령제에 의원내각제 요소[32] 가 가미된 형태를 띠고 있어서 잘 모르면 오해하기 딱 좋다 보니... 자세한 사항은 의원내각제 문서 참고.
- 2020년 6월 2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조지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에 대한 대처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21초간 침묵한 뒤 대답을 했었다.#
8. 가족
- 조제프 루이 트뤼도(증조부)
- 샤를 트뤼도 (조부)
- 피에르 트뤼도 (아버지)
- 알렉상드르 트뤼도 (2제)
- 피에르 에마뉘엘 트뤼도 (조카)
- 갈라 시몬느 트뤼도 (조카딸)
- 아리안느 레아 트뤼도 (조카딸)
- 미셸 트뤼도 (3제) 1975년생으로, 1998년 사고로 죽었다.
- 그레이스 엘리엇 (조모)
- 제임스 싱클레어 (외조부)
- 마가렛 싱클레어 (어머니)
- 조에 베도스 (계수)
- 장 그레구아르 (장인)
- 소피 그레구아르 (2005년 결혼)
- 자비에르 제임스 트뤼도 (장남)
- 엘라 그레이스 마가렛 트뤼도 (장녀)
- 아드리앙 트뤼도 (차남)
- 소피 그레구아르 (2005년 결혼)
- 에스텔라 블레 (장모)
[1] 총리 본인에 대한 경칭[2] 오타와 출신이지만 퀘벡에 연고를 두고 있는 프랑스계 캐나다인이기 때문에 프랑스어로 읽은 쥐스탱 트뤼도를 기본으로 하며, 영어식으로 읽으면 저스틴 트루도라고 읽힌다.[3] 아버지가 현직 총리일 때 태어나 오타와에서 나고 자랐으나, 정치는 아버지의 고향인 퀘벡 주 몬트리올에서 해 왔다.[4] 취임 당시 만 43세 10개월. 가장 젊은 총리는 취임 당시 만 39세 364일 나이였던 조 클라크(Joe Clark). 캐나다 보수당의 전신인 진보보수당 소속이었으며, '''쥐스탱의 아버지인 피에르 트뤼도를 9달 동안 총리직에서 몰아냈던''' 사람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을 쫓아낸 조 클라크를 '''다시 몰아내고 그 후에도 4년 동안 총리를 했다.''' 클라크에게 쫓겨나기 전의 임기 11년을 합쳐 '''도합 15년 동안 총리직을 해먹은''' 무서운 양반.[5] 캐나다인들이 뽑은 캐나다 10대 영웅 중 1위를 차지한 인물. 도합 '''15년 동안 장기집권'''한 인물이기도 하다.[6] 아버지는 2000년에 서거했고, 저스틴은 2008년부터 하원의원 일을 시작했다. 하원의원 지역구(Papineau)도 아버지의 지역구(Mount Royal)와는 다르다. [7]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거부터가 아버지 덕분이고 그 유명세를 이어가서 TV 셀럽이 되거나 '''가족들과 같이''' 사회 활동을 하다가 아버지의 정당으로 들어가서 당시 기준으로도 60년동안 좌파 세력이 항상 차지했던 지역구로 공천받아 정치인 데뷔, 그리고 그렇게 당선돼서 국회로 들어간지 정치인으로 데뷔한지 고작 '''5년'''만에 당수, '''7년'''만에 총리까지 올랐다. 트럼프처럼 완전한 아웃사이더라면 모를까, 전세계 국가 수반들 중에서 공직 경력 고작 7년만에 국가 수반이 된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한국으로 치면 이전의 특별한 경력이 사실상 아무것도 없는 재선 의원이 '''야당 대표 & 대선 후보'''라는 중책을 맡는거다. 문재인도 민정수석 시절부터 계산하면 대략 공직 경력이 10년은 되는데다 그 전에는 수십년간 인권변호사로 일했던 사람이고, 이명박도 정치경력 15년에 30년동안 기업인으로 살았던 인물이다. 그 박근혜(...)조차도 정치 경력이 트뤼도의 2배인 15년이다. 거기다 아웃사이더들은 자기 원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경우가 절대다수인데 이 사람은 유명세 타기 전에 잠깐 교사직 한것을 빼면 무슨 대단한 일을 한것도 아닌것을 감안하면 이런 초스피드 테크를 가장 잘 설명할수 있는 상식적인 대답은 단 하나, 바로 아버지의 후광이다.[8] 오바마에겐 사실 상당히 억울한 비교인 게, 상술한 배경이란 면에선 '''부모님은 세 살 때 이혼하고, 외가에서 자란''' 자수성가 정치인인 오바마에 비해 쥐스탱 트뤼도는 '''총리 아버지를 둔''' 다이아수저급 배경이다. 민족적으로 보자면 오바마는 흑인과 백인의 혼혈로 자기의 정체성에 대해 심한 혼란을 겪은 적이 있고, 인종차별을 받은 적이 있으나, 트뤼도는 캐나다 사회에서 주류인 프랑스계 캐나다인과 영국계 캐나다인의 혼혈에 속해있고 모어가 프랑스어이다. 쥐스탱의 부모님도 이혼했지만, 오바마는 부모님의 이혼 후 아버지를 다시는 만나지 못한 데 반해, 쥐스탱은 아버지 손에 자랐기는 하지만 지금도 (생존해 있는) 어머니와 자주 교류한다. 그리고 인생의 커리어 부분에서도 이 사람을 오바마에게 비교하는건 오바마한테 굴욕이 될 수가 있는데 오바마는 하버드 법무박사 졸업 후 여러가지 일을 하다가 상원의원을 거쳐서 대통령까지 된 반면 트뤼도는 인생의 대부분을 학교나 다니거나 잠깐 정규직 교사를 한것만 빼면 사실상의 비정규 한직만 전전하던 사람인데 사실상 '''아버지의 후광을 받아서'''(하술하겠지만 트루도가 사실상 국민의 주목을 받은 계기는 아버지의 장례식 때이다) 유명세를 탐 > 사회 활동 > 정치 입문 > 국회의원 당선 > 당수 당선 > 총리 임명이라는 웸만한 사람들은 30년 걸려도 하기 힘들 법한 테크를 고작 15년만에 탄 사람이다.[9] 참고로 이사람 부모의 나이차이가 무려 '''29세'''인데 이 사람과 이 사람 어머니의 나이 차이보다 이 사람 부모의 나이차이가 더 많다.[10] 아버지와 무려 '''52살 차'''[11] 원래 성은 싱클레어, 1948년생.[12]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는 한때 결혼을 고려할 정도로 심각한 사이이긴 했다. 게다가 혼외정사와 사생아는 총리 재임 말기 약 한 달을 남겨두고 알려졌다.[13] 한때 캐나다 달러가 미국 달러의 가치를 넘어가는 기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14] 잭 레이튼의 카리스마 때문도 있었지만, 자유당에 대한 심판 성격도 있었다. 2011년 총선은 여당이었던 보수당 내각 관료들의 의회 자료 제출 거부를 핑계로 자유당+퀘벡당이 중심이 되어 좀 무리하게 의회 해산을 했기 때문에 조기 총선이 된 것이었는데, 그것 때문에 오히려 자유당은 역풍을 맞아 보수당 재집권과 자유당 지지세력의 NDP로의 이동이 있었던 것이다.[15] 참고로 당연히 퀘백당도 이 선거에서 처참히 몰락했는데, 기존 의석 중 무려 43석을 뺏기며 4석밖에 못건지는 대패를 당한다. 그리고 퀘벡 지역의 표는 고스란히 신민당이 흡수한다.[16] First past the post system. 예를 들어 투표결과 사표 포함 보수당 34%, 자유당 28%, 신민당 25%가 나왔다고 가정했을 때, 소선거구제를 투표제로 가지고 있는 지역은 선거 특성상 보수당이 과반수 없이 34%의 득표만으로 당선되고, 나머지 '''66%'''의 표는 모두 사장된다. 사실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한국의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와 똑같다.[17] Greater Toronto Area. 토론토 광역권을 말한다.[18] 특히 토론토 시. 시내 전체의 '''모든 의석'''을 자유당이 차지했을 정도로 대승을 거두었다.[19] 부산시와 울산시 포함[20] 그런데 승리라고 보기는 어려운 게 브리티시 컬럼비아에서 일부 의석을 잃었고, 매니토바에서도 그렇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경기도, 서울특별시, 경상남도[19] 정도의 인구와 의석을 가진 온타리오, 퀘벡 주에서 이겼다고 볼 수 있다. 퀘벡이야 보수당에겐 힘들지만, 온타리오의 경우 주 의회의 다수를 차지한 온타리오 진보보수당의 감축정책과 같은 여러가지 정책에 대한 불만을 가진 주민들이 자유당을 지지했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다.[21]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정부의 경우 신민당과 녹색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하여 자유당 내각을 몰아내고 집권한 사례는 있다. 참고로, '''현직 내각'''이다.[22] 다만 야당들이 연합하여 내각불신임결의를 통과시킬 경우 총리는 내각총사퇴를 단행하거나, 의회해산을 단행하고 조기총선을 해야 하는 것은 동일하다. 쥐스탱 트뤼도의 전임자 스티븐 하퍼도 2005년부터 2011년까지 6년 간 이러한 소수정부 형태로 정부를 이끌었던 전적이 있으며, 2011년 선거의 경우 실제로 야당 연합의 불신임결의안 가결에 대항한 하퍼 총리의 의회해산 시전으로 인해 원래보다 1년 일찍 시행되었다.[23] 영문 공식 직함은 Minister for Intergovernmental Affairs인데, 이 직책은 주 정부들과 연방 정부의 관계를 담당한다.[24] University-Rosedale. 토론토 대학교가 있는 곳이다.[25] 이란-캐나다 이중국적자가 57명 인것으로 밝혀졌다.[26] 위에서 언급한 크리스티아 프릴랜드(Chrystia Freeland)[27] ...라고들 하지만 공대에 잠깐 다닌적도 있다.[28] 매튜 페리는 미국인 아버지와 캐나다인 어머니를 뒀는데,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적에는 캐나다 수도인 오타와에서 자랐다고 한다. 미국, 캐나다 이중국적이다. 매튜 페리의 어머니는 피에르 트뤼도 전 총리의 공보 비서이기도 했다.[29] 영국 왕족이라고 하지만 엘리자베스 2세가 캐나다 국왕이듯 앤 공주도 캐나다 왕족이라서 트뤼도에게는 단순한 외국의 왕족은 아니다.[30] 트뤼도를 two-faced라고 표현했다.[31] 직역하면 "촉촉한 대화"[32] 총리가 대통령 임명직임에도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하며, 내각(장관)을 통할하는 권한도 (비교적 형식적이긴 하지만) 총리가 갖는다. 장관 역시 의회의 인사청문회를 통해 동의를 얻는 것은 당연하고, 현직 국회의원이 장관직을 맡을 수 있으며, 실제로도 자주 맡고 있다. 행정부 소속 장관임에도 의회가 구성하는 내각과 비슷한 형태이다. 삼권분립이니 인사청문회 하는 거야 당연하다지만, 이를 제외하면 순수 대통령 중심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