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삼국지)

 

辛評
(? ~ 204년?)
1. 개요
2. 정사
2.1. 원소 생전
2.2. 원담 지지
3. 평가
4. 연의
5. 미디어 믹스


1. 개요


후한 말의 인물. 원소의 모신. 신비의 형. 자는 중치(仲治)이며 영천군 양책현 출신으로 곽가와는 출신현까지 같다.

2. 정사



2.1. 원소 생전


연도는 불분명하지만 곽도와 함께 원소를 섬겼다. 곽도, 신평과 동향이었던 곽가 또한 원소를 배알했는데, 원소를 만난 뒤에 곽도와 신평을 찾아가서 "원공(=원소)은 그저 주공단의 겸양하는 태도를 흉내낼 뿐으로 인재를 쓸 줄 모른다."라고 아주 혹평하고 떠났다고 한다. 성격 나쁘고 사람 사귀는 게 까다로웠던 곽가가 곽도, 신평을 따로 찾아가서 푸념했을 정도면 친분이 상당히 깊었던 듯하다.
이후 계속 기록이 없다가 관도전 무렵 해서 곽도, 순우경 등 영천군 출신의 간부들이 득세하면서 위상이 올라갔다. 곽도, 신평의 영천파는 무슨 진언만 하면 원소의 일방적인 푸시를 받고 저수, 전풍 등은 그때마다 원소에게 무시되고 권한을 빼앗기는 등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보통 원소가 저수, 전풍 같은 기주 출신의 호족들을 견제하기 위해 자신과 같은 예주 출신의 명사들을 기용하는 나름대로의 내부 정리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곽도 등 영천파의 실책으로 관도전을 말아먹었기 때문에 관도전 이후로는 대립관계였던 심배의 위세가 급상승함과 동시에 영천파는 찌그러지는 모습을 보인다. 원소의 눈 밖에 난 데다 원소의 총신인 심배, 봉기와는 사이가 나빴다는 점에선 비슷한 처지였기 때문인지 이 무렵부터 원담과 가까이 지내며 원담에게 틈만 나면 아첨했다고 한다.
원소가 관도대전에서 패전 후 심배가 맹대장기의 참언을 받자, 신평은 곽도 등과 함께 이를 두둔하여 심배를 실각시키려고 하나 심배는 봉기의 변호로 유임되었다.

2.2. 원담 지지


202년, 원소가 후계자 선정을 굳히지도 않은 채로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곽도와 함께 원담의 지지를 표명했다. 원칙대로라면 생전의 원소에게서 폐출되었던 원담은 후사에서 배제되어야겠지만 원상의 나이가 지나치게 어렸던 반면에[1] 원담은 자력으로 청주를 평정하는 등 나름대로의 능력과 경험은 인정되고 있었기 때문에 원담이 더 후계자로 적합하다는 의견이 중론을 이뤘다. 원담 또한 이에 호응해 군사를 이끌고 업으로 향했지만 심배와 봉기는 애초에 원담과 사이가 나빴던 데다 원담이 정권을 잡으면 반드시 곽도, 신평에게 해를 입을 것이라고 여겼기에 먼저 선수를 쳐서 원상을 옹립해 기주를 장악하였다.
원담은 여양에 주둔하면서 거기장군을 자칭해[2]원상과 대립했지만 원소의 죽음과 내부의 혼란을 틈타 조조가 북상해 왔으므로 곧 원상과 화해하고 고개를 숙였다.
원상,원담과 조조군은 8개월동안 크게 싸웠는데 한때는 업까지 밀려나기도 했지만 곧 원상이 반격하여 조조를 격파하자 조조군은 허도로 철수했다.
이때 원담은 퇴각하는 조조군을 추격하자고 진언한 것이 원상에게 거절당해 앙심을 품고 있었던 데다 원상이 군사 지원을 중단하며 청주로 돌아갈 것을 종용했기 때문에 크게 분노하고 있었다. 신평과 곽도가 이런 원담에게 "선공께서 장군을 폐출시킨 것은 모두 심배가 뒤에서 음모를 꾸몄기 때문"이라고 원담을 부추기니 꼭지가 돌아버린 원담이 그대로 군사를 이끌고 원상을 습격했다. 그리고 발렸다(...)
이 이후 신평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3] 원담이 업에서 패해 달아났을때 곽도와 신비의 일족들은 모두 도망쳤는데 신평의 일족들만 모두 붙잡혔다고 한다. 훗날 조조에게 업이 함락되기 직전에 심배는 곽도와 신평 형제가 나라를 망쳤다며 신평의 일족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자세한 내용은 심배 항목을 참조.

3. 평가


곽도, 심배와 함께 원가의 막장테크를 주도한 일등 공신. 순욱은 전풍, 심배, 봉기 등 원소군의 주요 간부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는데 정작 문제가 많았던 신평, 곽도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았다. 곽도와 신평은 관도전 이전에 딱히 성격적 결함이나 실책이랄만한 것이 없었고 동문[4]이여서 비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다만 자신의 이상을 위해 목숨조차 아끼지 않았던 순욱이 고작 동문 감싸기를 위하여 신평과 곽도를 까지 않았다고 보는 것은 친원상 성향 네티즌들의 지나친 과대해석이라고 볼 수도 있다. 게다가 신평의 동생인 신비가 훗날 위나라의 고관을 지낸 것도 있고 하니 신평과 곽도에 대한 위나라 내의 나쁜 평은 신비의 친척들을 학살한 심배가 독박썼을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인지 별다른 기록이 보이진 않지만 그나마 남아있는 기록은 모두 안 좋은 평이다. 청주의 별가로 원담의 심복인 왕수는 원담에게 '친족간을 이간질하여 간사한 이익을 꾀하는 간신'(문맥상 곽도, 신평이 확실)들을 베어버리고 화해하라고 진언했으며 유표가 원담, 원상을 화해시키기 위해 보낸 편지에서도 "신평과 곽도에게서 재앙이 비롯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심배 역시 신평과 곽도를 '이리와 승냥이'로 비유하고 있다. 그래도 진수의 기록에서는 직접적인 이름의 언급은 피하고 있지만 타세력의 글이 인용문으로 남아있는 경우에는 가차없이 깐다.

4. 연의


삼국지연의 에서는 원래 한복의 부하였다가 원소를 따르는 것으로 나온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득을 꽤 많이 본 인물이다. 사서상의 모습은 영락없는 간신인데 여기에서는 원담을 부추기는 나쁜 역할은 전부 곽도 혼자서 하고 있고 '''왠지 충신으로 나온다.'''
조조가 남피에서 원담을 치는 시점까지 살아있으며, 한번 조조를 배신때렸던 원담이 다시 조조에게 항복하기 위해 신평을 항복사절로 보낸다. 조조는 신평에게 "그 어린 놈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고 대답하고 원담을 버리고 자신을 따르라고 권유하나 신평이 단박에 거절하고 원담에게 돌아간다. 돌아온 신평에게서 항복이 거부당했다는 보고를 받자 원담은 "너도 니 동생처럼 조조한테 붙을려고 그러냐"면서 괜히 신평을 갈구는데, 신평은 하도 억울한 나머지 분통이 터져서 그대로 쓰러져 죽는다. 원담은 자기가 모자라고 부덕해서 충신을 죽게 했다며 크게 후회.
왠지 삼국지연의에서는 원담의 막장성이 크게 희석되는 대신 애꿎은 원상이 원담 이상급의 막장이 돼버린다. 따지고보면 선공도 원담이 먼저 걸었다(...)

5. 미디어 믹스


[image]
삼국지 12, 13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지력/정치력/매력이 다 약 70대로 동생인 신비의 마이너 버전이지만, 어째서인지 통솔력이 70 전후를 찍고 무력도 나쁘지 않게 나온다. 정사나 연의나 군사관련 기록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상당한 고평가.[5] 그래도 전투로 굴리기엔 부족한 감이 있다. 한복군 입장에서든, 원소군 입장에서든.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4/무력 46/지력 72/정치력 74. 분전, 기사, 제사, 충차, 혼란을 가지고 있다. 무력 때문에 혼란을 주로 쓰게 된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1/무력 54/지력 74/정치력 75/매력 67에 특기는 농업, 일제, 저지, 명사 4개. 농업셔틀로 쓸 수 있는 명사 특기 가진 문관이라는데에서 의의를 찾자. 통솔력이 71이면 그리 낮은 건 아니지만 일제 하나 믿고 전장 내보내는 것은 좀 그렇다. 저지는 그 자체 성능도 구리지만 무력에 의존하는 특기라는 점에서 있으나마나 한 특기고.
삼국지 11에서는 삼국지 10 때보다 무력이 대폭 하향되고 지력과 정치력이 1씩 올라서 능력치가 통솔력 69/무력 43/지력 75/정치력 76/매력 68이다. 다만 특이한 점이 있다면 무력이 43밖에 안 되는 주제에 창병 적성이 A라는 점이다. 평소라면 내정이나 하겠지만 원담군이라면 이 정도 인재는 반드시 전투에 나가야 한다.
삼국지 12 일러스트는 연의에서 원담에게 억울해서 분통이 터져서 죽는 장면인데, 자세가 화장실에서 대변을 보는 모습처럼 생겼다(...). 그리고 양손으로 편지를 쥐고 있는데 편지가 휴지 혹은 신문지로 보여서 화장실에서 일을 보는 사람으로 보인다. 게다가 전법이 파괴력약화이라서 저 일러스트로 전법 발동하는 모습이 참 웃긴다(...). 삼국지 12 이후 일러스트에 과도하게 역동성을 부여하면서 생긴 보기 좀 부담스러운 일러스트 중 하나이다. 7편부터 11편까지 무관복이었다가 12부터 다시 문관복으로 등장한다.
삼국지 13에서는 통솔력 69/무력 43/지력 77/정치력 75의 능력치에 공격지휘라는 쓸 만한 전법을 들고 나왔다. 특기는 상업 3, 설파 1, 언변 1로 전수특기는 상업이다. 전풍을 제외한 다른 원소군의 핵심 책사들의 전법이 애매한 점을 생각해보면 파격적인 대우라고 할 수 있다.[6]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69, 무력 43, 지력 77, 정치 75, 매력 66이며 개성은 언독, 소심, 주의는 할거, 정책은 지세연구 Lv 3, 진형은 어린, 전법은 제사, 도발, 매성, 친애무장은 없고 혐오무장은 봉기, 심배다.
영걸전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조조전에서만 등장한다. 남피 전투에서 포차계로 등장하는데 성을 끼고 있기 때문에 의외로 성가시다.[7] 전투 중에 신평이 사신으로 항복하러 오는데, 선택지에 따라 신평을 증발시켜버릴 수 있다.[8]
[image]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에서는 원작처럼 포차계로 나오고 C등급 장수이지만, 50레벨 특성이 '''물리필중'''[9]이어서 포차계 장수들 중에선 원탑 대우를 받고 있다. 조조전 온라인 갤러리에서는 맥아더 썬글라스를 쓴 모습으로 합성되어 모든 걸 파괴시키는 이미지로 표현될 정도이며, 호칭도 "제네럴 신"으로 불렸'''었'''다.
그러나 낮은 무력 탓에 공격력이 낮고 기동성 탓에 상태이상의 유엽과 금책담당 감택보다 더 빨리 묻혔다.
삼국전투기에서는 동생 신비와 싸잡아서 마미야 형제로 등장. 신평은 아키노부로 등장한다. 동생 신비와 함께 백마 전투 (1)편의 타이틀 컷을 차지하기도 했다.
백마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전면전을 주장하는 곽도와 지구전을 주장하는 전풍 중 형제 둘 다 곽도의 편을 든 것으로 묘사된다. 다만 그것 외에는 관도 대전에서는 별 비중이 없었다.
여남 전투 편에서는 심배의 아들이 조조에게 잡혔다는 정보가 들어오자 곽도에게 동조해 심배의 군권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봉기가 심배의 편을 들면서 심배가 실각하지는 않았다.
창정 전투 편에서는 곽도와 더불어 원담파의 중추로 묘사된다. 심배가 원소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끄끄.."밖에 못 말하는 것을 악용하여 원상을 후계자로 삼고 싶다면 끄끄라고 대답해 달라고 하면서 원상을 후계자로 밀려고 하자 곽도와 함께 반발하지만, 심배가 원담에 대해서도 제대로 묻겠다고 하면서 원담을 후계자로 '''삼고 싶지 않다면''' 끄끄라고 대답해 달라고 하였고, 원소가 이에 끄끄...라고 답하자 납득하는(...) 모습을 보여서 곽도에게 바보냐고 한 소리 듣는 개그씬도 연출했다.
이후 등장이 없다가 신야 전투 편에서 최후가 묘사된다. 조조에게 사신으로 보내지면서 이탈한 동생 신비와는 달리 원담과 쭉 같이 행동했으나 원담이 남피에서 조조군에게 포위당한 후 신비처럼 조조에게나 가버리라고 신평에게 막말을 퍼붓자 울화통이 터져 죽은 것으로 묘사된다.

[1] 15,6세로 보는 경우도 있고 많아도 20세 이전으로 본다.[2] 원소가 반동탁연합의 맹주로 취임하면서 자칭한 관직. 그 상징성을 감안하면 자신이 원소의 후계자라는 의지표명에 가깝다.[3] 심배가 원담에게 보낸 서신의 내용이 아직까지 전해지는데 신평과 곽도를 다 같이 까다가 마지막엔 곽도를 베고 화해하자고 한다. 굳이 곽도의 머리만 요구하는 것을 봤을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던 듯 싶다.[4] 출신 군이 영천군으로 같다.[5] 참고로 관도대전에 도독으로 참전했고 남피전투에서 전사하는 등 신평보다 군사관련 기록이 많은 곽도의 통솔력 ,무력이 50전후이다.[6] 위에서 설명했듯이 신평은 군사 관련 기록이 없다.[7] 일부 유저들 사이에서 비슷하게 미친 존재감 포지션에 해당하는 영걸전 하비전투의 허사와 비교되기도 한다.[8] 신평의 항복만을 받아들이면 거절하고 돌아가서 원담이 신평을 갈구고 신평이 죽는다.[9] 상대의 회피율에 상관없이 모든 물리 공격 명중 특성. 하지만 상대가 내정 특성 중 보병의 회피율 연구를 했다면 빗나갈 확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