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

 




1. 일반적인 의미


貯水. 물을 가둬둔다는 뜻으로, 저수지 할 때의 바로 그것. 포켓몬스터의 특성 저수의 유래도 이것이다.

2. 후한 말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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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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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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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授)
'''
생몰 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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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 2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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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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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주 광평군
후한 말의 군벌인 원소의 모사. 저곡의 아버지.
기주(冀州) 광평군(廣平郡) 사람. 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저(沮)씨가 흔한 성씨가 아니기 때문에 저송의 후손[1]으로 추정되지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2.1. 생애



2.1.1. 원소를 따르기 전까지


젊을 때부터 큰 뜻을 품었고 권모술수에 뛰어났다고 한다. 처음에는 기주별가를 지냈고, 이후 두 현에서 현령(縣令)을 지냈다. 훗날 기주목 한복의 휘하에서 별가·기도위로써 그를 섬겼다.
191년, 한복이 원소에게 기주를 양도하려고 하자 경무민순을 비롯한 다른 모사들과 더불어 이를 만류하였으나 한복은 '''듣지 않았다.''' 결국 원소가 기주를 차지하자, 저수는 그대로 원소를 섬겼다.

2.1.2. 원소 휘하에서


정사 삼국지 원소전에 따르면 저수는 기주·청주·유주·병주 4주(州)를 평정한 뒤 장안에 황제를 맞이하고 낙양의 종묘를 부활시킨다는 전략을 원소에게 설명하여 원소에게서 극찬을 받은 뒤, 감군·분위장군에 임명되었다. 반면 후한서 원소열전에 따르면 같은 전략을 진언하여 원소에게 극찬을 받은 뒤, 여러 장수를 감독할 권리를 받고 분무장군이 되었고, 분위장군은 한복이 받은 것으로 나온다. 정사 삼국지와 후한서의 기록이 다른데 자치통감은 후한서의 손을 들어 줬다.
195년, 저수는 원소에게 헌제를 맞이할 것을 진언했으나, 곽도순우경이 이에 반대하였다. 원소도 동탁이 옹립했던 헌제를 맞이하는 것에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저수의 진언은 '''수용되지 못했다.''' 연의에서는 원소가 천자라고 하는 그 자체에 대한 쓸모를 과소평가하는 것으로 묘사하나, 실제로는 동탁에 의해 옹립된 헌제의 정통성에 대한 견해의 문제였다. 이것은 삼국지 위서 원소전의 주석을 인용한 헌제전, 후한서 원소전에 나온다. 사실 세력 기반이 상대적으로 미약한 원소 입장에서 본인이 후한의 구원자가 아닌 천하패자의 야망이 있다면 협천자는 리스크가 큰 행동이었기에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반면 이런 원소의 선택으로 조조를 키워주는 꼴이 되기는 했지만 결과론적인 일이다.
또한 저수는 원소가 장남 원담을 청주자사로 임명한 것에 대해 필히 재앙의 시초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원소는 '''듣지 않았다.''' 이는 폐출된 원담이 청주자사 자리에 있다는 것은 그에게 군사적 기반을 마련해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2.1.3. 관도대전


이후 조조에 대한 전략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는데, 저수와 전풍은 지구전 전략을 주장했으나 곽도와 심배는 단기전 전략을 주장했다. 원소는 결국 저수의 말을 '''듣지 않고''' 곽도와 심배를 지지했다.
또한 이때 곽도가 저수의 위세가 굉장하다는 것을 참언하였고, 이로 인해 감군의 지위와 권한은 3명의 도독이 다스리는 체제로 분할되어 저수·순우경·곽도가 도독으로 임명되었다.
200년, 관도대전이 시작되기 직전 저수는 원소의 패배를 예상하고 동생 저종을 비롯한 일족에게 재물을 나눠주었다.
전투가 시작되자 원소는 곽도·순우경·안량에게 명하여 백마에 주둔한 동군태수 유연을 공격하게 했다. 저수는 안량은 용맹하지만 도량이 좁아 단독 작전에는 부적절하다고 원소에게 진언하였으나 '''거절당했다'''. 저수의 말처럼 안량은 백마에서 판단을 그르쳐 적중에 고립되고 말았고, 이윽고 조조군 진영에 있던 관우에게 죽임을 당했다.
또 원소가 황하를 건너 연진으로 향하자 저수는 병을 이유로 지휘권을 반납하였기 때문에 원소는 분노하여 저수 휘하의 군을 곽도에게 배속시켰다.
조조군이 관도로 퇴각하자 저수는 재차 지구전을 진언했다. 원소는 '''거절했으나''' 조조와 교전을 벌여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었다.
순우경이 병량의 호위를 맡았을 때 저수는 순우경만으로는 위험하니, 장기에게 별동대를 인솔하게 하여 수비에 만전을 기할 것을 원소에게 진언했으나 원소는 '''이것도 거절했다.''' 순우경은 오소에서 조조에게 습격당해 궤멸당했고[2] 이로 인해 원소군은 무너지고 말았다.
저수는 황하를 건너는 것이 늦어져 조조군에게 생포되었다. 조조는 저수에게 자신의 밑으로 들어올 것을 권하였으나 저수는 거절하였고, 이후에도 조조는 그를 후하게 대접하였으나 저수는 탈출하려 하였다. 결국 저수는 조조에게 처형당하였다.[3]

2.2. 평가


일반적인 저수의 이미지는 문약한 참모의 이미지였으나, 실제로는 감군 및 도독을 맡았던 것을 보더라도 매우 탁월한 전략안을 가진 군사령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장군에서 문관으로 와전된 케이스.
원소가 한복의 관료들을 숙청할 때, 숙청되지 않은 몇 안되는 관료다. 또한 관도대전 당시 '''공융의 원소 휘하 인재들의 장점을 논할 때 순욱이 논파하기 위해 공융이 거론한 네임드 인물들의 단점을 논하는데, 유일하게 언급되지 않은 인물이다.''' 저수의 지위를 생각할 때 순욱이 깜박하거나 아예 모를 리는 없다. 물론 그 외에도 비판이 생략된 네임드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의 경우 순욱의 가족이거나 동문인 등, 공융이 일부러 언급을 피했거나 원소군 멸망 후 비판 내용이 삭제되었을 대상들이다. '''이때 순욱이 평한 인재들은 딱 순욱의 평이 원인이 되어 최후를 맞은 만큼, 순욱의 원소군 인재 파악은 놀라울 정도였다.'''[4] 그런데 별 다른 특별한 이유가 보이지도 않는데 저수에 대한 평가만 쏙 빠졌다는 점에서 '''딱히 부정적인 평가를 할 만한 게 없었다'''라고 추론해 볼 수 있다. 물론 공융이 저수를 그냥 거론하지 않았기에, 순욱도 저수의 단점도 알고 있음에도 일부러 논외로 쳤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본인의 능력은 좋아 보이지만, 이상하게 윗사람에게 인정은 못 받는다. 한복 휘하에서부터 저수의 진언은 이상할 정도로 거의 무시를 당한다. 이 문서만 봐도 한복과 원소에게 총 7번이나 무시 당한다. 결과적으로 그의 말이 대부분 옳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삼국지의 인물들 중에서도 가장 주인복이 없는 인물. 이쯤되면 불쌍할 지경.
원소전의 주석에 따르면 역사가 손성은 전풍, 저수의 지모는 옛 전한의 건국공신 장량, 진평에 필적할만한 것이다라고 극찬하였다. 사실 4주 평정까지는 순조로왔던 원소가 건안 4년 이후 저수의 진언을 특히 무시하면서부터 그의 추락이 시작되었다. 관도 전투에서도 저수의 진언을 받아들였다면 승패는 역전할 가능성이 높았다는 말도 있었다. 어떻게 본다면 원소의 순욱이라고 볼 수도 있는 부분이다.
저수가 의외로 황권과 좀 닮은 면이 있다. 어리석은 원 주군(한복/유장)에게 자기네 땅을 넘보는 야심가(원소/유비)를 받아들이지 말라고 간언했지만 들어주지 않았고, 그렇게 반대하는 입장이었음에도 오히려 그 새 주인의 총애를 받았다. 그렇게 새 주인의 세력 확장을 위한 전투(하북 평정/한중 공방)에서 활약하고 VIP(헌제/장로)의 인터셉트를 시도한 바 있으나 둘 모두 이루지 못했고...[5]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실수가 될 원정(관도/이릉)에서 신중론을 주장했으되 받아들여지지 않아, 결국 참패 후 미귀환 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다만 그 최후의 차이가 극명한데, 저수는 조조에게 붙잡힌 후 자신을 섬기도록 권고 받았지만 거절하여 죽음을 맞았고,황권은 제3세력인 조비 쪽으로 넘어가 비교적 잘 먹고 잘 살았다. 황권의 경우. 황권 자신도 조비에게 넘어간 뒤에 여전히 유비에 대한 충정이 남아있는 모습을 보였고 유비 또한 황권의 가족을 해코지 하지 않음으로 그 믿음에 화답하는,미담에 가까운 이야기를 남긴데 비해...잡힌 뒤에도 마치 황하 저편으로 토낀 주군 들으란듯이 자긴 항복한 게 아니란 걸 강조하고,가족들의 신변을 걱정해 죽음을 택한 저수 쪽의 사정은 상당히 씁쓸하다. 전투 시작도 전부터, 이기든 지든 자기는 이미 끝났다고 직감해 재산을 처리했다는 부분까지 보면 더더욱...
황권의 아들 황숭등애를 상대로 최후까지 항전하다 순국한 것은 유명하지만, 저수의 아들인 저곡도 원상의 부하로서 대를 이어 계속 원가를 위해 싸웠다는 점까지 닮았다. 깨졌다는 기록 한 줄 뿐이고 정확한 최후는 알 수 없지만.
사실 이 둘은 완전히 비슷한 입장도 아닌 것이. 촉이 비록 이릉대전에서의 패배 이후 휘청거렸다 하나 어쨌든 제갈량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국가재건에 나서 세력을 보존하는데 성공한 하나의 나라인 반면, 관도 패배 이후의 원가는 한조라는 한울타리 내에서 정통인 허도 정권에 대해 명분적 실질적 우위를 모두 상실한, 확실하게 기울기 시작한 배였다.
게다가 저수의 행적들로 보아 원가와 그렇게 끈끈한 유대가 있거나 은혜를 입지도 않은 것 같지도 않은데, 온갖 형태의 배신이 속출하던 하북 평정 시기에, 그 저수의 아들이 평범하게 원상의 부하로서 조조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는 점은 조금 놀라운 것도 사실이다.

2.3. 미디어 믹스



2.3.1.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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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언급되었다. 봉기가 아파서 대신 군권을 잡은 심배 말을 안듣는다고 한다.

2.3.2. 삼국지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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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인의 삼국지
삼국지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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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2, 13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전형적인 참모격으로 나오며, 지력은 80대 후반~90대 초반으로 전풍에 이어 보통 2위인데, 통솔도 70후반에서 80초반으로 참모 중엔 그럭저럭 높은 편이어서 전투에는 오히려 전풍보다 더 효율적일 때가 있다. 원소 세력에서 전풍이 지력 1위 콘셉트로 굳어졌다면 저수는 정치력 1위 콘셉트로 굳어졌다.
삼국지 5에서는 무력 60/지력 90/정치력 91/매력 85로 군사를 맡을 수 있고 무력도 아주 낮지는 않아서 전장에서 아에 못 쓸 장수는 아니다. 특히 특기로 강행을 가지고 있어서 업에서 사방의 도시를 커버할 수 있기 때문에 속공으로 싸우는 입장에서 상당히 까다롭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9/무력 31/지력 93/정치력 92의 S급 문관. 통솔이 어느정도 되기 때문에 부대장 역할도 할 수 있다. 제사, 정란, 교사, 혼란, 덫을 가지고 있으며 모략계 병법 숙련도는 400. 교사를 활용한 상태이상 방지, 혼란이나 덫을 활용한 공격이 모두 가능하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9/무력 37/지력 88/정치력 90/매력 76에 군사 특기를 가지고 있는 사기 캐릭터. 원소군에 있을 때도 전풍과 투탑이지만 한복군에 있을 때는 그야말로 에이스이다. 내정 쪽으로도 농업, 기술 특기를 가지고 있어서 쓸모가 많으며 영웅집결에선 한복군 소속으로 나온다. 전체적으로 특기는 농업, 기술, 보수, 진정, 반목, 유인, 항변, 반박, 군사, 명사. 총 10개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8/무력 35/지력 90/정치력 89/매력 74의 A급 이상의 능력치이며, 노병/기병/병기 적성 A로 적성도 좋은 편이다. 그러나 이런 높은 능력치에도 불구하고 특기가 없는데, 능력 총합 366으로 무특기 무장 중 능력 총합이 가장 높은 인물이며 지력 90대로 무특기인 인물은 지력 93의 전풍과 더불어 단 둘 뿐이다. 특기 없이도 능력을 살려 활약은 가능하지만, 가급적 빨리 능력 연구나 묘 발견을 통해 특기를 부여해 주는 것이 좋다.
삼국지 12에서는 매력만 삭제되고 11과 동일한 능력치로 등장하며, 주군 원소에게 조조와의 싸움에서 지구전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강직한 모습이 일러스트로 나왔다. 전법은 전법봉인. 통솔도 높은 편이라 전장에서 상당히 무섭다. 참군으로서의 비책은 혈공지책과 매복지책이 있어서 하북지역에서 관문이 많은 사예지역으로 침공할 때 전술의 유연성을 부여하기 좋은 참군이다. 당연히 귀모도 보유하고 있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12와 동일하다. 책사치고는 통솔력이 괜찮은 편이고 병종적성도 괜찮은 편인데 보유전법은 병력을 일부 소모해서 임의의 진으로 워프하는 위병이다. 전투용으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쓸 일이 없어서 애매한 편. 거기에 스킬도 설파 7과 병기 1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다. 이게 문제가 되는건 특히 설전할때인데 언변이 아예 없기 때문에 무시를 아예 쓸 수가 없어서 지력이 90이나 됨에도 설전에서 매우 안좋다. 전수특기는 설파이며 능력치 자체는 상당히 좋아서 내정에 써먹기에도 좋지만 스킬 유무의 차이가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은근 나는 편인지라 서럽다. 덤으로 중신특성도 없다. 11과 마찬가지로 푸대접을 받는 작품인 듯하다. 병종적성은 창병이 B, 기병과 궁병이 A이다.하지만 병기특기의 존재로 성을 수비할 때엔 존재의 유무차이가 크고 내정 아이템 한두 개 정도 쥐어주고 굴리면 훌륭한 A급 내정요원도 될 수 있다. 저수로 플레이하는 경우라면 최대한 빨리 인연을 맺어 전법을 바꾸어 주도록 하자. 동료 전풍의 일러스트와 붙여놓으면 격렬한 논쟁을 주고받는 구도가 완성된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79, 무력 35, 지력 90, 정치 89, 매력 76으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1, 매력이 2 상승했다. 개성은 독려, 동지, 신중, 지낭, 주의는 왕도, 정책은 군제개혁 Lv 5, 진형은 안행, 방원, 충차, 전법은 제사, 고무, 진정, 충차, 친애무장은 전풍, 혐오무장은 곽도다.

2.3.3. 영걸전 시리즈


삼국지 영걸전에서는 공손찬의 구원군으로 참가하는 계교 전투에서 등장하며, 레벨 8의 궁병로 나온다. 능력치는 무력 60, 지력 85, 통솔력 71로 준수하며, 책략만 조심하면 쉽게 퇴각시킬 수 있다. 거록이 아닌 청하를 통과해올 경우 저수 옆에 봉기와 고람이 추가되고 공손찬군이 초원지대가 아닌 평야로 진출하기 때문에 전투가 힘들어진다.
그 뒤 유비조조의 공격을 피해 원소 휘하에 있을 때 회의장에서 볼 수 있으며, 곽도가 여남으로 도망가는 유비를 추격하러 가는 것을 무시하다가 갑자기 연주 전투에서 5턴째에 장합과 함께 지원군으로 등장한다. 여기서는 레벨 23의 연노병으로 나오며, 플레이어가 도주해야 할 남쪽에서 등장하기 때문에 상당히 성가신 상대이다. 전투 이후에는 등장이 없으며, 원소군의 핵심 인물 중 하나임에도 왜인지 곽도봉기, 심배에 비해 비중이 적어 아쉬움을 남긴다.
삼국지 조조전에서는 책사 계열로 등장하며, 백마 전투부터 나온다. 지력이 94로 상향되었으나, 무력이 52, 통솔력이 68로 하향되었다. 연진 전투때까지는 원소군의 주력으로 활약하나, 관도 전투 직전에 전풍의 편을 들었다가 감옥에 갇혀 참전하지 못하고 이후 연의에서처럼 조조의 회유를 거절하고 처형되었다.
여담으로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순욱이 자결하고 대신 저수가 아군이 된다는 루머가 있었다. 심지어 그 후에 나오는 아들 저곡까지 영입이 된다나 뭐라나... 당연히 그런 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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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조조전 온라인에서도 책사 계열로 등장. 스탯도 좋고 사신소환을 달아줄 수 있어 주작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하지만 데미지고 유틸성이고 무엇 하나 현자 계열보다 나은 것이 없어서 대개 버려진다. 연의 원소전에서도 출전 가능한 전투가 몇 개 안 된다.

2.3.4. 삼국전투기


저수(삼국전투기) 문서 참조.

2.3.5. 삼국지톡


작중 각주로만 언급되다 시즌 6 92화에서 얼굴을 비췄다. 회색 머리카락을 5대 5 가르마로 빗은 헤어스타일과 벽안, 네모난 안경과 통통한 몸집이 특징으로, 출세를 잘 못하고 있다고 소개된다. 조조는 공손찬과 달라서 물로 볼 인물이 아니니 지금 전쟁을 하면 안된다고 의견을 내지만, 오히려 허유가 던진 커피를 뒤집어쓰고 심배에게 지금 조조를 칭찬하는 거냐는 날선 말과 함께 멱살을 잡힌다.

2.3.6. 삼국지의 지혜


황의백의 저서인 '삼국지의 지혜'에서는 맨 마지막 장에서 저수에 대해 다루면서, '''왜 저수는 원소의 밑을 떠나지 않았을까?'''를 의제로 삼았다. 자신의 고향이기 때문이라는 설, 그나마 원소가 명문가여서 희망을 걸었다는 설 등등이 있지만 그 이유를 밝히지 못했다.

2.3.7. 84부작 삼국지


연의에 묘사된 것처럼 전풍과 함께 원소 수하 최고의 참모로 등장한다. 지략은 물론이고 인품과 명성도 뛰어난지 지식인들에게 오만한 조조마저도 깍듯이 대접한다. 관우, 진궁과 더불어서 조조가 이 정도로 필사적으로 신하로 만들려고 공을 들인 인물은 작중에서 나오지 않을 정도. 그나마 관우나 진궁은 부하로 회유하려는 모습이였지만 놀랍게도 저수에겐 '선생'[6]이라는 존칭까지 붙여가며 현인으로서 모시는 모습까지 보인다. 그렇지만 저수는 원래 주인에 대한 충성을 잊지 못해 탈옥하여 원소에게 돌아가려하다 실패하여 살해당하고 조조는 슬퍼한다.

2.3.8. EBS 삼국지


여기서는 저수가 원소를 떠나지 않은 이유가 3대째 원씨 가문을 모셨기 때문인 것으로 나온다. 칼을 벗자마자 말을 타고 달아나려 하지만, 하후연이 쏜 화살을 등에 맞고 말에서 떨어져 죽는다.[7]
[1] 응소(應劭)의 《풍속통의(風俗通儀)》에 따르면, 저씨의 시조는 황제(黃帝) 때의 사관 저송(沮誦)이라고 한다.[2] 허유가 원소를 배반하고 조조에게 원소군의 진중 상황을 상세히 보고하였다.[3] 연의에서는 이 부분이 각색되어 "한 선비는 두 주인을 섬기지 않는 법이니 그냥 죽여다오" 라며 원소를 향한 충성심을 굳건히 했고 조조가 극진히 대했는데도 저수는 말을 타고 도망가려고 시도하다가 결국 죽임을 당한다. 조조는 "참다운 충신을 죽이고 말았구나!"라고 한탄한 뒤, 그의 시신을 수습하고 "충렬저군지묘"라는 묘비까지 세워주었다.[4] 가장 문제가 없는 평인 전풍도, 너무 강직해서 주인하고 불화가 생긴다고 그랬는데 딱 이게 원인이 되어 죽었다.[5] 정확히는,협천자는 원소가 거절한 거고 장로는 시도했으나 실패한 거지만.[6] 높임말이 거의 없는 중국어 특성상 '선생님'이라는 뜻으로, 자신보다 상대를 훨씬 높이는 뉘앙스이다. 유비가 제갈량을 삼고초려할 때 제갈 선생, 와룡 선생이라고 모셨던 것과도 똑같은 파격적인 인물 평가다. 대군사사마의에선 제갈량이 죽은 후 사마의가 그에게 감탄하며 '''존경을 담아서''' 선생이라 부르는 장면이 있다.[7] 옆의 관료가 저런 인재를 다른 이에게 빼앗기면 안 된다고 간언해도 조조가 저수를 도망가게 놔두려 하자 하후연이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다.